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이하의 것들
조르주 페렉 지음, 김호영 옮김 / 녹색광선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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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보적인 스타일, 자기만의 글쓰기, 이런 것들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설렌다. 아주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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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샷 뒤의 여자들 - 피드 안팎에서 마주한 얼굴
김지효 지음 / 오월의봄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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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샷 뒤의 여자들>을 다 읽고, 나는 나의 시선과 욕망부터 점검하게 됐다. 이성애자 남성으로서 나의 욕망과 시선은 얼마만큼 ‘정의’로울까? 나는 사회적으로 부정의한 것들에 곧 잘 분노하지만 (혹은 그러려고 하지만) 내 욕망엔 한없이 너그럽지 않은가 생각한 것이다.

물론 성적인 욕망과 시선, 그 자체를 정의로운 것과 부정의한 것으로 나누는 게 넌센스한 일인지도 모른다. 욕망은 그냥 욕망일 뿐 아닌가. 섹슈얼리티라는 욕망, 섹슈얼리티를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 음란함, 이런 것들을 금기시 하는 사회는 또 얼마나 폭압적인가. 그리고 어떤 인간의 성적 욕망이란 것은 사회적인 동시에, 생물학적으로 형성되는 것 아닌가(적어도 내가 알기론 그렇다).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생의 조건에 대해 악하다고 평가를 내리는 게 말이 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시선과 욕망은 문제적이다. ’예쁘고, 귀엽고, 섹시하고, 청순한 여성’이라는 상을 요구하는 것, 그것은 그 자체로 여성들에게 억압이 되니까. 물론 욕망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어떤 욕망이 억압의 기제로 나타나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어떤 욕망이 누군가를 향한 폭력이 되는 것은 더욱 부자연스럽다. 무엇보다 정의롭지 않다.

나는 욕망 그 자체를 탓하기 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싶다. 그러니까 이런 것. ‘예쁨과 귀여움과 섹시함과 청순함’에 대해 과도하게 열광하지 않는 것. 그것이 여성으로 태어난 인간의 모든 것인양 이야기하지 않는 것. 물론 ‘예쁨과 귀여움과 섹시함과 청순함’이라 불리는 것들이, 지금 여기의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데, 여성들에게 필요한 자원일 순 있을 것이다. 남성들이 성적 파트너를 선택하는데 중요한 조건이고 기준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여성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중받는 것’, ‘존엄을 지키고 삶을 살아내는 것’에 영향을 주어선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못생김, 뚱뚱함, 너무 마름, 키가 너무 큼, 키가 너무 작음, 나이가 너무 많음, 뭐 그 외의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들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여성 인간들의 자기 긍정을 방해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인생샷에 아주 많은 시간을 들이는‘ 여성들의 사례를 보면서 한심해했다. “아니 뭐 이러고 사냐” 같은 생각을 떠올렸으니까. 그와 반대로 기초생활수급자이고, 학교에선 뚱뚱하다고 괴롭힘을 당했지만, 책이라는 세계를 만나며 새로운 준거집단을 모색하고, 자신의 글을 쓰는 한 여성, 즉 인생샷 같은 것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여성 인간의 사례를 보면서는 열광했다. 이런 평가질은 역시 문제적이다. 물론 나는 살면서 김치녀니 된장녀니 하는 단어들을 입밖에 내본 적은 없다. 누군가를 그렇게 호명해본 적도 없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온 사람들, 즉 ’사진을 몇백장씩 찍고, 보정하는 데 하루 종일 시간을 쓰며, 더 예쁜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위해 애쓰는 여성’에 대해, ‘인스타충’이라고 뒷담화를 하는 인간들과 내가 얼마나 다를까. 정희진을 읽고, 우에노 지즈코와 벨 훅스와 리베카 솔닛을 읽었음에도 고작 떠올린 게 ‘한심함’이라니….

하지만 이런 문제적인 인간임에도,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아온 인간들을 이해하고, 또 연대하고, 지지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대단히 어른스러운 인간도 못 되고, 바보 같은 농담도 많이 하고, 젠더 감수성 같은 건 좀 모자란 인간이겠지만, 좋은 사람이고 싶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이루는 데에는 ‘착함’만으로는 부족하다. 치열한 문제의식이 함께 필요하다. 그 문제의식의 방향이 내 자신을 향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런 문제의식에 기반한 욕망이 섹슈얼리티가 어쩌고 하는 욕망보다 중요한 욕망이라고 생각한다. 예쁨과, 귀여움과, 섹시함과, 청순함 보다도 훨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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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3-12-12 06: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상대방의 행동이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르면 부정적인 반응을 할 때가 있어요. 저도 그래요. 저는 그런 감정 상태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부분으로만 볼 뿐이죠. 문제는 부분을 확대 해석하거나 또 전체 대상의 문제로 섣불리 단정하면 혐오와 차별이 생기는 거죠.

칼리아예프 2023-12-26 12:55   좋아요 0 | URL
ㅎㅎ 예… 누군가를 함부로 평가하거나 판단하지 말아야겠죠 ㅎㅎ
 
농담을 싫어하는 사람들 마음산책 짧은 소설
정지돈 지음, 윤예지 그림 / 마음산책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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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 이글턴에 따르면 부르주아가 태동하던 근대에, 유머는 교양의 일종이었다. 부르주아에겐 물적 자본과 함께 재치와 유머 감각이라는 일종의 상징 자본이, 교양으로서 필요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자 유머는 자기 고유성을 만드는 토대로 인식되기도 했다. 촌철살인으로 유명한 오스카 와일드가 대표적이다.

이 책엔 소설가 정지돈이 쓴 18개의 짧은 소설이 담겨있다. 이 이야기들에는 유머와 재치라는 상징 자본 혹은 교양이 아주 잘 활용됐다. 그래서 이 책이 작가에게, 돈이라는 물적 자본까지 많이 안겨주었으면 좋으련만… 그렇게 됐는진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책 판매량의 지표가 되는 인터넷 서점의 세일즈 포인트. 2023년 11월 30일 기준,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검색한 이 책의 세일즈 포인트는 932점이다. 그리고 같은 해에 나온 이미예 작가의 소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의 세일즈 포인트는 96,850점이다…. 아마도 작가는, 이 책으로 부자가 되진 못 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은, 독자인 나도 마찬가지다. 이 책을 읽고 부자가 될 순 없었다…. 그렇다고 제가 막 엄청 가난한 건 아닙니다…. 로베르토 볼라뇨는 젊은 시절의 자신을 회상하며 “‘비에 젖은 쥐새끼’처럼 가난했다” 고 표현했는데, 나는 그 정도는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항상 매고 다니는 백팩에 우산을 챙기고 다니기 때문이다…. 우산 만세! 잠깐 그런데 내게 재치와 유머 감각이라는 상징 자본은 있나….

테리 이글턴으로 돌아가보자. 테리 이글턴은 유머의 발생 원리를 세 가지로 정리한다. ‘방출’, ‘우월‘, ’부조화‘가 그것이다. 일상의 긴장 상태에 의해 억눌린 에너지를 폭발시킴으로서 웃음을 주는 것이 ‘방출’이다. 우월감을 통해 웃음을 유발시키는 것이 ‘우월‘이다. 그리고 논리의 역전, 비이성적인 상태와 상황을 활용해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 ‘부조화’다. 소설집 <농담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 세 가지가 적극 활용된다. 약간 이상한(…) 소리들을 마구 늘어놓아서 삶의 긴장을 풀어준다. 어떤 인물들은 약간 덜떨어진(…)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또 논리를 넘나들고 횡단하는, 실없는 소리들로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실없어지기 위해 애쓰는 글들. 그저 빛… 그저 갓… G.K 체스터턴은 말했다. “근엄해지기는 너무도 쉽다. 실없어지기는 너무도 어렵다.” 그 어려운 걸 해내는 글이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말하는데, 그저 빛… 그저 갓….

이 책은 2020년 봄에 나왔다. 나는 그때 두 작품 정도를 읽고 책장 한켠에 박아두었었다가, 3년만에 다시 꺼내 읽었다. 나는 원래 이 책을 트레바리 모임 책 중에 한 권으로 선정했었다. 근데 사람이 안 모이자, 담당 크루님이 “지금 선정하신 책 중에서 몇 권은 좀 더 유명한 책으로 바꿔보면 모집이 더 잘 될 거예요”라고 조언을 해주셨다. 그리고 이 책은 에리히 프롬의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로 대체되었다…. 물론 교체를 했다고 모집이 잘 되고 있는 건 아니다. 그래서 깨달았다. <농담을 싫어하는 사람들>에는 죄가 없다는 것을….

나는 ‘당신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나도 당신들을 좋아하지 않겠다’라는, 제목부터 웃긴 작품을 읽고 좋아하기도 했고, 서평가 금정연님을 주인공으로 한 ‘어느 서평가의 최후’도… 너무 웃으면서 읽었다. 그리고 모든 작품들을 읽으면서 “이렇게 써도 되는 건가? 진짜?” 라는 생각을 마구 떠올렸다. 어쩌면 그래서 좋아했을 것이다. 읽는내내 자유롭다고 느꼈으니까. 사회학자 엄기호와 언어학자 김성우의 대담을 담은 책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에서, 엄기호는 영상을 다루는 것과 글을 다루는 것의 핵심적인 차이를 ‘자유로움’에 둔다. 논리의 전개, 인용과 배치, 편집 등을 자유롭게 하는 데에 글쓰기만 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정지돈의 이 소설집에는 그 자유로움이 한껏 느껴진다. 그 덕분에 한껏 실없을 수 있었다. 세상은 무겁고 슬프지만 그래도 가끔은 성공적으로 실없는 작가들이 있다. 다닐 하름스, 세르게이 도블라토프, 그리고 정지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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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 고통과 함께함에 대한 성찰
엄기호 지음 / 나무연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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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받지 않으며 산다는 게 가능할까. 나는 그런 삶을 원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해보인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인간은 욕망하는 한, 번뇌한다. 그 모든 것들로부터 해탈하고 초연할 것이 아니라면, 자기를 완전히 비워버리고 세상에 완전히 눈을 돌릴 것이 아니라면, 필요한 것은 고통과 함께 살아가는 것일테다. 그래서 삶은 고통을 다루는 기술을 요구한다. 고통에 잡아먹히지 않아야 하니까.

한편 고통을 겪는 자는 고통에 대해 말할 수 없다. 다만 울부짖을 뿐이다. 그래서 고통은 그 자체로는 나눌 수 없다. 심지어 고통 받는 자는 응답을 원하지도 않는다. 끊임없이 자기 고통을 들어줄 이를 찾을 뿐이다. 그래서 고통 받는 자는, 자신의 고통에 귀기울여 줄 ‘곁’을 필요로 하는 딱 그만큼, 자신의 곁을 파괴하기도 한다. 곁에서 응답하는 자를 무의미한 자로 만들어버리니까.

고통 받는 자가 고통을 다루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한 발짝 떨어져서 자기 고통을 바라봐야 하고, 동시에 자신의 고통이 자신의 곁을 파괴하지 않도록 해야 하니까. 저자는, 고통 받는 자가 ‘자신의 고통을 바라보는 것’은 고통을 겪는 자신이 그 고통의 곁에 위치해야 가능하다고 말한다. 고통이 있는 자리에 있으면 그 고통에 함몰된다는 것이다. 그 위치 옮기기를 위한 기술로 ‘글쓰기’를 제시한다. 자신의 고통을 만든 피해에 대해 살펴보고, 서술하고, 그럼으로서 역설적으로 ‘고통은 말할 수 없음’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외로움이다. 자신의 고통은 말해질 수 없음을 깨닫는 외로움. 고통 받는 자들은 이 외로움을 나눌 수 있다. 그 때 비로소 의미있는 위로도, 소통도, 공감도, 치유도, 연대도 가능해진다.

나는 이 책을 읽고나서 내가 통과해야 했던, 혹은 겪고있는 고통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구구절절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썼다. 이를테면 도무지 좋아지지 않는 가족에 대해서. 아니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부모와 함께 있는 시간이 지옥처럼 느껴지는 순간들과 그때의 내 감정에 대해서. 가족들과 너무 화목하고 친근하게 보이는 이들에 대해 느끼는 나의 부러움에 대해서. 살면서 거쳐온 여러 일터에서 겪은, 여러 종류의 괴로움들에 대해서. 점점 친구들을 잃어가고 있는 나의 인간 관계에 대해서. 사랑하는 연인과 커플 셀피를 올리는 이들에게 내가 느끼는 부러움에 대해서. 나를 사랑하지 않는 누군가가 사랑하는 누군가에 대해 느끼는 질투심과 열등감에 대해서. (이런 게 그런 건가, 진화심리학에서 이야기하는, 알파메일에 대해 느끼는 베타메일들의 수준 낮은 증오와 적개심 같은 거? 전문직에 부자에, 셀럽처럼 살아가는, 온갖 잘 나가는 남성들에 대해 느끼는 부러움을 나도 갖고 있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점점 웃음을 잃어가는 나라는 인간에 대해서. 불안한 미래에 대해서. 하고 싶은 것들은 잔뜩 있는데, 시간은 없는 현실에 대해서.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인간이 싫어지는 나라는 인간에 대해서. 나는 썼다.

하지만 이런 것도 다 엄살 아닐까. 비장애인 이성애자 남성이 부릴 법한 엄살. 나는 감사해야 할 것도 많다. 그리고 실제로 감사하다. 나를 좋아해준 사람들도 많고, 좋아해준 직장 동료들도 많다. 트레바리에선 싫어하는 인간도 있었지만 대체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내게 굳이 먼저 말을 걸어주는 사람도 많다. 좋은 친구들도 있고. 읽고 싶은 책도 많고. 보고 싶은 영화도, 만나고 싶은 사람도, 쓰고 싶은 글들도 많다. 누구보다 나를 사랑해주는 조카도 있다. 고통에 매몰되어 있을 시간이 없는 것이다.

이 책을 읽던 시기의 나는 삶이 무척 고통스러웠다. 무슨 사회적 참사의 주인공도 아니면서(아니 전 지구가 참사의 현장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측면도 있지만), 사회에서 소수자로 분류될 만 한 조건이나 정체성이 부여된 것도 아니면서(하지만 나는 또 어떤 다른 조건에선 소수자가 충분히 될 수 있다), 어쨌거나 엄살 부리는 나에게 이 책은 일종의 사회학적 치료제가 되어주었다. 물론 내 고통을 엄살이라고 축소해서 말하는 것이 내 고통을 제대로 직면하지 않은 증거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기보단 그냥 “네가 참 괴롭고 외로웠나 보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보다 더 고통스러운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고 넓게 생각하려고 하는 거로구나”라고 따뜻하게, 너그럽게 봐주시길. 고통 받는 인간에게 위로와 미소를 건네주시길. 나도 그러려고 노력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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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올레타 페이지터너스
이사벨 아옌데 지음, 조영실 옮김 / 빛소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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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출판사의 책이라 믿고 북펀드 참여했습니다. 중남미의 역사와 깊이있는 여성주의적 관점과 사유, 생생한 삶이 담긴 드라마가 기대되는 소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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