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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아래서 소담 베스트셀러 월드북 42
헤르만 헤세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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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에서 수레바퀴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주인공의 자아를 깔아뭉개고 억압하는 요소이다. 누구나 마음속에 여러 종류의 수레바퀴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앞으로의 더욱 빛나는 발전을 위한 일시적인 고통일 수도 있고, 자신을 영원히 파멸시킬 무서운 시달림일 수도 있다. 그것을 피할 길은 없다. 다만 정면으로 부딪혀 부숴 버려야만 할 뿐....

수레바퀴는 각자의 마음에서 자란다. 물론 주변 환경이 만든 것도 많다. 그러나 그것은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다. 살아가면서 각각의 마음에 저장되어 있어 그것이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다. 한스의 경우에는 그것이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는 압박감이었다. 그 압박감은 그 자신의 것이 아니다. 스스로가 택한 것이 아니란 말이다. 자신이 본능적으로 원해서 나아간 길이라면 그 압박감도 어쩌면 보람이 되는 일의 한 가지였을지도 모르겠다.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우수한 성적을 강요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였다. 그 때문에 한스 기벤라트는 토끼를 기르는 것을 금지당했고, 낚시를 하지 못했으며, 별다른 꿈이나 자유 없이 그저 집에서 얼굴이 창백할 정도로 공부만 할 뿐이었다. 집 근처의 풍부한 자연을 만끽해 본지 오래였고,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일도 없었다. 그의 정서는 메마를 대로 메말라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자신은 다른 사람과는 다른 엘리트 코스에서 살고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진실로 스스로가 원하는 뚜렷한 목표라고 할만한 것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얼마간은 마울브론 수도원에서 그럭저럭 잘 적응해 나갔다. 그러나 자유스러운 기질의 헤르만 하일너를 만나면서 파멸의 길을 걷게 된다. 이 반항적이고 예민한 친구와 사귀게 되면서 한스는 학업이라는 것의 의미를 잃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하일너와 똑같이 감화되어 점점 알 수 없는 인간으로 변해간다. 영향을 받은 것만은 분명하지만, 그렇게 된 확실한 이유를 설명할 순 없을 것이다. 나도 물론 다른 사람을 나쁜 방향으로 영향을 준 적이 있다. 두 명씩이나. 그 대신 기발한 생각을 할 수 있는 능력 또한 그들에게 일깨워지긴 했지만 말이다. 그것이 내가 영향을 주기 전 삶보다 얼마나 더 좋은 삶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미치는 여러 가지 영향도 한스가 가진 수레바퀴의 하나였을 것이다. 학업의 의미를 잃을 만큼 소중하게 생각했던 친구였던 하일너의 배신. 그리고 한스는 결국 폐인이 되어 학교를 떠나게 되고 첫사랑의 여인인 엠마에게조차 농락당한다. 완전히 부서져버린 그의 마음은 초라하게 무너진 스스로를 비웃고, 후회하고, 슬픔에 잠긴다. 우수한 학생에서 한순간에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변화해버린 한스. 신학교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했지만 학교를 떠나는 헤세 자신의 체험을 담은 이 소설은, 그가 겪었던 고통이 너무나 생생히 나타나 있는 건지도... 마지막은 한스의 죽음으로 끝나게 된다. 나는 한스의 죽음이 일종의 자살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인생에서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면 한스와 같이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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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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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은 루게릭 병이라는 희귀한 병에 걸린 모리 슈워츠 교수에 대한 것이다. 실존인물이었던 그에 대해 그의 제자였던 미치 앨봄이 쓴 것이다. 몸이라는 좁은 공간 안에 무한한 자아가 점점 갇혀가듯이 병에 의해 서서히 굳어지는 몸. 그는 죽음을 준비하는 순간, 이미 두 가지 삶의 선택권을 쥐게 된다. 이미 절대로 평범해질 수는 없는 것이다. 첫번째 삶은 끝없이 절망하다가 인생에 회의를 느끼고 결국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이 허무한 이슬로 사라져가는 것이고, 두번째 삶은 절망을 딛고 일어나 남은 삶을 더 큰 빛으로 일구며 세상에 남은 사람들을 위한 교훈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다. 그는 주저 없이 두번째 삶을 택했고 그렇게 떠났다.

그가 마지막까지 그렇게 당당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무엇이 그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었던가. 이 물음에 대답하는 것이야말로 복잡하게 잠겨있는 삶의 키워드를 찾는 일의 하나일 것이다. 마비가 심해지자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때조차도 주변에서 도와 주어야 하는 상황. 만약 내가 그것을 도와 주는 사람이라면 어땠을까. 분명히 심한 불쾌감을 느꼈을 것이며 또한 그 상대에 대한 경멸 같은 감정도 일어났을 것이다. 어쨌든 그다지 좋은 느낌이 아니었을 거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럼 이번엔 내가 도움을 받는 사람이라고 해보자. 상대방이 이 일로 인하여 나를 싫어하지는 않을까, 또는 이 일로 괜한 불쾌감만을 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얼굴을 붉혔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생각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바로 조금 전에 했던 생각이다. 내가 도움을 주는 입장에서 상대방에 대한 나쁜 감정이 일어날 것이라고 추측한다면, 도움을 받는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이 전혀 그렇지 않을 때조차도 상대방을 자신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생각하기 때문에 분명 도움을 받는 자신을 싫어할 거라는 생각에 위축되어 버린다. 모리 교수가 제자인 미치에게서 볼 일을 볼 때 도움을 받고 미치가 엉덩이에 파우더를 발라 주는 일 등을 할 때 모리는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을 뿐더러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하며 오히려 그것을 즐겼다.

그것은 미치를 믿었고 사랑했기 때문이다. 만약 미치가 그러한 존재가 되었을 때(반대 입장이라면) 자기가 그렇게 해줄 수 있는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며, 그렇게 타인을 도와 주는 일을 경멸스럽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도움을 받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어쩌면 스스로를 가장 괴롭히는 감정은 자신이 어떤 상대방이나 어떤 상황에 대해 가졌던 느낌이 자신에게도 적용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아닐까. 그러므로 최대한 쓸데없는 편견은 없애는 것이 자신에게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즉, 모리가 '죽음=절망'의 공식을 성립시키려 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발상의 전환 때문이었다. 인간은 상당히 무력하고, 다치기도 쉬운, 짐승적인 존재이기도 하지만 신에 가까이 다가설 만큼 위대하고 강하기도 하다. 이것은 딱 한 가지, 인간 스스로의 생각에 의한 것이다. 어쩌면 인생 최악의, 그리고 최후의 불운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죽음. 한 번쯤 죽어본 일이 없기에(목숨은 하나니까. 두 개라면 그 느낌을 알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죽은 사람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죽음에 대해 딱히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살아 있다면 부딪혀 보기도 하고, 격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기도 하고, 스스로 빛과 행복을 찾을 수도 있는 거겠지만 죽음은 영원한 무(無)이다. 영혼으로 시작되는 저 쪽 세상을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죽음의 의미는 '끝'인 것이다. 위대한 성악가 조수미조차 '인생의 본질은 비극이 아닐까.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운명을 지닌 인간은 이미 비극을 갖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라고 했는데(물론 비관론자는 아니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끝이기에 더 멋지고 인상깊게 장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소설을 쓰게 되면 언젠가 어떤 소설에서는 주인공의 죽음을 하나의 축제처럼 묘사하고 싶다. 그만큼 훌륭했기에 죽음마저 아름다운 하나의 모험으로 생각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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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유령
가스통 르루 지음, 최인자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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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와 추의 진실. 사랑과 집착과 광기의 극명한 대비. 그리고 끝끝내 이루어질 수 없었던 애정의 비극적 최후. 이런 것 때문에 '오페라의 유령'은 더 인상깊게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단순한 공포소설, 또는 추리소설이 아니다. 또한 단순한 애정소설도 아니다. 둘 중 어떠한 갈래를 택한다 하더라도 깊은 모순이 남는다.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요소들이 섞여 있는 것이다. 만약 지하 세계의 에릭이 천상의 크리스틴과 맺어졌더라면 '사랑의 인내'와 같은 주제가 된다던가, 단순한 연애소설로서 끝났을지도 모른다.

천성적으로 기괴하고 천재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던 에릭은 애당초 평범하게 살 운명이 아니었다. 뛰어난 능력으로 세계를 거머쥐고 빛으로 가득한 일생을 살거나, 오히려 그 능력 때문에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상은 결코 역사 속에 뛰어드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추한 모습으로라도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것, 그런 아주 작은 소망만이 있었을 것이다.

퇴폐적인 성격인 어떤 사람을 볼 때에는 그 성격 이전에 그렇게 되어야만 했었던 상황을 보는 것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그 성격은 결코 혼자서 만든 것이 아니라는 무서운 사실이다. 에릭은 태어날 때부터 육체적으로 추한 모습을 하고 있어, 어머니에게서마저 거부당했다. 그의 어머니가 그를 사랑해주었다면 그의 잔인한 모습은 만들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랑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대부분 사랑하는 것도 모른다. 그 때문에 평생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 천부적인 재능을 오히려 악용하기만 했었던 에릭이 크리스틴을 만나 서서히 사랑에 눈떠간다. 그러나 그 사랑은 시작 당시부터 비극적인 요소를 갖춰가기 시작한다. 크리스틴에게 들려왔던, 형체가 없었던 '음악 천사'의 아름다운 목소리. 에릭이 믿고 싶었던 진실은 추악한 외모가 아닌 그 맑은 곡조에 담겨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가 진실로 사랑했던 여인에게마저 거부당한다. 마지막 사람에게마저도... 크리스틴이 그에게 가졌던 건 완전한 애정이라기보다는 애정에 가까운 불완전한 동정. 크리스틴이 에릭에게서 라울과 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전갈을 택했을 때 에릭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런 식의 강요를 했을 때부터 애초에 에릭은 스스로의 무덤을 판 것이다. 그렇게 얻은 크리스틴의 사랑은 결코 진실한 것이 아닐지도 모르니까.

그가 크리스틴을 보내주려고 할 때 만약 크리스틴이 그를 택했더라면. 인간은 외모보다 중요한 것을 가진다는 것을 증명하고 빛나는 삶을 살아갔을지도 모르겠다. 자신감과 인간다운 애정이 그의 외모를 조금이라도 더 낫게 변화시켰을 테고. 그러나 누구도 비난받을 만한 잘못을 한 적이 없다. 에릭은 주변 환경과 외모가 그렇게 만든 것이고, 크리스틴은 라울을 더 사랑했든가 도저히 에릭의 추한 모습까지 포용할 자신이 없었다든가 둘 중 어느 쪽이든지 이해할 수는 있다. 실제 생활에서도 누구도 잘못이 조금씩은 있지만 특정 인물만을 비난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 대다수이다.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해도.

세상은 조건을 갖춘 소수가 빛나는 곳이다. 빛나는 업적을 이룬 사람들은 대부분 어렸을 때부터 성격적인 면에서 뛰어나지 않았는가? 그들 중에 진정으로 자신의 그림자를 이겨 내고 역사에 등극한 자들은 없는 건가? 어떤 식으로 살아가든간에 우선 자신이 일정한 조건 안에 들어야 한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진실이다.

외모가 성격을 만드는 것인가 성격이 외모를 만드는 것인가 하는문제는 닭이 먼저인가 계란이 먼저인가 하는 문제와 같기 때문에 논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두 요소가 서로 상호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두 가지가 닮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란 존재는 앞으로 변화될 수 있고 가슴 속 씨앗의 형태는 자유로운 것이기에 누구든지 존중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 깊은 비극으로 끝났기에 더욱 여운을 남기는 오페라의 유령이지만, 에릭이 어떤 형태로든 더욱 존중받았었다면 좋았을 거라는 씁쓸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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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보다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 그것은……

단지 남보다 수련을 더 많이 해야 한다는 의미 이상의 의미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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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antomjin 2004-03-10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ever, never, never,
never give up.

-윈스턴 처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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