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임레 케르테스 지음, 박종대, 모명숙 옮김 / 다른우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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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자랐다. 1년 동안 자신이 원해서 얻은 고통이 아닌, 어떤 운명적인 시련을 통해 소년은 정신적으로 성장한 것이다. “운명”이라는 말의 뜻은 무엇일까? 운명이란 불가항력적으로 인간에게 주어진 어떠한 삶, 만남을 의미한다. 하지만 여기서 더 생각해봐야 할 것은 “운명에 순종하다”라는 말과 “운명은 내 손안에 있다.”라는 말의 차이이다. 이 책의 소년 그리고 작가는 후자의 말에 동의한다. 소년은 시련을 극복해냄으로써 운명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피아니스트”라는 책과 마찬가지로 유태인들의 수용소에서 고통을 써내려가고 있다. (피아니스트는 수용소가 아니라 이리저리 피하고 숨으면서 생활한데 더 가깝다.) 하지만 다른 책들과 매우 다른 점은 담담한 말투와 냉소적인 시선에 있다. 열다섯 살이라고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성숙한 말투다. 그렇다고 체념한 말투는 아니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드리고 이겨내려는 힘에서 나온 말투다.

이 작품을 다 읽었을 때 난 별 4개를 5개로 고쳤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사실적으로, 감정에 호소 없이 표현했다는 점이 나에게는 다소 지루하게도 느껴졌기 때문에 별 4개를 주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소년이 집으로 돌아와서 성숙한 모습으로 운명에 대해 성찰하는 부분에서 별 한 개가 더 추가 되었다. 뒷부분은 철학적이기까지 하다.
우리가 지금까지 봐 왔던 시각과는 다른 시각으로 과거를 돌이켜 보고 있다. 소년은 자신이 겪었던 시련 속에서 “행복”이라는 것을 끄집어내고 있는 것이다. 즉, 소년의 생각은 이렇게 끔찍했던 시간 속에서도 행복을 찾아낼 수 있었으니, 지금부터 소년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모두 자기 의지적이고, 행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은 소년의 삶에 대한 시각을 확실하게 표현해준다 “어떠한 문제든 모두 내 인생에 답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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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전당포 살인사건
한차현 지음 / 생각의나무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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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 글을 이끌어 나가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물론 그러니까 “작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긴 하겠지만..,,... 마치 다 써놓은 글 위에서 자유자재로 뛰어다니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 쉴새없이 뿜어내는 짧은 문장들 속에 나는 정신없이 빠져들고 있었다. 처음에는 매우 재밌었다. 하지만 그 후 이 소설은 환타지 인가 마구 혼란스럽고 헷갈린다. 이해가 잘 안 된다. 작가가 말했듯이 여러 작품을 본 따 만들다 보니 끝에 가서 약간 흐지부지 된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이 책의 의문점은 인간에 대한 존재의 진실성이다. 어쩌면 나조차 복제된 인간이 아닐까? 사촌동생의 짝이랑 내가 똑같이 생겼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제는 궁금증보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책의 뒷부분이 혼란스러운 이유도 똑같은 이름의 다른 “차연”의 등장과 주인공이 느끼는 살인 후의 죄책감, 정체성의 혼란, 김시만과 똑같은 이후영의 등장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작가가 너무 많은 것을 시도하기 위해 욕심 낸 점은 이 작품의 단점이 되겠지만, 그 부분을 제외하고는 독특하면서도 재밌는 특이한 책이었다. 신성한 충격 그리고 “나”의 모습에 대한 재 고찰....... 어려운 존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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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스필만 지음, 김훈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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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처럼 이제 유태인 관련 문학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익숙하다. 독일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잔혹한 행위 때문이기도 하고, 세계적인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의 “쉰들러 리스트”가 대중적인 호평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폴란드의 유명한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라브 스필만은 가장 운 좋은 사람들 중 한 명이다. 무차별적으로 살해당하는 그 와중에 살아남았음이 그 첫 번째 이유이고, 최고조의 고통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간애”를 직접 목격하고 체험하게 된 것이 그 두 번째 이유가 된다.

글쓴이는 전쟁 상황을 차분하고, 침착하게 기술해나가고 있다. 나 같으면 독일인에 대한 증오심과 혐오감, 그리고 가족을 잃은 외로움, 슬픔 등의 감정에 휩싸여서 이런 “이성적인” 그리고 “객관적인”작품을 써낼 수 없었을 것이다. 폐허가 된 도시에서 그와 독일인 장교 단 둘이 있는 그 공간에서, 죽은 도시에서 연주되는 쇼팽의 야상곡은 눈물을 자아낸다. 지나치게 슬프면서, 행복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눈물과 함께 북받쳐 오른다. 그것은 이 피아니스트가 겪었던 고통이 쓸모없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며, 고통스럽기만 한 전쟁이 곧 끝날 것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이 책은 “전쟁”이 주는 고통을 말해준다. 전쟁을 일으키는 쪽이나 공격당하는 쪽이나 모두에게 남는 이득은 없다. 전쟁의 이점이 딱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다시는 전쟁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시간이 흐르고 나면 이 교훈을 잘 잊어버린다. 피해를 최소화한다고 하더라도 전쟁은 고통일 뿐이다. 모든 것을 원점 그 이하 즉, 마이너스로 되돌려버리는 전쟁은 그나마 이성적이라는 인간이 만들어낸 최악의 개념이 아닐까?

그 어떤 동물도 다투기는 할지언정, 전쟁을 목적으로 무기를 만들어서 싸우지는 않는다. 이책에서 스필만을 구해준 빌름 호젠필트는 그런 자신의 나라, 동족 그리고 거기에 포함되는 자신까지 부끄럽게 여긴다. 이렇게 뒤돌아 볼 줄 알고 반성하는 사람이 있었기에 아직도 세상은 살만한 곳이고, 아름다움으로 충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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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유령
가스통 르루 지음, 성귀수 옮김 / 문학세계사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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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읽은 “오페라의 유령”! 이 작품이 뮤지컬로 한국에서 수차례 공연되는 동안에도 궁금하다고만 생각한 채 자세한 내용이 무엇인지 알아보려 하지도 않았다. 뒤늦게 갑자기 이 책이 너무나 읽고 싶어졌고, 정말 재밌게, 단숨에 읽어버렸다. 400쪽이 넘는 적지 않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밤을 새고 싶다는 충동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흥미진진한 내용 전개,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사건들, 책 속에 이입되게 하는 작가의 기자 투의 말재간에 더해진 강조를 나타내는 글자의 진하기 조절! 진짜 사실인가 거짓인가의 여부가 계속 의심되는 최고의 추리 소설!

아름다운 크리스틴 다에를 사랑한 몰골이 흉직한 에릭의 슬프고도 무서운 이야기. 현대로 따지자면 “변태적인 스토커+엽기+천재 싸이코”가 아닌지~? 음악적으로 너무나도 뛰어난 에릭은 외모로 인해 기피 당한다. 부모에게 조차 말이다. 언제나 진실을 가장하는 소설들이 그러하듯 증거물은 소설의 후반부에서 모두 사라져버린다. 에릭이 작곡한 “위풍당당한 동쥬앙” 조차 지하에 있을 것이라고 말로만 표현되어 있다. 너무나도 사실같은 이 소설은 읽는 내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빨리 뒷장을 들춰보고 싶다는 거다.

워낙 유명한 작품으로 “오페라의 유령”이 진짜 유령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겠으나 어떻게 결말을 맺을지가 매우 궁금해지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앞, 뒤가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구성 또한 장점으로 작용한다. 연결 고리가 잘 맞고 후에 가면 작은 궁금증들도 다 풀린다. 다음에 “노란 방의 수수께끼”를 읽으면서 가스통 르루의 추리 세계 속에 동참해야겠다. 단지 얼굴만 흉악한 천재를 (성격은 사람들의 태도에 의해 바뀐 것이니 제쳐두고) 동정해야 할지, 그의 행위를 보고 미워해야 할지 나는 아직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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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의 토토 - 개정판
구로야나기 테츠코 지음, 김난주 옮김, 이와사키 치히로 그림 / 프로메테우스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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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나 교수를 꿈꿔온 자라면 누구나 으레 현재의 교육을 개선할 만한 방법들을 모색하게 마련이다. 나 역시 ‘어떻게 하면 이 고리타분한 주입식 교육에 새로운 변화를 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이내 깨닫는다. 현실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다른 세계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라고....... 여기 멋진, 정말 우리가 꿈꿔오던 대안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 학교가 있다. 이 학교는 과거의 일본에 있었던 학교로, 토토라는 산 증인이 자전적 실화 소설로 대안 교육의 예를 책으로 편찬해냈다.

가장 어린이다우면서도, 어른들이 보기에는 비정상적인 아이인 토토가 초등학교 1학년임에도 불구하고 퇴학을 당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후, 내가 봐도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장난꾸러기이고 호기심 많은 토토는 “도모에 학원”이라는 학교에 다니게 된다. 이 학교는 숲을 운동장으로 삼고, 교문 또한 잎사귀가 달린 살아있는 나무이며, 교실은 전철을 그대로 옮겨서 사용한다. 정말 꿈만 같지 않은가? 수업 시간도 일정량의 공부를 하루에 정해주고 좋아하는 과목을 언제나 자기 마음대로 먼저 공부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아이들은 그 분야에서만은 혼자 익힌, 혼자 힘으로 사고해서 얻어낸 깨달음으로 자신의 꿈을 이루게 된다.

무엇보다도 감동적이었던 부분은 어린이들 인격체로 존중해주는 모습이었다. 토토의 말을 존중해주는 토토의 부모님 또한 멋졌다. 그녀의 부모는 가장 통제하지 않는 방식으로, 가장 존중하는 방식으로 가장 훌륭하게 한 인간을 성장시켰다. 잘못하면 사회에서 낙오자가 될 뻔했던 토토가 모든 사람이 선생님이 될 수 있고, 모든 사람이 존중받는, 꼴찌 없는 자연 친화적인 교육의 도움으로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여기서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자신의 꿈을 이룬 사람”이다.

진정한 교육은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 속에서 배우고 성장한 아이들이 나중에 “된 사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공교육에만 의지해서 개혁을 요구하기 보다는 내 자신부터 훌륭한 부모가 되는 것이 우선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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