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이 멀지 않다
나희덕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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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중학교 2학년 때, 30대 나이의 도덕 선생님 왈, (스타일은 전영록 스타일을 연상케 했다- 벌써 7년이 다 되어 가는데 그분의 근황이 궁금하기는 하다.) “우리가 사람이 ‘산다’고 말하는데, 사람이 어째서 사는 것이라고 말하는가? 사람은 살아가는 게 아니다. 이를테면 우리가 15년 살았다고 해보자, 그게 어째서 15년을 산 것이냐? 그건 15년 산 것이 아니고, 15년 썩은 거다. 그렇지 않은가?” 현실적으로 보면 맞는 말이다. 사람은 죽음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 시인은 이 현실을 철저히 배제하고 인간이 바람직하게 나가야할 꿈을 그리고 있다.


사람은 죽어가는 게 아니라구,

살아가는 거라구,

밥을 안치면서 나는 말하지 못했다

젖은 쌀알이 모래처럼 서걱거렸다

                                ―「黃紗 속에서」


시인은 사람이 죽는 것마저 부정하지는 못한다. 사람은 살아가는 것이라고 계속 반추하지만, 젖은 쌀알이 서걱거리듯, 시인도 인생에 대한 걱정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 시의 다음 행들을 보자.


간신히 가라앉은 모래를

바람은 또다시 일으켜 어디론가 쓸고 간다


가라앉은 모래는 어디론가 다시 간다. 인생은 쉴 새가 없고, 또한 없어야 한다. 그것이 ‘아름다운 生’이 아닌가! 그런 면에서 시인의 방향은 철저히 빛이고, 아름다운 삶을 추구한다. 같은 삶을 어떻게 그려내면 밝아지고 어두워지는가를 이 시인은 여실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유리는 유리일 뿐이라는 쓸쓸함과

한번 깨어지고 나면 더 이상 유리일 수도 없다는

두려움을, 예리한 슬픔의 파편을.

생각해보면

모든 게 보석처럼 빛나던

한 세계의 광휘, 내게도 있었다.

                                ―「밤길」


유리, 그것도 깨진 유리를 동심을 통해서 보석으로 읽어주는 시인의 눈이 놀랍다. 상처에서 나타난 기억들이 다시 우리를 살려내는 것, 여러 시집 제목에서 눈에 띄는 주제이지만 참 가슴 뛰는 대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그런 기억에 보호본능을 가지고 있다.


꽃을 지키려고 탱자는 가시를 가졌을까

지킬 것도 없이 얇아져가는 나는

내 속의 칼날에 마음을 자꾸 베이는데

탱자 꽃잎에도 제 가시에 찔린 흔적을 가지고 있다

                                        ―「탱자 꽃잎보다도 얇은」


자신은 꽃보다 얇다? 자신은 보호본능을 가지지만, 그 기억은 자꾸 맴돌아, 물레방아 찧듯, 때만 되면 그를 괴롭힐 것이다. 아플뿐더러, 허랑한 것은 참 당연할 것이다. 시인은 해결방법을 제시한다.


쌓고

또 쌓고

쌓는지도 모르고

쌓고 

쌓는 것의 허망함을 알면서

쌓고

어디까지 갈 수 있나 오기로

[……]


어느 날

내가 쌓은 모래성이 밀물을 불러왔다

                                ―「밀물이 내 속으로」


시인은 주변의 위협을 무시한 채, 꾸준한 노력을 하는 것을 해결방법으로 삼고 있다. 결국은 그 노력이 결실을 이룰 것이라는 희망적이고 낙관적인 발상이 그의 시엔 곳곳에 들어가 있다. ‘쌓는 것의 허망함’을 가지고 성을 쌓는다면 어떻게 전력으로 살아갈 수 있겠는가, 그의 시는 이런 희망의 삶을 노래하려 하고 있다. 시인은 두려움으로 썩을 수 있다는 것마저도 희망으로 삼고 있다.


썩을 수 있다는 것은

아직 덜 썩었다는 얘기도 된다

가장 지독한 부패는 썩지 않는 것


부패는 

자기 한계에 대한 고백이다

일종의 무릎 꿇음이다

                        ―「부패의 힘」 중에서


등반을 거부하는 절벽처럼 쏟아지는 폭포,

그 속도의 벽을 뚫고

폭포 뒤에 집을 짓고 먹이를 나르는 새들이 있다

토해낸 물고기 뼈를 둥지에 깔고

맑은 알을 기르는 새들


[……]


눈도 못 뜨고 몸만 젖어 돌아서는 사람들

배는 눈먼 경전에 지나지 않는다


새들은 폭포의 뜨거운 목젖을 지난다

                        ―「성공한 인생」중에서


새들이 폭포를 지나 자식들을 먹이는 광경, 그 얼마나 고통일까, 하지만 감내하고 자신이 먹었던 것을 토해 자신의 기반을 다진다. 하지만 사람들은 폭포를 넘어서지 못하고 뱅뱅 아래에서만 맴돈다. 그것을 넘어서려고 만들어진 배, 즉 그렇게 살아왔던 우리 자신의 삶은 눈먼 경전, 즉 시도도 못 해보는 쓸데없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새에게서도 철저히 배워야 하는 것이다.

 

이 카툰이 한마디로 말해주고 있는 듯 하다.

http://new.newstoon.net/imgdata/newstoon2/04081650mho817.jpg


치열하게 불타올라야 할 우리의 삶, 건투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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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아래 비의 눈들이 모여 나를 씻을 수 있다면 문학과지성 시인선 274
이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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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에서, 비와 할머니는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한다. 아주 빈번하게 나오는 ‘할머니’가 나오는 시 하나를 보면,


할머니는 허리를 접어 콩을 깝니다 톡톡 튀는 콩들이 어디론가 도망을 칩니다 [……] 콩들이 바삭바삭 신음을 터뜨리며 할머니를 흥분하게 만들었습니다 [……] 과부 팔자로 꼿꼿이 견디었는데 손주놈이 늘 지 애비 구박하는 걸 듣고 복장이 터질 노릇입니다 할머니 콩잎을 탁 매만지다가 콩알에 맞았습니다 콩알이 뭐 총알처럼 할머니 가슴에 박혔습니다 텔레비 보며 깨우친 전쟁을 콩알들과 합니다[……]못된 손주놈이 지 할매 詩 바꿔 먹었습니다 콩잎마냥 지 할매 가슴을 훑어 지 할머니 가슴에 콩알 총알 박았습니다 [……]손주놈은 이제 할머니의 가슴을 감청하고 싶어합니다 할머니를 아예 도청합니다

                                ―「할머니를 도청합니다」중에서


그의 시의 근본을 알려주는 시이다. ‘손주놈이 지 할매 시 바꿔먹었다’고 말한다. 손주놈이 바로 시인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그의 시의 근원은 할머니의 기억, 즉 모든 인간의 경험과 生이다. (할아버지가 없으므로)할머니는 우리 인간의 최종적인 상징이다. 그런 할머니가 콩을 까고 있다. 콩은? 까야 하므로 생을 의미하는 듯하다.

손주는 자기 아버지를 구박한다. 그의 시에서 누구도 비판 대상에서 비켜가지 않는다. 그러고서 복장을 터뜨리고 콩잎을 만지다가 콩알에 맞고 만다. 할머니, 즉 生이 그의 시를 만들었지만 그의 시는 상대를 막론하고 공격한다(시에서는 손주가 할머니에게 시에 빠져 총알을 쏘아댄다고 말한다)


할머니는 이젠 숯뿐인 살들 매만진다 살들로 불 피울 수 있을까 다림질을 한다 [……]먼저 간 남편 무정한 놈 무정한 놈이라고 흘려보냈다 [……] 할머니는 제 삶을 다림질한다 제 살들을 펴느라 한참 분주하다

                                ― 「할머니 제 삶을 다림질한다」중에서


시에서 할머니는 여러 가지 방법의 비유로 등장한다. 할머니 기계, 할머니 한 마리… 쩝, 그의 시에 들어있는 할머니의 공통점이면 生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할머니와 염소는 다정스레 울타리 안에 묶여 있습니다 [……] 고삐 맨 제 고요의 그림자를 밟아 봅니다 어두워진 할머니도 이젠 지나온 길들을 되새김질합니다 [……] 돌아보면 걸어가는 길이 걸어온 길입니다

                                        ―「할머니와 염소」중에서


‘돌아보면 모든 길들이 걸어온 길’이라는 그의 멘트는 비와 합쳐져 확장된다. 이 시를 보자.


비 주루룩 내리자 그녀는 사라진다 [……] 주름져 내릴 비의 영혼으로 그녀는 비 내린다 비로 내린다 [……] 세상의 비는 여전히 세로로 하강하건만 그는 감히 가로로 세상을 달린다 [……] 이 나라에선 우산을 들어도 늘 마음이 젖는다 가슴이 빨간 삶들은 늘 영혼이 젖어 있기 때문이다 [……] 가로의 추억에 미끄러지는 그의 어깨로 비 주루룩 내린다

                                        ―「비 내리는 날들은」 중에서


그녀는 비가 되어 내린다. 비는 그녀에게 모든 것을 잊게 하고 있고, 결국 그녀를 잊게 하여 그녀는 ‘비로 내린’다. ‘세상의’ 라고 하며 정체를 드러내는 비들은 세로로 하강한다. 그런 비들, 즉 자신을 적셔 잊게 하려고 하는 세상의 모습을 완강히 부인하고 싶은 ‘그’는 가로로 달리고 있다. 하지만 그는 가로의 추억, 즉 자신의 행동에 미끄러진다. 어깨로 비가 내린다. 그렇게 꿀꿀하기만 했던 삶을 고쳐보고자 했던 모습은 결국 세상에 융합되어 그의 어깨로 비 내린다. 세상은 그의 힘으로 고치기엔 너무나 힘들다. 그런 그의 기억, 어떻게 고쳐야 하나, 그것은 세탁소다.


길을 만나고 돌아온 날은 세탁소에 들러야 한다 지나온 길들을 빨아야만 길 위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길들을 만나는 일은 죄를 짓는 밤 길들에게 죄를 짓는 밤은 세탁소의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해야 하는 아예 육체를 다시 헹구어야 하는 불안의 밤이다 불안의 밤을 세탁소에 맡겨 씻어내야 하는 것이다 그의 몸에 악착같이 달라붙은 길들의 먼지 먼지들의 영

혼을 다림질해야 하는 것이다 길의 세탁소는 늘 불안히 깜박거리고 네온의 침들을 질질 흘리고 있다 길 안의 영혼 길 밖의 세탁소에게 너무 오래이 맡겨져 왔다

                                        ―「길의 세탁소」 전문


‘지나온 길들을 빨아야만’, 즉 잘못된 추억(혹은 죄)을 정리해야만 길 위에 설 수 있다. ‘길들을 만나는 일이란 죄짓는 일’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그는 길, 즉 세속(혹은 잘못된 세상)에 어울려 있다. 하지만 그는 ‘길의 세탁소는 불안하다’며 길 밖의 세탁소에게 너무 오래이 맡겨져 왔다고 말한다. 그것은 무엇일까? 아마, 윤리를 찾기 쉽지 않은 이 세상을 말하는 것 아닐까. 그의 죄를 씻어내는 것은 오히려 세상답지 않다, 는 것은 세상이 깨끗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무엇을 하는가? 바로 비를 해체하는 일이다.


비를 곱게 찢어 가루로 만들자 비는 비로 내린다 하나의 물방울로 줄지어 비로 내린다 [……] 비로 내리던 기억들이 추억으로 스며들지 못해 창밖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 비를 해체하는 유일한 길은 태양을 하루종일 붙들어 매는 일이다 비를 살균하는 비를 해체하는 태양을 네 몸 안에 심는 일이다 불타는 몸 불타는 비 갈가리 찢어지는 비

                                                ― 「비를 해체하라」중에서

 

결국 비를 찢어봤자 또 하나의 비가 된다는 것을 알고 태양을 하루종일 붙들어 맨다. 불타는 몸, 결국 자신을 잊어가는 길이 비를 해체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안다. 결국 마지막 시에서 할머니는 변신을 이룬다.


할머니는 이젠 상큼한 소년이 되었습니다 젊은 날 비녀도 풀어버리고 [……] 해맑게 굽은 허리를 접는 할머닌 이젠 죽음 앞에서도 당당합니다 [……] 상고머리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 할머니는 이제 할아버지입니다

                                                ― 「할머니와 소년」중에서


P.S]

표현에 끌려 샀지만, 시가 무지하게 어렵다…. 오독이 두렵기만 하다.

읽기가 어렵다는 것은...(혹여 답답하거나 지나치게 읽기 어렵다는 것은) 감점 항목을 떠나서 백지 항목이다. 독자가 시를 단박에 덮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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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베옷을 입은 자화상 문학과지성 시인선 283
조용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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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일만마리 물고기가 山을 날아오르다』를 보고 그냥 덮어버리고 말았다. 왜 이렇게 어두운 것이야! 하면서…. 그러다가 공부 같이 하는 선생님 말씀 듣고 다시 펴보게 되었는데… 일단 깊이가 무지막지했다. 좋은 시였다. 두 시집이 모두 어둡다는 점만 뺀다면….


구로노동자문학회에서 그가 ‘몸이 좋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 이 시집의 기조는 근본적으로 죽음이라고 되어있다. 그런 이유로 시들은 대체로 어두웠고, 활기보다는 깊이를 봐야 했다. 깊이는 무지막지했다. 어려운 시가 엄청나게 많았는데….


죽은 듯한 나날들,

밖으로 신음 소리를 내본다

삶이 한 음계 더 낮아진다

낙우송 잎들이 깃털을 날리며

오래 떨어져 내린다

[……]

먼지를 뒤집어쓰고 허옇게 서 있는

도로변의 나무들

저 치욕을 어떻게 견딜까

                                        ―「음계」에서


나무가 밖으로 신음소리를 내는 것이 음계다. 시작을 ‘죽을 듯한 나날들’로 했으므로 전제는 말그대로 죽을 것 같은 모습이다. 신음소리를 내며 쏟아지는 삶들, 깃털이 오래 떨어져 내린다. 살고 싶지 않은가? 엄청나게 힘든 삶이지만, 살고 싶다, 한 번 질러보지 않은 적은 없을 것이다. 시인의 인식에 의하면 고뇌스런 삶은 치욕으로 보인다. 그 증거로 먼지가 내려와 그들을 덮는다. 은행나무와 낙우송을 똑같은 것으로 본다면(억지겠지만) 나무에겐 삶 자체가 치욕이다. 고로, 시인은 삶을 암담한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인가?


새는 여덟 겹의 껍질을 깨고 나왔다

녹슨 쇳덩어리 같은 커다란 돌은 여덟 번의 허물을 벗고 나서야

작고 단단한 검은 알맹이가 되었다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은 새만이 아니다


부화석은 까만 알을 품고 있다

알의 어미는 화산 활동이 일어나던 때부터의 시간이다

하지만 부화를 돕는 것은 어미의 부리가 아니라

이 정체 모를 이상한 녹슨 돌덩어리를

바위에 대고 깨뜨리고 있는 사람이다


까만 알이 나올 때까지

껍질을 벗기고 또 벗기는 사람의 호기심이다

검은 알 옆에 가득 쌓인 부스러진 돌의 껍질들,

햇빛을 영영 보지 못할 부화석의 알들이

벼랑의 바위틈이나 비탈에 숨어 있다


천년만년 알을 품고 있어도 썩지 않는,

껍질을 깨고 나오지 않아도 죽지 않는

기다림만이 시간을 이겨내는 힘이라고

한 겹 더 껍질을 입는

내가 꺼내지 못할 검은 알들

                                        ―「부화석」전문


재 묻은 돌에서 이런 상상을 한 것이 놀랍다. 새는 8번의 허물을 벗고 나왔다.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은 새만은 아니’라고 한다. 그럼 다른 것은 무엇인가?  알의 어미는 화산 활동이 일어날 때부터의 시간, 즉 모든 생명이 시작될 때의 시간을 연상시킬 때 태어났다. 그의 부화를 돕는 것은, 인간의 호기심을 가진 뒤이다. 호기심을 가지고 바위에 깨뜨린다, 는 사실은 ‘인간이 지각을 가진 뒤에 시작되었으므로’ 그것은 인간이 생의 의미를 추구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를 가진다. 가까이에서 깨뜨리고 부딪쳐 보며 사람, 즉 生을 알아간다는 것이다. 그런 돌은 벼랑이나 바위틈, 비탈에 숨어 있다. 생은 어려운 곳에 있다는 것을 시인은 알고 있는 것이다. ‘내가 꺼내지 못할 검은 알들’이라는 말 속에서 시인은 알을 꺼낼 수 없다, 는 것을 알고 만다. 도대체, 이 시인은 왜 이러느냐? (진이정처럼)세상 다 산 사람이라는 느낌이다. 어째서 그럴까, 이 시에서는 원인을 설명해주고 있다.


비는 다 直立이다

휘어지지 않는 저 빗줄기들은

얼마나 고단한 길을 걸어 내려온 것이냐


[……]


내가 입은 두꺼운 삼베로 된 긴 치마

위로 코피가 쏟아졌다

입술이 부풀어올랐다

피로는 죽음을 불러들이는 독약인 것을

꿈속에서조차 너무 늦게 알게 된 것일까


속이 들여다보이는 窓봉투처럼

명료한 삶이란

얇은 비닐봉투처럼 위태로운 것

                                        ―「삼베옷을 입은 自畵像」에서


시인은 격무에 시달리는(이든 아니든 아주 피로한) 사람인 것 같다. ‘피로는 죽음을 불러들이는 독약’임을 꿈속에서 안다. 살고 싶다, 일어서서 일하고 싶다, 는 그녀의 의지는 비도 일어서 있다는 것으로 형상화된다. 손톱사이로 드러난 살을 ‘누런 삼베옷’이라고 말했다.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 명료한 삶은 얇은 비닐봉투처럼 위태롭단다. 그는 한 일이 없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정말, 그는 죽어가고 있는 것인가?(그녀의 근황을 모른다- 아마 시인들은 거짓말이 많다고 들었다. 그렇길 바란다.)


스물일곱 李賀

스물여덟 李箱


천천히, 느리게 그러나 폭풍처럼 찾아오는

이른 죽음을


일찍이

魂과 魄이 하나 된

이른

변신을


종유석처럼 고독한 뼈를

가슴 한가운데 심어놓고

키우던 사람들


그들의 自畵像을

내 등 뒤의 거울로 비추어보던 시간들

멀지 않은데

                                        ―「이하리를 지나며」에서


이번엔 이상과 이하다. 아마 시인은 그들을 닮고 싶었던 걸까, 그녀는 그들의 죽음을 ‘혼과 백이 하나 된 이른 변신’이라고 말한다. ‘종유석처럼 고독한 뼈’는 아마도 「부화석」과 상관이 있는 것 같다. 그들도 삶의 의미를 고찰하는 데는 게으르지 않았을 터…. 이상이 자신의 삶을 고찰하며 썼다는 「終生記」를 시인도 쓰고 있다.


살아도 살아도 고통은 새록새록 새로웠다

나뭇잎 말라비틀어져도

치욕은 파릇파릇 잎을 틔웠다

이제

이른 봄에 돋아나는 새싹 같은 그것들을

데리고 간다

                                        ―「終生記」에서


「음계」를 풀어주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 치욕을 데리고 간다. 그런데, 시인이 그것에 애태우는 이유는 따로 있다.


살아서 단 한 번도 나의 것이지 않았던 죽음은,

기억하지 말아다오

살아서 단 한 번도 나의 것일 수 없었던

모든 그리운 것들의 거처를

                                        ― 전과 같은 시 끝행.

생이 그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치욕이었고, 죽음마저도 시인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녀는 슬퍼하는 것이다. 그렇게 그리워했던 것은 영영 오지 않는다는 절망감에 그녀는 사로잡혀 있다.


정약대는 대금의 명인이다


정약대는 낙타가 아니다 10년을 한결같이 매일 인왕산에 올랐다 도드리를 한 번 불 때마다 나막신에 모래를 한 알씩 넣었다 신에 모래가 가득 차야 산을 내려왔다


어느 날 나막신에 쌓인 모래 속에서 풀잎이 솟아올랐다


풀잎! 모래알 하나가 觀音을 한 것인지 得音을 한 것인지 바람이 지나가는 듯하기도 하고 비가 스치는 듯도 한 그의 대금 소리에 마른 모래알에서 자꾸 풀잎이 돋아났다


약대라니…… 낙타처럼 먼 길 위에서 대금을 연주했구나


청아하고 신묘하고 장쾌한 소리를 향해 대금을 지고 사막을 건너야 할 운명을 火印처럼 몸에 새기고 태어난 사람, 그의 귀는 10리 밖에서도 대금 소리를 잡아냈을까


정약대는 낙타였다

                                        ―「정약대의 대금」전문


시인은 정약대라는 대금 연주자에게서 그의 이름에서 언어유희를 하는 듯, 낙타가 아니다 맞다 장난하는 식으로 보이지만, 결국 또 하나의 삶의 의미를 도출해내고 있다. 처음에 시인은 정약대가 낙타 같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끝내 시인은 그가 낙타라고 인정하고 만다. 그의 삶, 혹은 모든 사람의 삶이 사막을 건너는 낙타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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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길 세계사 시인선 42
강연호 지음 / 세계사 / 199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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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길 2」를 징하게 우려먹는구나 싶을 정도로, ‘잘못된 길이 지도를 만든다’는 시구가 이 책의 自序에서부터 허리까지 아주 깊숙하게 관통하게 있다. 그 시는 다음 시집에도 똑같이 실려 시집의 제목이 된다.(분명 가슴 찡한 시구임에는 분명하지만)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세상의 모든 뿌리는 젖어있다』를 먼저 봤었다. 송하춘 선생의 평에 이렇게 적혀있는 것이 참 놀라운 점이었다. ‘요즘 강연호의 시가 부쩍 생각이 깊어졌다’ 라고, 그럼… 이 시집에 생각이 그다지 깊지 않다는 얘기일까?

내가 아는 선배 형님은 『세상의 모든 뿌리는 젖어있다』는 비추천하고 『비단길』이 제일 좋다고 말씀하셨었다. 그리고 한참 뒤에 『비단길』을 사보았다. 왜 그런가 해서.


이 시집에는 과거에 대한 감상주의가 아주 깊숙이 박혀있다. 이 시집의 표제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비단길 2」를 보면,


제대만 하면 세상을 제패할 수 있을 것 같았던

내 욕망의 신록이 지금 때절어 쓸쓸한데

길 잘못 들수록 오히려 무모하게 빛났던 들끓음도

그만 한풀 꺾였는가, 미처 다 건너지 못한

저기 또 한 고비 신기루처럼 흔들리는 구릉이여

이제는 눈앞의 고비보다 그 다음 줄줄이 늘어선

안 보이는 산맥도 가늠할 만큼은 나이 들었기에

내내 웃목이고 냉골인 마음 더욱 시려오누나

따숩게 덥혀야 할 장작 하나 없이 어떻게

저 북풍 뚫고 지나려느냐, 길이 막히면 길을 버리라고

어차피 잘못 든 길 아니더냐고 세상의 賢者들이

혀를 빼물지만 나를 끌고 가는 건 무슨 아집이 아니다

한때 명도와 채도 가장 높게 빛났던 잘못 든 길

더 이상 나를 철들게 하지 않겠지만

갈 데까지 가보려거든 잠시 눈물로 마음 덥혀도

누가 흉보지 않을 것이다 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

                                        ―「비단길 2」 중에서


추억에 얽매여 있지만 엄청나게 좋은 시다. ‘길이 막히면 길을 버리라고’ ‘어차피 잘못 든 길’ 등의 시어에서 보이듯이 그의 혈기는 넘쳐나고 있다. 4―50대 쯤 되면 생각도 할 수 없는 시어. 하지만 그도 나이는 들었던 고로 이런 시를 썼다. 그는 완전히 늙지도 않고 딱히 젊지도 않았음이다.

그런데 한 가지 그가 간과한 것이 있다고 여겨진다. 한사람의 생은 그다지 길지 않다. 김명리의 「불멸의 샘이 여기 있다」에는 거시적인 삶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는 반면, 이 시는 삶에 대한 생각이 뭔가 허전하다는 데 있다.


그러고 보니 월동준비 튼튼하다고 해서

겨우살이 따뜻한 게 아니더군요

해 바뀌면 산에 들에 다시 꽃피는 거야

                                        ―「편지」 중에서


해가 바뀌면 과연, 산에 들에 다시 꽃필까? 그의 생각대로라면 ‘잘못된 길의 지도’는 무엇일까? 꽃도 한 번은 죽었다 사는 것이다. 그가 늙고 난 다음이면 잘못된 길의 지도를 계속 들춰봐도 소용없는 노릇이다. 이미 길은 한참 잘못 가 있는데, 즉 순천을 가야 하건만 부산을 가놓고 계속 따져봐야 소용없는 것이다.

아마 다시 피는 꽃은 그의 꽃이 아니라 다음 세대의 꽃이다. 월동준비가 튼튼하다고 해서, 산에 들에 다시 꽃핀다고 해서 오류는 반복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믐밤 골라 그대

어두운 시절의 탯줄을 이빨로 끊고 울어보시지

첩첩산중 밀봉된 세월을 적시는 바람 소리뿐

                                        ―「거울」 중에서


시인은 한술 더 떠, 이빨로 끊고 울어보라고 약 올리듯 말한다. 누구도 이 사슬을 끊어낼 수는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 늦지만 않았다면 돌아갈 수야 있겠지만 Rewind 시킬 수는 없다. 비단길이란 것이 원래 무작정 가는 길 아닌가.


이 시기 그의 시는 젊은이 티가 너무 많이 난다, 엄청나게 발랄하기도 하고, 뭔가 덜 익은 듯한 느낌도 들고, 최루탄 어쩌고 하는 것을 보니 실천문학 쪽 시의 느낌도 난다. 역시 『세상의 모든 뿌리는 젖어있다』가 나은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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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들이 남긴 길 문학과지성 시인선 245
고창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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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관심을 두게 된 건, 서울역 철도문고에 남아 있는 이 책을 보고서다. 한번 그냥 살짝 훑어보고 괜찮은데? 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의 생활을 알 수 없으나, 사서 본 그의 시들은 음울하고, 답답했다. 다분히 감상적이기도 했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떠돌아다닌다는 이미지가 많아서일까, 바람이 상당수의 시 중 시어로 사용되고 있었다.


어쩌면 가파르게 지나쳐왔을 삶

밭은기침을 쿨럭이며

사내의 어깨가 들썩거린다

망망한 것이 저 바다뿐일까

사내가 두 손 가득 얼굴을 묻는다

                        ―「6시 10분 버스」 중에서


밭은기침을 쿨럭이는 사내의 어깨가 들썩거리며, 망망한 바다를 한탄하며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자신의 약한 모습이 괴로워서일까. 시들은 대체로 밝음으로의 반전보다는 참담한 도시인들의 심경을 그대로 그려내고 있다. 바람이 많다고 말했듯이, 그는 이 도시를 끌고 가지 못한다. 이들 시에는 도시에 질질 끌려가는 이미지가 상당히 강하다. 하지만 그는 벗어나려 하고 있다. 맨 끝에 있는 「疑視」라는 시를 보면,


늘어진 나무 사이

좁은 길들이 꿈틀거린다

긴 그림자들이 끌고 가는 거리

                        ―「疑視」 중에서


자신의 그림자가 끌고 가는 거리, 좋은 표현임을 넘어서, 자신이 아무리 음울한 세계를 보며 걸어간다고 하더라도, 결국엔 아무리 자기 자신의 자신이 이 시대를 끌고 가는구나, 생각 하는 의지를 보여준다는 면에서 좋다고 하겠다. 하지만 제목이 「疑視」, 즉 ‘의심하며 보다’라는 뜻이기에 자신이 그것이 맞는가를 파악 못하는 것뿐이다. 그렇다. 우리는 시대를 움직이는 사람이다. 그는 시대적으로 분명히 거대한 사람임에 분명하다. 침침하고 음울한 시대상만 그려오던 그의 시적 의미는 맨 끝에서 재빨리 반전을 한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둡다. 그의 의심은 시집 내에 아주 짙다.


누군가 산길을 걷는다 재빨리 지워지는

슬픔의 단서, 우기의 한낮은 검은 장막과 같다

사람들은 느릿느릿 물렁거리는 어둠 속을 빠져나온다

공원의 길들이 지상에서 떠다닌다

젖은 날개를 품고 그들은 중얼거린다

빗소리처럼 뒤섞인 알 수 없는 문장들이 쏟아져

내린다 아무런 의심도 없이

                        ―「雨期」 중에서


날개는 ‘젖어’ 있다. 추억은 무겁기만 하고, 슬픔의 단서는 지워졌으나, 사람들은 물렁거리는 어둠속을 방금 빠져나왔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들은 젖은 날개를 달고 중얼거린다. 그들은 날개를 달고 있다. 구름만 걷힌다면 언제든 날아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희망을 찾을 수 있는 껀덕지는 많으나, 시인은 ‘아무런 의심도 없이’라고 말한다. 그들에게는 의심이 필요한 것인가? 그 이유는?


내 삶의 가벼움과

더러워진 발자국들이 하나 둘 드러난다

왜 침묵만이 오래 기억되는지

저 스위치는 알고 있다


[……]

숨쉬지 않는 기억은

말라버린 무성한 뿌리를 갖고 있다

                        ―「스위치는 알고 있다」 중에서


시인에게 삶은 가볍고 길은 더럽다. ‘몹쓸 꿈의 조각’은 발자국 없이 떠돌아다닌다. 즉 추억은 낭비된다. 결국 숨 쉬지 않는 기억은 뿌리가 말라 무성하기만 할 뿐이다. 지금까지 그랬던 이유로 시인은 삶을 쉽게 신용할 수 없는 탓으로 의심하게 된 것이다.


어린 나무들의 근심 어린 눈빛을 세상은 함부로 잊곤 하지만 굳은 흙은 상처에 민감한 법, 포크레인의 날카로운 이빨로도 들추지 못할 內省의 시절이 있는 것이다

                        ―「흙」 중에서


하지만, 그의 추억은 현대문명이 들추어낸 일견 ‘포크레인’으로 상징되는 물건으로도 들춰지지 않는다. ‘흙’ 즉 시인 자신에게는 그 기억에 대한 심각한 내성이 있다. 버리고자 해도 버려지지 않는 심각한 열병을 계속 가지고 있는 것이다.


먼 훗날, 손풍금을 울려본다면

황성 옛터나 번지 없는 주막이 스며나오고

사내의 목쉰 삶도 구구절절 배어나올 것이다

                        ―「손풍금」 중에서


결국 사내의 목쉰 삶이 우리 모두의 삶과 이퀄이 아닌지, 이 삶을 끊임없이 반성해 봐야 할 일이다. 손풍금 아니라, 어쩌다가 리코더를 꺼내들어 보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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