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베르메르 - 누가 명화를 훔치는가
구치키 유리코 지음, 장민주 옮김 / 눌와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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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990년 3월 18일 밤. 미국 보스턴 펜웨이에 있는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미술관에 도둑이 침입한다. 그리고 몇 점의 그림을 훔쳐간다.

도난당한 그림은 즉각 신고 됐고 500만 불이라는 거액의 현상금이 붙는다. 수사는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나섰다. 도대체 어떤 그림이기에 이처럼 거액의 현상금과 FBI까지 나섰을까.

당시 도난 작품은 렘브란트의 '검은 옷의 부인과 신사', '갈릴리 바다의 폭풍', 그리고 이 둘보다 더 가치 있다는 베르메르의 '세 사람의 연주회'다.

두 사람은 17세기 네덜란드를 대표하던 화가였기 때문에 이들 작품은 가드너 미술관 2층 네덜란드관에 함께 전시돼 있다 변을 당했다.

도둑은 벽에서 액자를 떼어낸 후 바닥에 놓고 액자 안쪽을 커터 칼로 도려내는 난폭한 방법을 사용했다. 현장에 떨어진 그림물감 조각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림이 많이 상했을 것이란 추정도 가능하다.

안타까운 순간이다. 그렇다면 누가, 왜 이러한 짓을 하는가. 뜻밖에도 그림도둑은 돈을 노린 단순 절도도 있지만, 정치적 목적까지 가지고 있는 자들도 있다니 흥미롭다.

명화 절도, 금전적 목적만이 아니다

저널리스트 구치키 유리코의 <도둑맞은 베르메르>는 가드너 박물관에서 도둑맞은 베르메르의 그림을 중심으로 그림 한 점이 유명해지는 과정과 그림을 둘러싸고 엮여있는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역동적으로 그려낸다.

유리코는 이미 <베르메르, 매혹의 비밀을 풀다>를 지어낸 베르메르의 전문가. 이번엔 도둑맞은 명화에 대한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풀었다.

1990년 도난 당시 베르메르는 사실 렘브란트보다 지명도가 떨어졌다. 그러나 1995~96년 워싱턴과 네덜란드에서 열린 개인전을 통해 베르메르는 렘브란트를 가볍게 누르고 네덜란드 대표화가로 등극한다. 개인전에는 무려 78만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 베르메르의 <세 사람의 연주회>, 캔버스에 유채, 72.5 X 64.7cm(1665~1666)
ⓒ 이사벨라스튜어트가드너
렘브란트의 작품은 유화만 300여 점이 남아있는 반면 베르메르의 작품은 30여 점에 불과하다. 희소성의 가치가 가장 빛을 발하는 곳이 미술계가 아니던가. 그의 '세 사람의 연주회'에 대한 감정가액은 최소 1억불에 달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베르메르 작품 도난 사건이 전에도 많았다는 것이다. 이미 세 점의 그림이 범죄 표적이 되어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 중 '편지를 쓰는 여인과 하녀'는 두 번이나 도둑맞는 운명을 겪기도 했다.

베르메르는 작품 수에 비해 도난이 잦다. 이유는 테러집단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그림 자체를 인질화시켜 교섭을 이끄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 가치란 다름 아닌 희소성이 만들어 낸 그림 값이다.

가드너 미술관 도난사건은 피해규모가 사상 최대로 추정되고 있다. 모두 2~3억 불 규모로 추산되고 있다. 당초 100만 불이던 베르메르의 작품 현상금은 1997년 500만 불로 치솟았다.

이유는 시중에서 유통시킬 수 없는 작품이기 때문에 현상금을 받고 되돌려 달라는 의미다. 그러나 아직 사건은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가드너 도난사건 미궁...피해액 3억 불 추정

또 한 가지 흥미 있는 것은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다. 1999년 뉴욕으로 이주한 저자는 신문에서 그림 도난사건 기사를 자주 접한다. 가드너 사건에 대한 후속기사를 접한 것도 이때다. 작품 목록과 작품 판매처(사실이 아니지만)로 일본이 언급된 것이 저자의 흥미를 끌었다고 한다.

수많은 미술품 도난사건 중에서 베르메르에 초점을 맞춘 것은 그의 작품들이 매우 상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설명했다.

1970년대 이후 일어난 미술품 도난사건을 통해 미술시장이 활성화 되고 있고 범죄자들은 미술품을 현금화하기 쉬운 유가증권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범인들은 비싼 것 ‘한 방’을 노리게 됐고 베르메르는 구미 당기는 표적이 된 것이다.

가드너 미술관에는 세로 161.7cm, 가로 129.8cm의 액자가 아무 것도 채워져 있지 않은 채 걸려있다. 렘브란트의 ‘검은 옷의 부인과 신사’란 그림이 있던 자리다. 대신 안쪽 벽지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있다.

'이 갤러리에 있는 내용 없는 액자가 말해주는 것처럼 1990년 3월 18일 밤, 경관으로 위장한 강도가 가드너 미술관에 침입해 몇 점의 작품을 훔쳐 달아났습니다.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컬렉션 대부분은 무사했으며 갤러리에도 특별한 손상은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 작품이 돌아올 것이라고 확신하며, 또한 도난당한 미술품에 대한 수사 열기가 식지 않고 계속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 작품들의 도난과 관련된 정보를 알고 계신 분은 연방수사국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과연 누가 어떤 목적으로 그림을 훔쳐 갔는지. 그림의 향배와 500만 불의 주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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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과 풀로 만들기
인병선 지음 / 우리교육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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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텍스트가 아닌 사진이나 그림책에 대한 서평을 맞닥트리면 난감할 때가 있다. 그림이라도 뚜렷한 줄거리가 있는 것이 아니면 더더욱 난처하다. 인병선씨의 <짚과 풀로 만들기>가 그런 경우다. 짚과 풀을 엮어 만드는 과정을 사진으로 담았을 뿐이다.

이런 저런 고민 차에 다행스럽게 관련 홈페이지가 있어서 참고할 만한 것을 찾아 방문했다. 짚풀생활사박물관 홈페이지(www.zipul.co.kr)를 찾으니 팝업창 두 개가 뜬다. 하나는 한국 축구의 세계제패를 기원하면서 만든 짚공 사진이고 또 하나는 대망의 신간 <집과 풀로 만들기> 출간 소식을 알리는 것이다.

'대망의 신간'이란 표현에서 저자나 독자 모두 간절하게 기다려왔다는 절실함을 느낄 수 있었다. 저자인 인씨는 잘 알려져 있듯이 '껍데기는 가라'의 시인 고 신동엽씨 미망인이다.

그동안 따라 다니던 '시인의 미망인'이란 꼬리표를 지난해 <시인 신동엽>(현암사)를 통해 떼어내기까지 20여 년간 저자는 묵묵히 우리의 짚풀 문화를 개척해 왔다.

그녀가 하는 일은 하찮게 버려지는 짚이며 이름 모를 들풀에다 생명을 불어 넣는 작업이다. 그녀의 손끝을 거치면 검불에 지나지 않던 짚풀도 멋진 작품으로 탈바꿈해 숨을 쉰다.

저자는 1978년부터 짚풀 문화를 찾아 전 세계를 누비기 시작했고 1987년 사단법인 짚풀문화연구회를 설립해 본격적으로 저변 확대를 위해 뛰어 들었다. 1993년에는 짚풀생활사박물관을 설립해 귀중한 체험활동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이번 책에는 초등학생들이 체험할 수 있는 짚풀 공예의 가장 기본이 되는 작품을 실었다. 짚공예의 기본인 새끼 꼬기부터 시래기두름, 달걀 꾸러미, 수박망태, 허수아비, 똬리, 망태기, 보릿짚 인형, 보릿짚 컵받침, 보릿짚 카드, 여치집, 도라지꽃, 장미꽃, 삼태기, 여치, 잠자리 등 26종이 담겨있다.

▲ 짚으로 만든 달걀 꾸러미.
ⓒ 짚풀생활사박물관
보아하니 종류가 각양각색이다. 실생활 용구부터 동식물 모양, 그리고 이름도 생소한 씨오쟁이, 닭둥우리까지. 씨오쟁이는 이듬해 심을 씨를 담아 보관하는 그릇을 말한다.

농사꾼에게 씨앗은 생명이다. 그래서 옛말에 굶어 죽어도 씨오쟁이는 베고 죽으란 말까지 있다고 하니 귀중함을 엿볼 수 있다.

닭둥우리는 공중에 다는 닭집을 말한다. 닭이 올라가 알을 낳고 품는 장소이기도 하다. 볏짚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보온과 통풍이 좋다. 닭둥우리는 많은 모양이 있는 데 책에서는 용마름을 짧게 엮어 뒤집은 모양을 보여주고 있다.

수박망태를 들여다보자니 불뚝 어릴 적 생각이 난다. 맞아! 그때는 새끼줄로 엮은 망에 수박을 담아가지고 다녔지! 꼭꼭 잠겨서 떠올릴 기회조차 없던 기억이 되살아나는 반가움. 이 책이 선사하는 유익함 중 하나일 것이다.

종려나무 잎으로 여치와 잠자리를 만든 것을 보면 실물을 방불케 한다. 색깔도 들어맞고 각선의 오묘함 역시 빼닮았다. 여치의 경우 제작과정 사진을 30장이나 보여주는 섬세함으로 처음 만드는 이들도 착실히 따라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이렇듯 작품마다 충분한 사진 설명으로 완성도를 높여주는 친절함 역시 이 책의 유익함이다.

인씨에 따르면 짚과 풀로 못 만드는 것이 없을 정도로 응용 분야가 넓다. 또 조금만 신경을 쓰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자연재이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다. 이보다 더 환경친화적인 취미생활은 없다는 말이다.

짚풀생활사박물관에서 직접 체험활동을 할 수 있다고 하니 올 여름방학엔 책 한 권 허리춤에 끼고 온 가족이 달려가 보는 것은 어떨까.

인병선씨는 누구?

1935년 평남 용강에서 태어난 저자는 서울대 철학과를 다녔으며 1956년에 시인 신동엽과 결혼했다.

우리 짚풀문화에 대한 조사, 정리 작업을 꾸준히 해온 저자는 1991년에 '짚풀문화특별전'(국립민속박물관)을 열었으며 문화부 문화가족상 '화전(火箭)'을 수상했다.

1993년에는 짚풀생활사박물관을 설립하고 개관 특별전으로 '망ㆍ망태ㆍ망태기전'을, 1994년에는 '100주년 기념 동학농민 전쟁 민속전'과 '맥간공예-보리짚ㆍ밀짚 특별전'을 연 후 수많은 전통 공예 관련 전시회를 가졌다.

현재 짚풀생활사박물관 관장과 문화재청 근대문화재 전문위원, 세계박물관대회 상임위원, 한국박물관교육학회 이사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1995년 문화부장관 상과 2005년 제2회 대한민국문화유산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들풀이 되어라>(1988), <짚문화>(1989), 벼랑끝에 하늘>(1990), <풀문화>(1991),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짚풀문화>(1995), <풀코스 짚문화 여행>(2000),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종이오리기>(2005), <시인 신동엽>(2005) 등이 있다.

한편 그녀가 운영하는 짚풀생활사박물관은 1993년 문화관광부에 등록하고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에서 운영하다가 2001년 현재의 종로구 명륜동으로 이전 개관했다.

짚풀 특히 볏짚을 체계적으로 연구해 설립한 박물관은 전 세계를 통틀어 이곳 뿐이며 현재 짚풀 관련 민속자료 3500 점, 연장 200 점, 조선못 2000 점, 제기(祭器) 1000 점, 한옥문 200 세트, 이종석기증유물 457 점, 세계의 팽이 100 종 500 여 점 등을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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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 이야기 - 생각하는 지혜 동화 03
유진아 지음, 안준석 그림 / 꿈소담이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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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토리'라는 나무가 있었다. 엄마 신갈나무에서 떨어져 다람쥐의 먹잇감이 될 뻔하다가 운 좋게 싹을 틔어 나무의 일생을 살다간 도토리의 이름이기도 하다. 토리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란 표현이 어울리는 아름다운 나무다.

살아 반평생, 죽어 반평생을 살다간 토리. 살아서는 한 곳에서 뿌리를 박은 채 대자연과 사계, 그리고 자신을 찾아 온 운명과 벗하며 지고지순하고 무한한 사랑을 보여준다.

베어진 후에는 숯과 재가 되어 영원히 이 땅에서 사라지는 순간까지 보여준 희생정신을 따라가다 보면 가슴 뭉클한 감동을 만난다.

토리의 아름다운 삶을 보기 위해 책을 편다. 순간 우리는 싱그러운 봄날 대지를 뚫고 막 올라오는 연녹색 새순을 만난다. 아기 손 같이 고물고물, 잼잼, 땅을 간질이며 오르는 토리의 손을 잡아보자. 그리고 때묻지 않은 아기 눈빛 같은 이야기 속으로 빠져 보자.

한평생 지고지순한 사랑을 남기고 간 나무의 일생

엄마 몸에서 떨어져 첫 이별을 느낄 사이도 없이 다람쥐 먹이로 일생을 마감할 뻔한 토리. 그러나 인기척에 놀란 다람쥐가 토리를 묻고 가는 바람에 용케 땅속에서 겨울을 난다. 땅이 녹고 대자연이 기지개를 켜는 봄, 토리도 힘차게 고개를 세상 밖으로 내민다.

처음 맞는 세상은 경이롭다. 토리는 가장 먼저 빛을 접하고 눈이 부셔서 비틀거렸다. 그때 발아래 흙은 토리의 뿌리를 힘껏 잡아주며 세상을 향해 올곧이 서라고 격려한다. 빛 다음으로 토리를 반긴 것은 바람이었다. 바람은 지상에서 토리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고는 떠났다.

처음 맞는 이별이지만 토리는 슬퍼하지 않았다. 바람은 머물다가 떠나는 존재며, 기약할 순 없지만 언젠가는 다시 돌아오기 때문이다. 또 내일이면 다시 떠오를 해님을 위안 삼아 슬픔을 기다림의 기쁨으로 승화시킨다.

토리는 아름다운 천성을 타고났다. 사람들의 관심이 없다며 풀이 죽어 있는 친구나무인 솔이를 한껏 치켜 세워준다. 둥지를 틀기 위해 날아 든 곤줄박이 부부에게 가슴을 열어 터를 내어주고, 이들이 낳은 세 마리 형제를 자기 자식인 양 돌본다.

특히 몸이 약한 둘째 줄이를 마지막까지 돌봐 이소(移巢)에 성공시킨다. 그리고 행복한 표정으로 속으론 이별의 눈물을 흘린다. 나무 등걸에 내려앉은 민들레 홀씨를 바람에 날려보냈고, 곤줄박이 가족을 모두 떠나보낸 빈 가슴에 어느 날 겨우살이가 자리 잡는다.

새똥인 줄 알았던 흔적에서 겨우살이가 움트는 것을 본 친구 솔이는 빨리 없애버리라고 난리를 편다. 겨우살이는 식물에 기생하면서 양분을 빼앗아 먹는 기생식물이다. 그러나 토리는 겨우살이가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몸을 열었다.

그리고 겨우살이를 위해 물을 빨아 올려 공급했다. 숲 속에는 이제 토리, 솔이, 겨우살이, 그리고 잊을 만 하면 불어오는 바람 아저씨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간다.

자연의 이치와 삶의 지혜를 자연스럽게 전달

토리는 도토리 나무가 아니다. 참나무의 일종인 신갈나무다. 우리가 흔히 참나무라고 부르는 것에는 굴참나무, 졸참나무, 떡갈나무, 신갈나무 등이 있다. 나무껍질과 열매 모양이 조금씩 틀리다. 이들은 모두 도토리 열매를 맺고 베어져서는 대부분 숯으로 만들어진다.

책에는 지혜의 상징으로 나무꾼 노인이 등장해 자연의 이치와 삶의 지혜를 전달한다. 벌목을 하는데 있어서 나무를 대하는 경건한 마음에서부터 나이테를 보는 방법까지. 세상은 돌고 도는 것이라고 읊조리는 노인의 손에 의해 토리와 솔이, 그리고 겨우살이는 원치 않는 이별을 한다.

마지막 이별의 순간에 찾아 온 바람에게 더 이상 쉴 터를 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토리. 그 말에 몸부림치며 우는 바람 아저씨. 이미 토리의 몸에는 여러 번 도끼 날이 들이친 상처가 나 있다. 바람 아저씨는 마지막으로 신갈나무의 뺨에 입을 맞추고 이별한다. 숲은 인간에 의해 골프장을 개발되고 있었다.

베어진 토리는 숯막에서 뜨거운 불길을 견디고 숯으로 환생한다. 숯이 되는 과정에서 정신이 혼미해진 토리는 헛것을 본다. 그 동안 사귀었던 친구들이 눈앞을 스친다. 헛소리를 해대는 토리의 모습을 접하면 안타까움은 고조를 이른다.

토리는 숯이 되어서도 인간을 위해 공기를 정화하고 심술쟁이 풍란에게는 깨끗한 물을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연약한 숯으로 살면서도 남을 위해 살아간 토리는, 그러나 끝내 부서지고 깨어져 볼품없이 내동댕이쳐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겨우살이와 극적인 재회를 한다. 겨우살이는 인간의 병을 고치는 약으로, 토리는 그것을 끓이는 불로, 이들은 그렇게 인간에게 베풀고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 한 모이었던 토리와 겨우살이가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는 감동의 절정이다.

죽기 전에 토리를 만나게 해달라고 별님, 달님, 바람, 그 모든 것에 빌었다는 겨우살이의 고백에 토리는 다시 나무가 된다면 두 번 다시 겨우살이 같은 것은 키우지 않겠다고 했다. 시무룩해진 겨우살이는 자기가 싫으냐고 묻는다.

"그래. 절대로 헤어지지 않는 줄 알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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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돼지로 변했어요 - 우리 식탁 지키기 프로젝트 1
김미영 지음, 신재환 그림 / 애니북스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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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먹을거리를 지키기 위해 농림부와 농수산물유통공사가 만화책을 내놨다. <아이들이 돼지로 변했어요>는 패스트푸드와 인스턴트 음식, 탄산음료의 폐해를 알리는 만화다. 제목에서 대충 알 수 있듯이 패스트푸드만 좋아하는 아이들이 급기야 돼지로 변한다.

책은 건강지킴단 단장인 건강박사님 부탁으로 초등학교 5학년인 머루와 쌍둥이 남매 다래가 돼지로 변한 같은 반 친구 포식이와 어린이들을 구하러 나서는 이야기다.

이들의 대척점에는 흑마왕의 부하 햄버거보이와 피자걸이 있는데 '음식 탓인지' 약간 모자란 캐릭터로 나오면서 번번이 머루와 다래에게 패하고 만다.

친구들을 구하러 가는 길에는 솔로몬의 지혜와 다윗의 용기가 필요했다. 농산물나라에서 아이들을 소생시킬 '신토불이 영양소'를 얻어야 했는데 곡식, 열매채소, 뿌리채소, 잎줄기채소, 과일 등은 머루와 다래에게 쉽사리 영양소를 내주지 않는다.

이유는 포식이가 그동안 이들을 홀대하고 멸시했다는 것이다. 곡식마을 곡식들의 항변을 들어보자.

"포식이가 식탁에서 우리를 얼마나 하찮게 여겼는지 알아. 난 그 녀석이 밥에 섞인 콩을 벌레 보듯 젓가락으로 건져 내던 것만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고!"

"찬밥 신세였던 건 나도 마찬가지야. 그 녀석 보리밥만 먹으면 방귀가 나와서 안 먹는다나? 몸에 좋은 섬유질이 많아서 소화가 잘 되느라 그런 줄도 모르고…."


영양소를 얻기 어려운 상황이 되자 머루와 다래는 포식이 대신 곡식들에게 사과했지만 외면당한다. 흑마왕은 머루와 다래가 영양소를 얻지 못하도록 훼방을 놓거나 농작물을 죽이려하는 등 해코지한다.

그럴 때마다 머루와 다래는 용기와 지혜로 이겨내고 마침내 필수 영양소를 모두 얻어와 돼지 친구들을 본래 모습으로 되돌린다.

책은 농림부의 '우리식탁 지키기' 프로젝트 첫 번째 작품이다. 공공기관 홍보용 책자의 엉성함을 탈피해 계몽적 내용을 짜임새 있게 담았다. 농림부는 이어서 <고추 먹고 맴맴>, <꼬마 요리 천재의 산해와 진미>, <지구를 지키는 생명의 수호천사> 등 시리즈를 펴냈다.

내용도 단순한 권선징악이 아니라 모험과 퀴즈, 이해와 설득을 적절히 섞어 흥미롭게 끌고 나간다. 다만 요즘 아이들 책이 너무 만화 형식으로만 쏠리는 아쉬움을 한번쯤은 지적하고 싶다. 허나 어쩌랴. 딜레마지만 아이들에겐 만화가 잘 먹히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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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꿈이 담긴 조선 최초의 신도시, 수원화성 - 신나는 교과서 체험학습 53
김준혁 지음, 양은정.이종호 그림 / 해피북스(북키드)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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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스의 '신나는 교과서 체험학습 시리즈' 53번째 <수원화성>이 나왔다. '정조의 꿈이 담긴 조선 최초의 신도시'라는 멋진 부제만큼 재미나고 유익한 책이다.

<조선 오백년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곳, 경복궁>에 이어 두 번째 책을 접하고 느낀 점은, 사진과 삽화가 훨씬 보기 좋아졌다는 것이다.

글은 수원시 학예연구사인 김준혁씨가 썼다. 오래전부터 정조와 화성을 연구한 전문가답게 꼼꼼하고 세심하게 어린이들에게 수원화성의 역사와 안팎을 열어 보인다.

특히 수원화성에 담긴 정조의 숨은 뜻을 재미나고 역동적으로 풀었다. 또 한편으론 정약용으로 대표되는 조선의 실사구시 실학정신도 만나는 재미가 있다.

체험학습 시리즈라는 이름에 걸맞게 책을 펼치면 천연색 사진과 삽화가 시선을 단박 이끈다. 현장을 최대한 많이 보여주려는 집필진의 땀 냄새가 느껴진다. 궁금증을 자아낼 만한 것이 나오면 어느새 부분사진에 친절한 설명을 달아 놨다.

수원화성은 기존의 성과 달리 치밀한 계획에 의한 공사였고 새로운 공법과 공사도구를 선보이면서 조선조 건축술을 한 단계 끌어 올린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원래 공기를 10년으로 잡았는데 거중기, 유형거, 녹로 등 기기를 이용해 2년 9개월 만에 마쳤다고 한다.

과학적인 공사 기구 덕분에 공기를 3분의 2나 단축할 수 있었다. 정조는 공사에 동원된 백성들과 강제 이주를 해야 했던 이들에게 노임과 이주비를 넉넉히 지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공기 단축으로 절감한 예산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책은 역사의 정신과 유물을 바라보는 시선을 씨줄과 날줄처럼 짜임새 있게 엮었다. 유물이 만들어진 역사적 배경과 유물에 담겨져 있는 선조들의 정신까지 보여준다. 가끔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보여주려는 욕심 때문에 한정된 지면이 버거울 때도 있지만 그리 나쁘진 않다.

수원화성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세계가 앞장서 보호하고 보존할 가치가 있는 유산이다. 자칫 수원화성은 역사 속에 묻힐 뻔했다. 일제의 훼손에 이어 한국전쟁 때 일부만 남고 대부분 폭격에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옛것과 같이 복원했을까.

그것은 바로 '화성성역의궤'라는 책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일종의 공사보고서인 이 책은 공사의 처음과 끝을 10권 9책에 소소히 기록했다. 일정과 경비, 건축도구, 자재 단가, 심지어 회식 기록, 기술자 이름 등 모든 사항을 촘촘히 기록했기 때문에 이를 보고 1975년 3년 만에 완벽하게 복원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과연 정조는 수원화성을 왜 지었을까. 비운의 아버지 사도세자를 기리기 위해서? 아들인 순조를 도와 부강한 조선을 만들기 위해서? 이 두 가지 목적을 모두 충족하는 것은 물론, 총애하던 정약용으로 대표되는 실학의 실사구시를 제대로 한 번 구현해 본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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