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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의 선
앨런 홀링허스트 지음, 전승희 옮김 / 창비 / 2018년 1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외설이 아닌 그저 살아가는 삶
아름다움의 선. 제목부터 눈길을 사로잡았다. 여기서 말하는 ‘선’은 ‘善’일지, ‘線’일지 궁금했다(영문 제목을 보기 전까지는). 그래서 홀린 듯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맨부커상을 받은 최초의 퀴어소설’이란 타이틀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굉장하단 느낌이 물씬 풍겨 나왔다. 꾸미지 않은 듯해도 제목에 금박을 찍어 마치 대처 시대의 호황기 때 상류사회를 보여 주는 듯 책표지 또한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띠었다.
첫 페이지부터 눈에 익지 않은 대처 시대의 풍경과 정치적 언어 때문에 사실 읽기가 매우 힘들었다. 한 페이지 넘기는 게 좀처럼 쉽지 않았다. 걱정했던 대로 완벽하게 소화시키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좀 더 배경 지식이 풍부했다면 그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을까. 초반에서 중반까지는 상당히 애를 먹어 가며 약간은 억지스럽게 읽었던 것도 같다. 그래도 마지막 문장까지는 도달하고 싶었다. 저자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을 은밀하게 숨겨 뒀을 것 같아서.
이 작품은 ‘흔해빠진 부모의 흔해빠진 아들’ 닉 게스트를 중심으로 서사가 진행된다. 그는 이성에게는 성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동성연애자였던 것이다.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2018년인 지금은 동성연애가 공공연해졌기 때문에. 하지만 이 당시엔 꽤나 ‘저속하고 위험한 일’이었다. 이성이 아닌 동성과의 연애는. 그리고 동성과 나누는 성행위까지도.
홀링허스트는 어쩌면 이렇게나 세세하고 섬세하게 그들의 모습을 그려낼 수 있었던 걸까. 게이 작가의 대한 연구로 석사학위까지 받았기에 가능했던 걸까. 그만큼 충분한 지식과 이해, 깊은 공감이 있었기 때문에? 여기서 또 대단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작품을 읽는 내내 캐릭터의 생생함과 노골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묘사에 감탄하느라 읽었던 문장을 또 읽고 읽었으니까. 그러나 이는 서막에 불과했다.
작품 시작부터 글의 분위기는 썩 유쾌하거나 밝지는 않았다. 현실의 농밀한 반영 때문인 것 같았다. 처음부터 이 작품의 엔딩은 밝지 않다는 걸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총 세 번의 여름, 세 개의 챕터로 구성된 <아름다움의 선>은 총 670쪽 가량의 장편소설이다. 이렇게 두꺼운 책은 또 오랜만에 읽었다. 고등학생 때 읽은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 이후 처음이었다.
제1부. 사랑의 화음(1983)
제2부. 자네는 누구에게 속하는 아름다움을 누리나?(1986)
제3부. 거리의 끝(1987)
목차와 같은 시간의 흐름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닉은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한 영문학도 청년이었다. 아주 파릇하고 싱그러운, 하루 종일 섹스만 생각한다던 그 혈기 넘치는 젊음을 누리고 있는 청춘이었다.
“그래, 그렇게.” 그가 계시를 받은 자의 달콤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더니 앞으로 내민 팔 하나에 기대서 빠르게 연타해 자위했다. 닉은 더욱 진지하게 몰두했지만 절정에 이르기 직전 자기 자신의 모습이 짧게 스쳐갔다. 마치 나무와 덤불들이 굴러 사라져 버리고 런던의 모든 빛이 자신에게 향한 듯했다. 바윅 출신의 작은 사내 닉 게스트, 흔해빠진 부모의 흔해빠진 아들인 그가 밤에 노팅힐의 정원에서 낯선 사람과 섹스하고 있다. 리오의 말이 맞았다. 너무 나쁜 짓이었고, 그런 만큼 자신이 한 짓 중에 최고였다. -63쪽
낯선 남자와, 광고를 통해 만난 남자와 그리고 어떻게 만난 남자와 섹스 하는 건 닉에게 전혀 거침없는 행동이었다. 성욕을 절제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닉은 그렇게 몸에 취하고, 약에 취하고, 주어진 상류사회의 ‘가짜’에 흠뻑 취하고 만다. 진정 원하는 사람은 토비였지만 그는 절대 닉에게 뭔가를 줄 생각이 없는 남자였다.
조울증을 앓는 토비의 동생, 캐서린, 이 몹쓸 고양이는 닉을 가여워 하는 듯하지만 실은 그렇지도 않다. 울증이 올 때면 가족들 몰래 자해를 하고, 조증이 오면 필터링 되지 않은 솔직함으로 분위기를 산산조각 내곤 했다. 때로는 아픈 말고 닉의 가슴을 후벼 파기도 하고.
“진짜로, 악몽 같네, 달링.”
“아주 신나는 상대이기도 해. 하지만……,”
“그러니까 네가 그를 그렇게 사랑한다면, 그리고 그가 널 이런 식으로 취급한다면 난 네가 걱정돼. 사실 나는 네가 진짜로 그를 사랑하는 건지 모르겠어.”
그녀의 이 말이 습관적인 과장이라는 것을, 그녀가 자신을 걱정하는 척하며 자신의 연애를 깎아내리고 있다는 것을 그는 알 수 있었다. -479쪽
닉은 페든 가족들과 지내는 동안 계속해서 불안해 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그는 그들의 가족이 아닌 ‘게스트’일 뿐이었으니.
분노는 닉에게도 감염되어 마침내 그는 작정했던 말을 꺼냈다. 하지만 그것은 원래의 의도와 달리 저열하게 빈정거리는 투로 나왔다. “제가 오늘 이 집을 나간다는 소식을 들으면 무척 가슴 아프시겠죠. 단지 그 말씀을 드리려고 들렀습니다.” 그러자 분노에 찬 제럴드는 그 얘기를 못 들은 체하며 말했다. “당장 이 집에서 나가주게.” -646쪽
결국 닉은 동성애자라는 것이 드러나 페든가에서 쫓겨난 거나 다름없었다. 시대가 달라졌다고는 하나, 지금도 동성을 사랑한다고 하면 사람들의 색안경은 짙어지고 만다. 야유하고 비난하다가 끝내 상처를 낸다. 닉 또한 누군가를 잃은 아픔도 아픔으로 남았겠지만 그러한 사람들의 잣대와 시선에 더한 고통을 느끼지 않았을까.
그는 젊었고, 금욕 훈련 같은 건 별로 되어 있지 않았다. -669쪽
그는 페든가의 저택을 뒤돌아본 뒤 몸을 돌려 더 걸어 나갔다. 리본 휘장의 치장벽토로 장식한 마지막 집, 24번지의 집을 그는 현혹된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 순간의 빛 속에서 그렇게 아름답게 보인 것은 그 길모퉁이만이 아니라, 그것이 길모퉁이라는 사실이었다. -670쪽
홀링허스트의 살아온 삶이 작품에 녹아 그토록 짙게 아팠던 걸까. 저자 역시 닉과 같은 처지였지만 자신이 밝힌 적은 없고 부모의 묵인 아래 지내왔다고 한다. 그런 억압 속이었기에 그의 작품 주인공들은 모두 동성애자 남성이었던 걸까. 작가가 의도했다고는 하지만 이 또한 슬픈 일인 것 같아 괜히 마음이 씁쓸해졌다. 전부 이해했다고는 말하지 못 하겠다. 하지만 닉과 그와 같은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동성애자도 똑같은 사람이다. 이성애자와 다르다고 해서 그들이 사람이 아닌 무언가인 것처럼 바라보지 않았으면 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나도 조금은 접근하여 쓰고 싶으니까.
심오하고 어려운 작품이었지만 전통적인 성장소설이었다 생각한다. 역자가 느꼈던 것처럼. 사람이 살아가고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이다. 낯선 이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잊힐 즈음 다시 읽으려 한다. 역시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웠으니까.
*창비에서 도서 무료 제공받아 작성하는 서평입니다. 진심을 담은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