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일드 44 뫼비우스 서재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 들어서 이런저런 많은 책들을 봤지만, 이렇게 작품성 높으면서도 흡입력까지 두루 갖춘 작품은 오랜만에 만나보는 것 같다. (물론 그 작품성이나 흡입력이라는 말의 정의나 평가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지만, 이 책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나의 생각에 대해 반대의 여지는 크게 없을 듯하다.) 더군다나 이 『차일드 44』라는 작품은 「톰 롭 스미스」의 데뷔작이라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정말 멋진 작품이자, 먹진 작가를 만났다는 사실에 기쁨이 앞서는 책이다 ㅡ. 

 모든 것이 통제를 당하는 1950년대 스탈린 치하의 소련ㅡ. 존재하는 것은 국가와 나 자신의 관계뿐이다. 서로서로를 감시하게 만들고, 모든 것은 국가와 공산주의만을 위해 존재하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한다. 물론 국가에서는 그런 반사회적 범죄는 존재할 수 없다는, 또는 존재 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연쇄살인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 국가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나선 주인공 「레오」ㅡ. 전쟁 영웅으로 국가 안보부의 정예요원으로 스파이 용의자를 감시하다, 기찻길에서 죽은(사실은 살해된) 자기 부하의 아들 사건의 해결을 지시받게 된다. 국가에 대한 투철한 믿음(?!)으로 살인 따위는 일어날 수 없다는 국가의 생각에 절대적으로(?!) 동조를 하게 된다. 그와 동시에 감시하던 용의자는 도주를 하게 되고, 그의 부하인「바실리」를 비롯한 다른 부하들이 그를 불신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며, 레오는 점점 궁지에 몰리게 된다. 결국 바실리(혹은 또 다른 누군가)에 의해 반역자로 몰려 좌천당해 멀리 쫓겨난 레오는 또 다른 살인 사건을 접하게 되면서, 연쇄사건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비밀스럽게 그 살인범을 쫓는 과정이 펼쳐지게 된다. 그 과정 속에서 레오와 그 주변의 사람들을 통해, 국가와 자신과의 관계, 이데올로기, 가족과의 사랑, 믿음과 불신, 등등 많은 것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레오가 절대적으로 국가를 믿고 국가에서 시키는 일이라면 뭐든지 따르는 모습에서 시작해, 그 국가라는 존재에 대해 조금씩 불신(?)이 싹트고 자신의 사명을 찾아 나서기까지의 그 변화 과정이 무척 흥미로우면서도,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마치 우리의 지난 과거를 보는 듯 한 생각이 들어서 였을까?! 레오가 겪은 개인적 고뇌와 우리 과거 많은 이들이 시도하고 벽에 부딪혔던 많은 순간들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정말 많이 들었다. 특히, “한 사람이 도대체 뭘 이룰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던 그 순간에는 더더욱 ㅡ. 

 또한, 레오의 아내인 「라이사」의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에서는 우리 역사에서 크나큰 슬픔과 치욕으로 기억 될 "보도 연맹"사건이 떠올랐다. 라이사의 어린 시절, 고향 마을은 폭탄으로 인해 먼지와 연기로 변해 사라졌다. 독일군의 폭탄으로만 생각했었으나, 독일군의 수중에 떨어질 수 있는 마을이라는 이유로 자기 조국의 군대가 행한 짓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와 비슷한 "보도 연맹" ㅡ. 아마 9년 전 이맘 때 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전국 대학생 자전거 순례" 라고 해서 돌아다녔던 적이 있다. (사실 말이 자전거 순례지, 도시간의 이동은 차로 하고, 한 도시 내에서만 자전거를 타고 다녔었다) 그 때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녔던 곳, 그 순례지가 바로 "보도 연맹" 사건으로 인해 사라져야만 했던 많은 이들의 아픔이 남겨진 자리였다. 이제는 무수한 사람들의 뼈만 남겨져 있는 곳 ㅡ. 상상이나 해봤는가? 사람의 두개골에 여전히 총알이 지나간 구멍이 자리하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그 모습을 마주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도 연맹"이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통해 많이 알려진 사실이 되었기에 다른 설명은 필요 없으리라 생각한다. 

 레오가 많은 고뇌를 하며, 결국 선택한 사명 ㅡ. 그 사명은 또 다른 존재가 되어버린 국가를 위함이 아닌 인간적인 면모로 인해서라고 생각하면 될까?! 아이들이 주검으로 - 그것도 잔인한 - 발견되고, 불안과 공포가 자리잡게 되어버린 자식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연쇄 살인범을 찾기 위한 고통스러운 레오의 여정에 책을 보는 나까지도 고통스러울 지경이었다. 참고로 제목 『차일드 44』는 연쇄적으로 살인 당한 아이들의 숫자를 나타내는 것이다. (물론 44건 마저도 알려진 것이라고 한다.) 모든 범죄가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아이들에 대한 범죄행위는 정말 근절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보다 더 추잡한 짓이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아이들은 흔히 우리가 말하는, 우리의 미래인데. 그 미래를 짓밟는 다는 생각만으로도 정말 더러운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ㅡ. 

 이 작품은 실제 사건과 픽션을 뒤섞었다고 한다. 52명의 여성과 아이들을 살해한 연쇄 살인마 「안드레이 치카틸로」의 실화와 스탈린이 철권통치를 휘두르던 50년대의 소련의 상황을 절묘하게 엮어 멋진 스릴러 소설로 탄생시켰다. 그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없었다. 세상에 대한, 역사에 대한 비판과 동시에 감동과 슬픔, 사랑 그리고 스릴러적 요소까지 절묘하게 뒤섞은 작품이다. 더 없이 매력적으로 말이다 ㅡ. 

 이 작품이 이제 영화로도 나온다고 한다. 이 멋진 작품이 영화로는 어떻게 태어날지 궁금해진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그렸던 장면들과 영화 속에서 만날 장면들을 하나하나 비교해 보는 재미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벌써부터 또 다른 설렘이 밀려온다. 하지만, 그것은 책을 읽은 후의 일이고..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은 이들에게는 영화를 통해 멋진 작품을 만나는 즐거움도 좋지만, 책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많은 즐거움들을 미리 만나보라고 권하고 싶다. 자신만의 상상으로 만들어낸 이미지들이겠지만, 기찻길과 살인이 이루어지는 숲 속, 그리고 하얀 눈 위의 발자국들은 절대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이 작품이 정말 멋지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ㅡ.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