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아니야. 나는 악마가 아니야! 내가 드 라 포어라고 누가 그래? 황혼의 석굴에서 괴물 가축들을 몰던 그 악마는 내가 아니라고! 그 가축들 중에 에드워드 노리스가 있었다니, 그럴 리가 없어! 그 흐늘흐늘한 균류 같은 얼굴이 노리스일 리가 없잖아! ......노리스 가문이 드 라 포어 가문의 영지를 차지할까? 노리스 저놈은 살아남았는데 내 아들만 죽다니! ......저건 부두교야...... 저 얼룩무늬 뱀...... 뒈져 버려라. 손턴! 우리 가문이 하는 일을 보고 기절이나 하시지! 이 역겨운 돼지 새끼, 맛을 즐기는 법을 톡톡히 가르쳐 주마...... 네 이놈, 나를 위해 그런 식으로 애쓰는 겐가? ......마그나 마테르! 마그나 마테르! ......아티스...... 신께서 너를 벌하시니...... 너에게 죽음의 기회가 있을진저! 불행과 비탄이 내리리라. 영원히 네게 거하리라! ......운글...... 운글...... 르르르..... 크크크...... (98)
어린 시절의 기억을 돌이키면 오로지 슬픔과 공포만이 떠오르는 이는 불행하다. 갈색의 벽걸이 천과 케케묵은 책들로 온통 둘러싸인 음울한 방에서 보낸 고독한 시간을, 혹은 덩굴에 칭칭 휘감긴 나무들의 뒤틀린 가지가 고요히 일렁이는 황혼 녘의 숲을 바라보며 두려움에 젖었던 시간을 되돌아보는 이는 비참하다. 신이 내게 준 몫은 그만큼이었다. 나는 망연했고, 좌절했으며, 무기력했고, 낙담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하다. 또 다른 삶으로 넘어가고 싶은 충동이 들 때면 그 시절의 말라붙은 기억에 절박하게 매달리곤 한다. (101)
세상에서 가장 다행스러운 일이라면 인간이 자신의 정신세계를 완전히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이 아닐까. 우리는 무한한 암흑의 바다 한가운데 있는 무지라는 이름의 평온한 섬에 살고 있으며, 거기서 멀리 벗어나지 못하게끔 되어 있다. 과학이 각각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진리를 탐구해 왔어도 지금껏 그 평온을 깨뜨리지는 못했다. 그러나 언젠가는 조각조각 흩어져 있던 지식들이 합쳐져서 날것 그대로의 가공할 현실과 거기에 처한 우리의 끔찍한 처지가 드러나고 말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광기에 빠지거나, 잔혹한 계몽의 빛에서 도망쳐서 평화롭고 안전한 중세의 암흑시대로 돌아가려 할 것이다. (166)
종조부는 지나치게 격식을 차리는 그의 거만한 태도와 몽상적인 말투가 탐탁지 않았다. 게다가 막 만든 티가 뻔히 나는 점토상이 고고학과 연관이 있을 리도 없었기에 그를 퉁명스럽게 대했다. 그런데 윌콕스가 맞대응으로 한 말이 기막히게 시적이었다. 얼마나 인상적이었던지 증조부는 그의 말을 그대로 옮겨 적어 놓기까지 했다. 그 대화 전체를 대표하는 주제문이자 지극히 윌콕스다운 말이었다. "네, 만든 지 얼마 안 된 물건이긴 합니다. 어젯밤 제가 꿈속의 이상한 도시에서 만든 것이니까요. 하지만 꿈이란 음울한 티레보다, 사색에 잠긴 스핑크스보다, 정원에 둘러싸인 바빌론보다 오래된 것 아닙니까?" (170)
예술가가 살 곳은 노스엔드야. 진정한 유미주의자는 오랜 전통이 살아 있는 곳이라면 설령 빈민가라 해도 참고 살 수 있어야 하네. 아아, 이보게! 모르겠나? 노스에드 같은 지역들은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스스로 성장한다네! 대대로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느끼고 죽었던 곳이니까 말이야. 옛날에는 사람들이 살고 느끼고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았거든. 노스앤드의 콥스힐 언덕만 해도 1632년부터 풍차 방앗간이 있었고 1650년대에는 오늘날 있는 거리들 중 절반이 만들어졌을 만큼 유서 깊은 곳이라고. 그때부터 거기서 250년도 넘게 제자리를 지켜 온 집들도 있지. 그 집들은 현대식 주택이라면 진작 무너져서 먼지가 되고도 남았을 법한 사건들을 숱하게 목격한 걸세. 삶에 대해, 그 이면의 힘에 대해 현대인들이 대체 뭘 알겠는가? (226)
그 종이는...... 그림의 배경으로 쓰일 풍경을 찍은 사진이 아니었네. 거기엔 픽먼의 그림에 나왔던 바로 그 괴물이 담겨 있었어. 배경은 그냥 지하 작업실의 벽면일 뿐이고, 그 앞에 세워 둔 모델을 찍은 사진이었다고. 아아, 엘리엇, 그건 실물을 찍은 사진이었네. (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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