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성을 분석한다 도란스 기획 총서 2
권김현영 엮음, 권김현영.루인.엄기호 외 지음 / 교양인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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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엔가 친구가 추천해줘서 샀었는데, 최근에 책 펼치고 완독했다. 한국적 남성성의 특징이라든지, 식민지 남성성이라는 개념과 그것이 구성된 역사에 대한 개론, 남성성을 구현하는 신체, 소위 인셀들의 자기 연민적 정서와 보편성의 이름으로 이들을 비판하는 이른바 ‘남페미’들에 대한 비판적 분석, 여성의 남성성, Female to Male 트랜스남성의 남성성 수행 등 다양한 주제들을 다뤄서 남성성이라는 테마에 대해 여러 각도로 살펴볼 수 있다.

책에도 인용된 박노자의 <씩씩한 남자 만들기>라든지, 사회학자 오찬호의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박정훈 기자의 <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 <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 등 남성성을 다룬 책들을 이전에도 이것 저것 읽었었다보니, 그런 책들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처럼 막 자기 반성과 성찰을 하게 되고 그러진 않았음. 물론 성찰은 항상 해야겠지만요….

남성성에 대해 이런 저런 독서를 하게 되는 건, 내 자신이 ‘마초’ 소리를 너무 많이 듣기 때문이다…. 😂 카피라이터 할 때도 들었고, 글 쓸 때도, 일상에서도 엄청 들음. 아니 저 페미니즘 책을 그렇게 읽었는데 제가 그렇게 마초인가요…🤣 딱히 무슨 남성우월주의자이거나 그런 것도 아닌데… 🤣 그리고 웃긴 게 마초 소리는 오히려 페미니즘 책을 열심히 읽기 시작하면서 듣기 시작했다. 사실 그런 책들을 읽으면서 생각한 건, 나는 남성다움 같은 건 별로 추구하고 싶지도 않고, 딱히 엄청 남자답고 싶지도 않으며, 그냥 취약성이 있으면 있는대로 인정하고 싶고, 내 약자성에 대해 감추고 싶지도 않고 (오히려 드러내서 위로받고 싶고) 슬플 때는 울고 싶고 뭐 그렇다는 얘길 훨씬 많이 한 것 같은데. 사회에서 요구하는 가부장적 남성성을 수행하고 싶은 마음이나 의지도 별로 없고. 그건 내가 만든 규범이 아니잖아? 법률로 제정된 것도 아니고.

아무쪼록 나는 ‘괜찮은 남자’이기보단 ‘괜찮은 인간’이고 싶다. 페니스의 길이가 6.9cm가 넘든가 말든가 별로 신경쓰고 싶지 않고 (안 넘으면 뭐 어쩔 거야?), 무슨 대단한 몸짱이 되기 위해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기보단, 그냥 웨이트 트레이닝이 좋아서 하고 싶다(하지현 교수가 말하길, 근육 1kg의 가치는 1,300만원…). 그러니까 남자답기 보다는 서한용답고 싶다. 내가 시스젠더 헤테로섹슈얼 남성이든, 트랜스젠더 호모섹슈얼 여성이든, 자기 자신이고 싶다.

”나는 내 자신이고 싶다“ 뭐 이런 선언은 ‘시스젠더 헤테로섹슈얼 남성’이 ‘트랜스젠더 호모섹슈얼 여성’보다는 훨씬 하기 쉬울지 모른다. 그게 일종의 특권이기도 할 것이고. 기억하고 싶은 것은 시스젠더 헤테로섹슈얼 남성이라는 정체성은 여러 젠더 스펙트럼 중 (다른 정체성과 마찬가지로) 특수성을 가진 하나의 정체성일 뿐이라는 것. 그것이 소위 ‘주류’라 하더라도 보편성을 담보할 순 없는 것이고, 표준이 되어서도 안 된다는 것. 그게 주류의 정체성이라, 내가 이런 선언도 쉽게, 별 부담 없이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

그리고 다른 책을 읽고서도 기록했는데, ‘시스젠더 헤테로섹슈얼 남성’이라고 해서, 소수자성이나 약자성을 갖지 않는 건 아니다. 이런 정체성을 가진 이들 중엔 노동자가 있고 (당연히 자본가 보다 많고), 비정규직이 있고, 노인이 있고, 아이들이 있고 장애인이 있다. 또 어떤 다른 이유로 가부장적 가족 제도 안에서 돌봄이 필요한 존재일 수 있다. 사적인 연애 관계에서 약자인 사람도 있고(많이 봄…). 그렇다면 보편성은, 그러니까 시스젠더 헤테로섹슈얼 남성이 점유하는 그 보편성은, 그 정체성으로부터 비롯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그 정체성에도 불구하고 지니는 취약성과 약자성, 소수자성으로부터 비롯되어야 할 것이다. 그 보편성은 다른 정체성을 가진 이들을 공격하고 혐오할 근거가 아니라, 그들과 연대하고 그들을 보호하는 근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같지도 않지만 다르지도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근거.

걍 제 짧은 생각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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