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론도 스토리콜렉터 70
안드레아스 그루버 지음, 송경은 옮김 / 북로드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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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진실에 닿을 때까지 끝은 없다


안드레아스 그루버. 저자의 이름은 생소하기 그지없었다. 그간 외국 소설에는 흥미를 갖지 못 했기 때문에! 허나, 피터 스완슨과 T. M. 로건의 작품을 읽으면서 외국 미스터리 소설도 취향에 맞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저자는 독일 작가이다.


물 흐르듯 유연한 가독성과 전개 호흡이 빠른 편이라 지루하지 않게 아니, 오히려 흥미롭게 볼 수 있었다. 어떤 독자들은 밤을 새워 봤을 정도라지만 체력이 저질이라 밤을 새서 읽진 못 했고, 앉은 자리에서 100쪽 이상 단숨에 읽긴 했다. 저자의 치밀하고 덤덤한 서술에 마음이 더 끌렸던 것 같다. 이런 문체 대단히 사랑하고 좋아한다.


저자 이름은 생소했지만 그가 출간한 작품들 제목은 익히 알고 있었다. 워낙 책표지가 예쁘고 제목이 인상적이라. <새까만 머리의 금발 소년>, <지옥이 새겨진 소녀>, <죽음을 사랑한 소년>. <죽음의 론도>가 나오기 전작들로, 마르틴 S. 슈나이더 시리즈라 불린다. 이 작품은 그 시리즈의 최신판인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시리즈가 끝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에 오, 하고 감탄했다.


작품의 시작은 긴박했다. 고속도로를 역주행하는 아우디 주인인 남자의 죽음. 이어 철로 위에 차를 세워 죽은 여자, 만찬석상에서 잠시 나와 담배를 태우던 여자의 죽음 그리고 욕실에서 제 턱을 향해 총구를 겨눈 남자까지. 자비네 네메즈가 쫓는 사건들, 거기엔 공통된 점이 있었다. 연달아 죽은 사람들이 연방 범죄수사국의 수사관들이었다는 것! 그들은 어째서 죽어야 했고, 6월 1일의 정체는 무엇일까.


자비네는 그들의 죽음에 마르틴 S. 슈나이더가 연관되어 있다 확신하고 그를 찾아간다. 하지만 그에게서 들을 수 있던 말은 사건에서 손을 떼라는 경고였는데. 사건 조사를 하던 자비네가 갑자기 사라지는 일이 일어났고, 슈나이더가 나서게 된다. 자비네와 슈나이더 콤비도 볼 만했지만(현실적이면서 냉소적인 분위기랄까) 자비네와 티나 콤비 보는 재미도 좋았던 것 같다. 티나는 외적으로 자유분방한 스타일인데 비해 자비네는 단정하고 딱 봐도 수사관 같았기 때문이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의 호흡이 지켜보는 재미를 더했다.​


분량이 굉장했던 것에 비해 읽는 내내 흥미로웠다. 눈이 한 번 닿으면 떨어지지 않았으니까. 6월 1일의 정체를 알고 싶어 읽어 나갔고, 진실에 닿았을 땐 씁쓸하면서 후련했던 것 같다. 끝을 본 것 같아서! 자비네가 조사하던 사건과 하디의 이야기가 맞물리면서 모든 사건이 해갈될 때 비로소 답답한 마음이 확 풀렸던 것 같다.


전작을 읽지 못해 비교해 볼 수 없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로맨스를 읽을 때와는 다른 맛이 있다. 역시 미스터리나 추리 소설을 볼 때 더 활력이 생김을 느낄 수 있었다. 진실에 닿을 때까지 끝은 없는 것 같다. 조금은 독특하고 이해하기 힘든 슈나이더지만 그가 들려 줄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건 막을 수 없다. 학생들에게 강의할 때의 모습도 멋있지만 사건에 뛰어들어 치열하게 파헤치는 모습 또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다음 이야기도 빠른 시일 안에 나와 주면 좋겠다. 역시 로맨스보단 미스터리 스릴러가 더 취향인지도.


시리즈를 기다렸던 독자들에겐 아주 좋은 선물이 될 이번 작품. 역시나 책표지가 인상적이라 한 번 더 시선을 끌 것 같다. 색다른 수사관들이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은 분들이 이 작품을 선택했다면 후회 없을 거라 말해 주고 싶다. 일단 읽으시길. 끝까지 읽지 않고는 자꾸 생각날 테니까.




*북로드에서 가제본 도서 무료 제공받아 작성하는 서평입니다. 진심을 담은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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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반도주
조인영 지음 / 봄출판사(봄미디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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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밥보다 누군가가 커진다는 거


조인영 작가님은 전부터 알고 있었다. 과거에 글을 올리던 카페에 <야반도주>가 연재되고 있었다. 아주 오래된 일이었고, 그 당시 전자책 출간됐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봄에서 종이책으로 <야반도주>가 출간된 걸 알고 누구보다 먼저 읽고 싶었다. 반가운 마음도 크고 무엇보다 설렜다. 아주 오랜만에 로맨스 소설을 숨 쉬는 것도 잊고 읽은 것 같다. 꼭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읽고 싶었다. 첫 시작부터 아리고 시렸다. 끝 또한 그럴 것 같은 예감에 실은 내내 슬픈 눈으로 지켜봤던 것 같다.


책 표지가 왜 그렇게 아름답고 오묘하고 서글픈 느낌이 들었는지 마지막까지 읽고 나서 알게 됐다. 아름다운 나방. 어둠이 되기로 한 빛. 강유경과 한태주. 두 사람은 보통 사람이 겪기 어려운 아픔을 갖고 사랑을 하게 됐다. 사랑은 비슷한 사람끼리 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 정말 그런 걸까. 아픔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픔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끌리게 되어 있는 건가. 이 글을 읽으면서 그 의미를 다시 한 번 절감한 것도 같다.


유경은 ‘아트라’ 미술관 장학생으로 관장의 집에 거주하며 미술관 일도 했다. 집에서는 집안일을 돌보고, 아트라에서는 큐레이터로 일했다. 유경에겐 공식적인 약혼자가 있었는데 그는 아트라 한 관장의 아들, 한선우였다. 유경이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은 그의 동생, 한태주 아니던가.


초반부터 재회물이겠구나, 약간은 폐쇄적이고 어두운 글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은 우울해 보이는 표지부터 그런 느낌이 강했으니까. 짐작보다 훨씬 치명적이고 매력적인 글이었다는 게 함정이지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정통 로맨스 한 편 제대로 본 느낌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 보는 만족감이다. 이런 글을 찾고 있었던 것 같다.


누군가 그녀에게 가장 벅찼던 순간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그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할 것이다.

그 애한테 사랑을 말하던 그때라고. -61쪽


유경은 태주를 잊지 못 했다. 하지만 사랑한다고 떼를 쓸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아픔 때문에 그를 가까이 할 수 없었다. 그와 함께 했던 추억만이 그녀가 지옥을 살아가는 힘이었다. 그렇게 느꼈다. 한태주가 없었다면 아마 강유경은 진작 죽어 버렸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만큼 그녀의 삶은 버겁고 숨 막혔다. 그래서 태주에게 이별을 고했고, 태주도 유경을 잊었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의 다 보이는 거짓말이 더 아프게 느껴졌다. 다 아니까, 그 마음이 얼마나 애절한지 다 아니까.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남들이 보기에 이상하고 무례할 수 있는 행동이 태주에게는 예외였다. 태주는 유경이 신고 있는 스타킹, 양말, 신발을 아무렇지 않게 벗겨 주곤 했었다. 태주가 아무렇지 않으니까, 유경도 아무렇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 받는 기분이었다. -74쪽


이렇게 사소한 부분에서 태주와 함께 했던 추억을 떠올리고 그게 전부인 듯 살아가는 유경은 지켜보는 내내 유약하고 사라질 것 같았다.


나는 밥보다 강유경, 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어린 날이 떠올라 귀밑이 시큰거렸다. -97쪽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이토록 짙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나 또한 어둠 속에서 빛 한 줄기 같던 누군가를 만나 사랑을 하고 있어 그런지 모르겠지만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측은하고 안타까웠다. 그렇게 만난 사랑이 얼마나 절절하고 애틋한지 알겠기에.


강유경, 한태주, 오수희, 손하정 이들 전부 그랬다. 그런데 특히나 아픈 손가락이 있다. 한선우. 그렇게 아플 수 없다. 이 남자의 사랑법은 왜 그렇게나 지독했어야 하는 걸까.


이상하게도 늘, 그 애가 보고 싶었다. -266쪽


늘 보고 싶은 거. 어디에도 그 사람 흔적이 묻어 있다는 거. 그거 참 견딜 수 없이 미칠 거 같은 건데 그는 꼭 그렇게 아프게 사랑했어야 했던 걸까. 참 많이 아팠던 인물이다. 지금까지 읽었던 글에서 가장 아픈 사람이었다. 이 사람처럼 사랑했다가는 아파서 살 수 없을 듯...


읽는 족족 마음을 파고드는 글이라 아마 오랫동안 기억에 머무를 것 같다. 여운 긴 것도 마음에 들고, 사랑을 나누는 장면도 그렇게 깊고 빨려 들어갈 것 같아서 진짜 사랑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19금 씬이 이토록 간절하고 진솔하게 느껴지는 작품은 없었던 것 같다. 역한 느낌이 하나도 없었다. 배울 수 있다면 배우고 싶을 정도로!


<야반도주>를 읽게 되어 다시 한 번 감사한다. 참 좋은 글이었다. 꺼졌던 로맨스라는 장르에 불이 붙은 것 같다. 재회물, 퇴폐물, 피폐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얼른 보시길. 두 번 보시길.


끝으로 인쇄가 잘못된 부분이 있는 것 같아, 혹 2쇄를 하게 된다면 수정해 주었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 244쪽은 전체가 여백이라 쪽수가 필요 없는데 쪽수가 들어가 있다. 증쇄하게 된다면 해당 쪽수는 제거해도 되겠다. 하나 더, 259쪽 태주는 그 모습이 재미있다는 웃어 대기 바빴다. 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태주는 그 모습이 재미있다는 듯 웃어 대기 바빴다. 가 맞는 것 같다. 출간 일정이 빡빡했던 걸까. 조금은 완성도 높은 증쇄를 기대해 본다. 봄에서 저자의 <중독>도 종이책으로 꼭 출간되길 바라 본다.




*봄미디어에서 도서 무료 제공받아 작성하는 서평입니다. 진심을 담은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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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의 선
앨런 홀링허스트 지음, 전승희 옮김 / 창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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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설이 아닌 그저 살아가는 삶


아름다움의 선. 제목부터 눈길을 사로잡았다. 여기서 말하는 ‘선’은 ‘善’일지, ‘線’일지 궁금했다(영문 제목을 보기 전까지는). 그래서 홀린 듯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맨부커상을 받은 최초의 퀴어소설’이란 타이틀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굉장하단 느낌이 물씬 풍겨 나왔다. 꾸미지 않은 듯해도 제목에 금박을 찍어 마치 대처 시대의 호황기 때 상류사회를 보여 주는 듯 책표지 또한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띠었다.


첫 페이지부터 눈에 익지 않은 대처 시대의 풍경과 정치적 언어 때문에 사실 읽기가 매우 힘들었다. 한 페이지 넘기는 게 좀처럼 쉽지 않았다. 걱정했던 대로 완벽하게 소화시키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좀 더 배경 지식이 풍부했다면 그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을까. 초반에서 중반까지는 상당히 애를 먹어 가며 약간은 억지스럽게 읽었던 것도 같다. 그래도 마지막 문장까지는 도달하고 싶었다. 저자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을 은밀하게 숨겨 뒀을 것 같아서.


이 작품은 ‘흔해빠진 부모의 흔해빠진 아들’ 닉 게스트를 중심으로 서사가 진행된다. 그는 이성에게는 성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동성연애자였던 것이다.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2018년인 지금은 동성연애가 공공연해졌기 때문에. 하지만 이 당시엔 꽤나 ‘저속하고 위험한 일’이었다. 이성이 아닌 동성과의 연애는. 그리고 동성과 나누는 성행위까지도.


홀링허스트는 어쩌면 이렇게나 세세하고 섬세하게 그들의 모습을 그려낼 수 있었던 걸까. 게이 작가의 대한 연구로 석사학위까지 받았기에 가능했던 걸까. 그만큼 충분한 지식과 이해, 깊은 공감이 있었기 때문에? 여기서 또 대단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작품을 읽는 내내 캐릭터의 생생함과 노골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묘사에 감탄하느라 읽었던 문장을 또 읽고 읽었으니까. 그러나 이는 서막에 불과했다.


작품 시작부터 글의 분위기는 썩 유쾌하거나 밝지는 않았다. 현실의 농밀한 반영 때문인 것 같았다. 처음부터 이 작품의 엔딩은 밝지 않다는 걸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총 세 번의 여름, 세 개의 챕터로 구성된 <아름다움의 선>은 총 670쪽 가량의 장편소설이다. 이렇게 두꺼운 책은 또 오랜만에 읽었다. 고등학생 때 읽은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 이후 처음이었다.


​제1부. 사랑의 화음(1983)

제2부. 자네는 누구에게 속하는 아름다움을 누리나?(1986)

제3부. 거리의 끝(1987)


목차와 같은 시간의 흐름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닉은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한 영문학도 청년이었다. 아주 파릇하고 싱그러운, 하루 종일 섹스만 생각한다던 그 혈기 넘치는 젊음을 누리고 있는 청춘이었다.


“그래, 그렇게.” 그가 계시를 받은 자의 달콤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더니 앞으로 내민 팔 하나에 기대서 빠르게 연타해 자위했다. 닉은 더욱 진지하게 몰두했지만 절정에 이르기 직전 자기 자신의 모습이 짧게 스쳐갔다. 마치 나무와 덤불들이 굴러 사라져 버리고 런던의 모든 빛이 자신에게 향한 듯했다. 바윅 출신의 작은 사내 닉 게스트, 흔해빠진 부모의 흔해빠진 아들인 그가 밤에 노팅힐의 정원에서 낯선 사람과 섹스하고 있다. 리오의 말이 맞았다. 너무 나쁜 짓이었고, 그런 만큼 자신이 한 짓 중에 최고였다. -63쪽


낯선 남자와, 광고를 통해 만난 남자와 그리고 어떻게 만난 남자와 섹스 하는 건 닉에게 전혀 거침없는 행동이었다. 성욕을 절제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닉은 그렇게 몸에 취하고, 약에 취하고, 주어진 상류사회의 ‘가짜’에 흠뻑 취하고 만다. 진정 원하는 사람은 토비였지만 그는 절대 닉에게 뭔가를 줄 생각이 없는 남자였다.


조울증을 앓는 토비의 동생, 캐서린, 이 몹쓸 고양이는 닉을 가여워 하는 듯하지만 실은 그렇지도 않다. 울증이 올 때면 가족들 몰래 자해를 하고, 조증이 오면 필터링 되지 않은 솔직함으로 분위기를 산산조각 내곤 했다. 때로는 아픈 말고 닉의 가슴을 후벼 파기도 하고.


“진짜로, 악몽 같네, 달링.”

“아주 신나는 상대이기도 해. 하지만……,”

“그러니까 네가 그를 그렇게 사랑한다면, 그리고 그가 널 이런 식으로 취급한다면 난 네가 걱정돼. 사실 나는 네가 진짜로 그를 사랑하는 건지 모르겠어.”

그녀의 이 말이 습관적인 과장이라는 것을, 그녀가 자신을 걱정하는 척하며 자신의 연애를 깎아내리고 있다는 것을 그는 알 수 있었다. -479쪽


닉은 페든 가족들과 지내는 동안 계속해서 불안해 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그는 그들의 가족이 아닌 ‘게스트’일 뿐이었으니.


분노는 닉에게도 감염되어 마침내 그는 작정했던 말을 꺼냈다. 하지만 그것은 원래의 의도와 달리 저열하게 빈정거리는 투로 나왔다. “제가 오늘 이 집을 나간다는 소식을 들으면 무척 가슴 아프시겠죠. 단지 그 말씀을 드리려고 들렀습니다.” 그러자 분노에 찬 제럴드는 그 얘기를 못 들은 체하며 말했다. “당장 이 집에서 나가주게.” -646쪽


결국 닉은 동성애자라는 것이 드러나 페든가에서 쫓겨난 거나 다름없었다. 시대가 달라졌다고는 하나, 지금도 동성을 사랑한다고 하면 사람들의 색안경은 짙어지고 만다. 야유하고 비난하다가 끝내 상처를 낸다. 닉 또한 누군가를 잃은 아픔도 아픔으로 남았겠지만 그러한 사람들의 잣대와 시선에 더한 고통을 느끼지 않았을까.


그는 젊었고, 금욕 훈련 같은 건 별로 되어 있지 않았다. -669쪽


그는 페든가의 저택을 뒤돌아본 뒤 몸을 돌려 더 걸어 나갔다. 리본 휘장의 치장벽토로 장식한 마지막 집, 24번지의 집을 그는 현혹된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 순간의 빛 속에서 그렇게 아름답게 보인 것은 그 길모퉁이만이 아니라, 그것이 길모퉁이라는 사실이었다. -670쪽


홀링허스트의 살아온 삶이 작품에 녹아 그토록 짙게 아팠던 걸까. 저자 역시 닉과 같은 처지였지만 자신이 밝힌 적은 없고 부모의 묵인 아래 지내왔다고 한다. 그런 억압 속이었기에 그의 작품 주인공들은 모두 동성애자 남성이었던 걸까. 작가가 의도했다고는 하지만 이 또한 슬픈 일인 것 같아 괜히 마음이 씁쓸해졌다. 전부 이해했다고는 말하지 못 하겠다. 하지만 닉과 그와 같은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동성애자도 똑같은 사람이다. 이성애자와 다르다고 해서 그들이 사람이 아닌 무언가인 것처럼 바라보지 않았으면 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나도 조금은 접근하여 쓰고 싶으니까.

심오하고 어려운 작품이었지만 전통적인 성장소설이었다 생각한다. 역자가 느꼈던 것처럼. 사람이 살아가고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이다. 낯선 이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잊힐 즈음 다시 읽으려 한다. 역시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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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하는 작가는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1
사와무라 미카게 지음, 김미림 옮김 / artePOP(아르테팝)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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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人은 촌철살인적이다


11월 14일 출간 예정이었던 이 작품은 라이트 노벨이다. 라노벨은 대학교 1학년 이후 처음 읽는 거라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소개 글에서는 일반 소설인 줄 알고 서평단 신청했던 건데 당첨되고 도서를 받아 보니 라노벨이라 조금 놀랐다. 라이트 노벨이라고 하지 않아도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었을 것 같다.


아사히 세나(세나 아사히?)의 직업은 편집자. 자존감이 살짝 떨어지고 겸손하지만 오지랖이 넓은 평범하다면 지극히 평범한 여성이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고, 어디에서나 살고 있을 현대사회의 보통 여성 말이다. 대작가인 후지이 하나에의 담당이었으나 지루하다, 영감이 안 떠오른다, 는 이유로 담당에서 내쳐지고 만다. 그 다음으로 담당하게 된 인기 작가, 미사키 젠은 인간답지 않은 외모를 가진 美人이었다. 게다가 그의 정체 또한 세나를 기함하게 하는데.


​“겸손을 미덕으로 여기는 건 분명 이 나라의 문화지만, 상식적으로 별거 아닌 걸 타인에게 준다면 상대는 어떨 것 같아요? 이 책 재미없어요, 이 음식 맛없어요. 그런 식으로 장사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정말 별것 아닌 물건을 받고 기뻐할 사람은 아마 없겠죠. 즉, 아까 그쪽이 한 말은 지금 내민 물건을 만든 사람한테도, 받는 사람인 나에게도 무척 실례되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세나 아사히 씨. 처음 뵙겠습니다. 그리고 안녕히 가세요. 나는 그쪽과 일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그 별것 아닌 물건을 가지고 지금 당장 돌아가 주세요.”


그는 혀에 칼이 달렸는지 굉장히 초면부터 촌철살인적이다. 뻘뻘대는 아사히가 가여울 정도였으니. 세나는 그를 오래 전부터 지켜봐 왔다. 아니, 그의 작품을 지켜봐 왔다고 하는 게 맞겠다. 미사키 젠의 첫 작품 <론도> 전편이 궁금한 건 나뿐이 아니겠지? 두 사람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찰떡처럼 어울리는 케미가 보는 내내 흥미로웠다. 미사키와 같이 사는 작은 소녀 또한 신비함 그 자체. 거기다 체셔고양이 편집장과 똑 소리 나는 나츠키 형사까지.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들 덕분에 지루할 틈 없이 읽어낼 수 있었다.


뱀파이어나 늑대인간 같은 존재들이 정말 존재한다면 이럴까? 싶었을 만큼 굉장히 사실적으로 세계관 구축을 해낸 것 같았다. 작가가 의도한 대로 받아들였을지 모르겠다. 도서를 받고 처음 받았던 느낌이 지금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장르 구분 없이 책을 좋아하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나 같은 경우, 인문학이나 자기개발서 같은 장르는 아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읽어두면 도움이 될 텐데도 말이다. 라이트노벨이라는 장르도 살짝 그런 느낌으로 다가왔던 걸 부정하지는 못 하겠다. 그래도 이 작품 덕분에 그런 적대감이 많이 줄었다. 이런 섹시하고 무례하고 잘난 남주를 만난 건 참 오랜만이었던 것 같다.


연애소설이 좀 물린다, 읽히지 않는다, 에세이도 싫다 그런 분들께 추천하고 싶다. 다음 문장을 읽지 않고는 궁금해서 못 참겠는 작품을 찾고 있다면 단연 이 작품을 추천하겠다. 200여 페이지의 다소 짧은 느낌의 작품이지만 뇌리에 강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미사키 젠 같은 남자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다음 편이 나온다면 바로 보고 싶다. 그야 미사키가 보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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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라이즈 아르테 미스터리 16
T. M. 로건 지음, 이수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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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진실이라고는 없었다.


​출간 소식부터 출간 전 연재까지 눈을 뗄 수 없던 작품이다. T. M. 로건의 데뷔작으로 엄청난 이슈를 불러일으킨 <리얼 라이즈 Real Lies>. ‘예측을 아주 잘하는 독자조차 너무 늦게야 진실에 도달하게 될 거’라는 띠 문구에 격하게 공감하게 될 줄이야.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고 나면 어딘가 구멍이 난 듯 허전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조셉에게 남은 건 작은 생명체 하나뿐이니까.


평범한 한 가정의 가장인 조셉은 아들 윌리엄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내 멀의 차를 발견한다. 윌은 태어나 뭔가를 인식할 때부터 자동차를 좋아했다. 그 작은 아이가 엄마의 차를 발견한 것이다. 조셉은 멀의 차가 호텔로 들어가는 걸 보고 그 뒤를 밟게 된다.


​가끔 궁금하다.

그날 아내의 차를 보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운명이었을 수도.


​조셉은 뜻밖의 인물이 아내와 함께 있는 장면을 목격하고, 자신이 지켜온 가정에 굉장한 위협이 될 위험을 느낀 건 아니었을까. 정말 그 자리에 가지 않았다면 그런 비극은 벌어지지 않을 수 있었던 걸까. 이때까지만 해도 벤이 미친 사람이고, 멀에게 집착하는 사람으로만 보였다. 수면 위로 드러난 사건들은 조셉을 조여 왔다. 진실인지 거짓인지도 모른 채 조셉은 그것들에 쫓기고 부서져 갔다.


​충격적인 반전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세상에. 그런 결말이 기다릴 줄은……. 스릴러를 좋아하는 이유는 끝에서야 모든 게 밝혀지기 때문이다. 보통 연애를 다룬 장르는 처음부터 반전 없이 처음 예상한 그대로 진행되기 일쑤. 하지만 스릴러, 미스터리, 추리와 같은 장르는 막판에서야 서서히 그 정체를 드러내 충격을 주곤 한다. 그런 자극을 좋아하는지라 이 작품도 꽤 오래 붙들고 읽었다. 한 문장 한 문장 곱씹고 싶었다. 정독하면서, 누구로 인해 이렇게까지 상황이 치닫게 되었는지 나름 추리해 보는 맛도 좋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리얼 라이즈>는 식상하지 않게 빨려 들어가듯 몰입이 뛰어난 작품으로 꼽겠다. 앞에 읽었던 <312호에서는 303호 여자가 보인다>처럼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일상 속에서 전혀 상상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나는데, 두 작가 모두 요즘 사회 모습을 회자시키고 싶어 한 건 아니었을까.


​마지막 장을 다 읽었는데 끝나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멀은? 조셉과 윌리엄은?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의문이 끊이지 않는다면 당장 읽어 볼 것을 추천한다. 충분히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SNS를 이용한 겁박, 휴대전화에 대한 불신 등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다.


​읽는 내내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멀과 함께 있던 남자가 금방이라도 어디선가 나타날 것 같았으니까. 눈을 뗄 수 없어서 한 번 읽으면 주르륵 읽게 되는 마법의 책 같다고 해야 하나. 미스터리, 스릴러, 추리 좋아하시는 분들께 적극 추천하겠다. 찬바람 부는 요즘 같을 때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요런 작품은 어떨까.


(+) 서평이 늦어 대단히 죄송합니다TAT 대충 읽고 쓰고 싶진 않아서 정독한 후에 올렸습니다. 아낌없이 출간책 보내 주셔서 정말정말 감사드립니다. 스포 되지 않는 선에서 리뷰 작성했습니다. 이 작품은 반전이 상당히 중요하니까요!!!




*아르테에서 도서 무료 제공받아 작성하는 서평입니다. 진심을 담은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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