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소녀
델핀 드 비강 지음, 이세진 옮김 / 김영사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보통의 성장소설들을 보면, 그 속의 주인공들은 세상을 전혀 알지 못한다. 설사 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진정으로 아는 것이 아닌 어렴풋이 뭔가를 느끼는 것이리라 ㅡ. 그런 보통의 것들(?)과는 다르게 현실을 아는 어린 소녀를, 나는, 『길 위의 소녀』를 통해 만나게 된다.  

 

 

 

학교 수업의 발표 주제를 물어보는 선생님의 질문에 "노숙자"라는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대답을 하고 마는 「루 베르티냑」ㅡ. 그녀는 160의 아이큐로 두 번이나 월반을 한 고등학교 1학년의 지적 조숙아이다. 이미 내뱉은 말을 해결(?)하고자 그녀는 파리 시내 기차역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노숙자인 18세의 소녀 「노」를 만나게 된다. 이 책의 원제가 “노와 나(NO ET MOI)”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두 소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독특한 생각으로, 다양한 실험도 스스로 하는 루. 그런 그녀가 새로운 실험을 하게 된다. 세상을 향한 순진한 도전이라고 해야 할까?!  자신과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노숙자인 노를 데리고 와 함께 지내고, 그 누구보다 진한 우정을 과시하게 되는 두 소녀의 생활 모습들이 그려진다. 그리고 그녀들의 꿈과 희망, 그들이 놓인 참담한(혹은 그 반대일 수도 있는) 현실이 펼쳐진다. 

 나는 평등과 박애를,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지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그 모든 것들을 생각한다

여기서든 다른 곳에서든, 

인간이 모두 평등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어서는 안 된다.  - P113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일지도 모르는 『길 위의 소녀』속의 세상을 똑똑하면서도 순진한 루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열세 살이라는 어린 나이지만, 학교에서 배운 세상과 현실 속의 세상이 다르다는 것쯤은 알고 있으며, 그녀의 머리를 채우고 있는 많은 생각들은 어른들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아무것도 아닌, 혹은 쓸데없거나 이상한 것으로 비춰진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너무나도 많은 것들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주의적인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그녀이다. 지금 당장 하는 그녀의 그런 이상적인 실천들이 성공이든 아니든, 그녀는 성장한다. 어른으로 ㅡ. 

 

 '사물은 존재하는 바로 그대로다.' 

그리고 우리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은 너무나 많다. 

그렇다, 어른이 되려면 분명히 그런걸 받아들여야 한다.  - P90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세상에 길들여짐이다 ㅡ. 세상에 길들여지면 그 때에 가서 "어른"이라는 수식이 붙게 된다. 그리고 이제는 어느 정도는(?!) 어른이 되어버린 나 ㅡ. 그리고 그런 내가 바라보는 노와 루의 모습들 ㅡ. 키스할 때 혀를 돌리는 방향을 고민하던 루가 그것은 별로 중요치 않다는 것을 깨달아 버림과 동시에 그녀는 성장한다. 그리고 그런 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이지 않은 이야기를 마주하면서, 루와 비슷한 이상을 꿈꾸던 나를 기억해본다. 그리고 나 스스로 또 다른 멋진 현실을 그려본다. 독특하면서도 유쾌함 가득한 감동을 안고 있는 『길 위의 소녀』, 멋진 만남이었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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