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4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김인환 옮김 / 민음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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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을 외부에서 끌어 오려고 해서는 안 된다. 욕망은 그것을 충동질한 여자의 몸 안에 있다. 그게 아니라면 욕망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첫눈에 벌써 욕망이 솟아나든지 아니면 결코 욕망이란 존재하지 않든지 둘 중의 하나이다. 그것은 성욕과 직결된 즉각적인 지성이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게, 나는 `경험`하기 이전에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28)

지금 그들은 죽고 없다. 어머니도, 오빠들도. 추억을 더듬어 보기에도 너무 늦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그들을 사랑하지 않는다. 예전에 그들을 사랑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그들에게서 떠나 버렸다. 이제 내 기억 속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나는 어머니에 대해 이렇게 힘들이지 않고 쓸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길게. 이렇게 장황하게. 그녀는 술술 풀리는 글이 되었다. (38)

나는 아주 낮은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그는 자신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내가 그의 입장이 되어 그에게 말해 주었다. 자신 안에 본질적인 우아함을 간직하고 있음을 그는 모르기 때문에, 내가 그것을 그를 위해 이야기해 주었다. (55)

두 여자 모두 자신들이 지닌 몸의 기질 때문에 나쁜 평판을 들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연인이 애무하고 키스를 퍼부었던 몸은 치욕스럽게도, 죽어 버리고 싶을 정도의 희열에 내맡겨진 것이다. 두 여자 모두 입속으로 되뇐다. 그런 죽을 것만 같은 희열은 사랑이 없는 연인들에게는 신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문제는 바로 이 죽어 버리고 싶은 기질이다. 바로 이 기질이 그녀들에게서, 그 여자들의 침실에서 새어 나온다. 그 죽음은 너무나 강렬하여 도시에, 개간지에, 도청 소재지에, 환영 파티에, 중앙 행정지의 무도회장에까지 알려지고야 마는 것이다. (108)

사람들에게 그런 사실들을 알려야 할 것이다. 그들에게 불멸성은 유한한 것이고, 불명성도 죽을 수 있으며, 그리고 그런 사건이 일어났고, 아직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불멸성은, 결코, 불멸성으로서 눈에 띄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절대적인 이원성이다. 그것은 세부적인 것에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근원 속에서만 존재한다. 어떤 사람들은 불멸성의 존재를 품을 수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그렇게 하는 줄을 모르고 있다는 조건에서이다. 마찬가지로, 또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내면에서 그 불멸성의 존재를 간파해 낼 수 있는데, 그것도 똑같은 조건에서, 즉 그들이 그럴 능력을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고서이다. 이런 불멸성이 살아 있을 때에만, 삶은 불멸의 것이 된다. (125)

그리고 그 순간,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 아래 쇼팽의 음악이 큰 소리로 울려 퍼졌을 때, 그녀는 거기에 있었다. 바람 한 점 없었다. 음악은 어두운 여객선 구석구석까지 퍼져 나갔다. 무엇과 관계가 있는지 알 수 없는 하늘의 지시처럼, 뜻을 알 수 없는 신의 명령처럼, 그 음악은 울려 퍼졌다. 소녀는 일어섰다. 마치 이번에는 자기가 달려가 자살하려는 것처럼, 바다에 몸을 던지려는 것처럼. 그리고 그녀는 울음을 터뜨렸다. 콜링의 그 남자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녀는 불현듯 예전에 자신이 콜링의 남자에 대해 가졌던 감정이 스스로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이런 종류의 사랑이었는지 확신할 수 없음을 알았다. 이제 그는 모래 속에 스며든 물처럼 이야기 속으로 사라져 버렸고, 이제야, 쇼팽의 음악이 큰 소리로 퍼지는 지금 이 순간이 되어서야 겨우 다시 기억해 냈기 때문이다.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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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멋진 마을 - 행복동네 후쿠이 리포트
후지요시 마사하루 지음, 김범수 옮김 / 황소자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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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튼튼한 지역의식/지역성이 번영의 좋은 원료 되어준 사례. 근대화-전쟁-현대화라는 압도적 경험에 휩쓸리기는 우리와 마찬가지일 텐데, 무려 수백년 전 지역의 역사와 오늘을 연속된 것으로 인식하며 살아가는 장삼이사들 이렇게 많다니 신기함. 그러나 책의 문체와 구성엔 더 정성을 기울였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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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멋진 마을 - 행복동네 후쿠이 리포트
후지요시 마사하루 지음, 김범수 옮김 / 황소자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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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오사카의 지반침하가 만성적 고질병이라면, 교토의 쇠퇴는 해수면에 갑자기 나타난 빙산에 부딪혀 침몰하는 배에 비유할 만했다. 두 도시의 가장 큰 차이는 예측할 수 있는 사태였느냐 아니냐는 점이었다. 교토의 경우 더 이상 수도가 아니라는 사실에 직면해 과거와 단호하게 결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충격파로 지반침하를 맞이한 오사카와 교토의 명암은 이후 확 달라진다. (56)
……
그러니까 밑바닥 체험이야말로 교토 재생의 핵심이다. (57)
……
과거의 번영을 되돌리려 발버둥치는 게 아니라 달라진 환경에 맞춰 스스로를 재조직하는 것, 이것이 자기개혁 능력이다. 이런 자기조직화는 완성 지점이란 게 없다. (58)

시장은 연휴가 되면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 아이디어를 훔치러 해외로 여행을 떠났다. 갑자기 생각이라도 난 듯 2박 4일 일정으로 함부르크를 찾는가 하면 포틀랜드, 밀라노 시애틀, 헬싱키 등 생각이 닿는 대로 세계 각지를 다닌다. ‘세금 낭비’라는 비판이 나올 만한 행동이어서 이런 경우 시민단체가 시장의 비행기 좌석이 이코노미석인지 비즈니스석인지를 조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비판은 일체 나오지 않았다. 이 대목이 가장 중요하다.
사실 시장은 해외 시찰에 세금을 쓰지 않는다. 시장의 개인후원회 사람들이 나가라면서 등을 떠밀기 때문이다.
"시장이 세계 각지를 시찰할 수 있도록 우리가 후원회비를 내고 있으니, 아까워하지 말고 돈을 쓰면서 아이디어를 얻어 돌아오시오."
좋은 도시를 만들고 싶은 시민들이 시장을 이용하는 셈이다. (100)

도야마 사람들은 왜 이렇게 ‘가난하다’는 말을 자주 할까. 가가번…에 대한 열등감 때문이다. 어느 시절 이야기를 하는 거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가가 백만 석’이나 ‘작은 교토’라고 불리던 가나자와 문화에 대한 열등감, 나아가 핍박 받던 시절의 피해의식이 아직도 도야마 사람들의 무의식을 지배하는 것이다. 특히 경영자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가가번에 핍박을 받아온 탓에…."라는 결론으로 끝나는 일이 다반사다.
그런데 이 열등감이 만성적인 생활습관병을 만들어내는 대신 에도 시대에 벌써 전략적인 마케팅을 통해 지역경제를 창출하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105)

흔히 마을 만들기에 성공한 필수요소로 꼽히는 것이 ‘젊은이’ ‘외지인’ ‘괴짜’가 있는지 여부이다. 옛날 가치관이나 관례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을 투입해 조직을 활성화시킨다는 걸 의미한다. (107)

토박이들은 "이것은 우리 축제이지 외지인에게 보여주기 위하 것이 아니다"라며 준비에만 몇 개월을 보낸다. 사람이 줄어서 마을이 황폐해지고 빈 집이 즐비해도 이와세 지역 13개 마을이 매년 각자의 히키야마를 만든다. 일년에 한 번 히키야마의 거대한 행등…을 만드는 데 왜 이렇게 열정을 쏟는 걸까. 요즘 시류와 도통 어울리지 않을 듯한 이 에너지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전국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쇠락한 마을에서 일년에 한 번 있는 축제에 막대한 에너지와 돈을 쏟아붓는 현상을 도시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축제에 대해 갖는 그 강렬한 마음이야말로 자기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에너지죠. 이 에너지를 일본 말로 바꾸면 사랑이에요. 감상적인 사랑이 아니라 목숨이나 자부심과도 같은 것." (125)

"한 지붕 아래 3세대가 같이 사는 가정이 보편적이고, 한 가족 안에 제1~3차 산업 종사자가 두루 있습니다. 지역경제가 제대로 돌아간다는 증거지요. 모든 산업이 웬만큼 유지되는 겁니다. 게다가 1인당 소득이 높지 않더라도, 3세대 4명이 함께 일한다면 가구당 수입은 꽤 높아집니다. 제가 도야마의 공장을 관리하던 시절 가장 놀란 것은 사원들이 점심을 먹으러 집으로 간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직장과 주거지가 거의 붙어 있다시피 했어요. 게다가 그들은 오후 4시에 일을 마치면 골프를 하거나 가족과 함께 놀러나가는 겁니다. 생활의 중심이 가족인 거예요." (131)

"가령 벼째로 100엔에 파는 것보다 높은 정미기술로 부가가치를 붙여 일년 내내 백미를 200엔에 파는 쪽이 낫습니다. 하지만 그걸 설명해줘도 눈앞의 100엔을 선택해버립니다. 이렇게 해서는 농업기술 향상이 어려우니 농협을 만들어 집단으로 기술향상을 꾀하는 쪽이 좋습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는 폴 포트 시절 대량학살의 트라우마가 있어서 집단으로 작업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139)

"국가에서 지원금을 받는다든지 대기업을 유치하는 방법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기본적으로 자신들의 힘으로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역에 대학이나 연구소를 만들어 내부 인력자원으로 혁신을 일으킵니다. 그 전제조건이 바로 상호 정보 공유입니다. 서로 정보를 공유하면서 혁신을 이뤄내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밀을 공유할 수 있는 신뢰관계가 중요합니다." (164)

창의적인 인재를 불러모으기 위해서는 외지인에게 관대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가령 미국에서는 ‘게이가 좋아하는 도시가 살기 편한 지역’이라는 지표가 있다. 그쯤은 왜야 멋있는 마을이라는 것이다. 도야마 사례에서도 소개했듯 사람들은 예쁘고 매력적인 마을에 모여든다. 군수공장이 있던 지역은 이렇게 변모해갔다. (199)

콘테스트 스태프로는 지역 학생들이 참가했다. 지역의 한 학생은 합숙이 끝난 뒤 중얼거리듯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부끄럽다."
사바에와 아무 인연도 없는 동세대 젊은이가 교통비까지 자체 조달해 찾아와서 자신의 지역을 위해 밤잠 아껴가며 대책을 만드는데 정작 자신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는 자책이다. 자극을 받은 지역 학생 스태프들은 페이스북 등을 통해 교류를 지속하며 전국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그리고 지금은 학생단체 "With"를 조직해 사바에에서 주체적으로 지역활동을 하고 있다. (218)

수학시간에 1학년생이 사용하는 그 교실 벽에는 2학년생과 3학년생이 수업에 사용한 그래프나 공식이 붙어 있다. 정상까지 이어지는 등산로에 무엇이 있는가를 보여주는 셈이다.
……
주입식 교육은 사고능력을 키우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런 지식은 분석된 ‘점’의 형태이기 때문에 연속성을 갖지 못한다. 살아가는 동안 무기로 쓸 수 없는 것이다.
참 지식이란 학년이 바뀌어도, 그리고 사회인이 되어도 연속적으로 이어져야 한다. 학생이 그것을 깨달아야 비로소 공부가 ‘내일을 위해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납득할 수 있다. 이 길을 걷다보면 다음 단계에서 어떤 ‘장소’에 도달할까. 과정이 보이기 때문에 이해가 깊어진다. (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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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멘타 하인학교 (무선) - 야콥 폰 군텐 이야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6
로베르트 발저 지음, 홍길표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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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읽은 <설국>보다 열 배 더 묘함! 통으로 詩인 작품. 오감도 읽었을 때처럼, 분명 걸작인데 뻔한 인본주의 메시지라고는 한 톨도 용납 안 하는 불가해성 충만(벤야민터양 사망과 벤야민터씨 승리는 정신분석되어야). 인간실격 광인일기 호밀밭 수레바퀴는 모두 실패의 내러티브인데 야콥은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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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멘타 하인학교 (무선) - 야콥 폰 군텐 이야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6
로베르트 발저 지음, 홍길표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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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생애와 작품의 내용을 같은 평면에 놓고 일대일 대응시키는 소위 전기적 독법은, 탁월한 몇 가지 경우를 제외한 십중구구구구는 그 우둔함과 게으름으로 '독법'이라 불릴 만한 높이에도 도달하고 있지 않다고 봄. 그러나 이 책의 본문을 지나 뒤의 해설을 보았을 때는 어쩔 수 없이 작가와 작품을 겹쳐 떠올리며 쓸쓸한 맘을 금할 수 없었음. 문인들 팔자 기구한 거야 놀라울 일도 아니지만, 이 작가의 경우는 특별히 더 마음이 쓰임. 소설의 마지막 문단은 정신병원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갈 때의 작가의 심경을 예언하고 있는 듯함.   

 

벤애멘타 학원에는 그 희귀한 우둔함을 더욱더 갈고 닦기 위해 들어온 듯싶다. 그는 이곳에서 지내면서 예전보다 훨씬 더 부지해질지도 모른다. 그의 무지가 더욱 만개하면 안 될 이유는 뭐란 말인가? ... 그것은 훗날 내가 페터와 같은 그런 주인, 통치자, 그리고 상관을 모시게 될 거라는 느낌이다. 페터처럼 무지한 사람들이야말로 승진, 출세, 유복한 삶, 그리고 명령을 내리는 일에 적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처럼 어떤 면에서 볼 때 영리한 사람들은 그들의 훌륭한 열망을 누군가의 시중을 들면서 꽃피우고 쇠진시켜야만 한다. (47)

그는 과묵하고, 비밀들을 함부로 지껄여대지 않는다. 그는 천국도 지옥도 믿지 않는다. 그의 고용주가 느낄 만족이 곧 그에게는 천국이며, 그와 반대되는 슬픈 상황이 그에게는 치명적인 지옥이다. 그는 누구든 그가 행하는 일과 그에게 만족할 거라고 확신한다. 이러한 확고한 믿음이 그에게 자신의 모습 그대로 살아갈 용기를 주는 것이다. (58)

크라우스가 외모의 장점들, 신체적인 우아함을 지니지 못한 이유, 왜 자연이 그를 그렇게 난쟁이같이 찌그러뜨리고 볼품없이 만들었는지를 나는 이제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자연은 그를 데리고 뭔가를 하려고 한다. 뭔가를 계획하고 있다. 자연은 처음부터 그를 데리고 무엇인가를 계획하고 있었을 것이다. 크라우스라는 인간은 자연에게 너무나 순수한 존재였을 것이고, 그 때문에 자연은 인간을 타락시키는 외적 성공들로부터 그를 보호할 목적으로 그를 볼품없고, 왜소하고, 추한 육체 속으로 던져버렸던 것이다. (90)

신은 이 세상에 심오하고 풀리지 않는 수수꼐끼를 내주려고 크라우스와 같은 인간을 보낸 것이다. 그 수수께끼는 결코 풀리지 않을 것이다. 봐라, 사람들이 단 한 번이라도 수수께끼를 풀려는 노력을 보이는지. ... 다시 말해 어느 누구도 그 수수께끼를 풀고자 애태우지 않기 때문이다. 살아 숨 쉬는 그 어떤 인간도 이 무명의 초라한 크라우스에게 그 어떤 과제, 수수께끼 혹은 그토록 심오한 의미가 숨어 있으리라고는 짐작조차 뭇하기 때문이다. 크라우스는 진정한 신의 작품이며, 무(無)이며, 하인이다. 크라우스는 교양 없고, 매우 고된 일을 수행하기에나 적합한 자로 여겨질 것이다. 그리고 참으로 기이한 것은, 그런 판단이 틀린 데 없이 전적으로 옳다는 것이다. (91)

이게 자유란다. ... 자유란 겨울 같은 것이다. 오래 견뎌내기 힘든 거야. 우리가 여기서 하고 있는 것처럼 몸을 항상 움직여야 한단다. 자유 안에서 춤을 춰야 해. 자유는 차가우면서도 아름답다. 다만 자유와 사랑에 빠지지만은 마라. 그건 너에게 슬픔만 안겨줄 거야. 왜냐하면 자유의 영역에서는 누구나 잠시 동안만 머무를 뿐, 그 이상 오래 머물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이곳에 너무 오래 있었어. 봐라, 우리가 떠다닌 저 멋진 길이 서서히 녹고 있는 것을. 이제 눈을 뜨면 자유가 소멸해가는 것을 볼 수 있을 거야. 앞으로도 가슴을 조이는 이런 광경에 자주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114)

그리고 우리는--나와 `그 사람`, 당연히 어느 누구도 아닌 벤야멘타씨는--사막 한가운데 와 있었다. 우리는 사막을 떠돌며 원주민들과 교역을 했다. 우리에겐 매우 독특한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그것은 냉철하고 숭고한 만족감 때문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유럽 문명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으로부터 우리 두 사람은 영원히, 아니면 적어도 아주,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벗어난 것 같았다. "아아." 나는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다. 내가 생각해도 그것은 너무나도 어리석었다. "바로 그것이었구나. 그거였어!" 하지만 그게 무엇이었는지, 내가 그때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인지, 그 수수께끼를 난 풀 수가 없었다. (182)

그리고 여기서 만약 내가 산산조각이 나고 파멸해간다면, 무엇이 부서지고 파멸하는 것일까? 부서지고 파멸하는 것은 어느 영(零)일 뿐이다. 나 개인은 그저 어느 영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이 펜도 던져버리는 거다. 생각하는 삶일랑 이제 집어치운다. 나는 벤야멘타 씨와 함께 사막으로 간다. 보고 싶다. 황야에도 삶이라는 것이 있는지 보고 싶다. 호흡하고, 존재하고, 정직하게 선을 추구하며 살게 되지는 않을지 보고 싶다. 밤에 잠을 자고 꿈을 꿀 수 있는지도 알고 싶다.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가. 이제부터 나는 그 무엇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신에 대한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인가? 그렇다! 신은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무엇 때문에 신에 대한 생각을 한단 말인가? 신은 생각하지 않는 자와 함께 간다. 자, 이제 그럼 영원한 작별을 고한다, 벤야멘타 학교여. (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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