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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노래 - 노래와 함께 오래된 사람이 된다 ㅣ 아무튼 시리즈 49
이슬아 지음 / 위고 / 2022년 4월
평점 :
이슬아 작가의 <아무튼, 노래>를 읽었다. 이 책은 이번에 든 트레바리의 두번째 모임에 선정된 책이었다. 나와 노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책.
정준일이 윤종신의 노래 ‘잘 했어요’를 리메이크해서 부른 적이 있다. 가사가 정말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찌질하다. 이 노래는 2021년 1월 월간 윤종신으로 발표됐는데, 당시에 정준일과 윤종신이 한 대담도 함께 유튜브에 올라왔다. 그 중에 정말 웃긴 부분이 있어서 발췌.
윤종신: 발라드 하거나 록 하는 애들 보면 중고등학교 때 찌질이들이 많아.
정준일: ㅋㅋㅋㅋㅋㅋㅋ
윤종신: 학창 시절 연애하고 다닌 애들이 드물어
정준일: 그런데 여자를 좋아해
윤종신: 그런데 인기가 없어. 쭈글이들이 많아.
정준일: 맞아요. 제가 그랬어요.
윤종신: 대부분 그래. 나도 그랬고. 차이고 끙끙 앓다가 말고, 고백도 못 해보고 마음 접고, 아니면 고백했다가 멋없게 퇴짜당하고.
그리고 덧붙이길, 힙합은 좀 덜 그런 것 같다고…. (빈지노 이런 친구들은 인기도 많고, 잘 나가지 않았겠냐는 얘길 덧붙인다) 나는 윤종신의 얘기가 너무 내 얘기라 진짜 너무 웃겼다. 😂 생각해보면 발라드를 들을 때의 나의 정서, 마음, 기억은 내가 처연했던 순간에 늘 가 닿아 있었다. 이를테면 나는 토이의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을 들을 때, 중학생 때 짝사랑하던 여자애에게 버디버디로 고백하고 혼자 침대에 엎드려서 배게에 얼굴을 파묻고 울던 일이 생각난다. 토이의 ‘좋은 사람’을 들으면 고등학생 때 미술학원에서 짝사랑하던 여자애가 나보고 “와 너 진짜 웃기다”라고 이름을 물어보던 모습과 함께 고백을 하던 날에 그 아이가 짓던 어색한 표정과, 버스를 놓치고서 집으로 터덜 터덜 돌아오던 나의 처량한 발걸음이 떠오른다. 모든 10대 남자애들이 이렇게 울면서(😅) 학창 시절을 보내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랬다. 마찬가지로 정준일을 들을 땐, 대학교를 졸업한 2015년부터 2020년까지, 5-6년 정도 약간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지낸 시간들이 떠오른다. 감정의 밑바닥과 마음의 어둠, 심연을 본 기억들로 처연해지는 것이다.
이렇듯 어떤 음악들은 귀가 아니라 기억으로 듣게 된다. 그리고 어쩌면 그 기억들이 한 인간의 취향을 만드는 건지도 모른다. 기억이 없으면 노랫말에 공감할 일도, 음악을 듣다가 울 일도 없을테니까. 자신의 기억에 따라 음악을 찾아듣게 되고 선호하게 되고 그 노래와 공명하게 되는 거 아니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면 기억은 우리의 음악을 완성시키는 마지막 재료라고도 얘기할 수 있겠다. 가사와 멜로디, 비트, 목소리처럼 뮤지션이 갖고있고 통제하는 요소가 아니라 뮤지션의 바깥에서 음악의 성질과 맥락을 결정하는 음악의 구성물. 하지만 다행인 건 내 기억엔 슬픔만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최근에 이센스의 3집 정규 앨범 <저금통>이 나와서 쭉 들었는데, 너무 좋았다. 그러니까 이센스의 랩을 듣는 순간, 나는 어느새 내 잘난 맛에 취하기도 하고, 자기애 넘치는 마인드가 되어 인생을 대면해볼 용기를 얻게 되기도 했던 것이다. “사는 게 쉽진 않았지만 난 다 이겨내고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어쨌건 다 버티고 살아왔잖아? 난 멋있어, 내가 짱이야, 넌 뭐야? 네가 나에 대해 뭘 알아?” 라는 생각을 품었던 기억, 그 기억이 음악을 온전하게 완성해준 거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좋은 음악이란 건, 그저 좋은 음악가가 만드는 걸로 완성되지 않는다. 완성은 듣는이의 몫이다. 좋은 음악을 듣고 완성시킬 수 있는 좋은 기억들이 있어야 한다. 자기 삶을 잘 가꿔야, 음악을 받아들일 기억도 잘 가꿀 수 있는 것이란 얘기다. 그래서 새삼 성실하게 치열하게 잘 살자는 다짐을 해본다. 내가 들었던 좋은 음악들이 더 완전해질 수 있게. 나의 기억들이 어떤 노래들에 담긴 응원과 위로와 기쁨과 슬픔을 더욱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게. 음악은 음악만으로 완성되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