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용윤리
피터 싱어 지음, 김성한 옮김 / 철학과현실사 / 200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철학적 글쓰기 시간에 낙태, 해외원조, 기업윤리, 정치와 더러운 손 등에 대한 주제로 토론을 하고

글을 써 내야 했다. 그 때 참고한 책으로 막연히 생각만 가지고 있었던 주제들에 대해 한층 심도깊에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영향력 있는 윤리학자 피터싱어의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부유한 사람들이 개발 도상국의 빈곤을 줄이기 위해서 도움의 손길을 꼭 내밀어야 하는가 하는문제에 대해 어떤사람은 여러 이유를 들어 해외 원조의 의무에 반대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할 광범위한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는데 여기에서 나는 해외 원조의 의무가 있다는 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려고 한다.

 

해외 원조에 대한 반대의 이유로 가장 큰 것이 자국의 빈곤 문제를 해결 하는 것이 우선이고 그 다음이 해외 원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제3세계의 인구를 급속하게 증가시킴으로써 식량 부족이나 생태계 파괴와 같은 지구적 재앙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원조금이 빈곤 문제가 아니라 다른 목적으로 쓰일 가능성이 많다는 데 있다. 그러나 이 근거들은 해외 원조를 반대하는 결정적 근거가 되기에는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해외 원조는 우리처럼 잘 살게 하려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답게 살게 하려는 복지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햄버거 하나를 얻기 위해 소를 키우고, 소를 키우기 위해 숲을 태우고, 소고기 100g과 맞바꾼 1.5평의 사라진 숲은 지구의 온도를 매순간 높인다. 우리가 햄버거를 기다리는 동안 몰티브의 누군가는 해일에 떠내려 간다.’ 이문장은 지식e라는 책에 실린 것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누군가의 물건을 망가트리면 반드시 보상을 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가 햄버거를 먹음으로써 숲이 없어지고 해일이 일어나고 아무 잘못 없는 무고한 한 사람의 생명권이 위태로워진 것에 대해 보상해야 한다. 호주가 인디언들에게 대대적인 보상을 한 것처럼 제국주의 국가들이 폭력적인 수단을 동원해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들을 식민지배 하면서 자원을 강탈하고, 노동력을 착취함으로써 경제 발전이 지체 된것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 또한 식민통치를 한 국가가 아니더라도 자본주의의 경제 체제는 세계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잉여가치의 착취를 통해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주변부 국가의 빈곤에 대해 중심부 국가는 책임을 지고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해외 원조에 나서야 한다.

어떤 여대생이 길을 가고 있는데 어린 아이가 개울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것을 보았다고 하자. 그 아이는 처음 본 낯선 아이였으며 개울은 얕은 편이어서 옷과 신발이 젖는 불편을 감수한다면 그 아이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우리는 여대생이 아이를 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데이트나 특별한 약속이 있다 하더라도 구해주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비난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물에 빠진 아이를 보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가난한 사람을 보았을 경우에도 마땅히 따라야 하는데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선행의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이웃의 아이가 먹을 것이 부족해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절박한 위기에 처해 있다면 우리는 기꺼이 내 것을 내어 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곤경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도움의 손길을 뻗어야 한다.

 

세계화 시대인 오늘날 해외 원조의 의무가 더욱 강하게 요구 되는데 우리 삶의 역역이 전지구적 차원으로 확대 되었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범위가 국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지구촌의 구성원들은 서로에게 이익을 주기도 하고 피해를 주기도 하며 긴밀하게 상호 작용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원조의 의무를 자신이 속한 지역사회나 국가에만 한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나라에 도울 사람이 많은데 왜 외국까지 도와야 하는가’하고 묻는 사람이 많은데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OECD가입을 앞둔 90년 까지 우리나는 월드비전의 원조를 받았으며 해외원조로 인해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다. 분명 그들의 나라에도 가난한 사람이 있었을텐데 말이다. 유난히 ‘우리’라는 말을 좋아하는 굶어 죽는 아이, 노예처럼 하루종일 일해야 하는 아이가 없도록 ‘우리’라는 범위를 해외까지 확대해야 한다.

 

해외원조 기부금이 빈곤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소수 권력자들이 갖거나 무기를 사는 등 다른 목적으로 사용 되는 등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원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하더라도 원조를 해야한다. 원조금의 일부분만이라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아가서 그들의 고통을 덜어 줄 수 있다면 그것 만으로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바닷가에 사는 한 어무가 아침마다 해변으로 밀려온 불가사리를 바다로 던져주며 살려주었다고 한다. 이것을 본 동네사람이 “그 수많은 불가사리 중 겨우 몇 마리를 살린다고 뭐가 달라지겠소?”하고 묻자 어부는 대답했다. “그 불가사리로서는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건진거죠”하고 말이다. 이처럼 해외원조로 인해 세상을 변하게 하지 못하더라도, 우리가 꿈꾸는 그런 세상이 빨리 오지 않더라도 한 사람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면 우리는 적극적으로 원조해야 한다. 세계 60억 인구 중에 30억이 끼니를 걱정한다는데 60억 인구 모두 배부른 그 날이 빨리 왔으면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