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집에서, 비와 할머니는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한다. 아주 빈번하게 나오는 ‘할머니’가 나오는 시 하나를 보면,
할머니는 허리를 접어 콩을 깝니다 톡톡 튀는 콩들이 어디론가 도망을 칩니다 [……] 콩들이 바삭바삭 신음을 터뜨리며 할머니를 흥분하게 만들었습니다 [……] 과부 팔자로 꼿꼿이 견디었는데 손주놈이 늘 지 애비 구박하는 걸 듣고 복장이 터질 노릇입니다 할머니 콩잎을 탁 매만지다가 콩알에 맞았습니다 콩알이 뭐 총알처럼 할머니 가슴에 박혔습니다 텔레비 보며 깨우친 전쟁을 콩알들과 합니다[……]못된 손주놈이 지 할매 詩 바꿔 먹었습니다 콩잎마냥 지 할매 가슴을 훑어 지 할머니 가슴에 콩알 총알 박았습니다 [……]손주놈은 이제 할머니의 가슴을 감청하고 싶어합니다 할머니를 아예 도청합니다
―「할머니를 도청합니다」중에서
그의 시의 근본을 알려주는 시이다. ‘손주놈이 지 할매 시 바꿔먹었다’고 말한다. 손주놈이 바로 시인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그의 시의 근원은 할머니의 기억, 즉 모든 인간의 경험과 生이다. (할아버지가 없으므로)할머니는 우리 인간의 최종적인 상징이다. 그런 할머니가 콩을 까고 있다. 콩은? 까야 하므로 생을 의미하는 듯하다.
손주는 자기 아버지를 구박한다. 그의 시에서 누구도 비판 대상에서 비켜가지 않는다. 그러고서 복장을 터뜨리고 콩잎을 만지다가 콩알에 맞고 만다. 할머니, 즉 生이 그의 시를 만들었지만 그의 시는 상대를 막론하고 공격한다(시에서는 손주가 할머니에게 시에 빠져 총알을 쏘아댄다고 말한다)
할머니는 이젠 숯뿐인 살들 매만진다 살들로 불 피울 수 있을까 다림질을 한다 [……]먼저 간 남편 무정한 놈 무정한 놈이라고 흘려보냈다 [……] 할머니는 제 삶을 다림질한다 제 살들을 펴느라 한참 분주하다
― 「할머니 제 삶을 다림질한다」중에서
시에서 할머니는 여러 가지 방법의 비유로 등장한다. 할머니 기계, 할머니 한 마리… 쩝, 그의 시에 들어있는 할머니의 공통점이면 生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할머니와 염소는 다정스레 울타리 안에 묶여 있습니다 [……] 고삐 맨 제 고요의 그림자를 밟아 봅니다 어두워진 할머니도 이젠 지나온 길들을 되새김질합니다 [……] 돌아보면 걸어가는 길이 걸어온 길입니다
―「할머니와 염소」중에서
‘돌아보면 모든 길들이 걸어온 길’이라는 그의 멘트는 비와 합쳐져 확장된다. 이 시를 보자.
비 주루룩 내리자 그녀는 사라진다 [……] 주름져 내릴 비의 영혼으로 그녀는 비 내린다 비로 내린다 [……] 세상의 비는 여전히 세로로 하강하건만 그는 감히 가로로 세상을 달린다 [……] 이 나라에선 우산을 들어도 늘 마음이 젖는다 가슴이 빨간 삶들은 늘 영혼이 젖어 있기 때문이다 [……] 가로의 추억에 미끄러지는 그의 어깨로 비 주루룩 내린다
―「비 내리는 날들은」 중에서
그녀는 비가 되어 내린다. 비는 그녀에게 모든 것을 잊게 하고 있고, 결국 그녀를 잊게 하여 그녀는 ‘비로 내린’다. ‘세상의’ 라고 하며 정체를 드러내는 비들은 세로로 하강한다. 그런 비들, 즉 자신을 적셔 잊게 하려고 하는 세상의 모습을 완강히 부인하고 싶은 ‘그’는 가로로 달리고 있다. 하지만 그는 가로의 추억, 즉 자신의 행동에 미끄러진다. 어깨로 비가 내린다. 그렇게 꿀꿀하기만 했던 삶을 고쳐보고자 했던 모습은 결국 세상에 융합되어 그의 어깨로 비 내린다. 세상은 그의 힘으로 고치기엔 너무나 힘들다. 그런 그의 기억, 어떻게 고쳐야 하나, 그것은 세탁소다.
길을 만나고 돌아온 날은 세탁소에 들러야 한다 지나온 길들을 빨아야만 길 위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길들을 만나는 일은 죄를 짓는 밤 길들에게 죄를 짓는 밤은 세탁소의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해야 하는 아예 육체를 다시 헹구어야 하는 불안의 밤이다 불안의 밤을 세탁소에 맡겨 씻어내야 하는 것이다 그의 몸에 악착같이 달라붙은 길들의 먼지 먼지들의 영
혼을 다림질해야 하는 것이다 길의 세탁소는 늘 불안히 깜박거리고 네온의 침들을 질질 흘리고 있다 길 안의 영혼 길 밖의 세탁소에게 너무 오래이 맡겨져 왔다
―「길의 세탁소」 전문
‘지나온 길들을 빨아야만’, 즉 잘못된 추억(혹은 죄)을 정리해야만 길 위에 설 수 있다. ‘길들을 만나는 일이란 죄짓는 일’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그는 길, 즉 세속(혹은 잘못된 세상)에 어울려 있다. 하지만 그는 ‘길의 세탁소는 불안하다’며 길 밖의 세탁소에게 너무 오래이 맡겨져 왔다고 말한다. 그것은 무엇일까? 아마, 윤리를 찾기 쉽지 않은 이 세상을 말하는 것 아닐까. 그의 죄를 씻어내는 것은 오히려 세상답지 않다, 는 것은 세상이 깨끗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무엇을 하는가? 바로 비를 해체하는 일이다.
비를 곱게 찢어 가루로 만들자 비는 비로 내린다 하나의 물방울로 줄지어 비로 내린다 [……] 비로 내리던 기억들이 추억으로 스며들지 못해 창밖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 비를 해체하는 유일한 길은 태양을 하루종일 붙들어 매는 일이다 비를 살균하는 비를 해체하는 태양을 네 몸 안에 심는 일이다 불타는 몸 불타는 비 갈가리 찢어지는 비
― 「비를 해체하라」중에서
결국 비를 찢어봤자 또 하나의 비가 된다는 것을 알고 태양을 하루종일 붙들어 맨다. 불타는 몸, 결국 자신을 잊어가는 길이 비를 해체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안다. 결국 마지막 시에서 할머니는 변신을 이룬다.
할머니는 이젠 상큼한 소년이 되었습니다 젊은 날 비녀도 풀어버리고 [……] 해맑게 굽은 허리를 접는 할머닌 이젠 죽음 앞에서도 당당합니다 [……] 상고머리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 할머니는 이제 할아버지입니다
― 「할머니와 소년」중에서
P.S]
표현에 끌려 샀지만, 시가 무지하게 어렵다…. 오독이 두렵기만 하다.
읽기가 어렵다는 것은...(혹여 답답하거나 지나치게 읽기 어렵다는 것은) 감점 항목을 떠나서 백지 항목이다. 독자가 시를 단박에 덮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