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사는 나라 못사는 나라 - 석혜원 선생님의 지구촌 경제 이야기
석혜원 지음, 고상미 그림 / 다섯수레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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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원-달러 환율이 IMF 구제금융 이전인 97년 10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는 요즘, 도대체 환율 변동이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관심을 두고 파고들지 않고서는 뭐라 설명하기조차 힘들다.


이런 허점이 알려질 새라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을 알았는지 아이들이 엄마에게 기습적으로 질문한다. 달러에 대한 환율이 내려가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아뿔싸! 이를 두고 '머피의 법칙'이라 했던가. 엄마는 뼈아픈 일격을 당하고 폐지 뭉치에서 아침나절에 버린 신문을 뒤적인다.


옛날에는 경제도 모르는 이가 대통령을 하기도 했는데 엄마 노릇 하기가 이리 힘들어서야, 하며 한숨을 쉬면서 신문을 펼치지만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더니 오늘따라 원-달러 환율 기사가 어디에 숨었는지 보이질 않는다.


이런 소동이 벌어질까 걱정이 됐을까? 석혜원은 엄마이자 선생님으로서 경제 용어, 원리, 행위를 쉽게 설명한 지구촌 경제이야기 시리즈 <잘 사는 나라 못 사는 나라>를 최근 출간했다.


필리핀계 은행인 메트로은행 서울지점 부지점장인 석씨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자 경제를 전문분야로 하는 선생님이다. 그럼 석 선생님이 엄마로서 어떤 답을 내놓는지 들어보자.


"달러에 대한 환율이 내려가면 우리 돈의 가치가 더 올라갔다고 한단다. 1달러에 1000원 하던 환율이 900원으로 낮아지면 1달러를 바꾸는 데 필요한 우리 돈이 100원 적어졌으므로 그만큼 가치가 올라간 거야."


이를 경제 용어로 '원화절상'이라고 한다. 원화가 절상되면 수입보다는 수출업체가 힘들어진다. 수출대금을 원화로 바꾸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급기야 수출을 중단하는 사태까지 간다. 듣고 보니 참 쉬운 설명이지만 막상 설명하려다 보면 꼬이기 십상이다.


책은 환율과 같은 알쏭달쏭한 경제상식을 비롯해 잘 사는 나라 못 사는 나라의 척도인 국민소득, 국내총생산, 국민총소득 등의 용어 정의, 경제성장과 경제발전의 개념, 무역 및 수출입, 국제수지 등에 대해 실례를 들어 꼼꼼히 설명하고 있다.


딱딱하고 복잡한 경제 분야라서 아이들이 쉽게 식상해 할까 봐 문답식으로 풀어가는 구성이 재미있다. 책 전체가 문어체 아닌 하나의 묻고 답한 내용을 옮겨 놓은 모양이다. 책이 담고 있는 용어나 범위 등을 따져보면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생들 눈높이에 알맞다. 그 아래 또는 그 이상 연령대에서는 너무 어렵거나 다소 심심하게 느낄 만하다.


중간 중간 어른들도 알아두면 좋은 정보들이 나와 어른들도 심심찮게 손이 가는 책이다. 외환보유액이 많을수록 좋을까란 질문에 독자는 어떻게 대답겠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적정 외환보유고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외환보유액이 많으면 외환시장을 안정시키고 국가신인도를 높이는데 도움을 주지만 외환을 투자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포기하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이다.

외환 위기를 겪은 우리나라의 경우 피해의식 때문인지 국민이 외환보유액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데,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좋은 정보다. 고상미씨가 그린 삽화도 내용과 잘 어울리면서 볼거리를 제공한다.


책은 끝으로 변화에 적응해야 잘 살 수 있다고 잘라 말한다. 공룡의 멸종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결과요, 경제의 세계 역시 동물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퇴행한다고 지적한다. 예로 코카콜라와 노키아는 변화에 빠르고 능동적인 대처했기 때문에 100년 이상 장수하는 기업이 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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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 對 동경대 전공투 1969~2000 - 연대를 구하여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미시마 유키오.기무라 오사무 외 지음, 김항 옮김 / 새물결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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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짧지도 길지도 않은 2시간 30분가량의 시간. 1 대 800의 절대 불균형한 토론에선 무슨 말들이 오갔을까.

전후 일본의 경제부흥 과도기인 1969년 5월 13일 도쿄대학 교양학부 900번 강의실. 당대 전성기를 누리던 문학가이자 투철한 극우파인 미시마 유키오와 좌파의 대명사 동경대(원제를 살리는 의미에서 일어발음을 배제했다) '전공투(전국학생공동투쟁위원회)' 패널 7명이 강단에 섰다. 미시마는 혼자였고 상대는 800명을 등에 업은 7명이었다. 일본 역사의 한 획을 긋는 논쟁은 그렇게 시작됐다.

토론은 당시 휴교령이 내려진 동경대 전공투 학생들이 미시마를 초청해 이뤄졌다. 단신으로 동경대 교양학부 강당에 들어선 미시마는 의미를 담뿍 함축하면서도 균형을 잡으려는 듯 입을 연다. "이렇게 나를 세우는 것이 반동적이라는 의견이 있었다고요?"

1 대 800의 끝장 토론, 차이만 확인한 채 마무리

토론은 시간이 흐를수록 불꽃 튀는 논쟁으로 번진다. 쏟아내는 언어의 지평이 끝을 가늠하기 어렵다. 자아와 육체, 자연 대 인간, 계급투쟁과 자연으로 돌아가는 투쟁, 게임 또는 유희의 시간과 공간, 천황과 프리섹스와 신인(神人) 분리사상, 사물과 말과 예술의 세계, 관념과 현실에서의 미(美) 그리고 천황·미시마·전공투하는 이름에 대해서 까지.

신격의 천황을 지키고 부활시키려는 미시마와 '욕구불만의 비참한 육체'를 가진 인격체로 전락한 '천왕'을 당연히 받아들이는 전공투 사이에서 발견되는 간극은 극우와 극좌의 이념적 좌표가 사사분면 대척점에 위치해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논쟁은 그러나 '스스로 적을 논리적인 형태로 인정할 때 비로소 진정한 적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토론한다'라는 기본 명제에 충실하면서 전공투의 문제제기와 미시마의 대응과 반격, 둘 사이의 겹쳐질 수 없는 평행선을 발견하면서 마무리로 치닫는다.

미시마는 전공투를 향해 끊임없이 천황의 개념과 권위를 인정하기를 요구했고 그것이 가능하다면 공투(공동투쟁)에 기꺼이 응하겠다며 분위기를 정리한다. 그러나 전공투는 천황의 개념은 이미 그를 회자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며 미시마에게 공투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받아쳤다.

"지금 제안은 아주 묘한 꼬드김이라 매우 유혹적이지만, 나는 공투를 거부합니다"

논쟁에 숨은 약속...이듬해 비합법 투쟁 후 할복자살

논쟁은 끝났다. 그러나 논쟁의 정점에서 미시마가 뿜어냈던 한 호흡이 목에 생선가시처럼 걸린다.

"나는 한 사람의 민간인입니다. 내가 행동을 벌일 때는 결국 제군과 똑같이 비합법적으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비합법적으로 결투의 사상으로 사람을 죽이면 살인범이니까, 포돌이에게 잡혀가기 전에 자결이든 뭐든지 해서 죽어버릴 겁니다. 그런 때가 언제 올지 모르지만 그때를 대비해서 몸을 단련시키고, '근대 고릴라'로서 훌륭한 고릴라가 되고 싶습니다"

실제로 미시마는 이듬해 11월 육상 자위대 동부방면 총감부실을 점거, 헌법의 나약함을 외치며 동경대 강당에서 흘렸던 '자결'을 실행한다. 그것도 가장 고통스럽게 할복으로 풍미한 한때를 마감한다.

'인간'과 '역사'가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미시마와 '인간'과 '역사' 따위는 애초에 없었다고 주장하는 전공투의 치열한 공방. 이 공방은 1969년에 끝나 1970년 미시마의 자결로 종지부를 찍나 했지만 30년 후인 1999년 미시마가 궐석인 채로 또다시 진행된다.

사실 이 책 읽기의 쏠쏠함은 30년 후에 모인 당시 전공투 주역들의 '복기(復碁)'에 있다. 당시를 회상하면서 평가와 반성, 그리고 논쟁에서 놓쳤던 부분을 현재라는 공간 속에서 '시뮬레이션'하는 모습은 현대 일본 지식인이 어떻게 탈근대화를 이뤘는지를 보여주는 표본 같다.

30년 후 모임은 비교적 비평에 가까운 논리로 펼쳐진다. 파리 5월 혁명, 민족적 시간과 혁명공간, 스탈린주의, 무정부주의, 국어의 성립, 일본과 유럽의 근대과학, 세계 경제 시스템과 일본, 과학기술과 존재론, 인구 문제 등 주제의 지평은 무한하리만큼 넓어졌고 분석은 평자의 연륜만큼 깊어졌다.

좌우의 이념적 대립이 사회 시스템 전 분야에 미친 영향을 곱씹는 자리에서 평자들은 청년시절의 순간적 불꽃이 아닌 용광로 같은 지식을 쏟아내고 있다.

다시 미시마로 돌아가 보자. 미시마는 동경대 방문을 대체로 유쾌한 경험이었다고 후기에 쓰고 있다. 미시마 역시 동경대 법대 졸업생인 만큼 낯설지는 않았지만 패널 토론을 하는 2시간 30분 동안은 편안하고 부드럽지만 않았다고 했다. 그것을 미시마는 몇 가지 짜증 나는 관념의 상호모색이라고 표현했다.(사실 책 내용이 관념어의 나열이 심하다.)

양해 불가능한 질문과 사막과 같은 관념어의 나열 속에서 미시마는 정신과 육체의 극심한 피로를 겪었고 시간 때문에 충분한 문제 전개를 못했다고 술회했다. 전공투와의 토론 결과에 대해서는 논리성은 인정하되 그들이 노리는 권력이 그다지 논리적이지 않다는 지적과 함께.

자기부정의 논리...변증법의 안티테제

이는 당시 동경대 전공투가 내세웠던 '자기부정의 논리'와 상통하고 있다. 자기부정이란 '연대를 구하여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전공투의 행동강령이 대변하는 논리다. 동경대생들이 자기부정 논리를 투쟁주체로 삼은 것은 지성의 중심인 동경대를 지켜야 한다는 학교와 반학생운동 진영 분위기를 해체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적대적이라고 할 수 있는 소속집단(동경대)의 좌표와 자아(동경대생)의 윤리적 좌표가 공교롭게도 한 점에서 충돌함에 따라 이를 해소하기 위해 자기부정 논리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종국에는 일본 학생운동의 한계를 스스로 지운 업보로 작용했지만.

미시마는 이런 자기부정 논리 속에 폭력혁명을 갈망하던 전공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하고 있다. 이 책 저변을 흐르는 변증법적 안티테제인 것이다.

"평화주의의 미명 뒤에 언제나 단 하나의 옳은 전쟁, 즉 인민 전쟁을 긍정하는 논리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위험스럽게 여겨왔다. 이것이 내가 평화주의에 대해 커다란 증오를 품어 온 이유 중 하나이다. 그리고 나의 폭력 긍정은 당연히 국가 긍정으로 이어지는 것이므로, 평화주의의 가면 뒤에 숨은 인민 전쟁의 긍정이 국가 초극을 목적으로 하는 양하는 기만에 대해서 싸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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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 사랑이야기
알베르토 모라비아 지음, 이현경 옮김 / 열림원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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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탈리아의 문학 거장 알베르트 모라비아(1907~1990)의 <선사시대 사랑이야기>는 일단 시대 배경이 평범치 않은 우화집이다. 세상이 이기적인 인간들에 의해 피폐해지기 이전인 선사시대를 배경으로 동물들 사이에 이루어진, 혹은 이룰 수 없는 사랑이야기를 통해 신과 자연 그리고 인간의 '좌충우돌 공존'을 그렸다.

우화를 읽기 전에 먼저 모라비아가 누군지 궁금하다. 모라비아는 이탈리아 출신 소설가로 문학사에서 그의 위치는 단단하다. 그는 22살 때 이탈리아 중산층의 부패와 무기력한 삶을 그린 <무관심한 사람들>로 문단에 나왔다. 이후 파시스트 정권하에서 <가장무도회> 등을 발표하지만 발매를 금지당하는 정치적 탄압을 받기도 했다.

그 때문일까. 이후 발표되는 <로마의 여인> <고독한 청년> <권태> 등은 도발적이고 악의적 비극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런 그의 글을 한번쯤 접한 독자라면 이번 우화집에서 드러난 '뜻밖의' 변화에 고개를 갸우뚱할지도 모른다. 치열한 리얼리스트인 그가 한갓지게 우화라니.

<선사시대 사랑이야기>는 1982년에 발표됐다. 모라비아가 1990년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으니 그의 나이 75세에 쓴 글이다. 말년 작품인 셈이다. 도발과 악의적 비극으로 천착했던 작품세계를 우화로 마무리한 것이다. 거장다운 발상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책은 거장의 마지막 내공을 펜 끝에 모아 날린 듯, 가벼운 우화 속에 묵직한 교훈의 무게가 느껴진다.

가볍게 읽혀지는 우화, 느껴지는 묵직한 교훈

모라비아는 가만히 앉아서 물고기를 한입에 잡아먹으려는 게으른 악어, 그릇된 신념을 고집하는 펭귄, 황새를 사랑한 올빼미, 자기가 어떤 동물인지 모르는 기린, 벼룩에게 당해 자멸하는 디노사우루스 등을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등장시킨다.

어미 품속에서 온실의 화초처럼 자라서 홀로 먹이를 잡을 수 없는 게으른 악어에게 공생관계의 악어새는 멋진 이벤트를 준비한다. 악어의 커다란 입 속에서 물고기들의 무도회를 열기로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벤트는 계획대로 진행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실패한다.

악어의 입속으로 물고기를 불러 모으기는 성공했다. 하지만 악어가 끝내 군침을 억제하지 못해 침을 뚝뚝 흘리는 것을 눈치 빠른 철갑상어에게 들켜버린 것이다. 물고기들은 악어의 입을 모두 빠져나갔고 악어는 오랫동안 입을 벌리기 위해 괴어 둔 주먹만한 바윗돌을 애꿎게 씹었지만 자기 손해였다.

이후 악어가 무도회를 연다는 말에 누구도 속지 않았고 배고픈 악어는 나일강변 모래위에서 눈물을 삼켜야만 했다. 이것이 바로 악어의 눈물이 된 것이다. 악어와 더 이상 공생할 수 없는 악어새는 떠났고 무도회에 참석했던 도요새가 지나면서 말했다. 욕심이 과했다고.

동물들의 이야기, 인간 군상의 세상을 대변하다

단번에 그간의 배고픔을 만회할 수 있는 '한방'을 노린 악어의 얼굴 너머로 로또의 대박을 기다리는 우리네 모습이 설핏 스친다. 우화는 이처럼 우리에게 동물들의 탈을 씌우고 우스꽝스러운 삶을 반성하는 교훈을 느끼게 한다.

일반적으로 우화는 인간과 친숙한 동물들을 등장시켜 이들의 몸을 빌려 이야기하고 그것을 인간에게 되돌려주는 구조로 돼 있다. 때문에 소재의 제약을 받지 않아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다.

다만 인간성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이 없거나 도덕적 기반이 없이 쓰일 경우에는 화자(話者)인 동물이 필자가 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우회적으로 쉽게 쓸 수는 있지만 자신의 삶을 투영시키기에 역부족인 사람이 써서는 설득력을 얻기 힘들다는 의미다.

우화는 작가의 오롯한 삶에서 나오는 우회 문학

과거 이솝이 들려주었던 인간의 도덕 재무장, 라퐁텐의 군주제 비판 등 우화는 여러 가지 교훈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모라비아가 이 책을 통해 들려주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주제파악 하면서 사는 인간이 아름답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같은 기린 무리에 있으면서도 자기가 기린일 줄도,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자신이 너무 작다며 푸념하는 기린. 그 모습에서 아집으로 똘똘 뭉쳐 공동체와 융화하지 못하는 불쌍한 인간군상이 오버랩 되는 것을 모라비아도 경험했을 것이고 이제는 그것을 우리에게 묻고 있다. 혹시 당신도 그렇게 사냐고.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축선으로 따라오는 단어가 하나 있다. 바로 '창조주'다. 선사시대 사랑 이전부터 존재했고 현재와 미래까지도 무한히 영속하는 창조주의 손바닥에서 인간의 탄생과 소멸을 거듭한다. 우화도 마찬가지다.

모라비아는 생의 마감이 끝날 무렵 우화를 통해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신에 대한 경외심을 이 책에 담았다. 서툴게 인간 세계를 비판하기보다 창조주의 산물인 인간을 사랑하는 게 우선이란 것을 다시금 깨우치게 하는 책이다. 모라비아의 이 작품은 1994년 '동화의 노벨상'인 안데르센 동화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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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자격시험문제 - 우리 아이 마음을 알 수 있는
한효석 지음, 홍승우 그림 / 옹기장이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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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몇 일간 부모자격을 따기 위해 시험을 치렀다. 아침 조회 시간에 담임인 한효석 선생님으로부터 ‘부모자격 시험문제를 풀어야 하는 까닭’에 대해 설명을 듣고 시험에 돌입했다. 시험은 장장 6시간짜리. 이미 오래전 부모자격을 얻었는데 뒤늦게 무슨 시험이냐고 아내는 눈을 흘긴다. 아내는 그러면서 이내 시험 감독처럼 옆에 서서 1교시 생활탐구영역을 함께 풀어간다.


만약 부모자격에 대한 시험이 진짜로 존재한다면 합격률은 얼마나 될까. 발칙한 상상이다. 대부분이 과락을 면치 못하고 추풍낙엽처럼 떨어질 것이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정해진 시험문제의 답처럼 정답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시험이 있다면 일정정도 자녀 기르는데 많은 변화가 있지 않을까.


1교시 시험문제를 훑어본다.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문제로 엮었다. 답이 알쏭달쏭한 5번 문제를 짚어본다. 독자 여러분도 한번 풀어 보시라.


‘이번에 다른 곳으로 멀리 다녀오면 승진할 수 있는 기회가 돌아옵니다. 당신의 자녀는 중고생으로 사춘기와 입시 준비 등 아주 예민한 시기에 접어들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①파견근무를 포기한다 ②가족을 다 데리고 간다 ③내가 먼저가고 얼마 뒤 가족을 부른다 ④친구나 친척에게 가족을 부탁한다 ⑤소식을 자주 전하거나 집에 자주 온다 ⑥상의하여 결정한다


당신이라면 몇 번을 정답으로 고르시겠는가. 한 성생님은 ⑥번을 정답이라고 했다. 가족들의 역량을 잘 발휘할 수 있는 방향으로 상의해서 결정하는 것이 ‘신뢰’를 바탕으로 한 가장 현명한 의사결정이라는 해답 설명과 함께.


승진도 좋지만 헤어지지 않는 방법을 찾거나 헤어졌을 때의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가족간 상의를 통해 찾는다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정답이란 표현은 적합지 않다. 가정마다 상황의 차이가 있기 마련이니 모범답안 정도로 참고할 순 있겠다.


시험은 2교시부터 어려워진다. 대한민국 부모들의 절대화두인 자녀들의 학교와 교육 문제(3교시)를 다루기 때문이다. ‘당신은 아이를 왜 학교에 보냅니까’라는 첫 문제부터 답안 작성을 주춤거리게 만든다. 다행이 사람다운 사람을 만들기 위함이라는 객관식 답이 있기 망정이지 주관식 문제였다면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고민의 근본 이유는 교육은 학교 이전에 가정이 먼저 개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위스의 교육자 페스탈로치(1746~1827)는 ‘가정은 도덕상의 학교’라고 정의하며 인성교육의 원천이라고 했다. 그는 특히 가족집단에서 어머니와 자녀의 인격관계를 중요시하고 모든 교육의 기저라고 했다.


일평생 교육에 헌신한 그가 가정을 교육의 맨 꼭대기에 위치시킨 것은 가정교육이 제대로 되면 자연히 시민으로서의 자질이 높아지고 국민으로서의 자각이 강화돼 인류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정신까지 발전할 수 있다고 본데 따른 것이다. 다시 말해 학교에 왜 보내는 이유에 대해 고민하고 주저하는 수험생 부모는 가정교육을 먼저 되돌아봄직하다. 


위기탐구영역을 다루는 4교시에서는 2차 성징의 외적표현인 이성문제, 학교폭력, 음주, 음란물 등에 대한 부모들의 시각을 조심스레 묻고 5교시 대화탐구영역 시험에서는 아이들 마음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해 평가한다. 이 영역에서는 권위적인 부모의 역할대신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친구 입장으로 문제를 풀어야 합격률(?)이 높다.


마지막 시험으로 미래탐구영역에서는 무조건 대학을 나와야 한다는 부모세대의 고정관념을 유연하게 만들어준다. 자식의 직업으로 부모의 귀천을 보상 받으려는 보상심리를 접도록 도와주는데, 예를 들어 아이가 사회적 지식도 낮고 보수도 형편없는 직업을 선택하겠다고 할 때 부모들의 가치판단 기준을 묻는다. 자신의 가치 기준으로 남을, 특히 자식을 재단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차원의 문제인 것이다.


6교시 시험을 마치면 마치 아이에게 더 없이 좋은 부모, 아니 그 이상의 성인군자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러다가 아이의 행동이 정답과 다른 방향으로 나오면 어느새 야수(?)로 돌변하는 우리네 부모들. 비난할 수도, 비난 받을 이유도 없다. 그것이 우리의 가정과 교육의 현실이니까. 다만 <부모자격시험문제>를 통해 끊임없이 복습하고 예습한다면 ‘야수의 성질’을 조금은 버리지 않을까? 저자 역시 성인군자형 부모보다는 대화하는 부모를 원했으리라.   


이 책의 또 하나의 쏠쏠한 재미는 시험이 끝날 때 마다 덤으로 주어지는 정보에 있다. 박물관, 미술관, 과학관, 환경캠프, 문화유적답사, 체험학습에 관한 정보며, 전국의 대안학교, 홈스쿨링, 계절학교 목록, 지역별 청소년 상담기관, 독서지도, 독서토론, 독서치료에 대한 유용한 사이트를 총망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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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 세상에 파고든 유혹의 기술
월리 올린스 지음, 박미영 옮김 / 세미콜론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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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6월 벨기에에서 콜라를 마신 아이들이 집단 복통과 구토로 100여 명이 입원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콜라는 전 세계적으로 브랜드 가치가 가장 높은 코카콜라. 사고는 안트베르펜 공장에서 병을 밀봉할 때 '불량' 이산화탄소를 사용하는 바람에 콜라가 오염돼서 벌어졌다. 벨기에 정부는 제품 리콜과 판매금지 조치를 단행했지만 국민들은 한동안 콜라 공포증에 시달려야 했다.


사고가 발생하자 코카콜라는 부랴부랴 자사 제품은 안전하다고 사태를 무마시키기에 급급했다. 회사 고위관계자는 벨기에 보건당국자를 만나 제품에 이상이 없다는 설득을 하던 차에 또 사고가 발생했다. 비슷한 사고가 이웃 프랑스까지 번지자 끝내 코카콜라는 엄청난 물량을 자진회수하고 백기를 들었다. 113년의 명성이 하루아침에 바닥으로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사고 7년이 지난 지금, 코카콜라 브랜드는 건재하다. 이는 코카콜라가 그동안 공격적인 브랜드로 내성을 키웠기 때문이다. 위기관리와 기업 커뮤니케이션이 모자란 부분을 브랜드로 극복한 것이다. 브랜드 가치 하락을 브랜드로 극복하는 모순 속에서 브랜드 파워의 중요성이 새삼 느껴지는 대목이다.


코카콜라의 초기 대응 미숙은 브랜드에 서비스 개념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추세는 제조업 브랜드 속에 서비스가 녹아있음을 알 수 있다. 일례로 제약업은 영업사원으로 하여금 병원이나 약국 일선에서 약의 올바른 효능효과는 물론 의약계 현실을 전달함으로써 의사와 약사는 제품 판단의 기준을 갖는다. 이런 측면에서 제약업은 제조업이지만 동시에 서비스업 측면을 갖는다.


그동안 브랜드는 소비재를 앞세워 성장한 이유로 서비스 개념 도입에 인색했다. 그러나 월리 올린스(Wally Olins)는 브랜드 속에 서비스를 담아 호흡하라고 지적한다. 그는 40년간 기업이미지통합 작업과 브랜드 관리의 노하우를 담은 이 책을 통해 이제는 제품 브랜드에서 서비스 브랜드 시대를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몇 가지 핵심 규칙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조직을 브랜드 위주로 재편, 조직원간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브랜드 가치를 깨닫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는 조직원과 브랜드가 한 몸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브랜드의 소중함과 고객 존중이라는 일관성과 지속성을 유지하는 것이 지켜져야 할 과제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국가 브랜드 정립의 중요성을 역설한 대목이다. 88서울올림픽을 통해 국가 브랜드를 세계시장에 내놓고 2002월드컵에서 브랜드 가치를 키운 우리나라의 경우 올해 열렸던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브랜드 가치를 확인했다. 국가야말로 거대한 브랜드 정체성을 먹고 사는 생물체와 같다. 따라서 국가도 생존을 위해서는 유혹의 전선에 나서야 한다는 논리가 행간 사이에 배어 있다.


저자는 국가 브랜딩 작업의 대표적인 주자로 프랑스를 손꼽는다. 다섯 공화정과 두 제정, 그리고 네 왕정을 거친 프랑스는 건축, 궁전, 국기, 권력형태, 법제, 교육 등 체제가 변화될 때마다 시스템을 새롭게 브랜딩함으로써 국가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갔다. 이같은 프랑스의 국가 브랜딩 작업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는 효과를 낳기도 했다.


저자는 "브랜드는 정체성"이라고 단언한다. 국가, 기업, 제품을 나타내는 브랜드야말로 그것의 모체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국가, 기업, 제품은 세계 시장에서 당연히 도태될 수밖에 없다. 세계화의 조류에서 도태된다는 것은 소멸과 다르지 않다. 이 책은 이런 측면에서 생존을 위한 현대 비즈니스의 성공은 기능적 기술, 재정적 기술, 판매 기술(저자는 이를 '유혹'이라고 표현한다) 세 요소로 결정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 세 요소의 적절한 조화가 국가, 기업, 제품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넓은 의미에서 브랜드가 침투하지 않는 분야가 없으며 정부도 하나의 브랜드로 관리에 따라 국가의 성패까지 좌우한다는 것이 저자의 지론이다. 저자는 브랜드가 나아갈 길에 대해 인상적인 한마디를 남긴다.


"다소 심기가 불편할지는 모르나 이젠 브랜드를 자선사업과 예술, 대학, 스포츠, 문화영역 안으로 들여보내야 한다. 이것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다. 브랜드를 효율적이고 영향력 있는 존재로 키우기 위해서 꼭 필요한 과정이다."


책이 주는 정보는 저자가 관련 전문가로 몸담았던 40년이란 세월만큼 두텁고 방대하다. 그러나 엄청난 지식과 정보를 한정된 지면에 펼치다 보니 다소 우겨넣은 듯 한 느낌이다. 두텁지만 깊이를 재기가 어렵다. 브랜드의 정의를 늘였다 줄였다 쥐락펴락하는 저자의 전문성을 따라잡기 힘든 탓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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