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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깜짝 물결무늬 풍뎅이
구효서 지음 / 세계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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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짧은 순간, 찰나 같은 것의 기미가 보여요. 하지만 가볍거나 흔해보이지 않는 것은 작가가 캣치한 순간 속에 과거와 미래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예요. 책제목인 '아침 깜짝 물결무늬 풍뎅이'의 경우 정말 재밌었어요. 인디언의 이름과 미르사이의 묘한 암시 같은 거요. 가끔 그렇잖아요. 자신의 이름때문에 힘든 경우요. 이름에 짊어진 무게가 너무 많다는 생각... 그에 비해 밥 먹으면서도 졸음을 못이기는 습성 그대로 '아르아다눈데'라고 이름 지은 인디언이나 미르는 자신들이 키운 게 아니라 세상이 키운거라는 작가의 깊은 눈매가 엄숙함이나 철학을 빌려오지 않고도 많은 상상력을 남겨요.

'더 먼 곳에서 돌아오는 여자'와 '흔적'의 경우 읽어내려갈 땐 따뜻하고 잠시 쉬엄쉬엄 읽어갈수 있는 운을 주는 서정성을 지녔지만 연극의 막이 끝나듯 소설이 끝나지면 싸늘한 기분이 들어요. 다시 책장을 넘겨가면 멋모르고 좋아하며 읽었던 부분들 속에 다 암시가 되어 있었거든요. 왜 그렇게 해가 노랬는지, 해는 길었는지, 왜 그렇게 한가롭고 따스한 풍경이었는지, 그래서 이유도 모른 채 읽으면서도 맘 한 구석이 아렸구나, 하구요.

가끔 문예지에서나 보던 구효서 작가의 작품은 편안하면서도 너무 평이한 것 같다는 선입견 같은 게 있었는데 이 책을 읽다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예를 들면 순간을 캐치해내서 그 속에 삶의 편린을 풍경처럼 만들어놓는다는게 실은 쉽지가 않다는거요.  작가분들이 소설을 쓰실때 너무 부담을 안고 작품을 만들면 그게 독자한테는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거든요. 현실적이지 않다거나, 너무 현실적이라는 이유로 말예요. 작가가 정말 좋아서 쓴 작품의 경우 전체가 호응받는 것은 아니겠지만 분명 어떤 독자는 하나라도 작가가 의도한 바를 작가보다 더 호흡력 있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잖아요. 개그문화가 남긴 '재미'추구를 못마땅하게 여기지만 이 작품집은 무엇이라고 정의하기 힘든, 소설읽는 소소로움, 즐거움을 담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11개의 수록단편 중 6편째 읽고 있는 중인데 아쉬움을 토달자면 반은 평이함속에 담긴 개성이나 특유함, 고유성이 좋았고 반은 미완성처럼 느껴지는 짧은 호흡같은 거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치열함을 드러내지 않고 치열하게 자유를 추구하는 작가로 보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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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 커튼
김유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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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은지는 꽤 오래됐지만 어느덧 쌀쌀해진 가을저녁의 노을을 보자 리뷰를 쓰고 싶다는 충동이 드네요. 예전에 티비에서 인도에서 건너온 사람이 직접 운영하는 카레전문점을 방영해주더군요. 그 나라에서는 향료인 샤프란이 금보다 귀하고 값어치있다고 하는데 요리사이자 사장인 그는 샤프란, 허브, 영계닭을 넣어 정말 감미롭게 느껴지는 카레를 손님들에게 팔고 있었지요.  손님들이 음식을 먹는 모습은 마치 마법에 걸린 소녀와도 같았고 가장 행복하고 순수한 모습으로 비쳐지기도 했어요. 아쉽게도 그 식당에 가볼수는 없겠지만... 친구가 어느날 카레를 만들어주더군요. 재료가 몇가지 없다면서 냉장고에 그냥 있는 야채들로 만들면서 좀 미안해하더라구요. 그래서인지 가스렌지 옆을 한시도 떠나지 않고 정성을 기울여 만들고 있더라구요. 고기도, 햄도, 들어가 있지 않은 멀건 카레를 어찌나 맛있게 먹었던지. 마침 그날은 비도 내렸구요. 왜 음식얘기를 하나구요?

친구와 저는 비냄새를 맡으며 한여름에 땀을 찔찔짜며 카레를 먹었고, 저는 인도카레점이 정말 부럽지 않았거든요. 소설이라는 것이 사실, 묘사, 상상으로 이루어진 세계라면 이야기와 시선과 꿈이 담기는 거나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요즘에 제가 읽는 소설들은 어떤 면에서 좀 지루하다는 느낌이 있어요. 너무 사실처럼 쓰기 위하여 마음과 꿈을 미처 담지 못했거나, 또 너무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사실감을 놓쳐버렸다거나, 리얼리티를 위하여 꿈을 진행시키는 도중에 와해시키버리거나. 머 이런게 중요하겠어요. 읽는 사람과 쓰는 사람의 마음이 교감하면 가장 좋은 글이겠죠.

이 소설은, 약간 오바해서 말하면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 것 같았어요. 카메라 감독의 뜨겁고 소소한 시선이 그대로 옮겨다니는.. 또 누군가의 일기장을 훔쳐보고 있는 듯한 즐거움이랄까, 쓸쓸함, 내면의 풍경을 느낄수 있었구요. 가장 마음을 울리는 것은 작가가 작가로써 하고 싶은 말이나 글에 실리기 마련인 자신의 생각을 건조하게 삭제하거나 지루하게 삽입하거나 반복하는 것 없이 사물과 사람과 풍경에 투여해서 자기 세계를 하나씩, 하나씩, 채색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그게 사실이고 묘사고 꿈일테니까요.

우리는 이국의 요리를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손님이기도 하지만친구의 따뜻한 손이 만들어낸 짧은 시간을 영원에 담을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해요. 보라색 커튼을 읽고 나면 나의 시선과 누군가의 시선이 교감하면서 생을 만들고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것이라는 마음이 생깁니다. 누군가의 노을이 제 가슴에 들어와서 저에게도 처음 느끼는 보랏빛이 시작되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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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환장할 봄날에 창비시선 232
박규리 지음 / 창비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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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아파하는 영혼의 흔적이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그만 느릅의 새순이 돋길 바라는 시인의 마음은 한없이 아픔의 바다를 떠돌고 있는듯 하다. '그만 내려서야 할' 웅덩이. 달빛 환한 시궁창에 몸을 던진 그녀를 만나고 싶다. 순수한 언어들이 아픔때문에 갇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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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144
박형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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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지였는지 수상작품집이었는지 눈에 들어오던 시가 있었다. 그런데 시 두세편이 일정하지 않았다. 한편은 입이 길게 늘어나도록 맑고 밝은 서정에 가까웠다면 다른 한편은 쓸쓸하게 채색된 회색유년의 기억에 가까웠다. 이 시집은 그의 첫 시집이다. 처음에 '물 속까지 잎사귀가 피어있다'를 읽고 다음으로 이 시집을 읽게 되었는데 표지글에 그가 '화려한 이미지로'소멸에 관한 풍경을 놀랍도록 쓸쓸하게 채색하고 있다는 식의 문투가 쓰여있었는데 그의 이미지가 강하게 와닿는 것은 사실이다. 그 이미지는 박상순의 선명한 유화한점을 보듯이 강렬하고 진한 것이아니라 어두워서, 바람이 불어서, 소멸해가는중이어서 느껴지는것이다. 사라져가는 것들의 신음소리가.. 잊혀져가는 것들의 옅은 '말'들이..

그러나 시집의 시에서 몹시 불완전한 시들을 만날수 있었는데 시인자신도 무엇을 쓰려고 했었는지 모르는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의 색채가 만들어지다가 중도에 쉬거나, 포기한 심정. 읽는 나 자신도 참 애매모호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거북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차라리 그 말들을 뱉지 않고 숨겼더라면, 쓰려했다면 훨씬 나아가면 좋았을것을.

그의 서정은 위험하도록 지나치게 쓸쓸하다. 발톱을 깎는 아버지와, 국화꽃향기와, 공원의 노인들, 골방에 바지로 남아있는 소년.. 화자는 저물어가는 소년같았다.

그의 시를 더 읽고 싶기 때문에 바라게 된다. 소멸에 대한 시에 불멸을 담을 수는 없는지. 영원의 혼을 희구할수 있지 않은지. 우리모두 그의 다음시집과 함께 한 고개 넘어가고 있을것이므로.

스러져가는 풍경을 안고 새창문을 달아준다면 쓸쓸하던 그들도 조금은 기쁘지 않겠는가. 우리도 더 오래도록 그들의 눈을 마주볼수 있지 않겠는가.

그가 커튼을 걷고 햇살속으로 더듬더듬 발딛는모습이 보이는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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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주소년 1집 - 재주소년(才洲少年) [재발매]
재주소년 (才洲少年) 노래 / 파스텔뮤직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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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열진행의 어떤 라디오프로그램에서 처음 이들의 음악을 들었다. 그때, 겨울이었고 총결산특집방송 같았는데 다른 곡들도 꽤 괜찮은 곡이 많았었다. 모던락계열이 많은 것 같았는데 가벼우면서, 유쾌하고, 재밌고.. 이들의 음악이 귀에 확 꽂힌 이유는 아무래도 '감수성'을 자극했었기 때문인것 같다. 바로 그들의 음반을 며칠정도 틀어놓고 들어보았는데 처음에는 모든 곡이 참 맑고 순수하고, 서정적이라는 느낌이었다. 조용히..차분해지면서도..몽상으로 이끌어 주는.. 물론 '귤'과 같은 통통 튀는 듣기 꽤 즐거운 음악도 있다. '명륜동'이나 '언덕'과 같은 곡에서는 듣다 눈물이 흐를정도로.. 그것도.. 아주.. 갑자기..예고없이.. 너무.. 우연적으로.

그곡이 슬프다기 보다는 숨겨진 '멜로디'때문이었던 것 같다. 추측하건대 이들은 슬픈감정을 보다 밝게 소화시키는 능력을 가진것 같다. 그래서 거부감없이 요즘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는것일까? 오랜만에 조용하고 듣기 좋은 앨범을 만난것 같아 기뻤지만 라디오에서 처음 듣던 '눈 오던 날은' 지금, 그들의 노래가 너무조용하다라는것에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그들이 락커도 아닌데 무슨 조용하다는 트집을 잡느냐고 묻는다면-

그들의 앨범과 '눈 오던 날'을 여러번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왜냐하면, 신인의 산뜻함과 참신함(특히 곡을 만들줄 아는 것과 제주도의 소년들이라는 점은 정말 눈에 '뜨인다')이 가리고 있는듯한 지리멸렬함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익숙-한 어디선가 많이-들어본 듯한..

좋은 앨범에 별 하나를 남겨둔 이유이다. 그들의 앨범은 소장할만 하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굳이 꼭꼭 사야하지 않아도 될수도 있다는 말이다. 난 꼭꼭 산 케이스이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다만 다음 앨범을 사며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정말 눈물다운 눈물 (기쁨의 눈물)을 줄줄 흘리고 싶다.

내 욕심이 지나친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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