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티드 맨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1-1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1
존 르 카레 지음, 김승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에 읽은 책이 《나의 관타나모 다이어리》라는 책이다. 미국이 선포하고 실행하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상징하는 장소이며, 뚜렷한 죄도 없는 수감자들에게 재판을 받을 권리도 주어지지 않은 채로 고문과 학대 같은 온갖 만행을 저지른다는 곳. 그곳이 관타나모 수용소이다. 『원티드맨』은 직접적으로 관타나모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 연장선상에 놓여 있었다. 적어도 나의 머리에서는.. 

 

검은 코트를 입고 목에는 케피예를 두르고, 낙타 가죽 안장주머니를 둘러멘 모습으로, 터키 출신의 모자인 '레일라'와 '멜릭'의 앞에 갑자기 나타난, 독일, 영국, 미국 정보국까지 탐내는(?) 인물, 원티드 맨 - '이사'. 레일라와 멜릭 모자는 독일 시민권을 받기위에 노력중이면서도 이사의 처참한 모습을 외면하지 못하고 가족으로 받아들이지만, 결국 자신들의 위험을 덜기위해 민권 단체 "생크추어리 노스"의 '아나벨'이라는 변호사에게 도움을 청한다. 학대와 고문의 상처로 인해 정신적으로 불안정하지만 자신의 꿈을 위해 함부르크까지 힘들게 달려온 이사, 그에게 도움을 주기위해 끝까지 노력하면서도, 무시 못 하는 권력과 자신의 신념사이에서의 혼란을 겪는 아나벨, 그리고 함부르크에서 개인은행을 운영하는 '브뤼', 실전에서 경험을 바탕으로 독일 정보국에서 일하는 '바흐만' 등을 통해서 나타나는 각종 사회성 짙은 이야기들, 그리고 쉽게 판단하기에 어려운 이야기들이 독일 함부르크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다양한 작품으로 수많은 찬사를 받는 「존 르 카레」이지만, 나는 처음으로 그의 작품을 접했다. 냉전시대 실제 첩보활동을 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스파이 스릴러의 전설적인 거장답게 그의 이야기들은 무엇보다 사실적이면서도 날카로웠다. 한편으로는 그의 그런 전력과는 어울리지 않게(?) 인간적인 면이 느껴진다는 점이 나에게는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존 르 카레」가 미국 대외 정책에 대한 직설적인 비판으로 유명하다는 말(책에 있는 그의 소개를 통해 알게 되었다)을 직접 증명하듯이, 이 책의 마지막에 가까워져서는 “미국식 정의”라는 말로써 미국을 향해 날카로운 외침을 날려 보낸다. 하지만, 그 날카로움이 향하는 곳이 비단 미국 뿐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권력이 있는 모든 곳, 모든 사회가 그 날카로움을 피해갈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신의 이익에 반한다면, 한 번의 아픈 경험으로 인해 조금만 위험해 보여도 그 위험을 제거해 버리고 마는, 그리고 그 위험의 제거를 위해서 한 생명을 이용하고 처참하게 짓밟아버리는 행태들 ㅡ. 오늘날 어느 곳이나 그런 행태들이 자행되고, 묵인되고 있는 것이다. 앞서 말한 관타나모 수용소 같이 말이다. 

 

 『원티드맨』을 통해, 다수를 위해 소수의 희생을 강요해도 되는 것인가?! 라는 문제에 정면으로 부딪히게 된다. 누군가는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다수는 누구를 통해 어떻게 나타나게 되는 것이며, 소수는 과연 누가 될 것인가?! 라는 문제가 생겨나고, 다수의 편에 있다가도 언제든 소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면서 이런 생각들을 하고, 또 그렇게 행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그 95퍼센트는 움마의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합니다. 

하지만 나머지 5퍼센트는 테러에 자금을 댑니다. 의식적으로, 독창적으로.  

따라서 그는 사악한 사람입니다. 그것이 그의 비극이죠.  - P327  

 

 그리고 또 한 가지, 어느 한 사람에게 '95퍼센트'의 과 '5퍼센트'의 이 있다면 그 사람은 과연 악인가 선인가?! '95'와 '5'라는 숫자만으로 그 사람을 평가할 수 있는 것인지, 혹은 단지 '5' 만큼의 악이라도 그 악의 강도(?!)에 따라서 '95' 만큼의 선을 덮을 수 있는 것인지?! 그렇다면 그런 판단은 과연 누가 해야하는 것인지?! 그냥 최소한의 기본적인 권리는 당.연.히. 지켜져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는 그 누구나 동의하겠지만, 그 당.연.함. 마저 위협받는 이 세상은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해야 할 것인가?! 등등의 복잡한 생각들도 하게 될 것이다. 뭐, 어느 것도 어느 곳에도 정답은 없다. 수학은 아니니까.. 

 

 「존 르 카레」라는 거장의 이름조차 몰랐던 나의 무지로 인해, 단순히 재미있는 책만을 만날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 솔직히 재미있지만은 않은 책이다. 하지만 그 재미 이상의 깊은 생각을 던져주고, 그 어떤 무서움(내가 '이사'가 되어 이야기에 빠져나간다면..)과 현실을 좀더 냉철하게 바라보는 힘을 가지게 하는 책을 만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단순한 재미만을 찾았던 나를 비웃듯이 다가온 책,  『원티드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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