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가우초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이경민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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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볼라뇨의 소설 5편과 에세이 2편이 담긴 책. 이것도 좀심하게 좋았다.

 

<>은 슬픔의 초상을 스케치한 작품이다. 미국인 짐이 넋놓고 불쇼를 바라보는 장면을 꽤 강렬하게 담아냈다. <참을 수 없는 가우초>는 은퇴한 변호사가 팜파스 지대의 농장으로 가서 가우초들(말하자면, 라틴 아메리카의 카우보이들)을 고용하고 토끼들과 뛰노는(?) 이야기다(아님). 역자의 해설을 보니, 이 작품은 보르헤스의 <남부> <마가복음>을 패러디했다고 한다. 또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떠올리게도 하며, 여러 아르헨티나 작가들의 작품들을 따왔다고도 한다. 말하자면 상호 텍스트 놀이의 방식으로 구성된 소설이라는 것. 다른 건 안 읽어봐서 이런 건 몰랐음. <경찰 쥐>는 카프카의 <여가수 요지피네 혹은 쥐 족속>과 연결되는 작품이다. 카프카의 소설 속 쥐이자 가수인 요제피네의 조카가 쥐이자 경찰로 나온다. 탐정소설의 형식으로 현대의 병폐와 악의 욕망을 그려낸다. 되게 재밌게 읽음. <알바로 루셀로트의 여행>은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루셀로트가 프랑스의 영화감독 모리니가 자신의 소설을 자꾸 표절하는 것에 아무 대응도 안 하다가, 오히려 그가 자신의 최고의 독자라고 느끼며, 파리에 있는 그를 만나는 이야기다. 사실 나는 예술의 표절 문제에 좀 관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서인가 역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과 생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두 편의 가톨릭 이야기>는 신성함과 폭력이, 선과 악이 교차하는 아이러니한 이야기다. 눈 내리는 어느날, 성직자가 되려는 한 소년은 신비한 수도승을 마주치고 이를 신의 계시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날, 갓 정신병원에서 나온 한 사람이, 수도사와 아이를 살해하고 수도복을 입으며 집에서 나온다. 라쇼몽처럼 관점을 달리하는 이야기인데, 이를 통해 보여줄 수 있는 아이러니를 잘 담아냈다.

 

에세이 <문학+=>진짜최고였다. “나 책 왜 읽지?”, “문학은 다 무슨 소용이지?”에 대한 최고의 답변과 생각이 담긴 에세이 중 하나가 아닐까. 그래 문학+=병이지. 어쩌라고. 에세이 <크툴루 신화>에는사실 잘 모르는 작가들 얘기가 많이 담겨 있었다. 2000년대 초반 스페인어권 문학의 베스트셀러들이 뭔지 내가 어떻게 알겠습니까여튼 그럼에도 볼라뇨의 비꼬는 솜씨는 기가 막히다고 느꼈다. 루이스 하이드가 <선물>에서 이야기한 부분과 맞닿는 지점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말하자면 이런 것, 예술()은 선물인 동시에 상품일 수 있다. 이때 예술은 선물의 속성은 반드시 갖고 있어야 한다. 선물이 아니라 상품으로만 존재하는 예술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예술을 선물 받을 것인가. 그리고 어떤 선물을 세상에 내놓을 것인가.

 

다음은 <문학+=>에서 인상적이었던 구절들.


위고는 <레 미제라블>에서 어둠의 인간, 잔학한 인간은 어둠의 환희, 잔학한 행복을 시도할 수 있는 자라고 했습니다. (중략) 잔학한 인간의 행복은 잔학합니다.”

 

권태의 사막 한가운데 있는 공포의 오아시스. 근대인의 병을 표현하는 데 이보다 더 명확한 진단이 있을까요. 그 권태를 벗어나는 데, 그 죽음의 상태를 탈출하는 데 우리 손에 주어진 유일한 것, 그렇다고 그다지 우리가 손에 쥐고 있지도 않은 그것은 바로 공포입니다. 다시 말해 악이란 말입니다.”

 

“<그 미지의 세계 깊은 곳으로, 새로운 것을 찾아>라는 마지막 시구는 무한에 무한이 더해지더라도 무한은 여전히 무한이듯, 본질적인 변화 없이 공포로 수렴되는 공포에 맞서 싸우는 예술의 초라한 깃발입니다. 그것은 시인들의 전투가 대부분 그렇듯, 이미 패퇴가 자명한 전투를 하는 것입니다.”

 

말라르메는 여행과 여행자의 운명이 어떤지 알면서도 그 여행을 다시 시작하고자 합니다. 다시 말해, <이지튀르>의 저자는 우리의 행위만 병든 게 아니라 언어 또한 병들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치료를 위해 해독제나 약을 찾을 때, 새로운 것, 오직 미지의 곳에서 발견되는 그것을 찾으려면 섹스와 책과 여행을 탐험해야 합니다. 비록 이것들이 우리를 심연으로 이끌지라도 말입니다. 어쩌면 그 심연이 해독제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일지도 모릅니다.”

 

카네티는 그의 저술에서 20세기 최고의 작가 카프카가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고 처음 피를 토한 날 이후로 그 무엇도 자신과 글쓰기를 떼어 놓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글쓰기와 떨어질 수 없다는 말로 난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나는 카프카가 여행과 섹스, 책은 어디로도 이어지지 않는 길이며, 그럼에도 뭔가를 찾아서 그 길에 들어서고 길을 잃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고 말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뭔가가 책이든 몸짓이든, 잃어버린 무엇이든, 그것이 어떤 방법이든, 그 어떤 것이 됐든, 그걸 찾아서 말입니다. 운이 따르면 늘 거기에 있었던 것, 바로 새로운 것을 찾을지도 모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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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 대가 없이 주고받는 일은 왜 중요한가
루이스 하이드 지음, 전병근 옮김 / 유유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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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2월 중순부터 읽기 시작해 1월 말에 완독함. 660p 정도 되는 벽돌책이라 읽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저자는 미국의 시인이자 에세이스트인 루이스 하이드. 추천사가 화려하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마거릿 애트우드, 얀 마텔, 제프 다이어 등이 추천사를 씀.

 

1부에서는 이른바 원시사회의 선물 경제와 근대 이후의 시장 경제의 차이에 주목한다. 루터와 칼뱅이 종교개혁을 통해 고리대금을 세속의 일로 규정짓고 허용하면서, 선물의 정신 보다 상품 교환의 논리가 사회의 구성 원리로서 더 강한 영향력과 지뱌력을 가지게 됐다는 점도 이야기한다. 구약에서 이방인에게는 고리대금을 허용했으나 형제에게는 고리대금을 허용하지 않았다는 점을 이야기하며, 고리대금이 어떻게 선물의 정신을 훼손 혹은 파괴했는지를 논증하는 것이다. 그 외에도 선물의 순환 구조와 상품의 11 교환 구조를 대비시켜 선물 경제의 특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2부에서는 예술에 대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다뤄진다. 예술은 선물의 속성과 상품의 속성을 동시에 가질 수 있지만, 선물의 속성을 잃으면 그것은 예술이 아니게 된다는 게 주된 논지다. 허나 반대로 상품의 속성만 잃은 경우, 즉 선물의 속성을 갖고 있는 한 예술은 예술로서 기능할 수 있다고 한다. 예술에 담긴 선물의 정신을 체화한 미국의 두 시인 월트 휘트먼과 에즈라 파운드의 사례가 차례로 소개된다. 선물의 정신에 따라 자기 자신을 너무 열어버린월트 휘트먼, 그리고 시장 경제를 대체할 국가의 의지를 좇다가 무솔리니와 파시즘에 경도된 에즈라 파운드. 그들의 이야기를 좇다보면 선물의 정신이 사회에 잘 작동되려면, 무엇이 필요할지, 사회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예술가 개인은 어떤 방식으로 살아 남을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가 추천사에 쓴 것처럼 무언가를 창작하고자 하는 사람, 아니면 이미 예술가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 모두가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시인이든, 소설가든, 미술가든, 만화가든, 영화 감독이든, 가수든, 연주자든, 배우든. 예술가의 기초 체력 혹은 예술가적 정신의 토대를 튼튼하게 만들어주는 책이라고 생각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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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졌어, 너에게
와야마 야마 지음, 김진희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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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교의 별>의 와야마 야마의 연작만화. 남자 고등학생들의 우정을 다루는 개그만화다. 학교 이야기인만큼 어떤 에피소드에는 학교 폭력을 다루는 부분도 있는데, 전체적으로는 소소하고 밝은 이야기들이다. 진짜 엉뚱하고, 귀엽고 따뜻하고 웃김.

읽는 동안 우정과 웃음이 충만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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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이하의 것들
조르주 페렉 지음, 김호영 옮김 / 녹색광선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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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보적인 스타일, 자기만의 글쓰기, 이런 것들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설렌다. 아주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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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샷 뒤의 여자들 - 피드 안팎에서 마주한 얼굴
김지효 지음 / 오월의봄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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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샷 뒤의 여자들>을 다 읽고, 나는 나의 시선과 욕망부터 점검하게 됐다. 이성애자 남성으로서 나의 욕망과 시선은 얼마만큼 ‘정의’로울까? 나는 사회적으로 부정의한 것들에 곧 잘 분노하지만 (혹은 그러려고 하지만) 내 욕망엔 한없이 너그럽지 않은가 생각한 것이다.

물론 성적인 욕망과 시선, 그 자체를 정의로운 것과 부정의한 것으로 나누는 게 넌센스한 일인지도 모른다. 욕망은 그냥 욕망일 뿐 아닌가. 섹슈얼리티라는 욕망, 섹슈얼리티를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 음란함, 이런 것들을 금기시 하는 사회는 또 얼마나 폭압적인가. 그리고 어떤 인간의 성적 욕망이란 것은 사회적인 동시에, 생물학적으로 형성되는 것 아닌가(적어도 내가 알기론 그렇다).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생의 조건에 대해 악하다고 평가를 내리는 게 말이 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시선과 욕망은 문제적이다. ’예쁘고, 귀엽고, 섹시하고, 청순한 여성’이라는 상을 요구하는 것, 그것은 그 자체로 여성들에게 억압이 되니까. 물론 욕망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어떤 욕망이 억압의 기제로 나타나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어떤 욕망이 누군가를 향한 폭력이 되는 것은 더욱 부자연스럽다. 무엇보다 정의롭지 않다.

나는 욕망 그 자체를 탓하기 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싶다. 그러니까 이런 것. ‘예쁨과 귀여움과 섹시함과 청순함’에 대해 과도하게 열광하지 않는 것. 그것이 여성으로 태어난 인간의 모든 것인양 이야기하지 않는 것. 물론 ‘예쁨과 귀여움과 섹시함과 청순함’이라 불리는 것들이, 지금 여기의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데, 여성들에게 필요한 자원일 순 있을 것이다. 남성들이 성적 파트너를 선택하는데 중요한 조건이고 기준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여성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중받는 것’, ‘존엄을 지키고 삶을 살아내는 것’에 영향을 주어선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못생김, 뚱뚱함, 너무 마름, 키가 너무 큼, 키가 너무 작음, 나이가 너무 많음, 뭐 그 외의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들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여성 인간들의 자기 긍정을 방해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인생샷에 아주 많은 시간을 들이는‘ 여성들의 사례를 보면서 한심해했다. “아니 뭐 이러고 사냐” 같은 생각을 떠올렸으니까. 그와 반대로 기초생활수급자이고, 학교에선 뚱뚱하다고 괴롭힘을 당했지만, 책이라는 세계를 만나며 새로운 준거집단을 모색하고, 자신의 글을 쓰는 한 여성, 즉 인생샷 같은 것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여성 인간의 사례를 보면서는 열광했다. 이런 평가질은 역시 문제적이다. 물론 나는 살면서 김치녀니 된장녀니 하는 단어들을 입밖에 내본 적은 없다. 누군가를 그렇게 호명해본 적도 없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온 사람들, 즉 ’사진을 몇백장씩 찍고, 보정하는 데 하루 종일 시간을 쓰며, 더 예쁜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위해 애쓰는 여성’에 대해, ‘인스타충’이라고 뒷담화를 하는 인간들과 내가 얼마나 다를까. 정희진을 읽고, 우에노 지즈코와 벨 훅스와 리베카 솔닛을 읽었음에도 고작 떠올린 게 ‘한심함’이라니….

하지만 이런 문제적인 인간임에도,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아온 인간들을 이해하고, 또 연대하고, 지지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대단히 어른스러운 인간도 못 되고, 바보 같은 농담도 많이 하고, 젠더 감수성 같은 건 좀 모자란 인간이겠지만, 좋은 사람이고 싶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이루는 데에는 ‘착함’만으로는 부족하다. 치열한 문제의식이 함께 필요하다. 그 문제의식의 방향이 내 자신을 향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런 문제의식에 기반한 욕망이 섹슈얼리티가 어쩌고 하는 욕망보다 중요한 욕망이라고 생각한다. 예쁨과, 귀여움과, 섹시함과, 청순함 보다도 훨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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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3-12-12 06: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상대방의 행동이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르면 부정적인 반응을 할 때가 있어요. 저도 그래요. 저는 그런 감정 상태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부분으로만 볼 뿐이죠. 문제는 부분을 확대 해석하거나 또 전체 대상의 문제로 섣불리 단정하면 혐오와 차별이 생기는 거죠.

서한용 2023-12-26 12:55   좋아요 0 | URL
ㅎㅎ 예… 누군가를 함부로 평가하거나 판단하지 말아야겠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