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죄송합니다. 난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릅니다." 그리고 나서 린탕 아버지는 자기가 태어난 해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애처롭게 덧붙였다. 순간 갑작스레 린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자기 아버지한테 가 손에 든 서류를 낚아채 이렇게 외쳤다. "제가 나중에 이 서류를 다 채우겠습니다, 선생님. 제가 읽고 쓰는 걸 배우고 나서 말이에요!" 모두가 린탕을 바라보며 깜짝 놀랐다. 저렇게 작은 아이가 자기 아버지를 옹호하다니! (29)
그 아이가 가져온 공책도 엉뚱한 것이었다. 짙푸른 색 표지에 줄이 세 개였다. 그건 2학년 때 필기체 배울 때 쓰는 그런 공책이 아니었던가! 그날 아침, 바닷가에서 온 내 짝꿍이 난생 처음으로 책과 연필을 잡아보는 모습을 난 평생 잊지 못한다. 그 뒤로, 그 아이가 쓰게 되는 모든 글은 투명한 마음의 열매였다. 그리고 그 아이가 하는 모든 말은 찬란한 빛의 역할을 했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이 가난한 바닷가 소년은 오랫동안 우리 학교에 드리웠던 어두운 비구름을 밝게 빛나게 했다. 이 아이는 내 평생 만난 가장 똑똑한 사람으로 자랐기 때문이다. (33)
벨리통 섬은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에서 장악한 최초의 장소로, 7대째 억압받아왔다. 그러다 갑작스럽게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수백 년 동안의 불행한 가뭄이 하룻밤 사이에 비에 흠뻑 젖었다. 그런데 그것은 고통스러운 비였다. 즉, 일본인들이 몰려왔던 것이다. 내 아버지는 그 폭풍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칼, 군인들이 이곳을 지옥으로 바꾸어놓았단다. 총검에서 결코 손을 떼지 않았어." 아버지의 순진한 눈은 자신의 위엄이 상처 입고, 자신의 땅이 약탈당한 비통함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350년 동안 지배하고 난 뒤, 네덜란드인들이 말했다. "안녕히 계십시오." 그리고 일본인들이 외쳤다. "사요나라." 불행히도, 그것은 우리 벨리퉁 원주민들에게는 행복한 결말이 아니었다. 우리는 또 다른 방식의 점령을 당해야 했으니까. 우리 땅은 또 한 번 지배를 받았다. 보다 문명화된 방식으로. 우리는 자유로워졌다. 하지만 아직까지 자유롭지는 못하다. (61)
다음 날 학교에서, 린탕은 우리가 세 자릿수 좌표에서 헤매는 걸 보고는 당혹스러워했다. 이 마을 아이들은 도대체 뭘 헷갈려 하는 거지? 린탕은 속으로 생각했다. 흔히 자신의 우둔함을 깨닫지 못하는 것처럼,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받았다는 것을, 신으로부터 지식과 이어지는 운명을 부여받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109)
그는 조용히 창밖을 응시했다. 떠다니는 구름 너머로. 사랑은 정말 잔인하다. 부 무스 선생님은 난처한 표정으로 마하르를 응시했다. 우리는 호기심이 일었다. 선생님은 시를 몇 구절 인용하며 마하르에게 노래를 청했다.
"벌판으로 난 이 길은 구불구불 소나무 숲으로는 지나쳐 가지 마요 당신의 노래를 불러요 내가 당신의 슬픔을 알 수 있게."
마하르는 입술을 깨물고 낯을 찡그리며 미소를 보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마하르는 준비되었다. 우리는 긴장감 속에서 기다렸다. 그가 등으로 만든 가방을 열고 악기를 꺼냈을 때 우리는 한 방 먹었다. (146)
이런 돈 관리 문제 때문에, 사왕족은 흔히 부정적인 고정관념의 희생양이 되었다. 말레이인 다수와 중국인 공동체에서 나쁜 일은 모두 의심의 여지없이, 사왕족과 연관 지었다. 사왕족을 폄하하려는 이런 시도는 자기 일자리를 잃을까 두려워하는 말레이인과 중국 소수민족의 특성이 반영된 것이다. 스스로 힘든 일을 하는 걸 꺼렸기 때문이다. 역사는 사왕족이 단합된 종족이라는 것을, 그들 자신의 공동체 내에서 배타적으로 살아가고, 다른 사람들의 비즈니스에는 코를 들이박지 않고, 높은 노동윤리를 보여준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보다 더한 것은, 사왕족은 자기가 진 빚에서 결코 도망치지 않으려는 거였다. (159)
린탕의 가족은 말레이와 인도네시아의 평범한 어부들의 가난한 모습 그대로다. 이들은 세대를 대대로 이어오는 자신들의 비극을 가슴속에 간직했다. 미래에 대한 공허한 기대의 괴로움과 자녀교육에 대한 의구심을 억눌렀다. 가난한 사람들의 이 같은 비극은 누구의 귀에도 들리지 않았다. 가진 자들은 물론이고 국가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오늘, 바닷가에 살고 있는 이 가난한 가족에게 이 같은 비극은 한순간 멀리 사라졌다. 비범한 어린 아들의 성적표에 채워진 점수에 가려졌다. (169)
우리 조화로운 공동체 속에서 중국인들은 유능한 장사꾼들이었다. 실제 제품을 만든 사람들은 우리 모르는 곳 출신이었다. 우리는 그저 바지 뒤에 붙은 태그를 보고 어디에서 만들었는지 알 뿐이다. 말레이인들은 소비자였다. 점점 더 가난해지면서 점점 더 소비에 치중했다. 반면, 사롱 사람들은 사왕족에게 계절 일자리를 제공했다. 사왕족은 물건들을 사롱 사람들의 배로 운반하는 일을 했다. (198)
안무에 따를 것 같으면, 우리 공연의 다음 부분은 스무 마리 치타의 공격이었다. 우리는 참을 수 없는 가려움에 사로잡혀 치타와 싸워나갔다. 혼란에 빠져 당혹스러워하며, 치타들은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쳤다. 이런 건 예정에 없었다. 계획에 의할 것 같으면, 우리가 무서워 도망쳐야 했다. ... 치타들은 다시 결집하고, 우리는 다시 받아쳤다. 계속 이렇게 이어졌다. 기적적으로, 안무로부터의 이탈은 예상치 못하게 동물의 진정한 특성을 불러왔다. 이것은 어떤 상황에서는 무자비하게 사악할 수 있고, 어떤 상황에서는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두려울 수 있었다. 나는 마하르를 흘끗 바라보았다. 마하르는 우리의 자발적인 즉흥 동작을 보며 기뻐하고 있었다. 이런 결과를 예상했던 게 분명했다. (230)
내게 있어 보물찾기는 그저 하나의 행사가 아니었다. 배워야 할 교훈이 많은 살아 있는 문화의 도서관이었다. 이 행사는 내가 속한 종족 집단인 말레이인은 물론이고 전체로서의 인간의 특성에 대해 내가 정통할 수 있게 해주었다. 말레이인들은 평상시처럼 자체적으로 조직을 꾸리는 데 꽤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행사를 위한 행동과정과 경쟁에서 이기는 데 초점을 맞추지 않고, 한 패끼리 싸우는 정치적 난투극에 사로잡혀 있었다. 말레이인들은 언제나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 각기 다른 생각을 둘러싸고 갑론을박을 즐겼다. (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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