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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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에 아는 동생이 ˝여러분 봄밤 읽으세요. 봄밤. 소설이 이렇게 아름다운겁니다!˝ 라고 이야기했을 때 귀담아 듣지 않은 것이 이 책을 만나고 너무 미안해졌다.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 나 또한 온 마음을 다해 외치고 싶다. ˝여러분! 안녕 주정뱅이를 읽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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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빛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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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책방을 통해 알게 된 책이에요.
소설을 읽느라 밤을 새운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환상의 빛 덕분에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었어요.
마지막 책장을 덮고도 내내 마음이 아프고 읽었던 문장들이 마음에 남아 있었어요. 지금은 주변에 많은 사람들에게 환상의 빛을 추천하고 있어요. 겨울에 더 잘 어울리는 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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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불완전한
이충걸 지음 / 생각의나무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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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항상 같은 패턴이었다.  비밀을 쥐고 있는 사람이 강자일 수 밖에 없다. 나는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그 비밀에 매료되었다. 나는 너와 대화를 하고 웃고 있지만 넌 나를 절대 알 수 없다라고 말하는 그런 눈빛들. 나는 파블로프의 개 처럼 그들의 모든 것에 침을 흘리며 반응했다. 무서운 일이었다. 언제부터 그런 패턴이 생겨난 것일까?  대개 나의 인간관계는 딱 그 지점에서 시작되었다. 궁금하지 않은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다. 어떻게 관계가 형성된다고해도 깊이있는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내가 공들이고 애쓴 시간이 허사로 돌아갈까봐 그 사람의 비밀을 알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오히려 고개를 돌린 적도 있었다. 그리고 내가 만들어 놓은 환상 속에 그 사람을 가뒀다. 그 환상은 결국 나로인해 깨지게 되어 있었다. 모든 관계는 비밀이 사라지면 파국을 맞는다. 내가 누군가의 비밀에 매료되듯 어떤 이도 나의 비밀에 목을 맸다. 제발 당신은 어떤 사람인지 알려달라고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나는 솔직히 말하면 비밀이 없는 사람이었다. 비밀이 있어보이는 얼굴을 하는 건 그저 우울한 기질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잘 웃지않는 내 얼굴에서 비밀이 있다고 믿었다. 우스운 일이었다. 나는 그럴 때 마다 고개를 돌렸다. 그들은 그런 나에게 더 열광했다. 아, 우습고 우스운 일이었다.  

 나에게 이충걸이라는 사람은 비밀을 쥐고 있는 사람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 처럼 나 또한 그가 궁금했다. 하지만 내가 알아낼 수 있는 건 다른 사람들도 알 수 있는 것들이었다. GQ를 통해서, 트위터를 통해서 그가 쓰는 글을 읽을 때 마다 궁금했다. 도대체 이 많은 단어들이 어떻게 모두 적절한 자리를 찾아 배치되어 있을까? 그의 글은 그의 전공대로 하나의 건축물 같았다. 단어를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화려하고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건축물을 만들어냈다. 그럼에도 나는 뭔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어느 날 트위터를 통해 140자 가득히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 나는 그 것이 비밀의 문을 여는 열쇠라고 생각했다. 왜 모든 실수는 내가 ...을 안다 라는 데서 비롯된다. 나는 그를 알게 됐다.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그의 소설책이 나왔다. 소설책이 나온다는 사실부터가 새로웠다. 소설을 쓰는 사람이었구나. 시를 썼다면 그냥 고개를 끄덕였을 수도 있다. 그의 트위터는 한 편의 시집같았으므로. 그런데 소설이었다. <완전히 불완전한> 나는 실수를 인정했다. 나는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나는 8편의 소설을 둘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분류는 완전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분류다.)<완전히 불완전한>, <이멜다 마르코스의 항변>, <작별의 예식>은 그가 쓸법한 이야기라고 예측 가능한 것 이었다. 예측가능한 것이 식상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이충걸이라는 사람을 통해 익숙해 온 그의 어휘와 환경 등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소설적 이야기라는 것이다.  나머지 <우주인>, <좋게 헤어지는 건 없다>, <발광하는 입술>, <성년의 날>,<요리수업>은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였다. 그 중에서도 <우주인>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이 부분에서 남자 작가가 어떻게 사산하는 여자에 대해 이렇게 세밀한 묘사가 가능하냐는 질문은 촌스러울 것이었다. 소설은 경험한 것만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살인을 저질러봐야 살인에 대해 쓸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처럼. 다만 그는 그 여인이 느꼈을 그 과정을 너무나 세밀하게 그려냈다. 그 공포와 간절함, 두려움과 혼란스러움 등을 그의 문체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었고, 마지막에가서는 그 여인과 같은 심정이 되어버렸다.  

 <좋게 헤어지는 건 없다>,<발광하는 입술>,<성년의 날>,<요리수업>은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이 생각났다. 그건 내가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을 읽은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레이먼드 카버가 포착해내는 일상은 놀라웠다. 나는 거의 모든 일상을 하나로 뭉뚱그려 생각하고 있었다. 특별히 기억나는 단편적인 장면이 없는 것은 월화수목금이 보여주는 모습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눈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4개의 단편에서는 일상의 한 순간을 맛깔나는 요리처럼 하나하나의 맛이 느껴지게 그려냈다. 이혼을 선전포고받은 남편의 일상으로, 첫 섹스를 앞 둔 20살의 일상으로, 노래 공포증이 있는 여인의 일상으로, 요리를 시작하는 사람의 일상으로.  숙련된 배우의 모습이었다. 어느 상황에서도 금새 표정을 바꿀 수 있는 배우.  

 

 확실히 나는 예상가능한 소설보다 예상할 수 없었던 소설들에 마음을 빼앗겼다. 이것은  '남들은 모르는 것을 알려줘! 네 마음에 가장 깊숙하고 어두운 방에 있는 이야기를 들려줘!' 라고 징징대는 나의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아, 그런데 이 소설책을 다 읽고나니 그를 더 모르겠다. 매력적인 사람. 아마 절대 비밀을 말해주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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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 - 그해, 내게 머문 순간들의 크로키, 개정판
한강 지음 / 열림원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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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팬이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친구는 여수의 사랑을 읽고 느꼈던 감동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그 책을 꼭 읽어보라고 했다. 도봉도서관에서 그 책을 읽으면서 나는 친구가 말했던만큼의 감동을 느낄 수 없음에 안타까워했다. 돌이켜보니 나는 그 때 그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한강을 다시 읽게 된 것은 '그대의 차가운 손'부터였다. 그 소설을 시작으로 '채식주의자'까지 읽어내려갔다. 그러는 동안 나는 눈물나게 그녀가 부러웠다. 이런 문장을 쓸 수 있다는 것이 미치도록 부러웠다. 그녀를 딱 한번 실제로 본적이 있었는데 그녀는 그야말로 식물같은, 나무같은 여자였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다른 세계에 있는 것 같은, 그녀곁에 흐르던 차분한 공기를 기억한다.
그녀의 소설을 사랑했기 떄문에 에세이 또한 궁금했다. 그런데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은 읽으려고 할 때 마다 절판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결국 대학교 도서관에 와서야 그렇게 읽고 싶던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우울한 복학생같은 신입생인 나는 검은 점퍼를 입고 혼자 교정을 누볐다. 창가 도서관에 앉아 그녀의 산문집을 읽으면서 나는 이곳이 아이오와, 그녀가 삼개월간 있었던 곳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국땅이나 모국땅이나 외로움은 차별을 두지 않고 찾아왔다. 지금 나에게 지독히도 외로운 공간, 바로 오후의 학교 도서관이었다.

늦은 가을 어느 날, 이제는 이름을 잊은 한 여성 시인의 시 낭송회가 강당에서 열렸던 것을 기억한다. 빈 자리가 없어 출구로 나오고 있었는데, 복도 끝에 꼿꼿이 선 채 시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에란디스를 보았다. 그 거대한 여자의 얼굴에 어린 빛, 은은한 미소, 강단에 선 시인보다 더 강하게 전해져 오던 그녀의 존재감을 나는 기억한다.
그렇게 읽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정신이 허공에서 에너지로 만나는 순간, 텍스트와 목소리, 감정과 표정이 한덩어리가 되는 순간을, 그 시절 그 숱한 낭송회들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경험할 수 있었을까. 그 작은 도시에서 서툰 영어로, 연고도 전혀 없던 내가 그 생활을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문화적으로 풍요한 공기-지금의 서울보다 숨쉬기 편안한- 때문이었다는 것을 결국 나는 부인하지 못하겠다. (122-123p)


바로 어제 나도 처음으로 소설 낭독이라는 것을 해봤다. 사실, 긴장감이 극에 달해 그대로 화장실로 뛰어가고 싶은 순간, 내 차례가 돌아왔다. 그런데 화면을 띄우고 음악이 흐르고, 인쇄되어 있는 내 소설을 읽는 순간 거짓말같은 정적이 찾아왔다. 소설을 읽는 동안, 3분여간의 시간동안 나는 소설 속에 있었다. 주인공들이 느끼는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고, 그래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들은 내가 만들어낸 인물들이 아닌, 그저 이 세상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것만 같은 이들이었다. 낭독이란 것은 그 동안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을 경험하게 해 주었다.
그래서 산문집에서 읽었던 낭독의 시간이 더 고스란히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다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텍스트를 경험하고, 그 안에서 뿜어져나오는 감정의 덩어리를 공유한다는 것이 얼마나 신비로운 일인가.

금요일, 어리둥절한 채로 보낸 한 주였다. 모든 것이 너무 급하고, 빠르게 지나갔다. 30여분 남짓이었지만 산문집이 나에게 주었던 여유, 그 따뜻함을 꽤 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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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이 눕는다 - 김사과 장편소설
김사과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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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책을 조금씩 아껴가며 읽는 것이 어렵다. 마음에 들고 눈길을 사로 잡으면 딱 하루면 충분하다. 어떻게 해서든지 하루만에 읽고야 만다. 읽고 싶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렇지 않은 책은 결국 끝을 보지 못하거나 억지로 질질 끌며 끝을 보지만 석연치 않은 경우가 많다. 오랫만에 하루만에 읽은 소설이 있다. 김사과의 장편소설 '풀이 눕는다'였다.
 고백하건대 나는 김사과라는 작가를 좋아하지 않았다. '미나'라는 소설 때문이었는데 어쩐지 나는 그 소설을 두장만에 덮어버렸고 내가 좋아할 수 없는 이야기와 문체라고 단정지어 버렸다. (신문 인터뷰에 소개된 그녀의 차가워 보이는 눈매도 어쩐지 마음을 쉽게 열지 못하게 만드는 것에 한 몫했다.)
 그런데 '풀이 눕는다'는 단숨에 읽었다. 그리고 내가 요즘 부쩍 조급해진 이유를 찾았다. 나는 그녀와 풀이 했던 사랑을 하지 못할까봐 불안해 하고 있었다. 스스로도 나이가 들 수록 나는 보통의 인간 집단에 점점 편승하게 될 것이며 지금보다 더 눈치를 보고 현실과 타협할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조금이라도 어릴 때 풀과 그녀가 했던 사랑을 해야 한다는 조바심을 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문학상에서 상을 하나 받은 소설가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 이후로 그녀는 소설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집안에서 무용지물의 인간이었다가 소설상을 받고나자 그 동안의 쓸모없었던 행동들을 소설가가 되려고 그랬구나. 라는 말로 인정받는다. 그녀의 동생은 옷을 파는 인터넷 쇼핑몰로 엄청난 돈을 벌게 되고 그녀의 부모님과 그녀 모두 동생에게 기생하는 삶을 산다.
 어느 날 '나'는 길을 걷다가 '풀'을 만난다. 그리고 처음 보는 그를 따라간다. 무작정 따라가 그에게 말을 건다. 처음에는 그도 이상하게 '나'를 바라봤지만 이내 길을 되돌아 온다. 그렇게 둘은 연인이 된다. 그가 초록을 좋아하고 풀을 좋아해서 '나'는 그를 '풀'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집을 나와 풀의 옥탑방으로 들어온 '나'는 풀과 산다. 풀은 그림을 그리고 나는 시를 쓴다. 풀과 나는 돈 버는 일은 모두 그만두고 서로에게 집중한다. 사랑하는 일 외에는 하지 않는다. 하루종일 걷고, 맥주를 마시고, 그림을 그리고, 대화를 하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이 거대한 괴물같은 세상은 돈이 없으면 단 며칠도 버틸 수 없게 만든다. 금새 월세가 밀리고, 공과금 고지서가 쌓인다. 풀이 돈을 벌러 나가고 혼자 남겨진 나는 적막한 옥탑방을 견뎌낼 힘이 없다. 그래서 술을 마신다. 술을 마시고 또 마신다.

'사랑 안에서 굶어 죽겠다. 아름답게. 그게 내 꿈이었다.'

 우리는 사랑의 무게로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자신을 속인다. 하지만 사랑이 750원짜리 컵라면 보다 못한 순간이 온다. 그럴 때 눈물이 날 만큼 생이 하찮아 보인다. 결국 사랑은 모든 것을 해결 할 것처럼 그 동안 우리에게 그려졌지만 정작 아주 작은 것도 해결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꺼이 나를 속이고 싶었다. 길고 긴 (어쩌면 짧을) 생에서 딱 한번만은 그런 사랑에 아주 처절하게 속아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이다. 내 생이 칠십평생이라면 칠십평생 동안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어서 거대한 빌딩 숲에서 빅브라더스의 노리개로 살고 싶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쯤은 그들의 지시에 역행하는 삶, 보란 듯이 혀를 내밀고 그들을 조롱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결국은 그들이 또 이기게 되겠지만(이 사회를 사는 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순히 굴복하진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것이 예술이라고 믿고, 사랑이라고 믿는다.
 미친 사랑에 매혹되는 것은 그것이 그동안 나에게 없었던 무모함과 용기를 실어주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지금 그런 용기가 진정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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