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망상 나남신서 502
조동일 지음 / 나남출판 / 2001년 9월
평점 :
품절


전에 복거일의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라는 책을 읽고 상당히 설득력 있는 얘기라는데는 동의했으나 뭔가 직감적으로 반감이 일어나는 걸 막을 순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조동일 교수의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망상-민족문화가 경쟁력이다"를 읽었습니다. 다음은 그 요약입니다.

1.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주장을 펴는 사람들은 그렇게 해야 영어를 잘한다고 한다. 그러나 영어를 잘 못하면 공용어로 할 수 없다. 영어를 잘하면 공용어로 할 필요가 없다.

2.공용어는 국어가 확립돼 있지 않거나 국어는 있으되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지 못해 언어소통에 문제가 있는 경우에 채택하는 언어이다. 따라서 국어가 확립되어 있는데 외국어를 또 하나의 공용어로 삼은 나라는 이 지구상에 하나도 없다.

3.우리나라는 단일민족 단일언어 국가로 세계 12위의 언어 사용자 수와 오래 전부터 문자언어로 표기되고 통합된 국어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일은 세계사에 유래가 없을 정도로 특수한 경우다.

4.즉,우리나라는 단일 모국어가 국어이고 공용어이다.

5.영어는 "세계어"가 아니라 "교통어"이다. 교통어란 서로 소통하기 위한 언어이지 다른 언어를 말살하는 언어제국주의적인 언어가 아니다.

6.영어의 본고장 미국에서도 영어의 지위는 점점 축소되고 다른 소수언어들이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7.영어를 잘 한다고 꼭 잘 사는 것도 아니다. 필리핀은 영어를 잘하는 국가지만 못 산다. 싱가폴과 말레이시아도 영어를 잘하지만 자국의 문화가 점점 말살되어 오히려 세계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

8.세계 경쟁력은 영어를 잘하는 것에서 높아지는 것이 아니고 민족고유의 문화를 발전시키는 것에서 세계에 기여할 수 있고 다양성이란 무기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9.영어를 잘해서 생기는 경쟁력은 우리의 경쟁력이 아닌 미국의 경쟁력이다.

10.유럽에도 영어를 잘하는 나라들이 많지만 자국의 언어를 포기하는 일은 없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모국어가 하나다. 나머지는 외국어일 뿐이다. 영어는 얼마든지 외국어로 공부해서도 잘 할 수 있고 세계의 교통어로 사용하는데 문제가 없다.

11.지금 세계에 통용되는 영어는 미국이나 영국의 방언이 아닌 "표준영어"이다.

12."표준영어"를 익히기 위해서는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에게 배울 필요가 없다.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어떤 사람의 언어도 하나의 방언을 구사할 뿐 결코 "표준영어"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표준영어"를 배우는데 방해가 된다.

13.지금까지 해온 문법위주의 영어교육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간단한 생활회화는 경쟁력이 될 수 없다. 어차피 세계경쟁력 있는 영어란 독해와 작문실력이다. 이것은 문법공부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14.자연에서도 문화에서도 다양성은 생명이 보존되고 진화하게 하는 기본조건이다. 각각의 언어는 독자적인 정보를 많이 갖고 있으며 이것은 인류공동의 자산이다. 언어에는 더 나은 언어도 더 못한 언어도 없다. 모든 언어와 문화가 다 같이 소중하다.

15.한국은 다언어 다민족 문제가 없고 표준화가 잘 되어 있으며 방언차가 적다. 우리는 이미 한글로 기록된 독자적인 오래된 언어의 전통과 문화가 축적돼 있다. 이것은 우리의 최대 장점이며 이것으로 세계경쟁력을 높이고 세계사에 기여해야 한다.

16.우리나라의 국력과 언어환경은 제3세계의 모범으로 세계사의 흐름을 주도할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다.

17.따라서, 우리 스스로 우리의 언어와 문화를 버리지고 하는 주장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조동일 교수의 주장은 대략 이 정도로 요약해 볼 수 있습니다.
조교수의 주장은 복거일씨의 주장과 서로 통하는 경우도 있고 때로 논점을 빗겨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쨌든 조동일교수는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주장은 망상이며 실현불가능한 일이라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지역언어의 힘을 무시하지 말라는 얘깁니다.

사실 한국인으로서 조동일 교수의 주장이 더 통쾌하게 들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복거일씨의 주장에 대해 서로 논점이 좀 빗겨 간 경우가 좀 있어서 찝찝한 면이 남습니다. 가령 복거일씨는 경제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조동일교수는 문화와 문학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또한 복거일씨가 이미 언어 식민지화 되어가고 있는 한국의 현실에 눈을 돌리고 있는데 반해 조동일교수는 과거의 전통과 상아탑의 학문적인 성과 위주로 논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런 반면 두 사람의 주장이 일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영어는 "표준영어"가 중요하고 그 공부 방법은 문법과 작문 위주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요즘 출신도 능력도 자격도 불분명한 외국인에게 아이를 맡기는 이 땅의 많은 부모들이 귀담아 들어야할 얘기입니다.

두 사람의 주장은 어차피 시간이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 주겠지요. 하지만 그 시간이라는 것이 우리 당대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몇 세대,길면 수 백년의 세월에 걸쳐 일어난다는 점이 이 논의의 승자와 패자를 가리는 데 어려움을 주고 있습니다.

누가 옳고 그르든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우리말도 아름답게 갈고 닦고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세월이 결론을 내려 줄 때까지 그냥 열심히 하는 수 밖에 별 방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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