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 서서 먹는 반찬가게
사토 게이지 지음, 김경은 옮김 / 김영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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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박한 곳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한 번 온 손님을 영원한 단골로 만드는 비상식적 경영법!"

 

『줄 서서 먹는 반찬가게라는, 경제/경영서로 분리하기에는 너무나도 보드라운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의 표지에 쓰여진 문구다.

일본 센다이의 아키호 온천 지역에는 사이치さいち라는 이름의 슈퍼마켓이 있다. 80평 규모의 그다지 크지 않은 가게의 사장인 사토 게이지씨가 쓴 이 책에는 SWOT분석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 W와 T 요소만 가득한 상황에서 어떻게 30년 이상 성공적으로 가게를 운영해 왔는지에 대한 노하우가 담겨있다.

 

사이치 슈퍼마켓이 문을 연 것은 1979년.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이 가게의 역사는 사토 게이지씨의 할아버지인 이치지로씨가 자신의 이름을 딴 식당을 운영하기 시작한 14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할아버지에 이어 할머니, 어머니가 가게를 운영했고 이 책의 저자이자 현재 사장직을 맡고 있는 사토 게이지씨가 4대째 물려받아 운영을 하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사토 게이지씨의 아들도 직장이던 도쿄의 증권회사를 그만두고 가업을 잇기 위해 사이치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니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의 주제에서는 약간 벗어난 이야기지만, 일본에는 이렇게 대물림을 해 가며 가업을 이어나가는 사람들이 많은 덕분에 전통이 비교적 잘 지켜질 수 있지 않나 싶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점점 인구가 줄고 있는 이 산골 마을의 작은 슈퍼마켓의 연간 매출이 6억엔에 이르고 이 슈퍼에서 처음으로 만들어 팔기 시작하면서 지역 명물이 된 아키호 오하기萩(おはぎ)라는 일종의 경단 하나만 하루에 20,000개가 팔릴 때도 있다고 하니 일본 각지에서 연수 요청이 안 들어올래야 안 들어올 수가 없을 듯하다. 내가 사업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나라도 가서 연수를 받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테니까.

 

나는 내가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이라고 상상하며 이 책을 읽었다(사실 언젠가 내가 좋아하는 물건들을 모아놓은 가게, 혹은 공간을 운영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도 하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가장 마음 속에 남는 단어는 바로 '공존공영'이었다. 저자는 스스로가 개업 초기에 극심한 좌절을 겪고 있을 때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발벗고 나섰던 다이유 슈퍼마켓의 오바야시 이사무 사장으로부터 헌신적인 도움을 받았던 경험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기업의 비밀에 해당하는 레시피도 요청하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라도 공개하고 연수를 요청하는 이들에게는 무료로 연수를 제공한다. 또한, 물건을 납품하는 업체와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억지로 물건 가격을 깎지 않고 경기가 좋을 때든 나쁠 때든 일정한 가격으로 물건을 매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손님에 대한 태도도 남다르다. 재료비가 올라도 소비자들의 소득 수준이 나아지지 않는 이상 물건 가격을 올리지 않는다. 대신, 재료들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재고가 남지 않도록 판매를 해 판매가를 올리지 않고도 이익을 실현한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행복한 직원이 행복한 일터를 그리고 행복한 고객을 만든다는 생각을 현장에서 실천해나가고 있다. 이 외에도 책에는 언뜻 보면 경쟁력이 없어 보이는 이 시골의 작은 가게가 어떻게 오늘날의 모습을 일구어 냈는 지에 대한 이야기를 자상하게 소개한다.

 

"조그만 시골에서, 그보다 더 작은 가게를 꾸려 나가는 일흔 넘은 노인이 처음 쓴 책이지만 독자 여러분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더없이 기쁘겠다."

 

프롤로그에서 만난 저자, 사토 게이지씨의 말이다. 난 이 문장이 참 감동적이었다.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겸허한 자세와 진심을 가지고 꾸준히만 노력한다면 이룰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이 책을 읽고 느낀 점이다. 슈퍼마켓 사이치는 또 이렇게 한 번도 아키호에 가 보지 못한 나라는 사람을 잠재 고객으로 만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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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어느 혼혈아의 마지막 하루
양성관 지음 / 글과생각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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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이 온전히 허구를 바탕으로 지어진 것이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것이 아님을 알기에 더욱 충격적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최근 몇 년 간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충격적이고 가슴 아픈 이야기 중 하나다.

『시선視線-어느 혼혈아의 마지막 하루』는 베트남에서 온 결혼 이주 여성과 농부 사이에서 난 주인공 김배남의 생애 마지막 세 시간을 다룬 책이다. 농촌 노총각인 김영철은 한국에서는 자신에게 시집오겠다는 사람을 찾지 못해 시간만 보내던 중에 죽기 전에 꼭 손자를 보고 싶다는 어머니의 성화에 못이겨 베트남에서 자신보다 한참 어린 우웬 하이앤을 데리고 와 결혼을 한다. 하지만 색시를 자신이 평생 산 물건 중에서 '가장 비싼 물건'으로 생각하는 김영철과 사랑 없이 선택 받아 먼 이국땅으로 온 어린 신부의 결혼생활은 불행히도 김배남을 낳은 우웬 하이앤이 도망을 가면서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그리고 주인공, 김배남의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삶이 시작된다.

어린 시절에 단 한 명의 사람으로부터라도 온전하게 사랑받고 자란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는 정서 발달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김배남을 온전히 사랑해 준 사람은 세상 그 어디에도 없었다. 집에서는 도망간 제 어미를 떠오르게 한다며 아버지가 학대하고, 집 밖에 나가면 또래 아이들이며 동네 사람들이 '잡종'이라느니 '김배베트남'이라느니 하며 무시하거나 따돌리기 일쑤다. 이건 무슨 해리 포터도 아니고 '순종'한국인인 이들은 '머글'과의 '잡종'인 김배남을 자신보다 못한 존재라고 깔보고 같은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해도 될까 싶을 정도로 편견에 사로잡힌 시선으로 그를 제 마음대로 판단하고 그 판단에 의거하여 대한다.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고 한국어를 하며 평생을 경남 김해의 칠산이라는 작은 시골 동네에서 살아온 김배남이지만 한국인들은 그를 이방인으로 보는 현실. 게다가 한국에 노동자로 온 베트남인들조차 그를 자신과는 다른 인간으로 본다. 결국 가족과 사회 그 어느 곳에서도 속할 곳을 찾지 못한 그는 철저히 외톨이로 편견이 담긴 시선을 받으며 억눌려 살아간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분노가 엉뚱하게 발산되어 그는 무고한 여성 9명을 죽인 연쇄살인범으로서 법정에 서게 된다.

소설은 주인공 김배남과 김배남에게 흥미를 느껴 분석을 해가며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정신과 의사, 그리고 세간의 비난을 각오하면서까지 김배남을 변호하는 변호사의 시선을 번갈아가며 진행된다. 김배남의 형이 집행되는 날 아침 세 시간 동안 이 세 등장인물들의 목소리가 번갈아가면서 김배남이라는 한 인간의 20여 년 짧았던 생애를 더듬는 형식이다.

나는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김배남이 다른 생명을 해친 것을 용서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왜 그런 극단적인 행동을 했는 지에 대해서는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려 노력하고 그리고 그에게도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람들은 자꾸 단일 민족, 단일 민족 하는데 한국이 정말 단일 민족일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한국이 단일 민족 국가라고 하더라도 단일 민족이 단일 민족이 아닌 이들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결혼이나 학업, 취업 등을 이유로 한국으로 이주해 오는 이들이 많은 이 시대에 순종이니 잡종이니를 구분하는 것도 더 이상 의미 없는 일 아닐까?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여성부 위민넷에서 기자로 활동하면서 결혼 이주 여성과 다문화 교육에 관해 썼던 기사를 다시 한 번 찾아봤다. 2009년 말을 기준으로 한국 내 외국인 주민이 110만명 이었으니 지금은 그보다도 더 많은 이들이 외국에서 한국으로 이주해 왔을 것이라 짐작된다. 하지만 이주민이 느는 속도만큼 우리의 의식 수준도 성장해가는 걸까? 여러 분야에서 참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고, 무엇보다 나 자신부터 나와 다른 이들을 편견 없이 바라보는 자세를 키워가야 할 것 같다.

[올바른 다문화 사회로 가는 길을 묻다-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김현미 교수]

http://blog.naver.com/seefahrt80/140102858413

[쌍방향적인 다문화사회를 위한 첫 걸음 제 1기 다문화강사 및 메토 수료식]

http://blog.naver.com/seefahrt80/14010505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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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말 하얀 말 단비어린이 그림책 2
차오원쉬엔 글, 치엔이 그림, 김선화 옮김 / 단비어린이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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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그림책을 읽어보았다. 제목은 『검은 말 하얀 말』. 중국의 대표적인 아동문학 작가라는 차오원쉬엔이 글을 쓰고 루쉰 작품 전집의 목판화로 매우 유명하다는 치엔이가 그림을 그렸다.

중국은 오랜 역사를 지닌 데다 문화적 자신감도 넘치는 나라다. 하지만 그 동안 나는 중국 작가의 글은 많이 읽어보지 못했고 게다가 중국의 아동문학은 처음으로 접해보는 참이어서 첫 시도로 어떤 책을 골라야 할 지 고민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마침 우연히 중국통인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다 그 분이 차오원쉬엔이라는 작가를 추천해 주셨고 마침 그 작가의 책 중에 최근 출간된 책을 읽을 기회가 생겨서 큰 고민 없이 '나의 첫 중국 아동문학책 독서 대상 작품'을 결정할 수 있었다.

아동문학은 말 그대로 아동을 독자로 하기 때문에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며 그 메세지를 전하는 방식이 굉장히 단순 명료하다. 이 책, 『검은 말 하얀 말』도 마찬가지다.

검은색과 하얀색. 한 눈에 봐도 확연히 대비되는 극과 극의 외모를 지닌 말 두 마리가 있다. 하지만 이들은 망아지 시절부터 함께 자라온 터라 둘도 없는 단짝 친구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전쟁이 터지고 이들의 운명은 갈린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이들은 다시 만나게 된다. 세월이 흐른만큼 이들의 처지도 달라졌고 그에 따라 이들을 대하는 주변의 시선도 달라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은 말과 하얀 말이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전에 아동문학가 김서정 선생님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 때 김서정 선생님이 전해주신 이런 저런 흥미로운 이야기 중에서 이런 것이 있었다. '아동문학은 실제로는 어른이 아동에게 특정 교훈을 전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든 이야기'라는 것. 물론 문화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 아이에게 어떤 아동 문학책을 사줄 지 선택하는 것은 어른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에 김서정 선생님의 말씀은 백 번 옳은 것 같다.

『검은 말 하얀 말』을 읽으면서 나는 위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리고 -중국의 아동문학책 딱 한 권 읽고 일반화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그래도 '중국의 대표적인' 아동문학가라는 사람의 글이므로 어느 정도 대표성은 띠고 있다는 가정 하에- 중국에서는 아이들에게 어떤 교훈을 심어주기를 원하고 있는 지, 혹은 중국인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사실, 이 책이 전하는 메세지는 요즘 우리나라에서 출간되는 많은 아동문학책이 강조하는 메세지와 대동소이했다. '한 존재와 존재 사이의 믿음은, 이들이 지닌 조건이나 상황이 변한다고 하더라도 그와는 상관없이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 바로 내가 『검은 말 하얀 말』을 읽고 난 후에 얻은 교훈. 아마도 모든 집단이 악을 물리치고 선을 행하자라는 구호를 외치면서도 집단에 따라 '악'과 '선'에 대한 정의가 달라 구호를 행동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차이가 발생하는 것처럼 같은 메세지라도 중국인들과 한국인들이 그 메세지를 받아들이고 이를 현실에 반영하는 방식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오랜만에 아동문학을 읽고 갑자기 너무 심각해져 버렸는데, 여하튼 이 책은 오히려 어른들이 읽어봄직한 책인 것 같다(사실, 삽화가 대체로 어두운 톤이라서 정말 어린 독자들은 이 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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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나의 멘토 - 현장에서 삶을 배우는 UNGO 활동가들
UNGO아카데미 강사진 엮음 / 책마루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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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GO(UN + NGO)에서 근무하는 것을 꿈꾸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나도 한 때는 이 분야에 관심을 많이 갖고 관련 단체 활동도 한 적이 있었기에 지난 7월에 'UNGO아카데미'가 진행되었다는 소식에 귀가 쫑긋해졌다. UNGO아카데미는 국제기구(UNHCR, IVI,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등), NGO(참여연대, 월드비전, 평화누리 등), 유관기관(KOICA 등)에서 근무하고 있는 분들이 강사로 나서서 이 분야에 관심을 지닌 학생과 실무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세미나라고 한다. 점점 더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어떤 일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지에 대한 실질적인 정보는 많은 편이 아니기에 UNGO아카데미에 참석해서 강사진으로 참여한 실무자들로부터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굉장히 소중한 경험이었을 것이라 믿는다. 게다가 나처럼 직접 세미나에 참여하지 못한 이들을 위해 강사진이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집필한 원고가 책으로 엮어져 나왔다는 소식에 기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세상은 나의 멘토』에는 전체 열 네 분의 강사 중에 열 세 분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한 분 한 분의 이야기가 소중한 깨달음을 주었고 그 깨달은 바라는 것은 비단 UNGO 단체에서 근무하는 실무자에게뿐 아니라 나처럼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이들에게도 실무자로서 어떤 자세로 맡은 일을 진행해야 할 지에 대한 조언을 해주었다.

한국 월드비전에서 홍보를 담당하는 김효정님의 이야기는 내가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라서 그런 지 굉장히 흥미로웠다. 특히 글을 잘 쓰고 사진을 잘 찍는 기술적인 능력만이 아니라 구호의 현장에서 아이들을 존중하고, 특히 본인들의 어려운 이야기를 해주는 인터뷰이를 배려하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말이 가슴에 남는다.

이은경님이 소개한 유엔글로벌콤팩트(UNGC, UN Global Compact)라는 단체의 역할도 매우 흥미로웠다. 지속가능개발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촉구하기 위해 발족된 자율적 국제협약기구인 유엔글로벌콤팩트의 활동과 점차 그 중요성이 확대되어 가는 PPP(Public-Private Partnership)에 대해 읽으면서 글로벌 개발협력에서 민관협력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이윤 추구를 목표로 움직이는 기업들의 관심을 어떻게 하면 사회적 책임을 간과하지 않으면서 이윤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움직여 갈 수 있을 것인지, 앞으로도 연구가 많이 필요한 분야인 듯하다.

한국국제협력단 ODA교육원에서 근무하는 박수연 님의 글도 마음에 남는다. 특히, 우리가 평온한 일상을 보내는 시간 동안에도 세계 어딘가에서는 누군가가 잔인하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고 억울한 일을 당할 수도 있는데 이러한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상생할 길을 모색하기는커녕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이 안타깝고도 무서웠다. 그리고 노르웨이나 스웨덴과 같은 북유럽 국가들의 원조 방법,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한 개발교육에 대한 소개가 아주 인상깊었다. 노르웨이의 경우 어린 시절부터 체계적인 시스템을 통해 국제사회의 문제와 전 지구의 미래에 대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다고 한다. 이런 교육을 받은 노르웨이의 아이들은 어른이 되었을 때 세계 시민으로서 성숙한 시민의식을 가지고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능동적으로 행동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아이들은 어떠한가? 한국의 불안정한 교육체계 속에서 잠 잘 시간까지 아껴가며 학교와 학원과 과외를 전전하며 머리로만 외우는 지식을 배우고 있는 한국의 어린 아이들이 나중에 과연 세계 무대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지 심히 걱정스럽다.

대한민국교육봉사단이라는 단체의 창설 단계에서부터 참여했던 최홍섭님의 이야기 또한 감동적이었는데, 씨드스쿨의 컨셉을 잡는 것부터 시작해서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이런 단체를 기획하고 운영해온 분들과 봉사자로 참여했던 분들께 존경스러운 마음, 금할 길 없다.

마지막으로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소속 장정욱 님의 글을 읽고는 나 스스로에 대한 반성을 많이 했다. 19세기 영국 사학자 로드 액턴은 '권력은 부패하고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고 했다고 한다. 권력을 가진 자의 서글픈 숙명이라고나할까? 그런데 현 상황에 불만을 품고도 그것을 제대로 비판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주인이 될 자격이 없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시민단체에서 진행하고 있는 권력감시운동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해주어 더욱 유익했다.

이외에도 하나하나 다 거론하기 힘들 정도로 처음부터 끝까지 굉장히 유익한 내용이 가득한 책이었다. 이 책을 다 읽고는 지인들에게도 한 번 읽어보라고 추천을 하고 있다. 지금보다 조금 더 당당한 세계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이 책에서 언급된 다만 몇 가지라도 마음에 새기고 일상 속에서 실천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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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큰롤 미싱
스즈키 세이고 지음, 권남희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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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대상에 대한 글을 써야 그 결과도 좋다고 했던가? 일본 패션업계의 모체라는 문화복장학원을 졸업하고 꼼데가르송 생산기획부, 문화복장학원 전임강사 등으로 일했던 경력이 있는 작가, 스즈키 세이고는 자신이 관심있고 그렇기에 가장 잘 아는 분야의 이야기를 『로큰롤 미싱』이라는 소설로 엮어냈다. 자신만의 개성을 담은 브랜드를 런칭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청춘들, 그리고 이들을 바라보며 제 인생의 방향을 잡아가는 또 한 명의 청춘의 이야기, 『로큰롤 미싱』이 그래서 일본의 저명한 문학상인 '미시마 유키오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회사 생활을 시작한 겐지는 오랫동안 꿈꿔오던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어 바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졸업, 취업 등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비교적 어린 나이에 자리를 잡고 사회인으로서 자신감을 갖기 시작한 겐지. 하지만 회사생활 3년 반 만에 그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의구심을 품고 살아가는 것을 더 이상은 견디지 못하고 결국 회사를 그만둔다.

겐지가 이런 결심을 하게 된 데에는 그의 고등학교 친구인 요이치의 영향이 컸다. 요이치는 친구인 쓰바키와 가쓰오와 함께 '스트로보 러시'라는 의류 브랜드를 만들어 본격적인 디자이너의 길에 도전한다. 겐지는 그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패션을 하고 그저 매일 허송세월 하는 것처럼 보이던 이들 셋이 어쩌면 그 동안 쉴 새 없이 열심히 달려온 자신보다 더욱 확실하게 '자신만의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무작정 달려가던 자신의 인생에 잠시 쉼표를 찍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6년 쯤 전에 일본 작가, 타케모토 노바라의 『시모츠마 이야기』라는 소설을 읽었다. 이 소설은 후카다 교코와 츠치야 안나가 주연으로 등장하는 『불량공주 모모코』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진 바 있다. 누가 뭐라해도 자신만의 패션 세계를 고수하는 모모코와 전형적인 폭주족 답지 않은 (그러나 결론은)폭주족, 이치고. 사회적인 관습에서는 살짝 비켜나 있지만 자신만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그것을 발전시켜나가는 두 소녀들의 이야기가 『시모츠마 이야기』의 뼈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나는 『시모츠마 이야기』를 읽으며 사람마다 꿈꾸는 성공은 다 다른 모습이고 어떤 성공이 또 다른 성공보다 낫거나 못하다는 생각은 금물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를 가르는 것은 오히려 '자신에게 맞는 미래를 찾았는가 그렇지 못했는가'라는 생각도 말이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났고, 나는 다시 한 번 유사한 메시지를 던져주는 소설, 『로큰롤 미싱』을 만났다. 그리고 덕분에 다시 한 번 내 인생의 중간점검을 할 기회를 누릴 수 있었다. 가볍에 읽어내려갈 수 있는 중편소설 분량의 짧은 이야기였지만 나에게 남긴 메세지는 자못 묵직하다. 게다가 이야기가 '겐지까지 합류한 스트로보 러시가 대박 브랜드로 성공했답니다'로 끝을 맺지 않아서, 더욱 현실적이고 더욱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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