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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의 마녀들 - 한국전쟁과 여성주의 평화운동
김태우 지음 / 창비 / 2021년 4월
평점 :
1951년 전쟁의 참혹한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영국, 덴만크, 아르헨티나 등 18개국 21명의 여성들이 모스크바-선양을 경유하여 북한에 들어와 신의주, 평양, 신천, 안악 등을 조사하고 1951년 '우리는 고발한다(We Acuses)' 보고서를 발간했다.
국제민주여성연맹(Wwomen's International Democratic Federation)이, 북한의 허정숙 등이 보낸 요청에 응하여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1951. 5.부터 좃에 들어갔다.
1950. 11. 5.부터 시작된 미군의 초토화 정책은 북한 전 지역을 폐허로 만들었고, 민간인들을 무참히 학살하였으며, 생활터놔 직장터도 모두 파괴하였다.
이 여성들은 여전이 폭탄이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북한 주민들을 직접 만나 피해실태를 듣고, 학살 현장에 비참하게 매장된 시신들을 목격한뒤 보고서를 작성했다.
6.25 전쟁의 침략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정치적으로 예민한 문제에 대해서는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결론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그리고 다른 정치적 배경으로 조사 초기에는 위원장의 인사말 조차 시비가 붙었으나,
'그들은 최종보고서의 내용에 합의하는데 있어서는 커다란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달느 무엇보다도 북한의 상황이 논쟁의 여지 없이 너무나 파괴적이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이 너무나 절망적이나는 사실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조사위원들은 여성이라는 동일한 정체성과 북한의 파괴적 현실 앞에서 상호 간의 이해도를 높여갔을 뿐만 아니라, 북한 여성들과도 강한 연대감을 형성해 갈 수 있었다'(313-314).
"그녀(펜턴)가 갑작스레 불안에 떨면서 악몽을 꾸기 시작한 것이다. 그 두려움과 불안의 실체는 명확했다. 자신이 한반도에서 보고 들었던 충격적인 이야기들이 영국인들의 '고상한 침묵'(polite silencs)에 의해 질식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펠턴은 조바심이 날 지경이었다'315)
1951년 한국 전쟁 당시 여성들 중심의 국제조직이 북한을 방문해서 피해 실태 조사를 했다는 것도 너무나 놀라운 사실이고,
내 자신이 북한의 피해 실태가 그 정도로 참혹했는지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 처음 알게 된 것도 놀라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