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옜날에 자식이 없는 여자들에게 아이를 열여덟 개의 뿔 위에 얹어다 준 고마운 사슴 이야기가 있지? 무슨 얘긴 줄 아니? 부모는 자식을 낳아도 몸을 낳을 뿐 마음을 낳지 못해. 마음은 기르는 것이야. 너의 자식을 갖고 싶으면 너의 마음을 심어라. 훌륭한 마음을 심으면 훌륭한 자식이 나와." (16)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생명들이 있다. 어떤 것은 알에서 나오고, 어떤 것은 자궁에서 태어나며, 어떤 것은 습지에서 탄생한다. 그것이 자라고 변하는 동안 각자 땅에서 머물고, 물에서 머물며, 또, 불 속에, 바람 속에, 꽃 속에 머문다. 모두 푸른 하늘의 지체들이고, 대지로 사용된 거북이의 연결체이며, 또한 누군가의 자식들이다. 그 위로 강물이 흐르는 것처럼 삶이 흐른다. 그 위로 나그네가 기자가듯이 죽음과 소멸의 때가 스쳐간다. 우주의 구석진 어느 자리에 서서 태무진은 지금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48)
‘아, 조드와 저렇게 싸우는 수도 있구나!‘ 쿠리엔에도 사람이건 가축이건 젊고 건강한 것들만 보이고 비실비실한 물체는 하나도 없다. 게르마다 연기가 꽂혀서 아르갈의 향기가 코를 찌르고, 곁에 쌓인 소똥은 초원을 다 뒤져 긁어보았는지 봉우리가 높다랗다. (61)
칭기스칸의 주변에서 날마다 벌어지는 이런 이야기판은 그의 능력을 평가할 때 놓치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였다. 칭기스칸과 함께 있으면 누구나 마음껏 제 생각을 말할 수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전투력을 만들어내는지 다른 지도자들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135)
말들은 대지를 머리로 기억하지 않는다. 발밑에 밟히는 게 풀인지 모래인지를 발굽으로 기억하고, 땅과 언덕의 경사를 눈으로 기억하며, 모든 바람을 얼굴로, 모든 냄새를 코로, 모든 소리를 귀로 기억한다. 그게 질주의 방향이 되는 것을 조절할 수 있는 자는 기수뿐이다. ... 말을 탄 사람은 언제 속도를 줄여 말의 힘을 보존할지, 어디쯤에서 달리는 속력을 높여야 하는지, 앞에 달리는 말을 제치려면 어디쯤에서 호흡을 바꿔야 하는지, 뒤따라오는 말에게 따라잡히지 않으려면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 수많은 상황을 그때그때 판단하여 결정을 내려야 한다. 한마디로, 유목민은 고독 속에서 위대한 능력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148)
"칸에게는 푸른 하늘이 있잖습니까? 모든 운명을 하늘에 맡기면서도 왜 주치 문제는 그곳에 맡기지 못하십니까?" (200)
"먼발치에서 자무카도 본 적이 있습니다. 상인들이 그를 찾지 않는 이유는 공도체를 혈통으로 묶으려 하기 때문이에요. 칸께서 혈통이 아닌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지 늘 궁금합니다. 서로 다른 땅에서 태어난 사람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만든다는 것은 각기 다른 대지를 하나의 대지로 엮는 것과 같지 않아요?" (277)
저무카는 이송되는 동안 한 번도 입을 열지 않았다. 어차피 인간은 운명의 끈에 묶여서 사는 존재이다. 신체의 포박이 없어진다고 마음이 자유로을 것인가? 그는 부하들이 수모를 줄 때마다 파렴치한 배신에 치가 떨렸지만 그렇다고 분기탱천하거나 저항할 기분도 아니었다. 몸과 마음이 답답하지만 억울해한다고 풀릴 일도 아니었다. 무엇엔가 사로잡힌 인간은 돌이킬 수 없는 지점까지 추락해야 깨닫는 법니다. (327)
"하하. 내게 많은 것을 주고 간 사람이 있었다. 끝없이 굽이치는 바다처럼 넉넉한 초원도 더럽히지 않으려고 조금 일찍 떠났어. 이름은 자무카! 엄청난 대장부가, 그러나 자신과 싸워서 이기지 못하고 패했단다." (345)
이로써 칭기스칸은 자연 경제에 손 하나 대지 않고도 강도, 절도, 약탈, 내부 갈등의 위험 비용을 없앰으로써 평민의 가축을 엄청난 양으로 늘러버렸다. 하지만 초원에는 주기적으로 조드가 닥쳐서 초지당 가축 비율이 일정 한도를 넘지 못하도록 자연적 기후 변동으로 수천 마리의 가축을 한순간에 잃는 재앙을 입고는 했다. 초원의 통일만으로는 안정이 확보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유목민으로 하여금 언제나 푸른 하늘이 내려준 대지 전체를 바라보며 살게 한 이유가 되었다. (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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