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 대가 없이 주고받는 일은 왜 중요한가
루이스 하이드 지음, 전병근 옮김 / 유유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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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2월 중순부터 읽기 시작해 1월 말에 완독함. 660p 정도 되는 벽돌책이라 읽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저자는 미국의 시인이자 에세이스트인 루이스 하이드. 추천사가 화려하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마거릿 애트우드, 얀 마텔, 제프 다이어 등이 추천사를 씀.

 

1부에서는 이른바 원시사회의 선물 경제와 근대 이후의 시장 경제의 차이에 주목한다. 루터와 칼뱅이 종교개혁을 통해 고리대금을 세속의 일로 규정짓고 허용하면서, 선물의 정신 보다 상품 교환의 논리가 사회의 구성 원리로서 더 강한 영향력과 지뱌력을 가지게 됐다는 점도 이야기한다. 구약에서 이방인에게는 고리대금을 허용했으나 형제에게는 고리대금을 허용하지 않았다는 점을 이야기하며, 고리대금이 어떻게 선물의 정신을 훼손 혹은 파괴했는지를 논증하는 것이다. 그 외에도 선물의 순환 구조와 상품의 11 교환 구조를 대비시켜 선물 경제의 특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2부에서는 예술에 대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다뤄진다. 예술은 선물의 속성과 상품의 속성을 동시에 가질 수 있지만, 선물의 속성을 잃으면 그것은 예술이 아니게 된다는 게 주된 논지다. 허나 반대로 상품의 속성만 잃은 경우, 즉 선물의 속성을 갖고 있는 한 예술은 예술로서 기능할 수 있다고 한다. 예술에 담긴 선물의 정신을 체화한 미국의 두 시인 월트 휘트먼과 에즈라 파운드의 사례가 차례로 소개된다. 선물의 정신에 따라 자기 자신을 너무 열어버린월트 휘트먼, 그리고 시장 경제를 대체할 국가의 의지를 좇다가 무솔리니와 파시즘에 경도된 에즈라 파운드. 그들의 이야기를 좇다보면 선물의 정신이 사회에 잘 작동되려면, 무엇이 필요할지, 사회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예술가 개인은 어떤 방식으로 살아 남을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가 추천사에 쓴 것처럼 무언가를 창작하고자 하는 사람, 아니면 이미 예술가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 모두가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시인이든, 소설가든, 미술가든, 만화가든, 영화 감독이든, 가수든, 연주자든, 배우든. 예술가의 기초 체력 혹은 예술가적 정신의 토대를 튼튼하게 만들어주는 책이라고 생각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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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졌어, 너에게
와야마 야마 지음, 김진희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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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교의 별>의 와야마 야마의 연작만화. 남자 고등학생들의 우정을 다루는 개그만화다. 학교 이야기인만큼 어떤 에피소드에는 학교 폭력을 다루는 부분도 있는데, 전체적으로는 소소하고 밝은 이야기들이다. 진짜 엉뚱하고, 귀엽고 따뜻하고 웃김.

읽는 동안 우정과 웃음이 충만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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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이하의 것들
조르주 페렉 지음, 김호영 옮김 / 녹색광선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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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보적인 스타일, 자기만의 글쓰기, 이런 것들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설렌다. 아주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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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샷 뒤의 여자들 - 피드 안팎에서 마주한 얼굴
김지효 지음 / 오월의봄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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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샷 뒤의 여자들>을 다 읽고, 나는 나의 시선과 욕망부터 점검하게 됐다. 이성애자 남성으로서 나의 욕망과 시선은 얼마만큼 ‘정의’로울까? 나는 사회적으로 부정의한 것들에 곧 잘 분노하지만 (혹은 그러려고 하지만) 내 욕망엔 한없이 너그럽지 않은가 생각한 것이다.

물론 성적인 욕망과 시선, 그 자체를 정의로운 것과 부정의한 것으로 나누는 게 넌센스한 일인지도 모른다. 욕망은 그냥 욕망일 뿐 아닌가. 섹슈얼리티라는 욕망, 섹슈얼리티를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 음란함, 이런 것들을 금기시 하는 사회는 또 얼마나 폭압적인가. 그리고 어떤 인간의 성적 욕망이란 것은 사회적인 동시에, 생물학적으로 형성되는 것 아닌가(적어도 내가 알기론 그렇다).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생의 조건에 대해 악하다고 평가를 내리는 게 말이 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시선과 욕망은 문제적이다. ’예쁘고, 귀엽고, 섹시하고, 청순한 여성’이라는 상을 요구하는 것, 그것은 그 자체로 여성들에게 억압이 되니까. 물론 욕망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어떤 욕망이 억압의 기제로 나타나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어떤 욕망이 누군가를 향한 폭력이 되는 것은 더욱 부자연스럽다. 무엇보다 정의롭지 않다.

나는 욕망 그 자체를 탓하기 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싶다. 그러니까 이런 것. ‘예쁨과 귀여움과 섹시함과 청순함’에 대해 과도하게 열광하지 않는 것. 그것이 여성으로 태어난 인간의 모든 것인양 이야기하지 않는 것. 물론 ‘예쁨과 귀여움과 섹시함과 청순함’이라 불리는 것들이, 지금 여기의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데, 여성들에게 필요한 자원일 순 있을 것이다. 남성들이 성적 파트너를 선택하는데 중요한 조건이고 기준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여성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중받는 것’, ‘존엄을 지키고 삶을 살아내는 것’에 영향을 주어선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못생김, 뚱뚱함, 너무 마름, 키가 너무 큼, 키가 너무 작음, 나이가 너무 많음, 뭐 그 외의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들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여성 인간들의 자기 긍정을 방해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인생샷에 아주 많은 시간을 들이는‘ 여성들의 사례를 보면서 한심해했다. “아니 뭐 이러고 사냐” 같은 생각을 떠올렸으니까. 그와 반대로 기초생활수급자이고, 학교에선 뚱뚱하다고 괴롭힘을 당했지만, 책이라는 세계를 만나며 새로운 준거집단을 모색하고, 자신의 글을 쓰는 한 여성, 즉 인생샷 같은 것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여성 인간의 사례를 보면서는 열광했다. 이런 평가질은 역시 문제적이다. 물론 나는 살면서 김치녀니 된장녀니 하는 단어들을 입밖에 내본 적은 없다. 누군가를 그렇게 호명해본 적도 없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온 사람들, 즉 ’사진을 몇백장씩 찍고, 보정하는 데 하루 종일 시간을 쓰며, 더 예쁜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위해 애쓰는 여성’에 대해, ‘인스타충’이라고 뒷담화를 하는 인간들과 내가 얼마나 다를까. 정희진을 읽고, 우에노 지즈코와 벨 훅스와 리베카 솔닛을 읽었음에도 고작 떠올린 게 ‘한심함’이라니….

하지만 이런 문제적인 인간임에도,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아온 인간들을 이해하고, 또 연대하고, 지지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대단히 어른스러운 인간도 못 되고, 바보 같은 농담도 많이 하고, 젠더 감수성 같은 건 좀 모자란 인간이겠지만, 좋은 사람이고 싶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이루는 데에는 ‘착함’만으로는 부족하다. 치열한 문제의식이 함께 필요하다. 그 문제의식의 방향이 내 자신을 향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런 문제의식에 기반한 욕망이 섹슈얼리티가 어쩌고 하는 욕망보다 중요한 욕망이라고 생각한다. 예쁨과, 귀여움과, 섹시함과, 청순함 보다도 훨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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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3-12-12 06: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상대방의 행동이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르면 부정적인 반응을 할 때가 있어요. 저도 그래요. 저는 그런 감정 상태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부분으로만 볼 뿐이죠. 문제는 부분을 확대 해석하거나 또 전체 대상의 문제로 섣불리 단정하면 혐오와 차별이 생기는 거죠.

칼리아예프 2023-12-26 12:55   좋아요 0 | URL
ㅎㅎ 예… 누군가를 함부로 평가하거나 판단하지 말아야겠죠 ㅎㅎ
 
농담을 싫어하는 사람들 마음산책 짧은 소설
정지돈 지음, 윤예지 그림 / 마음산책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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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 이글턴에 따르면 부르주아가 태동하던 근대에, 유머는 교양의 일종이었다. 부르주아에겐 물적 자본과 함께 재치와 유머 감각이라는 일종의 상징 자본이, 교양으로서 필요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자 유머는 자기 고유성을 만드는 토대로 인식되기도 했다. 촌철살인으로 유명한 오스카 와일드가 대표적이다.

이 책엔 소설가 정지돈이 쓴 18개의 짧은 소설이 담겨있다. 이 이야기들에는 유머와 재치라는 상징 자본 혹은 교양이 아주 잘 활용됐다. 그래서 이 책이 작가에게, 돈이라는 물적 자본까지 많이 안겨주었으면 좋으련만… 그렇게 됐는진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책 판매량의 지표가 되는 인터넷 서점의 세일즈 포인트. 2023년 11월 30일 기준,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검색한 이 책의 세일즈 포인트는 932점이다. 그리고 같은 해에 나온 이미예 작가의 소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의 세일즈 포인트는 96,850점이다…. 아마도 작가는, 이 책으로 부자가 되진 못 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은, 독자인 나도 마찬가지다. 이 책을 읽고 부자가 될 순 없었다…. 그렇다고 제가 막 엄청 가난한 건 아닙니다…. 로베르토 볼라뇨는 젊은 시절의 자신을 회상하며 “‘비에 젖은 쥐새끼’처럼 가난했다” 고 표현했는데, 나는 그 정도는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항상 매고 다니는 백팩에 우산을 챙기고 다니기 때문이다…. 우산 만세! 잠깐 그런데 내게 재치와 유머 감각이라는 상징 자본은 있나….

테리 이글턴으로 돌아가보자. 테리 이글턴은 유머의 발생 원리를 세 가지로 정리한다. ‘방출’, ‘우월‘, ’부조화‘가 그것이다. 일상의 긴장 상태에 의해 억눌린 에너지를 폭발시킴으로서 웃음을 주는 것이 ‘방출’이다. 우월감을 통해 웃음을 유발시키는 것이 ‘우월‘이다. 그리고 논리의 역전, 비이성적인 상태와 상황을 활용해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 ‘부조화’다. 소설집 <농담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 세 가지가 적극 활용된다. 약간 이상한(…) 소리들을 마구 늘어놓아서 삶의 긴장을 풀어준다. 어떤 인물들은 약간 덜떨어진(…)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또 논리를 넘나들고 횡단하는, 실없는 소리들로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실없어지기 위해 애쓰는 글들. 그저 빛… 그저 갓… G.K 체스터턴은 말했다. “근엄해지기는 너무도 쉽다. 실없어지기는 너무도 어렵다.” 그 어려운 걸 해내는 글이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말하는데, 그저 빛… 그저 갓….

이 책은 2020년 봄에 나왔다. 나는 그때 두 작품 정도를 읽고 책장 한켠에 박아두었었다가, 3년만에 다시 꺼내 읽었다. 나는 원래 이 책을 트레바리 모임 책 중에 한 권으로 선정했었다. 근데 사람이 안 모이자, 담당 크루님이 “지금 선정하신 책 중에서 몇 권은 좀 더 유명한 책으로 바꿔보면 모집이 더 잘 될 거예요”라고 조언을 해주셨다. 그리고 이 책은 에리히 프롬의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로 대체되었다…. 물론 교체를 했다고 모집이 잘 되고 있는 건 아니다. 그래서 깨달았다. <농담을 싫어하는 사람들>에는 죄가 없다는 것을….

나는 ‘당신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나도 당신들을 좋아하지 않겠다’라는, 제목부터 웃긴 작품을 읽고 좋아하기도 했고, 서평가 금정연님을 주인공으로 한 ‘어느 서평가의 최후’도… 너무 웃으면서 읽었다. 그리고 모든 작품들을 읽으면서 “이렇게 써도 되는 건가? 진짜?” 라는 생각을 마구 떠올렸다. 어쩌면 그래서 좋아했을 것이다. 읽는내내 자유롭다고 느꼈으니까. 사회학자 엄기호와 언어학자 김성우의 대담을 담은 책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에서, 엄기호는 영상을 다루는 것과 글을 다루는 것의 핵심적인 차이를 ‘자유로움’에 둔다. 논리의 전개, 인용과 배치, 편집 등을 자유롭게 하는 데에 글쓰기만 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정지돈의 이 소설집에는 그 자유로움이 한껏 느껴진다. 그 덕분에 한껏 실없을 수 있었다. 세상은 무겁고 슬프지만 그래도 가끔은 성공적으로 실없는 작가들이 있다. 다닐 하름스, 세르게이 도블라토프, 그리고 정지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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