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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불완전한
이충걸 지음 / 생각의나무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결국 항상 같은 패턴이었다. 비밀을 쥐고 있는 사람이 강자일 수 밖에 없다. 나는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그 비밀에 매료되었다. 나는 너와 대화를 하고 웃고 있지만 넌 나를 절대 알 수 없다라고 말하는 그런 눈빛들. 나는 파블로프의 개 처럼 그들의 모든 것에 침을 흘리며 반응했다. 무서운 일이었다. 언제부터 그런 패턴이 생겨난 것일까? 대개 나의 인간관계는 딱 그 지점에서 시작되었다. 궁금하지 않은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다. 어떻게 관계가 형성된다고해도 깊이있는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내가 공들이고 애쓴 시간이 허사로 돌아갈까봐 그 사람의 비밀을 알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오히려 고개를 돌린 적도 있었다. 그리고 내가 만들어 놓은 환상 속에 그 사람을 가뒀다. 그 환상은 결국 나로인해 깨지게 되어 있었다. 모든 관계는 비밀이 사라지면 파국을 맞는다. 내가 누군가의 비밀에 매료되듯 어떤 이도 나의 비밀에 목을 맸다. 제발 당신은 어떤 사람인지 알려달라고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나는 솔직히 말하면 비밀이 없는 사람이었다. 비밀이 있어보이는 얼굴을 하는 건 그저 우울한 기질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잘 웃지않는 내 얼굴에서 비밀이 있다고 믿었다. 우스운 일이었다. 나는 그럴 때 마다 고개를 돌렸다. 그들은 그런 나에게 더 열광했다. 아, 우습고 우스운 일이었다.
나에게 이충걸이라는 사람은 비밀을 쥐고 있는 사람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 처럼 나 또한 그가 궁금했다. 하지만 내가 알아낼 수 있는 건 다른 사람들도 알 수 있는 것들이었다. GQ를 통해서, 트위터를 통해서 그가 쓰는 글을 읽을 때 마다 궁금했다. 도대체 이 많은 단어들이 어떻게 모두 적절한 자리를 찾아 배치되어 있을까? 그의 글은 그의 전공대로 하나의 건축물 같았다. 단어를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화려하고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건축물을 만들어냈다. 그럼에도 나는 뭔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어느 날 트위터를 통해 140자 가득히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 나는 그 것이 비밀의 문을 여는 열쇠라고 생각했다. 왜 모든 실수는 내가 ...을 안다 라는 데서 비롯된다. 나는 그를 알게 됐다.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그의 소설책이 나왔다. 소설책이 나온다는 사실부터가 새로웠다. 소설을 쓰는 사람이었구나. 시를 썼다면 그냥 고개를 끄덕였을 수도 있다. 그의 트위터는 한 편의 시집같았으므로. 그런데 소설이었다. <완전히 불완전한> 나는 실수를 인정했다. 나는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나는 8편의 소설을 둘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분류는 완전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분류다.)<완전히 불완전한>, <이멜다 마르코스의 항변>, <작별의 예식>은 그가 쓸법한 이야기라고 예측 가능한 것 이었다. 예측가능한 것이 식상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이충걸이라는 사람을 통해 익숙해 온 그의 어휘와 환경 등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소설적 이야기라는 것이다. 나머지 <우주인>, <좋게 헤어지는 건 없다>, <발광하는 입술>, <성년의 날>,<요리수업>은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였다. 그 중에서도 <우주인>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이 부분에서 남자 작가가 어떻게 사산하는 여자에 대해 이렇게 세밀한 묘사가 가능하냐는 질문은 촌스러울 것이었다. 소설은 경험한 것만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살인을 저질러봐야 살인에 대해 쓸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처럼. 다만 그는 그 여인이 느꼈을 그 과정을 너무나 세밀하게 그려냈다. 그 공포와 간절함, 두려움과 혼란스러움 등을 그의 문체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었고, 마지막에가서는 그 여인과 같은 심정이 되어버렸다.
<좋게 헤어지는 건 없다>,<발광하는 입술>,<성년의 날>,<요리수업>은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이 생각났다. 그건 내가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을 읽은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레이먼드 카버가 포착해내는 일상은 놀라웠다. 나는 거의 모든 일상을 하나로 뭉뚱그려 생각하고 있었다. 특별히 기억나는 단편적인 장면이 없는 것은 월화수목금이 보여주는 모습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눈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4개의 단편에서는 일상의 한 순간을 맛깔나는 요리처럼 하나하나의 맛이 느껴지게 그려냈다. 이혼을 선전포고받은 남편의 일상으로, 첫 섹스를 앞 둔 20살의 일상으로, 노래 공포증이 있는 여인의 일상으로, 요리를 시작하는 사람의 일상으로. 숙련된 배우의 모습이었다. 어느 상황에서도 금새 표정을 바꿀 수 있는 배우.
확실히 나는 예상가능한 소설보다 예상할 수 없었던 소설들에 마음을 빼앗겼다. 이것은 '남들은 모르는 것을 알려줘! 네 마음에 가장 깊숙하고 어두운 방에 있는 이야기를 들려줘!' 라고 징징대는 나의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아, 그런데 이 소설책을 다 읽고나니 그를 더 모르겠다. 매력적인 사람. 아마 절대 비밀을 말해주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