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멋진 마을 - 행복동네 후쿠이 리포트
후지요시 마사하루 지음, 김범수 옮김 / 황소자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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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의 지반침하가 만성적 고질병이라면, 교토의 쇠퇴는 해수면에 갑자기 나타난 빙산에 부딪혀 침몰하는 배에 비유할 만했다. 두 도시의 가장 큰 차이는 예측할 수 있는 사태였느냐 아니냐는 점이었다. 교토의 경우 더 이상 수도가 아니라는 사실에 직면해 과거와 단호하게 결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충격파로 지반침하를 맞이한 오사카와 교토의 명암은 이후 확 달라진다. (56)
……
그러니까 밑바닥 체험이야말로 교토 재생의 핵심이다.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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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번영을 되돌리려 발버둥치는 게 아니라 달라진 환경에 맞춰 스스로를 재조직하는 것, 이것이 자기개혁 능력이다. 이런 자기조직화는 완성 지점이란 게 없다. (58)

시장은 연휴가 되면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 아이디어를 훔치러 해외로 여행을 떠났다. 갑자기 생각이라도 난 듯 2박 4일 일정으로 함부르크를 찾는가 하면 포틀랜드, 밀라노 시애틀, 헬싱키 등 생각이 닿는 대로 세계 각지를 다닌다. ‘세금 낭비’라는 비판이 나올 만한 행동이어서 이런 경우 시민단체가 시장의 비행기 좌석이 이코노미석인지 비즈니스석인지를 조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비판은 일체 나오지 않았다. 이 대목이 가장 중요하다.
사실 시장은 해외 시찰에 세금을 쓰지 않는다. 시장의 개인후원회 사람들이 나가라면서 등을 떠밀기 때문이다.
"시장이 세계 각지를 시찰할 수 있도록 우리가 후원회비를 내고 있으니, 아까워하지 말고 돈을 쓰면서 아이디어를 얻어 돌아오시오."
좋은 도시를 만들고 싶은 시민들이 시장을 이용하는 셈이다. (100)

도야마 사람들은 왜 이렇게 ‘가난하다’는 말을 자주 할까. 가가번…에 대한 열등감 때문이다. 어느 시절 이야기를 하는 거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가가 백만 석’이나 ‘작은 교토’라고 불리던 가나자와 문화에 대한 열등감, 나아가 핍박 받던 시절의 피해의식이 아직도 도야마 사람들의 무의식을 지배하는 것이다. 특히 경영자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가가번에 핍박을 받아온 탓에…."라는 결론으로 끝나는 일이 다반사다.
그런데 이 열등감이 만성적인 생활습관병을 만들어내는 대신 에도 시대에 벌써 전략적인 마케팅을 통해 지역경제를 창출하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105)

흔히 마을 만들기에 성공한 필수요소로 꼽히는 것이 ‘젊은이’ ‘외지인’ ‘괴짜’가 있는지 여부이다. 옛날 가치관이나 관례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을 투입해 조직을 활성화시킨다는 걸 의미한다. (107)

토박이들은 "이것은 우리 축제이지 외지인에게 보여주기 위하 것이 아니다"라며 준비에만 몇 개월을 보낸다. 사람이 줄어서 마을이 황폐해지고 빈 집이 즐비해도 이와세 지역 13개 마을이 매년 각자의 히키야마를 만든다. 일년에 한 번 히키야마의 거대한 행등…을 만드는 데 왜 이렇게 열정을 쏟는 걸까. 요즘 시류와 도통 어울리지 않을 듯한 이 에너지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전국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쇠락한 마을에서 일년에 한 번 있는 축제에 막대한 에너지와 돈을 쏟아붓는 현상을 도시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축제에 대해 갖는 그 강렬한 마음이야말로 자기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에너지죠. 이 에너지를 일본 말로 바꾸면 사랑이에요. 감상적인 사랑이 아니라 목숨이나 자부심과도 같은 것." (125)

"한 지붕 아래 3세대가 같이 사는 가정이 보편적이고, 한 가족 안에 제1~3차 산업 종사자가 두루 있습니다. 지역경제가 제대로 돌아간다는 증거지요. 모든 산업이 웬만큼 유지되는 겁니다. 게다가 1인당 소득이 높지 않더라도, 3세대 4명이 함께 일한다면 가구당 수입은 꽤 높아집니다. 제가 도야마의 공장을 관리하던 시절 가장 놀란 것은 사원들이 점심을 먹으러 집으로 간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직장과 주거지가 거의 붙어 있다시피 했어요. 게다가 그들은 오후 4시에 일을 마치면 골프를 하거나 가족과 함께 놀러나가는 겁니다. 생활의 중심이 가족인 거예요." (131)

"가령 벼째로 100엔에 파는 것보다 높은 정미기술로 부가가치를 붙여 일년 내내 백미를 200엔에 파는 쪽이 낫습니다. 하지만 그걸 설명해줘도 눈앞의 100엔을 선택해버립니다. 이렇게 해서는 농업기술 향상이 어려우니 농협을 만들어 집단으로 기술향상을 꾀하는 쪽이 좋습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는 폴 포트 시절 대량학살의 트라우마가 있어서 집단으로 작업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139)

"국가에서 지원금을 받는다든지 대기업을 유치하는 방법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기본적으로 자신들의 힘으로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역에 대학이나 연구소를 만들어 내부 인력자원으로 혁신을 일으킵니다. 그 전제조건이 바로 상호 정보 공유입니다. 서로 정보를 공유하면서 혁신을 이뤄내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밀을 공유할 수 있는 신뢰관계가 중요합니다." (164)

창의적인 인재를 불러모으기 위해서는 외지인에게 관대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가령 미국에서는 ‘게이가 좋아하는 도시가 살기 편한 지역’이라는 지표가 있다. 그쯤은 왜야 멋있는 마을이라는 것이다. 도야마 사례에서도 소개했듯 사람들은 예쁘고 매력적인 마을에 모여든다. 군수공장이 있던 지역은 이렇게 변모해갔다. (199)

콘테스트 스태프로는 지역 학생들이 참가했다. 지역의 한 학생은 합숙이 끝난 뒤 중얼거리듯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부끄럽다."
사바에와 아무 인연도 없는 동세대 젊은이가 교통비까지 자체 조달해 찾아와서 자신의 지역을 위해 밤잠 아껴가며 대책을 만드는데 정작 자신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는 자책이다. 자극을 받은 지역 학생 스태프들은 페이스북 등을 통해 교류를 지속하며 전국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그리고 지금은 학생단체 "With"를 조직해 사바에에서 주체적으로 지역활동을 하고 있다. (218)

수학시간에 1학년생이 사용하는 그 교실 벽에는 2학년생과 3학년생이 수업에 사용한 그래프나 공식이 붙어 있다. 정상까지 이어지는 등산로에 무엇이 있는가를 보여주는 셈이다.
……
주입식 교육은 사고능력을 키우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런 지식은 분석된 ‘점’의 형태이기 때문에 연속성을 갖지 못한다. 살아가는 동안 무기로 쓸 수 없는 것이다.
참 지식이란 학년이 바뀌어도, 그리고 사회인이 되어도 연속적으로 이어져야 한다. 학생이 그것을 깨달아야 비로소 공부가 ‘내일을 위해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납득할 수 있다. 이 길을 걷다보면 다음 단계에서 어떤 ‘장소’에 도달할까. 과정이 보이기 때문에 이해가 깊어진다. (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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