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반도주
조인영 지음 / 봄출판사(봄미디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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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밥보다 누군가가 커진다는 거


조인영 작가님은 전부터 알고 있었다. 과거에 글을 올리던 카페에 <야반도주>가 연재되고 있었다. 아주 오래된 일이었고, 그 당시 전자책 출간됐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봄에서 종이책으로 <야반도주>가 출간된 걸 알고 누구보다 먼저 읽고 싶었다. 반가운 마음도 크고 무엇보다 설렜다. 아주 오랜만에 로맨스 소설을 숨 쉬는 것도 잊고 읽은 것 같다. 꼭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읽고 싶었다. 첫 시작부터 아리고 시렸다. 끝 또한 그럴 것 같은 예감에 실은 내내 슬픈 눈으로 지켜봤던 것 같다.


책 표지가 왜 그렇게 아름답고 오묘하고 서글픈 느낌이 들었는지 마지막까지 읽고 나서 알게 됐다. 아름다운 나방. 어둠이 되기로 한 빛. 강유경과 한태주. 두 사람은 보통 사람이 겪기 어려운 아픔을 갖고 사랑을 하게 됐다. 사랑은 비슷한 사람끼리 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 정말 그런 걸까. 아픔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픔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끌리게 되어 있는 건가. 이 글을 읽으면서 그 의미를 다시 한 번 절감한 것도 같다.


유경은 ‘아트라’ 미술관 장학생으로 관장의 집에 거주하며 미술관 일도 했다. 집에서는 집안일을 돌보고, 아트라에서는 큐레이터로 일했다. 유경에겐 공식적인 약혼자가 있었는데 그는 아트라 한 관장의 아들, 한선우였다. 유경이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은 그의 동생, 한태주 아니던가.


초반부터 재회물이겠구나, 약간은 폐쇄적이고 어두운 글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은 우울해 보이는 표지부터 그런 느낌이 강했으니까. 짐작보다 훨씬 치명적이고 매력적인 글이었다는 게 함정이지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정통 로맨스 한 편 제대로 본 느낌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 보는 만족감이다. 이런 글을 찾고 있었던 것 같다.


누군가 그녀에게 가장 벅찼던 순간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그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할 것이다.

그 애한테 사랑을 말하던 그때라고. -61쪽


유경은 태주를 잊지 못 했다. 하지만 사랑한다고 떼를 쓸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아픔 때문에 그를 가까이 할 수 없었다. 그와 함께 했던 추억만이 그녀가 지옥을 살아가는 힘이었다. 그렇게 느꼈다. 한태주가 없었다면 아마 강유경은 진작 죽어 버렸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만큼 그녀의 삶은 버겁고 숨 막혔다. 그래서 태주에게 이별을 고했고, 태주도 유경을 잊었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의 다 보이는 거짓말이 더 아프게 느껴졌다. 다 아니까, 그 마음이 얼마나 애절한지 다 아니까.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남들이 보기에 이상하고 무례할 수 있는 행동이 태주에게는 예외였다. 태주는 유경이 신고 있는 스타킹, 양말, 신발을 아무렇지 않게 벗겨 주곤 했었다. 태주가 아무렇지 않으니까, 유경도 아무렇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 받는 기분이었다. -74쪽


이렇게 사소한 부분에서 태주와 함께 했던 추억을 떠올리고 그게 전부인 듯 살아가는 유경은 지켜보는 내내 유약하고 사라질 것 같았다.


나는 밥보다 강유경, 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어린 날이 떠올라 귀밑이 시큰거렸다. -97쪽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이토록 짙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나 또한 어둠 속에서 빛 한 줄기 같던 누군가를 만나 사랑을 하고 있어 그런지 모르겠지만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측은하고 안타까웠다. 그렇게 만난 사랑이 얼마나 절절하고 애틋한지 알겠기에.


강유경, 한태주, 오수희, 손하정 이들 전부 그랬다. 그런데 특히나 아픈 손가락이 있다. 한선우. 그렇게 아플 수 없다. 이 남자의 사랑법은 왜 그렇게나 지독했어야 하는 걸까.


이상하게도 늘, 그 애가 보고 싶었다. -266쪽


늘 보고 싶은 거. 어디에도 그 사람 흔적이 묻어 있다는 거. 그거 참 견딜 수 없이 미칠 거 같은 건데 그는 꼭 그렇게 아프게 사랑했어야 했던 걸까. 참 많이 아팠던 인물이다. 지금까지 읽었던 글에서 가장 아픈 사람이었다. 이 사람처럼 사랑했다가는 아파서 살 수 없을 듯...


읽는 족족 마음을 파고드는 글이라 아마 오랫동안 기억에 머무를 것 같다. 여운 긴 것도 마음에 들고, 사랑을 나누는 장면도 그렇게 깊고 빨려 들어갈 것 같아서 진짜 사랑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19금 씬이 이토록 간절하고 진솔하게 느껴지는 작품은 없었던 것 같다. 역한 느낌이 하나도 없었다. 배울 수 있다면 배우고 싶을 정도로!


<야반도주>를 읽게 되어 다시 한 번 감사한다. 참 좋은 글이었다. 꺼졌던 로맨스라는 장르에 불이 붙은 것 같다. 재회물, 퇴폐물, 피폐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얼른 보시길. 두 번 보시길.


끝으로 인쇄가 잘못된 부분이 있는 것 같아, 혹 2쇄를 하게 된다면 수정해 주었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 244쪽은 전체가 여백이라 쪽수가 필요 없는데 쪽수가 들어가 있다. 증쇄하게 된다면 해당 쪽수는 제거해도 되겠다. 하나 더, 259쪽 태주는 그 모습이 재미있다는 웃어 대기 바빴다. 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태주는 그 모습이 재미있다는 듯 웃어 대기 바빴다. 가 맞는 것 같다. 출간 일정이 빡빡했던 걸까. 조금은 완성도 높은 증쇄를 기대해 본다. 봄에서 저자의 <중독>도 종이책으로 꼭 출간되길 바라 본다.




*봄미디어에서 도서 무료 제공받아 작성하는 서평입니다. 진심을 담은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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