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말이 역사가 되도록 - 구술을 어떻게 듣고, 기록할 것인가
이호연.유해정.박희정 지음 / 코난북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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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구술 기록에 대한 책이지만, 나에게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왜,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 

그들이 말을 들어줄 때 서사화가 가능하고, 공동체 회복도 가능하다는 작가의 말에 백퍼 공감한다. 


인권침해 사건을 다루다 보면, 현재라는 시간이 주는 표상 불가능성, 서로 다른 지위(다른 사회를 상상할 수 없는 판사들과 변호사들의 지위), 내 짧은 어휘 실력으로 사건 그 자체를 법정에 그대로 드러내지 못해 답답하고 속상할 떄가 많았는데, 그에 대한 고민을 나눌 수 있어 읽고 또 읽었다. 

많은 이들이 읽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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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보지젝은 고통을 서서화할 권리에 대해 말한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고통을 특별한 서사로 만들어낼 권리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서사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서사가 사람들이 세상을 인식하고 설명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내가 겪은 고통을 시간의 흐름과 인과를 갖춘 이야기로 만든다는 건, 고통을 해석할 힘과 언어를 갖는다는 의미다. 세상을 지배하는 서사를 다시 쓸 가능성이 그 때 열린다. 그리고 이 서사화할 권리는 듣는 이가 있을 때 비로소 실현된다.... 이야기할 권리는 이를 해결하고 회복하도록 공동체에 해결과 회복을 요청할 권리까지 포함된다. ... 우리는 인권기록이 서사화할 권리를 말하고 보장하는 과정이 되길 바란다(35) 


기록자가 억압의 복잡성을 드러내려면 '삭제된(숨겨진) 맥락의 가능성을 질문해야 한다'. 차별을 단순화하지 않고 그 양상과 구조의 복잡함을 그대로 드러내야 새로운 인식의 문을 열 수 있다(68)


반대로 묻지 않음으로써 어떤 존재를 사회와 세상에서 밀어내는 경우도 있다. 가령 중증 장애를 가진 성인을 만났을 때, 다른 이들에게라면 진작 물었을 결혼은 했는지...(중략) 

끊임없이 실수하면서 나는 흔한 일상의 안부조차 타자와의 만남에 대한 기대를 품고 있을 때 비로소 온전히 가닿을 수 있음을 배운다. )(87)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자신이 누운 곳이 방인이 관인지 모를 30년 세월을 살아오며 침묵했다. 이들의 목소리는 말이 되지 못하고 웅성거림으로 떠돌다 최근 들어서야 목소리로 우리 곁은로 소환했다. 그러니 듣는다는 것은 우리가 상상한 범주 이상의 언어와 목소링 귀 기울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기록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종종 이것이 과연 가능한가라는 의구심을 갖곤 한다. 삼ㄹ과 말, 말과 글의 괴리 때문이다. 우리가 만나는 구술자들 입에서는 인권침해의 언어들이 수도 없이 터져 나온다. 그러나 강제격리, 감금, 노역, 가혹행위, 폭행, 구타, 욕설, 성폭행 같은 단어로는 구술자들의 삶을 한마디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삶과 말의 틈새, 말과 활자의 틈새가 너무 크다. 고통 앞에 활자는 더 없이 딱딱하고 단정한 것이어서 그 고통을 듣고 기록한들 전달할 수 있을까, 말해질 수 있는 것은 언어화된 것을 넘지 못하는 것 아닐까, 끊임 없이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기록활동의 동료 홍은전은 이 불가능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바 있다. 다른 '사회'에 속했기에 상상할 수 없어 물을 수 없었던 것들, 말해지지 못ㅎㅆ던 것들, 그리고 같은 기표를 가지나 달느 기의를 갖는 언어들에 대해. 

'그를 두번째 만났을 때 나는 지난번에 들었던 이야기를 다시금 확인하기 위해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의 대답을 들은 나는 무언가를 머리를 세게 맞는 것 처럼 아득해졌다. 내 짐작의 상당 부분이 "완전히" 틀렸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가령 이런 것이었다. 그가 고아원에서 가졌다는 "자유시간"이란 사실 "점호자세로 앉아 있는 것"이었고, 그에게 "별것 아니었으므로 말 필요조차 없었떤 일"에는 "손가락을 잡고 부러뜨리는 일" 따위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가 쓰는 언어와 내가 아는 뜻이 너무도 달라서 끊임없이 각주를 달아야 할 판이었다. 언어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회 구성원들의 약속인 것이다. 그가 속했던 사회와 내가 속했던 사회가 그토록 달랐음을 새삼스럽게 깨닫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너무도 당연하여 내가 묻지 않은 것과 너무도 별것 아니므로 그가 말하지 않은 것들 사이에 어떤 이야기들이 버려졌을까' (130~132)


최후의 순간까지 그의 경험의 뿌리에서 '그의 관점'으로 그를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구술자라면 기록을 포기할 때도 있다. 기록은 사람을 옹호하는 일이고, 기록자는 기록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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