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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 커튼
김유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9월
평점 :
품절
책을 읽은지는 꽤 오래됐지만 어느덧 쌀쌀해진 가을저녁의 노을을 보자 리뷰를 쓰고 싶다는 충동이 드네요. 예전에 티비에서 인도에서 건너온 사람이 직접 운영하는 카레전문점을 방영해주더군요. 그 나라에서는 향료인 샤프란이 금보다 귀하고 값어치있다고 하는데 요리사이자 사장인 그는 샤프란, 허브, 영계닭을 넣어 정말 감미롭게 느껴지는 카레를 손님들에게 팔고 있었지요. 손님들이 음식을 먹는 모습은 마치 마법에 걸린 소녀와도 같았고 가장 행복하고 순수한 모습으로 비쳐지기도 했어요. 아쉽게도 그 식당에 가볼수는 없겠지만... 친구가 어느날 카레를 만들어주더군요. 재료가 몇가지 없다면서 냉장고에 그냥 있는 야채들로 만들면서 좀 미안해하더라구요. 그래서인지 가스렌지 옆을 한시도 떠나지 않고 정성을 기울여 만들고 있더라구요. 고기도, 햄도, 들어가 있지 않은 멀건 카레를 어찌나 맛있게 먹었던지. 마침 그날은 비도 내렸구요. 왜 음식얘기를 하나구요?
친구와 저는 비냄새를 맡으며 한여름에 땀을 찔찔짜며 카레를 먹었고, 저는 인도카레점이 정말 부럽지 않았거든요. 소설이라는 것이 사실, 묘사, 상상으로 이루어진 세계라면 이야기와 시선과 꿈이 담기는 거나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요즘에 제가 읽는 소설들은 어떤 면에서 좀 지루하다는 느낌이 있어요. 너무 사실처럼 쓰기 위하여 마음과 꿈을 미처 담지 못했거나, 또 너무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사실감을 놓쳐버렸다거나, 리얼리티를 위하여 꿈을 진행시키는 도중에 와해시키버리거나. 머 이런게 중요하겠어요. 읽는 사람과 쓰는 사람의 마음이 교감하면 가장 좋은 글이겠죠.
이 소설은, 약간 오바해서 말하면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 것 같았어요. 카메라 감독의 뜨겁고 소소한 시선이 그대로 옮겨다니는.. 또 누군가의 일기장을 훔쳐보고 있는 듯한 즐거움이랄까, 쓸쓸함, 내면의 풍경을 느낄수 있었구요. 가장 마음을 울리는 것은 작가가 작가로써 하고 싶은 말이나 글에 실리기 마련인 자신의 생각을 건조하게 삭제하거나 지루하게 삽입하거나 반복하는 것 없이 사물과 사람과 풍경에 투여해서 자기 세계를 하나씩, 하나씩, 채색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그게 사실이고 묘사고 꿈일테니까요.
우리는 이국의 요리를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손님이기도 하지만친구의 따뜻한 손이 만들어낸 짧은 시간을 영원에 담을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해요. 보라색 커튼을 읽고 나면 나의 시선과 누군가의 시선이 교감하면서 생을 만들고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것이라는 마음이 생깁니다. 누군가의 노을이 제 가슴에 들어와서 저에게도 처음 느끼는 보랏빛이 시작되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