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각의 역사
폴 프리드먼 지음, 주민아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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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미식의 관점에서 다시 쓴 세계사로서 그 자체 훌륭한 도판을 갖춘 풍성한 읽을거리이며, 정치-사회를 중심으로 하는 '보통' 세계사를 훌륭하게 보완한다. 구미 양쪽의 미각과 미식에 대한 정보가 압도적으로 많고 또 자세하지만 근대 이전의 중국 및 아랍권의 미식문화에 대한 서술도 요령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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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핑 포인트 - 작은 아이디어를 빅트렌드로 만드는
말콤 글래드웰 지음, 임옥희 옮김 / 21세기북스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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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와이즈버그 같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만난 사람들을 서로 연결시켜 줄 수 있는 재능을 갖고 있다. 로이스 와이즈버그가 세상을 바라볼 때, 로저 호초가 기내에서 당신 옆자리에 앉을 때, 그들은 우리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그런 방식으로 세계를 보지 않는다. 그들은 가능성을 본다. 우리들이 알고 싶은 사람을 고르고, 정직해 보이지 않거나 찾아가기에 너무 멀리 있고, 아니면 65년 동안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라며 사람들과의 만남을 거부하는 동안 와이즈버그와 로저는 이들 모두를 좋아하는 것이다. (65)

사회적인 전염에 있어 메이븐은 데이터 뱅크이다. 그들은 메시지를 제공한다. 커넥터들은 사회적인 고착제이다. 그들은 메시지를 퍼뜨린다. 하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선택 집단, 즉 세일즈맨이 있는데 이들은 우리가 정보에 관해 긴가민가 미심쩍어할 때 능수능란하게 우리를 설득한다. 세일즈맨은 다른 두 집단만큼이나 입소문의 전염을 발화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80)

우리가 정서를 안에서 바깥으로가 아니라 바깥에서 안으로 움직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 중에는 자신의 정서와 감정을 표현하는 데 대단히 능숙한 사람들이 있다. 이 말은 우리보다 그런 사람들이 정서나 감정을 감염시키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사람들을 '발신인sender'이라고 부른다. 발신인은 특별한 개성을 가지고 있으며 생리적으로도 다르다. 예를 들어 얼굴을 연구했던 과학자들은 사람들 사이에 얼굴 근육의 위치와 형태가 대단히 다르다고 보고한다. 놀랍게도 유행에 따라서도 많이 달라진다고 한다. (94)

사회적인 전염을 어떻게 시작하여 어떻게 점화시킬 것인가에 관한 분더맨의 콜롬비아 레코드사 사례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주위에서 우리는 주목해 달라고 요란스럽게 떠드는 사람들에 의해 압도당해 왔다. 이런 정보의 혼잡으로 인해 어떤 메시지가 고착되게 만들기란 점점 더 어려운 것이 되고 있다.
우리는 듣고 읽고 쳐다본 것의 대부분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정보 홍수의 시대는 고착성의 문제를 야기시켰다. 하지만 분더맨의 사례는 고착성을 증가시킬 수 있는 간단한 방법과 체계적으로 메시지를 고착시키는 방식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104)

"어린이들은 인과관계와 관련성의 관점에서 사물을 조직하는 이론을 이해할 수 없어요. 따라서 그들은 사물들을 이야기로 전환시키게 됩니다. 자신의 삶을 이해하려고 할 때, 어린이들은 자기 경험을 이야기로 만들어서 좀더 많은 성찰을 위한 기초로 이용합니다. 이야기 구조에서 무엇인가를 포착할 수 없으면 잘 기억하지 못하지요. 그렇게 되면 더 이상의 사고를 진척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입니다." (120)

적대감과 수용 사이의 경계선, 달리 표현하면 전염성을 점화시킬 수 있는 순간과 그렇지 못한 경계선은 생각보다 훨씬 좁다. ... 적절한 상황 아래서 조그마한 한 묶음의 정보가 사람을 꼼짝없이 끌려들도록 만들 수도 있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이란 그런 것을 찾아내는 작업뿐이다. (129)

"게츠에게 이곳은 대단히 매력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지역에서 느끼는 박탈감과 불편함 바로 그 때문이다. 이런 환경은 자기 내부에 쌓인 분노를 터뜨릴 수 있는 폭넓은 대상을 제공해 주었다. 그는 외부 세계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자기 내면의 문제점과 대면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쓰레기, 소음, 술주정뱅이, 범죄, 마약 밀매상, 쓰레기 등에 관해 끝없이 불평했다. 그런 불평은 모두 그럴 만한 이유를 가지고 있기도 했다. (149)

하츠혼과 메이는 정직성 같은 것은 기본적인 자질이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정직성 같은 자질은 상황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 우리가 내면적인 자질의 관점에서만 생각하고 상황의 역할을 잊어버릴 때, 우리는 인간 행동의 진정한 원인에 관하여 스스로를 기만하고 있는 셈이다. (158)

1960년 영국에서 또 다른 일군의 연구자들은 자살 시도 이후에 중앙정신과 병원에 입원했던 135명을 분석했다. 이들은 이 집단이 사회적으로 서로 강력하게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동일한 사회 집단에 속했다. 연구자들은 이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런 현상은 자살이 무엇인지에 관한 본질을 증언한 것으로서, 자살은 공통된 하위 문화를 공유한 집단의 구성원들 사이에 통하는 개별적인 언어라는 것이다.
다른 곳에 비해 좀더 심각한 차원이기는 하지만 미크로네시아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서구에서 자살이 일종의 거친 언어라고 한다면 미크로네시아에서의 자살은 놀랄 만큼 표현적인 의사 소통의 한 형식이며, 의미와 뉘앙스가 풍부하고 더할 나위 없이 잘 설득된 언어이다. (225)

지난 10년에 걸쳐 금연운동은 담배를 멋진 것으로 과장하는 담배 회사를 맹렬히 비난해 왔다. 그들은 엄청난 공공 자금을 소비하면서 10대들에게 담배가 멋진 것이 아니라고 확신시키고자 한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흡연은 결코 멋진 적이 없었다. 담배 피우는 사람이 멋있었을 뿐이다. 즉, 선택된 소수가 전염성을 퍼뜨리는 데 책임이 있다. (232)

이것이 티핑 포인트의 으뜸가는 교훈이다. 전염성을 퍼뜨리려면 핵심적인 몇 군데 지역에 자원을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소수의 법칙에서는 커넥터, 메이븐, 세일즈맨들이 입소문의 전염을 시작하는 데 책임이 있다고 한다. 이 말은 입소문의 전염을 시작하는 데 관심이 있다면 자신의 모든 자원을 이 세 가지 집단에게 퍼부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 밖의 누구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256) ...... 결국 티핑 포인트는 변화를 위한 잠재력과 이해할 만한 행동의 힘을 재확인하는 것이다. 당신 주변을 돌아보라. 당신 주변이 도무지 움직일 것 같지 않은 무자비한 공간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힘을 실어주어야 할 바로 그 자리에 약간만 힘을 실어준다면 그곳은 점화될 수 있다. (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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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농사짓지 않고 사는 법 - 지리산 자락에 정착한 어느 디자이너의 행복한 귀촌일기
권산 지음 / 북하우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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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서 농사 안 짓고 사는 법`은 1.주업은 온라인으로 서울서 가져오고 2.`이 마을 사람이 되자`는 목표 아래 부단히 노력하는 것. 농사의 ㄴ도 모르니 다툴 일 없고 웹디자인 등 `신기술`로 `오직 농사뿐`인 이웃들의 등을 긁어줄 수 있다. 한 귀촌불농자의 유쾌하면서도 은근히 지적인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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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농사짓지 않고 사는 법 - 지리산 자락에 정착한 어느 디자이너의 행복한 귀촌일기
권산 지음 / 북하우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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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 마시자는 나의 제안은 항상 거절당한다.
......
나의 초청을 거절하는 그녀들의 이유는 다양하다. 그리고 불쑥 창문을 두드리고 나의 인기척을 확인하면 밖에서 창문을 열고 감자나 옥수수 접시를 넣어주고 간다. 그녀들에게는 한가로이 앉아 커피를 나누며 방담을 나누는 문화가 없다. 그것은 사치다. 시간낭비이며 그 시간에 '깨나 털겠다'라는 것이 살아온 이력이 남긴 유전적 문신이다. (52)

흔히들 하는 말 그대로 '남'들 사는 것처럼 살고 싶었다. 그 '남'이란 도시로 나간 불특정한 '남'이 아니라 계절과 세월의 순환이 제대로 작동하는 땅에서 살았던, 나로부터 수천 년도 아니고 수백 년도 아닌, 불과 반세기 전의 '나'를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김장은 소문 많이 나고 번잡스럽고 우스꽝스럽고 이 사람 저 사람 청해서 밥을 나누고 하는 난장판을 애당초 예정한 것이었다. '남들 사는 것처럼'이란 결국 '사람 사는 것처럼'일 것이다. (72)

그럼에도 불구하고 '밥은 먹고사는' 우리들은 집 밖으로 나가 어디에선가 돈을 벌 수밖에 없다보니 거의 모든 식재료를 구입해서 먹는다. 이런 조건과 환경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식재료의 범위는 지극히 제한적이다. 사실 선택권은 없다. 우리는 메뉴를 보고, 가격을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스스로 재배하지 않는 한 식재료 선택권은 없다. 단지 들고 있는 돈이 우리가 먹을 식재료의 질을 결정할 뿐이다. (154)

나는 농민도 아니고 농민운동가는 더더욱 아니지만, 농민운동의 미래는 소농중심의 생태적인 관점을 견지하는 가운데 '탈 시장, 직거래운동'에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기존 시장에 속하는 방식으로는 농민운동뿐만 아니라 그 어떤 운동도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기존 시장으로부터 독립된 별도의 시장을 경영할 수 있다면 물론 아주 심각한 정치적 국면을 맞이할 것이다. 기존 시장은 그것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고 아주 큰 싸움이 될 수 밖에 없다. 지금 내가 주절거리는 이런 소리들도 기존 시스템이 나의 삶에 끼치는 영향력으로부터 한 발이라도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의 집단적 움직임에 관한 것이니 역모죄에 해당한다. (159)

하여간에 나는 연곡분교에서 무엇인가를 보고자 했던 것이다. 순수함, 작은 것의 아름다움, 뭐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왜 그런 것을 보고자 했을까? 세상이 그러하지 못하다는 소리를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결국 세상을 욕하기 위해 세상의 변방을 찾는 것이다. 어른들은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고 이런 이야기를 통해 반성하는 척하기 때문이다. 아홉 번의 의도적인 잘못을 한 번의 기도와 고해로 탕감할 수 있다는 종교라는 장치보다는 고약하지 않지만 반성의 수단으로 아이들을 택한 것 또한 결국 순수하지 못한 것이다. (288)

생각해보면 지리산 자락으로 내려와서 많은 실수를 저질렀다. 가장 큰 실수는 '농촌'을 '개조 대상'으로 바라본 나의 기본 시각이었다. 이런 시각은 이른바 '세련되지 못한' 몇몇 감각들과 일 진행방식에 관한 안타까움에서 출발한 것이었지만 근본은 교만이고 착각이다. 평생을 살아왔던 그 많은 도시의 마을들을 개조해볼 생각을 과연 단 한 번이라도 했었는가? 없었지 않은가? 왜? 문제점이 없어서? 대한민국 문제점 100가지 중 99가지는 도시에 있지 않은가? 선의로 위장한 나의 카운슬링은 궁극적으로는 개발을 부추기는 작용을 했을 것이다. 실제 그런 의도였기도 했다. 왜? 도시나 이곳이나 사람들의 주요한 관심은 좀더 많은 소유에 있기 때문이다. (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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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각의 역사
폴 프리드먼 지음, 주민아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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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에서는 신분에 따라 먹는 음식에 대해서 세분화된 원칙이 있었다. ... 요리에 관한 계층별 원칙 중 일부는 신흥 부유층의 등장과 그로 인한 사회적 경계의 침범에 대비한 기성 상류층의 불안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다. 신분에 따라 의복의 유형을 규정한 일명 사치 금지령, 혹은 윤리 규제 법령도 실상 그런 불편한 심기를 반영한 것이었다. ... 실제로 음식에 대한 선택권은 상징적인 차원에서 계급과 사회적 지위에 대한 편의적인 예측을 심화시켰다. ... 이에 대응하여 어느 프랑스 사회학자는 상류층이 하층보다 더 예리한 지적 능력을 소유한 것도 그들이 쇠고기와 돼지고기가 아니라 자고처럼 귀한 진미를 먹기 때문이라고 했다. / 더 이상 자고가 예전처럼 중요한 사회적 구별 수단이 아닌 지금도 이런 구분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16)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도 내놓는다. 진정성을 향한 움직임이 전 세계 주요 수도에 거주하는 부유한 아마추어 미식 전문가들뿐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것이며, 동시에 풍부한 요리 전통이 있지만 세계 경제 구조에서 아직 특권을 받지 못한 많은 국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에티오피아의 그 식당이 진정성이 담긴 비약적 발전을 하여 여러 측면에서 에티오피아 국민들에게 유럽과 미국에서 대중들에게 제공하는 것, 그 이상의 혜택을 선사한다면 하나의 성과로 인정받을 것이다. 생태계 보호, 생물의 다양성과 더불어 아시아와 남미의 미식 전통과 관습이 부활하고 이런 요인들이 서로 결합함으로써 진정성을 향한 운동이 더욱 확산될 희망적인 조짐이 보인다. 먹을거리와 그 먹을 거리의 미래는 미각적 취향의 사안이자 동시에 인류 자유의 문제이다. 우리가 식품을 모아서 처리하고 팔고 사고 음식을 만드는 방식은 필연적인 산업의 형태이자, 살아 있다는 게 무엇인지 표출하는 일상의 예술인 것이다. (33)

중국 음식 문화의 정수는 다양한 형태의 판과 차이를 창의적으로 조합하는 것이었다. 이는 중국인들이 흔히 하는 말 중, "먹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가 아니라 "음식을 준비하고 만들어 차려 내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경우에 해당했다. (108)

9세기 초반, 전설의 칼리프 하로운 알 라시드 통치 기간에 바그다드의 상류층은 이미 다양한 음식 세계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단지 비싼 음식을 먹는 일이 아니라, 요리 기술에 관한 책을 읽고 쓰는 일, 심지어 요리 그 자체에 매료된 것이다. 그와 같은 쾌락주의 분위기 속에서, 좋은 요리는 컴컴한 부엌에서 노예 하인들에 의해 행해지는 일이 아니라, 심지어 칼리프에게도 합당한 고급스런 활동으로 발전했다. (140)

우리는 중세 무슬림들은 단맛이라면 무조건 즐겨 먹었다는 것만 알아 두자. 그들이 가장 즐겨 먹던 디저트로는 과일부터 견과류까지 갖가지로 속을 채운 일종의 크레페인 카타이프, 아몬드 간 것, 설탕, 장미수로 만든 마르지판과 비슷한 사탕과자 팔루드하즈, 그리고 밀가루, 달걀, 설탕, 가끔 버터를 넣어 만든 케이크 카크ka'k가 있었다(카크를 보면, 현대 어원학자들이 영어 cake의 어원을 '어떤 것의 덩어리'라는 뜻의 고대 노르웨이 어로 파악한 것은 실수였다. 오히려 cake는 페르시아 어와 아랍어 ka'k와 완벽하게 들어맞으며, 이는 심지어 케이크를 의미하는 고대 수메르 어와도 일치한다). 바그다드와 안달루시아 지역에서 동시에 사랑받던 또 하나의 패스트리는 카나와트였다. (159)

이런 이유 때문에 근대 초기의 유럽의 음식 역사의 중심에는 일련의 역설이 존재한다. 말하자면 이 시대의 음식 문화는 혁명적 변화에 직면하여 연속성을 유지하려는 여러 가지 압력의 틈바구니에서 무너지기도 했다. 또한 유럽 대륙 전역에서 엘리트 계급이 갖고 있던 국제적 미각은 민족 국가 간의 요리 관습과 부딪히면서 분열되는 결과를 맞이했다. 한편, 인문주의에 근거한 지식인의 문화는 고전 시대의 음식과 식단 유산을 유지하고 부활시키려 했다. 다른 한편으로 변화를 역설하는 '근대'라는 압박은 새로운 음식과 지식 증가로 이어졌다. (197)

유럽 내 설탕의 성공은 카리브 해 노예 노동력의 착취에서 시작되었다. 이 사실만으로도 유럽의 음식 유산을 바꾼 여러 방식 중에 중상주의가 가장 직접적인 예가 됨을 알게 해 준다. 플랜테이션 경제와 그에 따른 노예 사회가 막 시작될 때는 설탕의 증가세에 반대하는 일부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 채식주의자이자 노예 제도 반대 작가인 토머스 트라이언(1634-1703)은 노예제의 기반인 설탕 플랜테이션이 아프리카 노동자들에게 안긴 고통과 상처를 생각한다면 결코 그럴 만한 가치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시절 트라이언의 목소리는 공허한 메아리조차 울리지 못할 정도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219)

그렇다고 프렌치 퀴진이 계몽 시대에 다른 모든 형태의 요리를 절멸시킨 것은 아니다. 하지만 프랑스 요리의 웅장한 자부심은 대단했다. 그 어떤 나라의 요리 관습도 해 낼 수 없었던 새로운 방식으로, 그 시대 요리를 대하는 유럽의 사고 방식을 지배하였다. 따라서, 프랑스 요리 관습과 유럽의 오트 퀴진 간에는 특별하고도 독특한 유대 관계가 형성되었고, 이 유대 관계는 여러 가지 면에서 오늘날까지 여전히 남아 있다. 어쩌면 이 관계는 역시 프랑스 혁명 이전에 정립된 프랑스 철학 문학과 유럽 고급 문화 간의 관계보다 훨씬 더 굳건하게 유지되어 온 것 같다. (230)

19세기 말 시골 가정에 필요한 특별한 지역 요리책들이 나왔는데, 이런 형태의 요리 문학이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독일의 모든 미식 문화를 정확히 반영한다고 말할 수 있다. 최고의 레스토랑들은 평판을 생각해 항상 프랑스 요리를 메뉴에 넣고 싶어 했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지방색이 강한 부르주아 퀴진을 주 메뉴로 삼았다.
지역 요리를 즐기려는 이런 트렌드는 점점 혼란스러워진 세상에서 하나의 지향점을 필요로 하는 욕구와 부분적으로 맞물렸다. 그런 세상 속에서 국가주의, 세계주의 뿐 아니라 지리적사회적 이동성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만의 정체성을 찾아가도록 만들었다. 먹고 마시는 것은 그와 같은 지역적 정체성을 표출하는 이상적인 수단이었다. 19세기에 5만 명이 넘는 독일인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지만 오랫동안 자신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이루었던 모국의 레시피를 함게 가져간 일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여러 세대를 지나면서 그들은 모국의 언어는 잃어 버렸을지라도 오랜 요리 메뉴는 놀랄 만큼 오랫동안 그 생명력을 유지했다. 이와 똑같은 형상을 과거 독일로 이주했던 오늘날 터키 가정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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