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다음에 그는 소곤거렸다. "속죄가 될 거야. 속죄가 될 거야. 이 사람은 친구도 없이 썰렁한 가슴을 안고 아무런 삶의 즐거움도 없이 살고 있는 것을 내가 발견하지 않았던가? 내가 지켜주고 사랑해주고 위로해 줄 것 아닌가. 내 가슴속에는 사랑이 있고 내 결심에는 지조가 있지 않은가. 하느님의 법정에서 속죄가 될 거야. 창조주께서 내가 하는 일을 허락해 주심을 나는 안다. 이 세상의 심판에 대해서는, 나는 세상과는 손을 끊는다. 인간의 비판에 대해서는, 나는 움쩍도 하지 않으리라." (37)
그러나 대답은 여전히 굴복하지 않는 것이었다. `내가 나를 걱정한다. 쓸쓸하고 고독하고 아무도 의지할 사람이 없으면 없을수록 나는 나 자신을 존경한다. 나는 하느님이 내려주시고 인간에 의해 인정된 법을 지키리라. 지금과 같이 미치지 않고 바른 정신일 때 내가 받아들이는 원칙대로 살아나가리라. ...... 지금 내가 지켜야 할 것은 전부터 품어온 의견, 전부터 가지고 있던 결심뿐이다. 나는 거기에 꿋꿋이 발을 디뎌야 하는 것이다.` (160)
듥판 너머로 1마일쯤 되는 곳에 밀코트의 반대 방향으로 뻗은 길이 있었다. 나는 그 길을 가본 적은 없지만 길이 있는 것은 알고 있었고, 어디로 가는 길인지 궁금하게 생각했었다. 나는 그쪽으로 발길을 향하였다. 이젠 지난 일은 생각해선 안 되었다. 뒤도 돌아보아서는 안 되었다. 앞을 내다보아서도 안 되었다. 과거나 미래에 대해 일체 생각을 하지 말아야 했다. 과거는 천상의 것처럼 즐겁고, 또 한없이 슬픈 페이지이며 그 한 줄만 읽어도 나의 용기는 좌절되고 냐 힘은 무너져 내릴 것이다. 미래는 무서운 공백이었다. 대홍수가 지나간 뒤의 세계와 같이. (167)
"나는 당신이 내가 전하를 일자리를 받아주리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영구히 계속되지는 않겠지만 당분간은 그 일을 해주시겠지요. 그건 내가 평온하고 남의 눈에 띄지 않는 영국의 시골 목사라고 하는 이 접고, 마음조차 좁게 만드는 직책을 영구히 붙들고 있을 수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죠. 왜냐하면 당신의 성질 가운데는, 종류는 다르지만 나와 마찬가지로, 조용하게 있을 수 없는 기질이 있으니까요." (233)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방 안을 걸어 돌아다니다가 걸음을 멈추더니 다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못마땅한 게 있으신가요, 리버스 씨?" 내가 물었다. "당신은 모턴에 오래 안 있을 거요, 아마 그럴 거요." "아이참! 왜 그런 말씀을 하시죠?" "당신의 눈을 보고 알았지요. 당신의 눈은 평온한 인생을 계속해 나가는 것에 만족할 눈이 아닙니다." (235)
놀란 표정이 또다시 그의 얼굴을 스쳤다. 여자가 남자에게 감히 그런 말을 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마음 편했다. 나는 상대가 남자건 여자건 개성이 강하고 주도적이고 세련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때에는, 겸양이라고 하는 세속적인 외벽을 뚫고 신뢰의 문턱을 넘어서서 상대방의 마음 속의 화롯가에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침착하게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272)
그는 나를 자기의 무릎에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경건하게 모자를 벗고 보이지 않는 눈을 땅 위로 향하고 묵도를 드리고 서 있었다. 나의 귀에는 그 기도의 끝 부분만이 들려왔다. "심판을 하시는 가운데에도 자비를 잊지 않으신 것을 감사하옵나이다. 원하옵건대 구세주시여, 지금까지보다도 순결한 생을 영위할 수 있는 힘을 저에게 내려주시옵소서!" (419)
"메리, 나 오늘 아침에 로체스터 님과 결혼했어요." 우리 가정부와 그 남편은 둘 다 의젓하고 침착한 사람들이라서, 언제 무슨 놀라운 소식을 전해도 찢어지는 듯한 높은 목소리를 내서 귀청이 떨어지게 하거나, 놀라서 쏟아놓는 수다스러운 잔소리 때문에 귀가 멍멍해질 염려는 없었다. 메리는 고개를 들고 내 얼굴을 말끄러미 쳐다보았다. 두 마리의 병아리를 불에 구우며 버터를 바르고 있던 그녀의 국자는 삼 분쯤이나 공중에 맞어 있었다. 존이 갈고 있던 칼 역시 이 분쯤이나 멎어 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닭고기 쪽으로 몸을 구부리면서 메리는 이렇게 말했을 뿐이었다. "그러셨어요? 확실히!" (421)
나는 그에게 책을 읽어주고, 그가 가고 싶어 하는 곳으로 그를 인도하고, 그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는 데 싫증을 내지 않았다. 비록 슬프기는 했지만 나의 봉사에는 가장 충만하고 아기자기한 기쁨이 따랐다. 왜냐하면 그는 조금도 고통스러운 치욕감이나 기가 죽는 굴욕감을 느끼지 않고 이런 봉사를 당당히 요구해 왔기 때문이다. 그는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였기 때문에 내가 시중을 들어주는 것을 조금도 꺼려하지 않았고, 또 내가 자기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그는 나의 시중을 받는 것을 나의 간절한 소망을 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425)
다음번에는 누군지도 모를 사람이 종내 이 선량하고 충직한 종이 부름을 받아 하느님의 기쁨으로 돌아갔다고 하는 소식을 전해 줄 것이다. 그런데 왜 슬퍼하라? 죽음의 공포가 세인트 존의 최후의 시간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지는 않으리라. 그의 정신은 구름이 걷히고, 그의 마음은 움쩍도 하지 않으며, 그의 소망은 확고해지고, 그의 신앙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 자신의 말이 그것을 확실히 보여준다. "주님께서는 이미 제게 말씀하셨습다. 그리고 매일같이 더욱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나 분명코 속히 가리라!` 그러면 나는 더욱 열심히 매시간 대답합니다. `아멘, 주 예수여, 임하옵소서!`라고." (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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