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정하고 앉으면 정말 머리가 깨끗하게 초기화된다. 그야말로 '깨끗하게! 맑게! 자신있게!' 초기화된다. 이야기의 조각도, 하다못해 부스러기도 보이지 않는다. 써야한다는 강박관념과, 쓰고 싶다는 욕심과, 쓸 수 있을까?라는 불확신 등이 결합되어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있다. 결국 나는 쓰레기 같은 소설 한 편으로 쥐꼬리만한 상을 받고 노벨상 같은 우월감을 느끼고 몇 개월 간 한 장도 쓰지 못하고 있었다. 그건 정말 우스운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쓰지말자고 다짐한다고 해서 되는 일도 아니다. 그럴 때는 더 쓰고 싶다. 쓸 수 없는 상황에서는 머릿속이 와글와글거린다. 모두 머릿속에서 한마디씩 떠든다. 등장인물들은 셀 수 없이 많다. 나는 고결한 문학의 숨결을 느끼는 사람에서부터 저질, 삼류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기도 한다. 사실 쓸 수만 있다면 야하고 더러운 소설을 한번 써 보고 싶다. 이것은 어떤 탈출구가 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야한 경험도, 더러운 경험도 가지고 있는 것이 없다. 쓸래야 써볼 것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읽거나 본 것을 쓰자니 그것은 어떤 느낌인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내가 왜 이런 쓸데없는 자기 고백을 이곳에 털어놓고 있는지 모르겠다. 요즘 책 말고는, 이야기 말고는 나를 위로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러고보니 책이 눈으로 빨려들 때는 분명 외로운 시기다. 이전에도 그랬다. 이야기가 공급되고, 또 그 만큼 나에게서 쏟아지길 원한다. 아직 공급이 덜 된 것인지 (하긴, 충분히 공급되려면 얼마의 시간이 더 필요할지는 계산도 되지 않는다.) 들어가기는 해도 나오지는 않는다.
난 요즘 이야깃 거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