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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사기 - 포스트모던 사상가들은 과학을 어떻게 남용했는가
앨런 소칼, 장 브리크몽 지음 | 이희재 옮김 / 민음사 / 200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집필 의도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쉽게 통칭할 수 있는 일단의 문필가들의 특징인 모호한 언어 사용과 비합리성 선호에 대해 그 위험성을 독자에게 일깨우고자 함이다. 일단 철학자들이 자연과학적 내용을 잘못 사용했다고 치자. 문제는 왜 물리학과 교수가 그것을 비판하려고 하는가이다. 저자들의 의도는 인문학계의 슈퍼스타들이 사실은 기본적인 수학조차 잘 못한다는 자연과학적 무능력을 지적하고자 함이 아니다.('수학도 못하는 것들이 말만 많아가지구?' 식의 속좁은 타박이 결코 아니다.) '포스트모던'적 글을 쓸 때에도 최소한 지적인 정직과 합리성은 지켜야 하는데 일부 '인문학'계의 슈퍼스타들이 지적인 허영이나 부정직, 비합리성의 산물로밖에 보이지 않는 글을 썼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하고자 함이다.
모호하거나 비합리적인 방식으로 글을 씀으로써 진실에 걸맞지 않게 사상적 심오함의 분위기를 연출하려는 뻔뻔스러운 일부 지식 엔터테이너 슈퍼스타들의 '지적 사기' 행각을 폭로하겠다는 것이지, 학자들의 밥그릇 싸움이 결코 아니다. 자기가 무슨 말하는지도 모르고 지적 쓰레기만 양산해내면서 모순과 비합리적 언어 사용을 통해 신비와 심오함을 가장하여 허위적 권위를 '생성'해 혹세무민하려는 마술사들의 가증스러운 뻔뻔함이여! 거기다, 그 마술사들을 좇아 위험한 사기술을 따라하려는 분별력 없는 학생이나 신참 연구자들의 철없음이라니. 그렇다면, 위대한 인문학적 문필가 라깡이나 들뢰즈, 가따리 등이 어떤 지적 사기 행각을 저질렀고, 그것들은 또 어떤 의미에서 진정 사기란 말인가.
우선 저자들은 전문적 식견을 가지고 있는 물리학과 수학 관련 내용으로만 비평을 제한하고 있다. (다른 학문의 용어들을 차용하려거든 '제대로' 이해해서 잘 사용하거나 아니면 새로운 비유체계를 개발해서 책임감 있게 사용하거나 하라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들의 비판을 '인문학과 자연과학이라는 두 문화의 충돌'이라거나 '제너럴리스트와 스페셜리스트 사이의 충돌'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
우선 라깡은 그 어렵디 어렵기로 소문난 위상수학의 용어들을 빌어와 정신분석적 글에 자유롭게 써먹는다. 문제는 라깡이 위상수학의 용어들을 이용해 진술한 문장들이 '원래의' 위상수학적 내용에 비추어볼 때 대부분 헛소리이며, 의미있는 일부는 진부하다는 것이다. 들뢰즈 역시 극한과 미적분에 관련된 용어들을 사용하는 대목에서 극히 부정확하거나 전혀 의미가 없는 헛소리를 나열하기 일쑤이다. 간혹 유의미한 논리를 펼치는 가상함을 보이기도 하나 이것들 역시 코시와 바이어슈트라스에 의해 이미 해결된 문제를 들뢰즈는 과거 뉴턴 시대로 돌아가 또다시 헤매고 있을 뿐이다.
문제는 라깡이나 들뢰즈 등이 어려운 수학적 용어나 이론들을, 별로 필요하지도 않은데도 굳이 사용함으로써 수학에 문외한인 독자들의 기를 쓸데 없이 팍팍 죽이면서도, 부정확하거나 잘못되거나 진부한 방식으로 수학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라깡이나 들뢰즈가 수학을 그저 '비유적'으로 사용했다 하더라도'어떤' 비유적 맥락에서 '새로운' 의미로 수학을 사용한 것인지 일언반구도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얄팍하게 그것도 잘못 이해한 자연과학적 용어들을 사용함으로써 자연과학의 권위를 빌려 자기의 인문학적 텍스트의 권위를 높이려는,그러면서도 추후 벌어질 수 있는 사기 논란의 책임을 피해가려고 모호하게 언어를 사용하여 발뺌 구실을 만들어놓는 일부 뻔뻔스러운 문필가들의 무책임한 행동을 고발한다는 저자들의 양심선언을 적극 지지한다. 모호한 시적 글쓰기를 좋아하고, 합리성보다는 비합리성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저자들의 합리성 편향적 태도를 비판하는 것은 어리석다. 저자들이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합리성과 확실성의 권위를 누리려고 하면서 그에 필요한 합리적이고 정확한 글쓰기 노력을 다하지 않는 '무책임성'과 '비정직성'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