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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산것과 죽은것 - KARL MARX
JON ELSTER / 문우사 / 1992년 2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마르크스의 사상 가운데 오늘날 유효하게 계속해서 연구될 수 있을 만하게 살아남은 것은 무엇이며, 그렇지 않고 현실 적합성을 잃었거나 아니면 애초에 오류였던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틀렸다면 왜 틀린 것인지 그 이유까지 명확하게 설명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책 제목은 10장 ‘마르크스의 철학에서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 서두에 나오는 것처럼 크로체의 책인 ‘헤겔의 철학에서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은 무엇인가?’에서 따온 듯하다.
1장 ‘서론’의 앞부분을 보면 저자의 의도가 적나라하고도 매우 진실하게 잘 나와 있다. 저자의 말을 직접 인용해보자; “오늘날 마르크스주의자가 되는 것은 가능한가? 이 책의 전반적인 목적은 독자들의 이 같은 질문에 답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 학술적인 글에서는 물론이거니와 개인의 사회에 대한 가장 진실하고 진지한 고민을 나누는 술자리에서의 대화에서도 이제 마르크스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이 무언가 한물 간 구닥다리를 애써 부여잡으며 놓지 않으려는 시대착오적인 외통수인 것마냥 찜찜하게 느껴지는 요즘, 여전히 마르크스주의자임을 고수하려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리적 선택론에 익숙한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의미있게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난처한 물음에 정직하게 답하려는 시도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인 이유에서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이유에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되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말 인용). 그리하여 저자는 합리적 선택론에 익숙한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정말로 마르크스의 사상적 유산들 가운데 지적인 부분은 물론 도덕적인 부분들까지 현실 적합성을 상실했는지를 정직하고도 엄격하게 조사하여 그 결과물을 독자에게 제시해주고 있다. 저자의 결론은 합리적 선택론에 익숙한 ‘많은 사람들’의 주장이 부분적으로는 맞고 부분적으로는 틀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지적인 이유에서’ 마르크스주의자가 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은 맞지만, ‘도덕적인 이유에서도’ 마르크스주의자가 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은 틀렸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사상에 대해 마르크스 사후 축적된 학문적 성과를 적용하여 엄격한 논증을 가했을 경우, ‘사실’을 설명하는 ‘과학적’ 이론에 해당하는 부분은 대부분 오류임이 드러났지만, 규범적 가치를 표현하고 일깨우는 ‘도덕적’ 이론에 해당하는 부분은 여전히 현실 적합성을 지녔다는 것이다, 바로 합리적 선택론자들에 대해서도!! 즉, 마르크스의 도덕적 이론은 살아있고 과학적 이론은 죽었다. 그렇다면, 살아있는 마르크스의 도덕적 이론에 속하는 것들과 죽은 마르크스의 과학적 이론에 속하는 것들로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는지 궁금하지 않는가.
과학적 사회주의, 변증법적 유물론, 목적론과 기능주의, 노동가치이론과 이윤율 하락론으로 대표되는 마르크스 경제이론은 죽었다. 반면에, 개인이익이 집단이익과 갈등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죄수의 딜레마와 같은 자기 패배적 합리성에 주목하는 변증법적 방법 자체, 자아실현에 대한 소외이론, 분배정의와 관련되는 착취론, 기술과 이윤 그리고 자본가의 기술선택에서의 무임승차 문제를 다루는 기술변화 이론, 계급투쟁이론 등은 살아있다.
번역은 무난한 편이며, 저자의 문제는 명료하다. 특히 착취론에서 착취 자체는 도덕적으로 불의한 것이 아니고 다만 ‘강요’에 의해 그러한 착취를 일으키는 조건이 불의한 것임을 논증하는 대목이 백미로 느껴진다. 다만, 노동가치이론을 다루는 부분에서 이윤율을 “S/(C/V)” 라고 정의하는 부분은 오자이거나 역자의 실수인 듯하다. “S/(C/V)”가 아니라 “S/(C + V)”가 앞뒤 문맥상 정확한 표기로 보인다. 이러한 몇 가지 사소한 결점에도 불구하고, 합리적 선택론에 익숙해 있으면서 마르크스 사상을 처음으로 이해해보려고 시도하는 독자라면 꼭 이 책을 읽어볼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