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사 논고 한길그레이트북스 154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강정인.김경희 옮김 / 한길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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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로마사 논고]는
마키아벨리 전문가이면서 한국어 구사능력도 받쳐주는 두 교수님이 세심히 잘 번역했다.
(이들은 국내 [군주론] 번역본 중 선호도가 높은
까치 직역본 공역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워낙 장기간에 걸쳐 본 데다
마키아 옹의 저서 체계가 약간 산만한 편이라서
딱히 찝어서 감명적인 부분을 언급하긴 어렵다.
[군주론]의 확장 증보판이라고나 할까.
일종의 정치 군사학 참고서로서
그때그때 필요한 부분에 밑줄 그어가며 읽어야 하는 책.

그리고 처음엔 몰랐는데
짝꿍으로 리비우스 [로마사]를 꼭 옆에 끼고 봐야 한다.
이 '로마사'는
거시적 의미의 2000년 로마 역사가 아니라
리비우스 [로마사] 1~10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군주론]은
마키아벨리가 뛰어난 조언자로서 자기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헌정(상납?)한 정치외교비법서인지라
아무래도 사바사바의 느낌이 좀 있는데
(마지막 장에 아예 대놓고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할 1인의 영명한 군주'라고..)

[논고]는
주류정치에 다시 편입되지 못하고
반강제로 은둔하던 마키아벨리가
개혁파 스터디그룹의 일원으로 작성한 글이다.

고대 로마 공화정을 이상향으로 설정하고,
운명(fortuna)에 맞선 위대한 지도자들의 덕과 용맹과 능력(virtu)을 칭송하는 한편,
로마를 망국으로 이끌었다면서 카이사르와 그 후계자들을 욕하고
현실의 겁 많고 어리석은 통치자들을 비판한다.
'로마군에 규율을 겸비한 열정이 있었다면,
갈리아 군대는 열정만 있고 규율이 없었으며
이탈리아군은 열정도 규율도 없는 무용지물'이란다..

개인적인 평가는
열사의 우국충정의 산물..은 절대 아니고
잊혀지고 싶지 않았던 유세객의 통찰력 있는 제안서?

뭐, 결국 성공하긴 한다.
17세기 이후 계몽주의, 민족주의, 국가주의, 전체주의 사상가들, 심지어 이탈리아 공산당에게도 끊임없이 소환당해 재해석되고 있으니...

- 용기와 준비는 운명을 극복한다
- 무엇보다 공익, 특히 국가이익을 위해서는 수단의 도적적 선악에 관계없이 다만 효율성과 유용성만을 고려한다
- 과연 무엇이 로마 공화정이 위대한 제국을 건설하도록 했는가? 도시들은 오직 자유로운 상태에서만 영토나 부가 증대해왔다. 인민이 국가를 직접 통제하면 그 국가는 매우 짧은 시간에 거대하게 성장하고 위대함을 성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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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 곰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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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30주년 기념판 작가 서문에 보면, 일부 독자들이 편지를 보내와 엄청난 우울감과 삶의 균열을 호소했다고 한다. 특히 어릴 적부터 종교(특히 기독교)에 길들여졌지만 왠지 모를 막연한 의문을 갖고 있었던 이들이.
'어떤 외국인 교사는 한 여학생이 이 책을 읽고 인생이 허무하고 목적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며 눈물을 글썽이면서 자기에게 찾아왔다고 내게 항의 편지를 보내왔다. 이 교사는 학생들이 허무주의적 염세관에 물들지 않도록 그 학생의 친구 누구에게도 이 책을 보여 주지 말도록 충고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도킨스 옹은 이렇게 답한다.

어떤 진실이 진실이 아니기를 바란다고 해서 그 진실을 되돌릴 수는 없다.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게 만드는 따스함을 과학이 빼앗아 간다고 비난하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잘못이다. 사람들은 절망에 빠지지도 않은 나를 절망으로 내몰고 있다.
우리의 뇌는 이기적 유전자에 배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는 정도로까지 진화했다.

작년 과학분야 베스트셀러였던 이 물고기 책도 이런 모순, 의문, 균열에서 출발한다

생화학자였던 저자의 아버지는 늘 딸들에게 '너는 중요하지 않아. 인생의 의미는 없어. 신도, 내세도, 운명도 없어. 그런 게 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누구도 믿지 마라. 그러니 너 좋을 대로 살아.'를 강조한다. 지구의 관점에서 인간의 탄생은 혼돈일 뿐, 우리의 삶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그래도 이 아버지는 '광대 신발을 신은 허무주의자'처럼 인생을 활기차고 대범하게 잘 살았다. '다른 사람들도 중요하지 않기는 매한가지지만, 그들에게는 그들이 중요한 것처럼 살아가라.'를 아주 충실히 지키면서.

다만 그 자식들은 그러지 못했다. 큰언니는 심각한 사회부적응자에 은둔형 외톨이가 되었고, 동생인 저자는 이미 10대에 자살기도를 하고 어디에도 마음 붙이지 못하고 떠돌다가, 과학기자가 되면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분류학자이자 어류학자의 생애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거대한 '생명의 나무'의 형태를 밝혀냄으로써 지구의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려는 과학자. 당대 인류에게 알려진 어류의 1/5을 동료들과 밝혀냈으나 지진 또 지진으로 모든 게 박살나고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던 기인. 그 그릿(grit, 끈질긴 투지)이 나중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버려 문제가 커졌지만.

이 책의 최대 반전은, 픽션처럼 시작했던 이야기가 결국 논픽션이었다는 점이다. 오죽하면 나도 진짜 그런 어류학자가 있는지 검색해봤고, 진짜 있었으며, 이 책이 출간되고 그의 행적에 대한 비난이 빗발치자 인디애나대, 스탠포드대에서 그의 이름을 딴 기념물들을 모두 개명해 버렸다고 한다.

사실 읽기가 쉽지 않다. 단어들은 갑자기 튀어오르고 서술은 툭툭 끊어진다. 유려한 문장은 아니다. 하지만 두 번 세 번 들춰보았을 때 은근히 다가오는 무언가가 있다. 결국 세상을 살 만하게 하는 건, 작은 따스함과 그로 인한 삶에 대한 희망과 믿음이라는 것.

- 나는 범주를 부수고 나왔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무한한 가능성의 장소를 보았다. 모든 범주는 상상의 산물이다. 그건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느낌이었다.
- 나는 좋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약속을 얻었다. 내가 그 좋은 것들을 누릴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다. 내가 얻으려 노력했기 때문이 아니다. 파괴와 상실과 마찬가지로 좋은 것들 역시 혼돈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결국 저자는 혼돈 속에서 기나긴 우회로를 지나 스스로의 행복을 찾은 듯 하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바로 '아빠'에게 헌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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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강호 86
전극진 지음, 양재현 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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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진지한 독서에 물릴 때
꺼내 보는 추억의 만화.

중학생 때
오빠방 한국문학전집 뒤편에 몰래 숨어 계시던
(그러나 그 줄만 너무 티가 났던)
대한민국 역사상 최장수 무협만화.

86권에 이르기까지
28년이 걸렸지만
작중 시점은 1년이나 지났을까?
(그래도 100권이 넘었는데도
반년 남짓밖에 안 지났다는 코난보단 낫다..)
심의의 칼날은 무뎌졌지만
주인공 커플은
아직도 키스 한 번 제대로 못 해봤고
(이젠 주인공 본인도 포기한 듯..)
그 사이
더벅머리 중딩은
40대 아들셋 엄마가 되었다..

드래곤볼 후반부처럼
미친듯한 파워 인플레로 인해
인간이 아닌 듯한 자들이 인간의 껍질을 쓰고
읊기도 힘든 초절정 무공을 날려대는
가상 무림의 세계.

요즘엔 최종장이라 그런지
시종일관 진지모드인데
딱 100권만 채우고 끝내십시다ㅜ
내 살아생전 완결을 볼 것 같긴 하지만
베르세르크의 경우를 보면
인생 참 모르는 일이라..ㅜ
어쨌든 작가님들 건강관리 잘 하시고
매번 즐거운 시간 주셔서 감사 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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