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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루게릭 병이라는 희귀한 병에 걸린 모리 슈워츠 교수에 대한 것이다. 실존인물이었던 그에 대해 그의 제자였던 미치 앨봄이 쓴 것이다. 몸이라는 좁은 공간 안에 무한한 자아가 점점 갇혀가듯이 병에 의해 서서히 굳어지는 몸. 그는 죽음을 준비하는 순간, 이미 두 가지 삶의 선택권을 쥐게 된다. 이미 절대로 평범해질 수는 없는 것이다. 첫번째 삶은 끝없이 절망하다가 인생에 회의를 느끼고 결국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이 허무한 이슬로 사라져가는 것이고, 두번째 삶은 절망을 딛고 일어나 남은 삶을 더 큰 빛으로 일구며 세상에 남은 사람들을 위한 교훈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다. 그는 주저 없이 두번째 삶을 택했고 그렇게 떠났다.
그가 마지막까지 그렇게 당당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무엇이 그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었던가. 이 물음에 대답하는 것이야말로 복잡하게 잠겨있는 삶의 키워드를 찾는 일의 하나일 것이다. 마비가 심해지자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때조차도 주변에서 도와 주어야 하는 상황. 만약 내가 그것을 도와 주는 사람이라면 어땠을까. 분명히 심한 불쾌감을 느꼈을 것이며 또한 그 상대에 대한 경멸 같은 감정도 일어났을 것이다. 어쨌든 그다지 좋은 느낌이 아니었을 거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럼 이번엔 내가 도움을 받는 사람이라고 해보자. 상대방이 이 일로 인하여 나를 싫어하지는 않을까, 또는 이 일로 괜한 불쾌감만을 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얼굴을 붉혔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생각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바로 조금 전에 했던 생각이다. 내가 도움을 주는 입장에서 상대방에 대한 나쁜 감정이 일어날 것이라고 추측한다면, 도움을 받는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이 전혀 그렇지 않을 때조차도 상대방을 자신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생각하기 때문에 분명 도움을 받는 자신을 싫어할 거라는 생각에 위축되어 버린다. 모리 교수가 제자인 미치에게서 볼 일을 볼 때 도움을 받고 미치가 엉덩이에 파우더를 발라 주는 일 등을 할 때 모리는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을 뿐더러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하며 오히려 그것을 즐겼다.
그것은 미치를 믿었고 사랑했기 때문이다. 만약 미치가 그러한 존재가 되었을 때(반대 입장이라면) 자기가 그렇게 해줄 수 있는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며, 그렇게 타인을 도와 주는 일을 경멸스럽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도움을 받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어쩌면 스스로를 가장 괴롭히는 감정은 자신이 어떤 상대방이나 어떤 상황에 대해 가졌던 느낌이 자신에게도 적용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아닐까. 그러므로 최대한 쓸데없는 편견은 없애는 것이 자신에게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즉, 모리가 '죽음=절망'의 공식을 성립시키려 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발상의 전환 때문이었다. 인간은 상당히 무력하고, 다치기도 쉬운, 짐승적인 존재이기도 하지만 신에 가까이 다가설 만큼 위대하고 강하기도 하다. 이것은 딱 한 가지, 인간 스스로의 생각에 의한 것이다. 어쩌면 인생 최악의, 그리고 최후의 불운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죽음. 한 번쯤 죽어본 일이 없기에(목숨은 하나니까. 두 개라면 그 느낌을 알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죽은 사람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죽음에 대해 딱히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살아 있다면 부딪혀 보기도 하고, 격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기도 하고, 스스로 빛과 행복을 찾을 수도 있는 거겠지만 죽음은 영원한 무(無)이다. 영혼으로 시작되는 저 쪽 세상을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죽음의 의미는 '끝'인 것이다. 위대한 성악가 조수미조차 '인생의 본질은 비극이 아닐까.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운명을 지닌 인간은 이미 비극을 갖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라고 했는데(물론 비관론자는 아니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끝이기에 더 멋지고 인상깊게 장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소설을 쓰게 되면 언젠가 어떤 소설에서는 주인공의 죽음을 하나의 축제처럼 묘사하고 싶다. 그만큼 훌륭했기에 죽음마저 아름다운 하나의 모험으로 생각되는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