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품정리인은 보았다! - 개정판
요시다 타이치.김석중 지음 / 황금부엉이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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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리비토>의 기업 버전.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와도 유사한 분위기. 에피소드를 줄이고 좀더 생각 깊이 들어갔으면 훌륭했을 것. 친구처럼 오래 함께한 물건과 해어지는 적절한 방법 알고자 이 회사 유품 공양을 어떤 식으로 하는지 알고 싶음. 키퍼스 다룬 NHK 다큐 찾아서 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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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콴유와의 대화 - 마키아벨리 군주론에 입각한 강력한 리더십의 정체를 묻다 아시아의 거인들 1
리콴유 & 톰 플레이트 지음, 박세연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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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콴유와의 인터뷰를 앞두고 내가 가장 주목한 부분은 그와의 대화를 통해 엮은 이 한 권의 책으로 선입견과 잘못된 정보에서 벗어나 많은 사람들이 싱가포르에 대해 새롭게 호기심을 품을 수 있도록 자극하고, 과거의 정치적 틀에서 탈피하여 참신한 시각으로 이곳을 바라볼 수 있도록 유도하자는 것이었다. 성공이든 실패든, 아니면 또 다른 측면에서 세상 사람들이 싱가포르라는 나라에 대해 다시 한 번 평가를 내릴 기회를 주고 싶다는 곳이 이 책에 대한 나의 간절한 바람이었다. (44)

대학에 들어가서도 나는 아버지와 비슷한 성격의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 역시 다가서기 어렵고 농담이 잘 통하지 않으면서 리콴유와 같이 위협적으로 똑똑했다. 이후 뉴욕매거진과 타임지, 그리고 그밖에 굳이 언급하고 싶지 않은 언론사에서 일하면서도 나는 `아버지는 답을 알고 있다`를 신봉하는 고압적인 상사들과 지내야 했다. 그들 모두 명령 내리기를 좋아하고, 실수에는 가차 없고, 지나치게 까다로운 성격이면서 짜증날 정도로 똑똑했다.
그러나 내겐 그런 사람들과 편안히 지낼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 리콴유도 그런 부류에 해당한다. (55)

민족, 또는 국적이 다른 집단이 서로를 잡아먹도록 그냥 방관하는 태도를 리콴유는 정치적으로 어리석은 짓이라고 비판한다. 그는 고립이 고착화되는 흐름을 막고 지속적으로 사회적 통합을 일구어나가야만 경제적 발전은 물론 정치적 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고 말한다. (79)
이길 수 없는 싸움에 도전하는 것은 리콴유의 실용주의적 원칙과 어울리지 않는다. 대다수가 선호하는 순수한 민주주의에 대한 숭배도 어울리지 않는다. 리콴유는 스리랑카가 다수결 민주주의 시스템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에 잘못되었다고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그 어떠한 정치 시스템이라 하더라도 효과적으로 돌아가고 있기만 하다면 그는 절대 비판을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단지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있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것도 아니다. 민주주의를 바라보는 그의 이러한 태도는 최소한 미국보다는 더 일관성 있어 보인다. 미국은 그들 자신이 민주주의라는 딱지를 붙일 때라야만 지지를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 비난은 물론 그보다 더 심한 짓도 서슴지 않는다.
또한 리콴유는 현실적인 기반이 부족한 정책을 정치적으로 올바르다는 이유만으로 옹호하지도 않는다. (81)

이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중국 사람들이 도움을 요청할 때가 바로 우리가 중국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중국은 이미 뛰어난 인재들로 넘쳐나고 있고, 이제 그들은 전 세계를 돌아다닐 겁니다. 그 누구도 그들이 캠코더를 들고 싱가포르를 촬영하면서 우리 시스템을 공부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먼저 나서서 적극적으로 돕는 편이 낫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중국에 정치적으로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96)

리콴유는 문화유산이라는 존재를 국가를 이루는 DNA로 보고 있다. 수술만 가지고는 DNA를 바꿀 수 없다. 환경 변화와 위기에 잘 대응해나간 문명들은 진화에 성공한 반면, 그러지 못한 문명들은 위축되거나 사라졌다. ... 1994년 인터뷰에서 리콴유는 문화는 운명이라고 하는 토인비적 견해를 뚜렷하게 드러냈다. 그 견해는 그가 평론가들에게 종종 한 국가의 `출발점`을 이해해야만 한다고 지적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145)

문제 상황이 발생하면 강한 리더는 이를 활용하는 반면, 약한 리더는 변명에 급급하다. 리는 이념을 떠나 성과를 보여주는 인물을 선호한다. 그리고 초점이 단순하고 명백한 서구 인권단체들의 강력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을 위해 사업을 강행하는 군사정권은 물론, 싸움이 그칠 날 없는 의회 민주주의 사회 속에서도 오로지 국가를 위해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세계적으로 다양한 인물들을 존경한다. 반면 실질적인 성과를 올리지 못하는 그 어떤 인물이나 체제도 인정하지 않는다. 공산주의를 혐오하는 것도 이념 자체 때문이 아니라 특별한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지극히 실용적인 입장에 서 있는 것이다. (173)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넘어갈 점은, 수하르토가 병실에서 죽어가고 있을 때 외국의 고위 인사들이 거의 병문안을 오지 않았음에도 리콴유만큼은 그를 찾았다는 사실이다. 리가 찾아가고 2주일 만에 수하르토는 세상을 떠났다. 나중에 리는 수하르토가 완벽한 세상을 만들어내지는 못했지만 그의 노력은 분명 존경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자신의 방문에 대해 설명했다. 이 역시 전형적인 유교적 태도라고 여겨진다. (183)

먼저 리는 내게 인도네시아 부총리의 방문 때문에 늦어져서 미안하다는 말을 건넨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그 부총리는 최근 대통령과 갈등이 있었고 기와 관련하여 리콴유로부터 조언과 위로를 듣고자 싱가포르를 방문했다고 한다. 한편으로 동남아시아의 요충지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한편으로는 많은 인사들이 리의 의견과 조언을 구하고 있기 때문에 리콴유의 집무실은 세계적인, 그리고 동남아시아 지역의 다양한 VIP 정치인들이 찾는 외래진료소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198)

리의 선조들이 겪었던 분명한 중국의 역사를 들여다보자. 19세기의 유럽 국가들, 그중에서 특히 영국은 중국인들에게 아편을 강요했다. 유럽 국가들로 인해 아직 완전히 썩어 들어가기 전, 중국은 아편을 놓고 영국과 전쟁을 벌였으나 패하고 말았다.
그게 바로 아편전쟁이다. 하지만 오늘날 아편전쟁을 알고 있는 미국인들은 거의 없으며, 유럽 국가들 역시 역사 교과서에서 거의 다루고 있지 않다. 하지만 리콴유의 의식 맨 밑바닥에 자리를 잡고 그 불편한 역사적 진실은 틱 증상처럼, 또는 도무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 그의 기침처럼 발작적으로 드러난다. ......
싱가포르의 사형제도를 비난하는 미국 인권단체들의 격렬한 목소리에 리는 일체 대응하지 않고 있다. 다만 그들이 과거에 영국 정부가 중국에 아편을 강요했던 역사적 진실에 대해서 무지하다고만 지적할 뿐이다. (220)

마지막으로 몇 가지 질문을 던지려고 하는데 리가 고개를 저으며 먼저 말을 꺼낸다. "나는 요란하게 사람을 사귀는 그런 성격은 아닙니다. 하지만 한번 맺은 우정은 보통 평생을 가는 편이죠."
어색한 그의 말이 무척이나 감동적이다. (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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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신과의 대화 - 혁신을 꿈꾼 재벌 정치가, 전 태국 총리
톰 플레이트 & 탁신 친나왓 지음, 김이숙 옮김 / 끌리는책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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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해도 다시 시작하라면 또 시작할 겁니다. 내일이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거예요. 그들이 또다시 저를 추방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저도 다시 맞설 거고, 고국으로 돌아갈 겁니다. 만일 그들이 또다시 그런 일을 한다면 저는 또 싸울 것이고, 그리고 돌아갈 겁니다."
그가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48)

"정치 발전은 자체의 논리를 갖고 있다. 새로운 사회집단이 기존 정치 체제에 수용되지 못한 채로 경제 및 사회의 근대화가 정치 발전을 앞질렀을 때 정치 쇠퇴가 일어났다." (49)

탁신이 극적으로 정계에 등장하기 전까지 가난한 사람에 대한 배려는 태국 국왕의 전매특허였다. 그것은 일종의 불교적 자비 행위 같은 것이었다. 지난 수십 년에 걸쳐 가난한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려는 왕실의 노력은 거룩한 전통이 되었다. 그러한 노력은 가난을 해결해주지는 못했으나 가난의 고통을 어느 정도는 덜어주었고, 실제로 국왕과 백성 사이에 감정적 유대감을 강화시켰다.
......
탁신의 방식은 근본적으로 달랐다. ... 그의 정책은 가난한 사람이 자력으로 밥벌이를 시작하는 것, 즉 생선 포장 일처럼 계속할 수 있는 일을 개발하도록 훈련하자는 제안을 담고 있었다. (54)

그 노력이 전적으로 성공하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수도권 이외의 광범위한 지역에 거주하는 많은 태국인에게는 믿을 만하고 칭찬할 일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바로 그 노력은 한 가지, 어쩌면 유일한 정치적 결점을 갖고 있었다. 게다가 그 결점은 크고 중요했다. 그것은 적어도 왕실의 일부 고위층이 생각하기에, 현실에 바탕을 둔 이 정치인을 가난한 사람의 애정을 얻기 위한 경쟁자로 여겨지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 세속의 억만장자가 마치 국왕의 텃밭에 비집고 들어가고 있는 듯한 인상을 심어준 것이다. (55)

과잉성취자가 대개 그렇듯이 그는 끊임없이 전진하는 상황을 지속하려 한다. 긴장을 푸는 것조차도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정치적 망명 상황에 놓일 만큼 중요한 인물에게는 역사가 별안간 자기 자신을 하찮은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는 생각을 품고 살아가는 일이 가장 어려울 것이다. 탁신은 휴대전화를 이용해 지속적으로 태국에 있는 지지자들과 통화함으로써, 죽을만큼이나 심각한 운명은 피해왔다.
그렇지만 어느 시점에 그가 공적인 정치 인생을 포기했더라면 그의 반대파는 더 관대하게 굴며 덜 보복적인 태도를 보여주었을지도 모른다. (110)

"럭비 팀이라면 소유해보고 싶기도 하지만, 그러지 않는 편이 나아요!"
이 말을 끝으로 그가 미소를 짓는다.
하나 이상의 `접촉` 스포츠에서--축구만이 아니라 정치에서도--그는 다시 저지르고 싶지 않은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알고 있다. 특히나 관중석에 지켜보는 사람이 아주 많은 상황에서. (117)

`그 크루통은 그가 여전히 자신의 외모에 대해 초조해하며...... 아직도 대중과 카메라에 좋은 인상을 주고 싶어 한다는 심적 확신을 드러내주는 것이다. 그는 태국으로 돌아갈 결심을 굳힌 것이다! 그래서 그 크루통을 남긴 것이다. 마치 복부의 살이, 그리고 정치 경력의 나쁜 기억이 흉했다는 듯이.`
이 남자의 깊은 심중에 어떤 야망이 불타고 있는지를 이보다 더 잘 알려줄 증거가 있을까? 의지력만으로 그곳에 이를 수 있다면, 그는 그를 추방했던 나라로 분명코 돌아갈 것이다. (128)

"사업에는 모두가 존중하는 분명한 게임의 규칙이 있지만, 정치에서는, 특히 의사민주주의... 나라에서는 그 규칙이 존중받지 못했고, 심판도 결코 공정하지 못했지요."
내가 고개를 끄덕인다.
탁신이 웃음 지으며 말을 잇는다,
"누가 총리가 되든 쉽지 않은 일입니다. 태국의 정치 체제는 현재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부패했어요. 저에게 일어난 일, 그러니까 그들이 정치적으로 저를 위협했던 방식을 생각하면 맥이 빠지지요, 저보다 더 똑똑하거나 더 부지런한 사람이라도 별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겁니다." (152)

"리콴유 고문이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뭐라고 했나요?"
"그분이 그랬어요. `땅콩을 주면, 원숭이를 얻는다!(보수가 적으면 멍청한 일꾼을 얻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옮긴이)`" (166)

"그러나 사회는 어떤 세대에서도 단순히 스스로를 재창출하지는 못한다. 세계화가 실제로 얼마나 통합했는지 과장하기는 쉽다. 사회의 관성은 아직 대단히 크다." (182)

사실 그는 전부터 유엔 총회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연단에 오르는 모습을 꿈꿔왔다. 태국 역사상 최대 득표로 재선에 성공하지 않았는가. 이제 세계적인 포럼에 참석하여 스타로 발돋움할 기회였다. ...
그러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깨닫기도 전에 요란하게 붕괴될 수 있다. 그리고 신화의 이카로스...처럼 탁신은 자신을 위해 너무 높게 날고 있었다. 그리고 종종 원한이 깊은 정적의 뜨거워진 얼굴을 향해 정통으로 날아오르기도 했다. 그러므로 크나큰 자부심을 안고 유엔에서 고공비행하는 그 모든 거물들과 더불어 최대한 높이 날고 있는 바로 그 때에 적들이 그를 끌어내릴 기회를 잡았다고 하는 편이 아마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202)

"오늘은 이쯤에서 중단해야 할 것 같군요. 두 시간이 거의 다 지났습니다. 이번 대화는 상당히 치열했지요?"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어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하고 자리를 뜨려 했다.
그가 난처한 표정으로 나는 쳐다보았다.
`뭐가 잘못되었나?`
잠시 후 그가 물었다.
"점심을 드시고 가실 수는 없겠어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그는 외로운 남자, 많은 면에서 고립된 망명의 삶을 살아가는 남자였다. 휴대전화를 아무리 여러 대 가지고 있더라도....... (220)

탁신은 이런 문제를 제기한 것에 놀란 눈치다. 쁘렘에 관한 이런 사실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라고 한다. 그러더니 그가 진정으로 깊이 미워할 수밖에 없는 한 남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써 나를 완전히 놀라게 했다.
"저는 그의 개인적인 생활에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개인적인 생활은 제게 흥미를 주지 못해요."
얕보는 투의 낄낄대는 웃음도 웃지 않고...... 흥미롭다! (264)

"그게 태국 문화의 약점입니다. 태국인은 상관에게 위험을 무릅쓰고 부정적인 말을 하려고 하지 않아요. 상관의 심기를 건드릴 만한 어떠한 부정적인 일에 대해서도, 혹은 어떤 종류의 부정적인 논평도...... 그들은 하지 않으려고 해요." (270)

"법과 질서의 억압적 집행 방식은 최후의 선택일 뿐이죠. 사람은 각자 자기만의 생각이 있고, 믿음이 있고, 이데올로기가 있어요. 그러니 그들이 반드시 우리와 비슷해야 한다거나, 실제로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을 반영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이해해야 하고, 그들과 함께 자리에 앉아 가능하면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해요. 법과 질서의 억압적 집행 대신에요. 그들이 저와 제 지지자를 억누르기 위해 법과 질서를 사용할수록... 그들은 더 심하게 정도를 벗어났고, 정말로 아주 큰 실수를 저지르게 됐어요." (282)

미래에는 단지 결과를 얻으려 하기보다 좀 더 지각 있게 행동할 겁니다. 과거에는 일을 너무 빠르게 진행했고, 너무 급하게 바꾸려 했어요. 저는 결과를 급히 원하는 사람입니다. 그걸 알지 못하고 많은 지배층의 심기를 상하게 했어요.
태국의 문화에도 좀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겁니다. 특히 방콕 지배층의 문화에 말이죠. 그들은 확실히 의례와 체면을 중시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합니다. 그들의 체면을 살려주고, 심기를 불편하게 하면 안 되죠. 제가 태국으로 돌아가면, 그런 것을 주의해야 할 겁니다.
저는 대하기 아주 편한 사람이에요. ... 심기를 건드렸다고 결코 죽이고 싶어 하진 않아요. ... 하지만 저는 정말로 많은 사람의 심기를 건드렸고, 그들은 집단적으로 화가 나서 저를 제거했어요. (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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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309동1201호(김민섭)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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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대학은 스스로에게 숭고함과 신성함이라는 환상을 덧입히는 동시에 그 어느 집단보다도 기민하게 자본의 논리에 영합해왔다. 흔히 대학은 그렇지 않을 거야, 하고 미루어 짐작하지만 대학은 그 어느 기업보다도 노동권의 치외법권 지대에 있다. ... 그러니까, 대학은 학생의 노동력으로 행정 공백을 채우고, 그들이 내야 할 수업료를 일부 감면해주는 방식으로 인건비 지출을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 (13)

지금도 종종 생각나는 어떤 장면이 있다. 첫 회의 때 모두 일어나 자기소개를 하고 내가 남았는데, 저건 누구지 하는 표정을 몇몇 운영위원들이 지었다. 회의를 진행하려던 연구소장은 아, 저기는 그냥 연구소 잡일 돕는 아이입니다 회의 시작합니다, 라고 했다. 잠시 호감을 눈빛을 보이던 운영위원들은 곧 아 그래요, 하는 표정으로 회의 자료를 들추었다. 그것으로 내 포지션은 확실히 정해진 셈이었다. "잡일 돕는 아이", 그것만큼 내 석사 시절을 잘 나타내는 표현도 없었다. (35)

허벌이 소주를 한잔 사겠다고 해, 홍대 기찻길 근처의 삼겹살집으로 갔다. 생삼겹살이 1인분에 만 원이 넘었는데, 그는 나에게 묻지도 않고 당연한 듯, 1인분에 5,000원 하는 벨기에산 냉동 삼겹살을 시켰다. 나는 그게 정말 마음에 들었다. 마음이 편했고, 정말 친구를 만나는구나, 하는 느낌이 자연히 들었다. (71)

대학원 수업을 학부 수업보다 편하게 여기는 교수들이 많다. 어떤 교수는 대학원 수업인데 담배 한 대 태우면서 편하게 합시다, 하기도 했고 또 어떤 교수는 지방대까지 출강이 힘들다며 격주로 수업하는 것이 어떤지 묻기도 했다. 이런 것은 `편함`이 아니라 `우스움`이다. 학생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는 것이다. 석사 3기생만 되어도 첫 주차에 오간 몇 마디로 교수에 대한 내부 평가가 끝난다. 그가 해당 분야의 권위자인가, 주목할 만한 신진 연구자인가, 혹은 그에 준하는 성과를 곧 낼 만큼 열심히 연구하고 있는가. 무엇보다도, 우리와의 수업에 진지하게 임할 것인가. 둘 모두라면 진심으로 감사한 일이고, 하나만 충족해도 그런대로 좋은 일이고, 모두 아니라면 서로에게 불행한 일이다. (81)

그런데, `노동`에는 사람을 `성찰`하게 해주는 힘이 있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타인에 대한 어떠한 `감정`이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또 다른 나를 공감하고 이해하려는, 저에게 내제된 어떤 원초적 욕구`였던 것 같습니다. ... 모두 존경할 만한 각자의 `삶`을 영위하고 있을 것이라는 어떠한 자각, 이것은 몸을 수고롭게 해 `노동`하지 않았다면, 아마 느껴보지 못했을 경험이자 감정입니다. 그에 더해 노동의 시공간은, 인간과 나 자신에 대한 사유를 놀랄만큼 확장해주었습니다. 워시장에서 설거지를 하며 정말 많은 논문의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가끔은 어떤 문단 내용이 통째로 떠올라 꾹꾹 담아두었다가 퇴근하자마자 옮겨 적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얼마 전, 어떠한 다짐을 새롭게 했습니다. 이후 어떠한 삶을 살든, 몸이 허락하는 적당한 `육체 노동`을 반드시 하며 살고자 마음먹었습니다. (128)

강의를 시작했던 학기에, 나는 서울로 대중 인문학 강좌를 들으러 다녔다. 인기가 많은 강사여서 그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수강생만 매주 100명이 넘었다. ... 하지만 난 곧 강사에게 실망했다. 그의 시야가 고작 20여 명에 한정되어 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질문을 위해 세 번이나 손을 들었지만, 한 번도 그의 시야에 들지 못했다. 강사의 선택은 무척이나 즉흥적이었다. 나뿐 아니라 선생님이 여길 좀 봐주었으면, 하고 아쉬워하는 수강생들의 반응이 여기저기에서 눈에 띄었다. 그래서 나는 곧 수강을 그만두었다. 내가 강단에 서기 이전이었다면 별로 상관하지 않았겠지만, `당신은 나를 볼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라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었다. (163)

"저는 강의를 위한 필기구를 지참하는 것은 교수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필기구도 없이 강의실에 들어오는 것은 옳은 자세가 아닌 것입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여러 학생들이 내 눈치를 살폈다. ......
중고등학교 시절, 어떤 선생님들은 칠판 밑에 분필이 없으면 주번을 불러 화를 냈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좋은 선생님들은 속주머니에서 정갈한 분필 클립을 꺼냈고, 오래 닳아 쓰기 힘든 분필에 보조구까지 달아 판서를 시작했다. 돌이켜 보니, 그것은 참 보기 좋은 멋스러움이었다. 교수자로서 가르칠 필기구를 직접 준비하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자세다. (225)

"교수님은 무척 행복해 보이세요."
"내가 행복해 보인다고? 왜지?"
"강의를 할 때 교수님처럼 행복해 보이는 사람은 없어요. 그래서 분반 친구들과 가끔 교수님의 이야기를 해요. 우리도 열심히 공부해서 후배들을 가르치면 좋겠다고, 그런데로 행복한 삶일 것 같다고요." (224)

담당하고 있는 강의의 학생들뿐 아니라, 지난 학기의 학생들이 연락해 오는 일도 많다. 주로 취업과 진학을 위한 자기소개서를 들고 찾아온다. 취업 시즌에는 자기소개서 첨삭만 몇 건씩 한다. ... 그래도 그러한 요청이 번거롭거나 무례하다기보다는, 그저 감사하다. 종강하는 날 나는 언제나 "인생에서 글쓰기가 간절히 필요한 어느 날이 생기면 제가 돕겠습니다" 하고 말하며 핸드폰 번호를 공개해왔다. 한 학기 강의로 만난 인연일 뿐이지만 누군가는 오지랖이라고 비난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들이 조금 더 나은 자기소개서를 완성해 자신의 꿈에 한번 더 다가갈 수 있길 바란다. (228)

그리고 강의실에서만큼은 그러한 선들을 잘라내는 작업을 지속하고 싶다. 그렇게 `갑`이 된 학생들이 강의실 밖으로 나가 모든 타인을 갑으로 존중하고, 자기 자신의 가치를 지켜나가며, 그러한 사유로서 시대와 마주할 수 있길 바란다. 그러면 모두의 의식에 내면화된 어떤 `괴물`이 균열을 보일 때, 함께 싸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동료 연구자들의 삶이 조금이나마 나아지기를, 후속 세대가 좀더 나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기를. 그리고 모든 청춘이 더 이상 아픔이나 노력을 강요받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
"아파도 되는 청춘은 없으니까, 모두 아프지 않기를, 그리고 이처럼 아팠음을 모두 기억하고 바꾸어나갈 수 있기를." (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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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티르와의 대화 - 현대 말레이시아를 견인한 이슬람 마키아벨리의 힘 아시아의 거인들 3
톰 플레이트 지음, 박세연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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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어가 말이 너무 많다는 생각은 들지만, 통찰력 유머 인터뷰이에 대한 깊은 이해를 담고 있음! 아시아의 이슬람국 리더로서 종교 원리 확고하게 천명함으로써만 극단주의 제어할 수 있었던 마의 입장을 이해하게 됨. 말레이계 우대책에 대한 중국계의 (자발적?) 동의 이끌어낸 방법 더 알고 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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