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다 이야기 - 패션을 꿈꾸는 세계 젊은이의 롤모델 청소년 롤모델 시리즈 (명진출판사) 9
잔 루이지 파라키니 지음, 김현주 옮김 / 명진출판사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http://blog.naver.com/scarlet7392/80115251176

 

프라다 이야기 - 패션을 꿈꾸는 세계 젊은이의 롤모델

잔 루이지파라키니 지음/ 김현주 옮김

명진출판 2010 7 13

280쪽 223*152 mm (A5) 
 


 

명진출판의 청소년 롤모델 시리즈를 2권째 만났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고이병철 회장님의 '너의 이름보다는 너의 꿈을 남겨라' http://blog.naver.com/scarlet7392/80103208980

보다 더욱 도전의식을 받는 감명 깊은 책이네요.

 

미우치아 프라다, 그녀는 중산층 이상 꽤 잘 사는 집안 출신의 정치학 박사, 판토마임 배우, 이탈리아 공산당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프라다의 수석 디자이너가 되었을까요?

아버지의 성을 따라 미우치아 비안키라 하지 않고 미우치아 프라다라고 불리운 건, 두가지 성을 모두 따르다가 프라다 집안이 더 번성하자 그쪽 성을 따르게 된 거랍니다.

그럼, 프라다의 선택은 정치가, 배우, 공산주의자 보다 외할아버지의 가업을 물려받는 것이 훨씬 유익했기 때문이었을까요? 

엄마와 이모가 꾸리는 사업을 파산 직전에 물려 받아 오늘 세계패션의 거장이 된 프라다.

만약 유교사회의 우리나라였다면 '가파치' 라는 핸디캡을 메고 가문의 명예를 위해 초특급 엘리트가 패션가로 전향할 수 있었을지, 고앙드레김의 작품들로 명품 브랜드 대열에 끼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읽어내려갔습니다.

 

'꿈이 무엇이든 공부가 기본' 이라는데 프라다의 브랜드 스토리를 보면 역시 배운 사람이 좀 틀리다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앞서 '워너비 샤넬'  이 자꾸 떠올라 비교를 하게 되었는데, http://blog.naver.com/scarlet7392/80106863759 

프라다와 샤넬을 굳이 비교하자면 이렇습니다.

공통점은 남들이 생각하지 않은 소재를 사용하여 명품 대박을 터뜨린 것, 샤넬은 저지, 프라다는 포코노 천으로.

다른 점은 샤넬은 부모가 거의 버려서 고아원에서 자란 불우한 성장 환경을 가진 반면, 프라다는 (공산당원으로 시위대에 행열에 참여하면서 입생로랑을 입고 에메랄드 액세사리를 하여 눈길을 끌 정도로 ) 유복한 가정이었다는 점.

샤넬은 평생 결혼을 못하고 많은 연인들에게 도움을 받아 나홀로 사업에 성공한 것이 비하면, 프라다는 사업과 인생의 운명적인 만남이 베르텔리, 남편을 통하여 기폭점을 이루어졌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샤넬에게 안습;; 끌립니다만, 프라다의 신중함과 철저함과 자존심에 경의를 표합니다.

 

프라다 기업은 외손녀 미우치아 프라다에게서 '왜 가방은 반드시 가죽으로 만들어야 하냐' 는 반항으로 나일론, 포코노 천으로 가방을 만들어 빅히트를 시켜 글로벌 명품 제국을 이룹니다.

얻기도 힘든 탁월하게 좋은 소재의 가죽으로 튼튼한 가방을 만들어 왕가에 납품까지 하는것을 자부심으로 여긴 외할아버지의 자부심에서 시작한

 

프라다를 가문의 브랜드에서 세계적인 프랜드로 명품 신화를 써내려가기 까지 처음에가방에서 신발, 의상을 만들고 영화 의상을 제작하고, 정통 패션과 스포츠 컨셉을 접목 시키며 건축 및 다양한 예술 장르까지 프라다와 베르텔리 부부가 자존심 강하게 이끌어간 깐깐한 명품입니다.

남편 베르텔리는 천상 사업가였습니다.

프라다 재단, 프라다 그룹으로 컬렉션을 예술로 승화 시키고 프라다를 이탈리아 최초의 명품브랜드 기업으로, 프라다 제국 건설을 꿈꾼 베르텔리의 야심은 기어이 뉴욕과 도쿄 서울 등의 265개 프라다 매장을 본사가 직접 관리하는 패션의 명소를 만들었습니다.

패션 뿐 아니라 미술, 과학, 요트, 건축디자인 등 광범위한 분야에 투자하였고, 다양한 문화 예술 분야에 자문위원, 예술가, 프로젝터 등으로된 특수부대의 조언을 얻어 프라다는 단순히 패션 브랜드가 아니라 다양한 예술 활동과 연계된 도전적인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었습니다.

프라다 브랜드의 가장 큰 특징은 간결함입니다.

그리고, 유행을 거스르는 스타일이죠. 고급스러우면서도 편안한 스타일을 추구하는 프라다.

"어떤 옷을 입으세요?" 라고 물을 때 "프라다를 입어요."라는 대답은 제법 지적인 인물이라는 인상을 주며, 그래서, 지적인 엘리트 층에서 프라다브랜드를 상당히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프라다는 이렇게 말합니다, 섹시함의 본질은 지적인 모든 것에 있다고요.

역시 정치학도 엘리트의 기업이라 그런 걸까요?

옷을 너무 좋아하지만, 디자인이 전공이 아니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글로벌 명품 그룹을 탄생 시키기까지 저는 미우치아 프라다의 신중하면서도 기다릴 줄 알고 완벽주의면서 도전정신도 강한 완벽한 인내심을 저는 존경합니다.

컬렉션이 1차, 2차, 3차 실패하고, 나일론 가방이 전문가들의 냉소를 받으면서 누구라도 갈등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남의 말을 듣고, 다른 브랜드들과 비슷하게 카피해서 물건을 출시할까?하고 한번쯤은 약해졌지 않았을까요?

집안 내력이라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이 이런 때에 저력을 나타낸다고 생각합니다.

프라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자기가 하고싶은 것보다 가족들이, 집안에서 원하는 삶을 살아오면서도 자기 것을 포기하지 않고 갖고있는 노련한 인내심의 소유자였으니까요. 다른 아이들 처럼 밤늦게 까지 놀지도 못했고, 미니스커트를 부모님 알게 입고 다니지도 못했습니다.

이런 절제가 어릴적 교육에는 필요하다 생각이 듭니다.

엄한 가정교육에도 불구하고 프라다는 자기주장이 강하여,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가 예술고등학교로 전학을 하고,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면서도 판토마임을 계속 배운 걸 보면, 그녀가 얼마나 자신이 사랑하는 것에 집착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저는 프라다의 세컨 프랜드명이 왜 '미우미우' 인지 이 책을 읽으면서 알았네요, 미우치아 프라다의 어릴적 공상속의 자신이군요 ^^

어릴 적에 낮잠 안자고 공상을 즐기던 그녀가 그때 만들어낸 '미우미우'를 브랜드화한 걸 보면 그녀는 정말 주도면밀하고 야심찬 여자입니다.

또 아무리 미우치아가 똑똑하고 강한 여자래도 남편 베르텔리의 사업가적 도전정신이 아니면 오늘날 프라다는 없었을 겁니다.

두 부부는 사과를 반으로 쪼개어 놓은 것처럼 완벽한 1쌍의 하모니니까요.

참 남편복 많은 것도 부러운 프라다입니다 ㅎㅎ

부부가 같은 회사에서 같이 일을 30년간 하면서 가문브랜드를 글로벌화 시킨다는 것이 상상하기도 힘든 신화, 그것이 프라다입니다.

어떻게 이탈리아 공산당원, 밀라노 대학 정치학도가 소비를 조장하는 명품 브랜드의 수장이 되었을까요?

"미우치아는 가난한 우익보다 부유한 좌익이 훨씬 더 사회에 이익을 준다는 것을 아주 우아한 방식으로 확인시켜준 대표적인 사람"  예술 사학자인 플라비오 카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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