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
세스 그레이엄 스미스 지음, 최인자 옮김, 제인 오스틴 / 해냄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난 공포영화를 좋아한다. 그리고 공포영화 중에서도 좀비가 나오는 영화를 특히 좋아한다. 《새벽의 저주》부터 시작해서《레지던트 이블》, 《랜드 오브 더 데드》, 《데이 오브 더 데드》, 《나는 전설이다》, 《써티 데이즈 오브 나이트》, 《28일 후》그리고 《28주 후》까지 ㅡ. 좀비물을 좋아하기는 하는데 왜 좋아하는지 이유는 오늘에서야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것은 좀비들이 오늘날의 우리를 닮았다는 것에서 시작한다. 정신적으로는 이미 죽은 시체들인데 몸만 살아서 움직이는 모습과 뭔가에 굶주려있는 그들의 모습에서 시체처럼 살아가는 오늘날 인간의 무한 탐욕을 볼 수 있고, 폭력으로 일관되는 그들의 모습에서 분노와 증오가 가득한 현대인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현실을 벗어나 또 다른 욕망을 이야기함으로써 해소되는 뭔가를 느끼기에 좀비물을 좋아하는 것일까?! 아니면, 마지막에 남는 영화 속 주인공들을 보면서 인간 본연의 삶이 혼자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우치기 때문에, 그 깨우침으로 오싹한 공포 그 자체를 즐기기에 그런 것일까?!  

 


책의 이야기를 써야하는데 너무 다른 길로 와버렸나?! 내가 좀비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에 대해 말하려다 보니.. 뭐, 어쨌든,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 라는 제목부터 확~ 끌리지 않는가?! 음.. ㅡㅡ^ 난 끌렸다. ㅎㅎㅎ 《오만과 편견》이라는 정말 멋지고 매력적인 작품에 '입에 담지 못할 그것'을 더했다기에 과연 어떤 작품이 될는지 상당한 기대를 했었다.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 원작《오만과 편견》과 거의 내용을 같이 한다. 단지 "좀비"라는 소재가 가미되었을 뿐이다. 55년 동안 영국에 (좀비가 활개치고 다니는) 괴상한 역병이 퍼져있다는 것이 기본으로 깔려있는 상태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런저런 평가를 떠나서 일단은, 즐거웠고 신났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보통 소설을 읽으면 소설 속 느낌에 상상을 더해서 나만의 세트장을 만들고, 그 세트에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넣고는 나만의 영화를 제작(?)하고는 한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큰 상상을 더할 필요 없이 영화 《오만과 편견》의 배경과 주인공을 그대로 옮겨오면 되었다. 비록 나만의 편견(?!)으로 상상력에는 제한을 받았지만, 영화 《오만과 편견》에서 엘리자베스 베넷 역을 맡았던 키이라 나이틀리」가 칼과 총을 들고 좀비와 싸운다는 생각을 하니.. 약간의 황당함과 많은 즐거움으로 인해 더 신날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답답하고 짜증나는 높으신 분들의 모욕적인 발언들에 우리의 주인공은 단순히 "죽이고 싶다"라는 표현이 아닌, “망토위에 그의 목을 올려놓고 싶다”라든가, “뱃속의 내장을 꺼내 목 졸라 죽이겠다”라는 식의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그리고 당장이라도 행동으로 옮기려는 시도와 그에 버금가는 상상으로 인해 쌓였던 스트레스도 한 방에 날릴 만큼의 시원함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현실에서 그 누가 감히 그러하겠는가?! 어차피 《오만과 편견》의 패러디성 짙은 작품이기에 원작과 다른 뭔가를 기대했었는데, 그 시원함은 정말 이런 작품이 아니면 보기 힘들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패러디문학에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재미있으면서도 순간순간 느껴지는 불편함은 어쩔 수 없었다. 나만의 느낌일지도 모르겠지만, 중국에서 무술을 배웠다. 일본에서 배웠다. 일본 닌자가 경호원의 역할을 한다. 등등의 내용들은 어떻게 보면 그 자체마저도 무시하는 듯, 비웃는 듯 하는 느낌이 나기도 했다. 그리고 좀비라는 것이 원래 그러하듯, 좀비의 등장에는 그 자체의 지저분함(?!)이 함께 담겨져 있다. 소설 속에서 강인하게만 나오는 엘리자베스도 자주 구토를 할 만큼의 구역질나는 징그러움과 피가 소설 속에 몰아친다 ㅡ. 비위가 약한 사람이라면 약간은 거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원작『오만과 편견』에 좀비라는 요소를 가미한 독특한 발상으로 신기하면서도 재미있게 읽었지만, 결국에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 그리워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 스스로 이미 상당한 편견을 가짐으로써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라는 새로운 작품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던 탓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것이든, 나 스스로의 편견에서 벗어난다면 훨씬 즐거운 삶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마무리지어본다 ㅡ. 

 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회에  《오만과 편견》도 다시 제대로 봐야 겠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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