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이 멀지 않다
나희덕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중학교 2학년 때, 30대 나이의 도덕 선생님 왈, (스타일은 전영록 스타일을 연상케 했다- 벌써 7년이 다 되어 가는데 그분의 근황이 궁금하기는 하다.) “우리가 사람이 ‘산다’고 말하는데, 사람이 어째서 사는 것이라고 말하는가? 사람은 살아가는 게 아니다. 이를테면 우리가 15년 살았다고 해보자, 그게 어째서 15년을 산 것이냐? 그건 15년 산 것이 아니고, 15년 썩은 거다. 그렇지 않은가?” 현실적으로 보면 맞는 말이다. 사람은 죽음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 시인은 이 현실을 철저히 배제하고 인간이 바람직하게 나가야할 꿈을 그리고 있다.


사람은 죽어가는 게 아니라구,

살아가는 거라구,

밥을 안치면서 나는 말하지 못했다

젖은 쌀알이 모래처럼 서걱거렸다

                                ―「黃紗 속에서」


시인은 사람이 죽는 것마저 부정하지는 못한다. 사람은 살아가는 것이라고 계속 반추하지만, 젖은 쌀알이 서걱거리듯, 시인도 인생에 대한 걱정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 시의 다음 행들을 보자.


간신히 가라앉은 모래를

바람은 또다시 일으켜 어디론가 쓸고 간다


가라앉은 모래는 어디론가 다시 간다. 인생은 쉴 새가 없고, 또한 없어야 한다. 그것이 ‘아름다운 生’이 아닌가! 그런 면에서 시인의 방향은 철저히 빛이고, 아름다운 삶을 추구한다. 같은 삶을 어떻게 그려내면 밝아지고 어두워지는가를 이 시인은 여실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유리는 유리일 뿐이라는 쓸쓸함과

한번 깨어지고 나면 더 이상 유리일 수도 없다는

두려움을, 예리한 슬픔의 파편을.

생각해보면

모든 게 보석처럼 빛나던

한 세계의 광휘, 내게도 있었다.

                                ―「밤길」


유리, 그것도 깨진 유리를 동심을 통해서 보석으로 읽어주는 시인의 눈이 놀랍다. 상처에서 나타난 기억들이 다시 우리를 살려내는 것, 여러 시집 제목에서 눈에 띄는 주제이지만 참 가슴 뛰는 대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그런 기억에 보호본능을 가지고 있다.


꽃을 지키려고 탱자는 가시를 가졌을까

지킬 것도 없이 얇아져가는 나는

내 속의 칼날에 마음을 자꾸 베이는데

탱자 꽃잎에도 제 가시에 찔린 흔적을 가지고 있다

                                        ―「탱자 꽃잎보다도 얇은」


자신은 꽃보다 얇다? 자신은 보호본능을 가지지만, 그 기억은 자꾸 맴돌아, 물레방아 찧듯, 때만 되면 그를 괴롭힐 것이다. 아플뿐더러, 허랑한 것은 참 당연할 것이다. 시인은 해결방법을 제시한다.


쌓고

또 쌓고

쌓는지도 모르고

쌓고 

쌓는 것의 허망함을 알면서

쌓고

어디까지 갈 수 있나 오기로

[……]


어느 날

내가 쌓은 모래성이 밀물을 불러왔다

                                ―「밀물이 내 속으로」


시인은 주변의 위협을 무시한 채, 꾸준한 노력을 하는 것을 해결방법으로 삼고 있다. 결국은 그 노력이 결실을 이룰 것이라는 희망적이고 낙관적인 발상이 그의 시엔 곳곳에 들어가 있다. ‘쌓는 것의 허망함’을 가지고 성을 쌓는다면 어떻게 전력으로 살아갈 수 있겠는가, 그의 시는 이런 희망의 삶을 노래하려 하고 있다. 시인은 두려움으로 썩을 수 있다는 것마저도 희망으로 삼고 있다.


썩을 수 있다는 것은

아직 덜 썩었다는 얘기도 된다

가장 지독한 부패는 썩지 않는 것


부패는 

자기 한계에 대한 고백이다

일종의 무릎 꿇음이다

                        ―「부패의 힘」 중에서


등반을 거부하는 절벽처럼 쏟아지는 폭포,

그 속도의 벽을 뚫고

폭포 뒤에 집을 짓고 먹이를 나르는 새들이 있다

토해낸 물고기 뼈를 둥지에 깔고

맑은 알을 기르는 새들


[……]


눈도 못 뜨고 몸만 젖어 돌아서는 사람들

배는 눈먼 경전에 지나지 않는다


새들은 폭포의 뜨거운 목젖을 지난다

                        ―「성공한 인생」중에서


새들이 폭포를 지나 자식들을 먹이는 광경, 그 얼마나 고통일까, 하지만 감내하고 자신이 먹었던 것을 토해 자신의 기반을 다진다. 하지만 사람들은 폭포를 넘어서지 못하고 뱅뱅 아래에서만 맴돈다. 그것을 넘어서려고 만들어진 배, 즉 그렇게 살아왔던 우리 자신의 삶은 눈먼 경전, 즉 시도도 못 해보는 쓸데없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새에게서도 철저히 배워야 하는 것이다.

 

이 카툰이 한마디로 말해주고 있는 듯 하다.

http://new.newstoon.net/imgdata/newstoon2/04081650mho817.jpg


치열하게 불타올라야 할 우리의 삶, 건투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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