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 최후의 19일 1
김탁환 지음 / 푸른숲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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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멸>을 읽고 난 후 느꼈던 깊은 마음의 흔들림을 잊지 못하여
약간은 조급해하는 마음으로 김탁환씨의 소설 "허균~"을
읽었다. 내 내면의 시선의 이끌림은 이번에도 역시 일어나고 말았다.

김탁환씨가 연이어 발표하고 있는 역사 소설들은 지극히 중요한
주제를 효과적으로 리얼하게 인간의 내면 갈등과 고뇌를 통하여
잘 형상화하고 있다고,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생각된다.
이 소설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은
"서로가 서로에게 기쁨이 되는 사회"를 만들어보자는 허균의 내면적 바램이었다.
임진왜란이라는 전쟁을 통해 아내와 자식까지 잃는 크나큰 쓰라린 아픔을 겪고,
또 조선 팔도의 명산과 명승을 탐방하며 신선이 된 듯한 자유로움을 누리고,
여러 지방의 유명한 기생들과의 자유 분방한 연애를 실컷 해보고,
공맹 사상은 물론 노-불 사상까지 접하며 인생의 궁극적 진리를 깨치려 하고,
인생의 여러 가지 감정들을 노래하는 아름다운 시를 짓고,
마음이 통하는 어여쁜 첩 추섬과 애틋하고 각별한 사랑을 나누면서도
이 모든 인생의 달고 쓴 맛을 뼛 속 깊숙히 맛보았으면서도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내면의 강고한 바램,
바로 사람이 사람을 사람답게 대접해주는 제대로 된 정치-사회를
만들어보고자 하였던 간절한 소망을 이 소설의 허균은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세상을 탈(脫)하여 영원과 불변의 세계로 들어가 편히 쉬고자 하여도
여전히 그렇게 하지 못하고 속세에 남겨진 다른 인간들의 아픔과 슬픔을
함께 느끼고 그 고통을 줄일 수 있는 속세의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 인간의 가장 따뜻하고 진실한 마음이 어떤 것일까
하는 물음에 대한 한 가지 리얼한 대답의 시도가 바로 이 소설의 집필과 독서
의미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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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 1
김탁환 지음 / 미래지성 / 199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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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에서 현재 상영중인 '무인시대' 후속작품으로 '이순신' 100부작을 방영할 예정인데 그 내용은 소설 <칼의 노래>와 <불멸>을 바탕으로 한다는 기사를 읽고 이 책 <불멸>의 제목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그 이후 어떤 다른 소설가가 <불멸>에서 김탁환씨는 영웅 이순신을 부당하게 너무 깎아내렸다면서 비판했다는 모 인터넷 신문 기사를 통해 <불멸>이라는 제목을 두 번 접하게 되었다. <방각본 살인사건>이라는 최근 출간된 책의 저자가 바로 김탁환이였기에 '김탁환'이라는 이름은 이미 내 귀에 익어 있었는데 바로 그 김탁환씨가 이순신에 대한 소설을 썼다는 것을 들으니 귀가 정말 솔깃해져서 <불멸>을 읽어보게 되었다.

한문을 잘 몰라서 조선 시대 역사서나 당시 선각자들의 저서를 직접 읽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본인과 같은 독자들에게 <불멸>은 친절하게 한글로 그 시대의 대표적 지식인들과 군왕, 정치가, 장수들의 고민과 생각을 잘 그리고 재미있게 풀어서 이야기해주는 역사소설의 진수라고 할 만 하다. 물론, 저자인 김탁환씨의 주관적 역사 해석 한쪽으로만 독자가 일방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여야 하는 위험도 있긴 하므로, 잘 가려서 읽도록 노력해야 하겠지만.

작가가 책 머리글에 그 소설을 창작하게 된 경위를 간략하게나마 충분히 잘 소개해두었다. 죽음 앞에 무력한 인간이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은 곧 그 인간이 불멸을 믿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어느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소설은 시작되는데, 바로 책 제목 '불멸'이 작가의 책 전체적인 집필 의도를 잘 드러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영웅 이순신, 간사한 원균, 음흉하고 권모술수 가득한 권율, 괴팍하고 비정상적인 것 같은 선조, 철없는 반항아 허균 등과 같이 이미 우리에게 고정된 이미지로 착 달라붙어 있는 역사적 인물들이 실제로 현재 우리 인간들처럼 어떤 인간적인 고민을 하며 자기 삶을 힘들게 살아갔는가 하는 내면의 과정을 잘 그려내고 있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은 그저 일단 한 번 뒤집어서 해석해보자는 둥 하면서 가볍게 알맹이 없이 쑤셔보는 류의 책과 확연히 구별된다.

해전에서 단 한 번도 지지 않았다고 알려진 전설적 군인인 이순신은 왜 그렇게 지지 않는 전쟁만 하는 완벽주의 기질의 사람이 되어야 했을까. 이순신과 쟁공하며 일견 사사건건 이순신과 반대되는 듯한 장계를 올리고 실제 그러한 행동을 취한 원균은 왜 그렇게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맹렬하고 열정적으로 싸워 이기는 전쟁을 고집하려 했을까. 자기 아닌 어느 장수나 어느 신하에게 권력과 민심이 쏠리는 것도 용납하지 않으려고 한 나머지 자기 아들까지도 냉정하게 대했고, 또 늘 이순신을 좋게 대해주지 않고 심지어 전쟁이 끝난후에는 이순신을 죽이려고 했던 선조는 왜 그렇게 비정상적일 정도로 반역에 대한 의심에 집착했을까. 조정 신하들은 명나라와 왜, 그리고 여진족이 실제 어떤 역학 관계에서 자기들 이익만을 좇아 조선을 이용하려고만 든다는 것도 무시한 채 우물한 개구리처럼 소중화 의식에 집착하고 벼슬 자리에 자기 사람 심는 것에만 혈안이 되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허균은 명문 집안에서 태어나 빼어난 글재주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왜 그렇게 당시 이단으로 치부되던 도가, 불교 사상에 심취하고 역성혁명을 옹호하는 듯한 위험한 발언도 서슴지 않게 되었을까.

이 세상에 태어난 인간이 어떤 시련을 통해 자기 자신이 짓이겨짐을 당하고, 그러한 과정을 이겨내고 자기만의 불멸의 무언가를 이룩하기 위해 얼마나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또 뜨겁게 고민하는가 하는 내면의 과정을 저자는 바로 이 소설 <불멸>을 통해 참으로 적절하게 잘 그려내었다. 한문을 몰라 이 땅 한반도에서 우리 세대를 훨씬 앞서 살았던 선배들이 어떤 고민을 했고 어떤 운동을 했으며 각종 예기치 않은 장애물을 만났을 때 어떻게 대처해 나갔는가 하는 것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니 이 책을 꼭 읽어볼 것을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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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클리드의 창 - 기하학 이야기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지음, 전대호 옮김 / 까치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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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수학 가운데 근대에 '기하학'으로 분리된 수학의 한 분야가 어떻게 변천해왔는지 개괄적으로 설명해주는 책이다. 저자가 수학자가 아니라 물리학자 출신이어서 그런지 물리학이라는 과학의 발전이라는 맥락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기하학적 전환점들을 소개한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물리학자답지 않게 저자가 역사에 아주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어서 기하학 이외에도 중요 수학자의 생애에 대해서도 매우 생동감 있게 재미있게 잘 이야기해준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이번 설에 부산에 내려가 있던 친구가 읽다가 재미있다고 갑자기 전화를 해줘서 읽게 되었다. 결과는? 확실히 읽는 재미는 보장되니 시간이 아깝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다른 책에서는 접하기 비교적 어려운 수학자들 개인에 대한 이야기들까지 편하게 쏙쏙 골라서 들을 수 있기까지 하니, 보너스가 만만치 않다. 개인적으로는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인 피타고라스와 현대 초끈이론 분야의 주도적인 이론물리학자인 에드 위튼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가 가장 흥미로웠다. 피타고라스는 신비주의자로서 얼핏 보면 예수와 비슷했다는 내용을 저자가 인용하는데, 짧은 이야기였지만 참 재미있었다. 피타고라스는 예수처럼 그를 추종하는 비밀 공동체를 조직했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등 현자적 가르침을 설파했으며, 동정녀 탄생이나 부활 등과 같이 예수와 매우 비슷한 내용의 신화를 많이 남겼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내용은 피타고라스의 전기에서 인용한 내용이다.

이에 비하면 에드 위튼에 대한 이야기는 저자가 직접 경험한 것을 들려주기 때문에 이 책의 희소성을 더욱 높여준다. 초끈이론 개발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대가인 에드 위튼은, <엘러건트 유니버스>에서도 초인적 연구 능력을 지닌 '괴물'이라고 소개된 바 있는데, 저자와 똑같이 브랜다이스 대학에서 학부를 마치고 프린스턴 물리학과 대학원에 진학해서 파인만 이후 수십년간 물리학계를 이끌다시피 할 정도로 영향력이 매우 큰 물리학자였는데 그는 사실 학부에서 전공은 非과학인 '역사학'이었고 게다가 학부에서 물리학 수업은 하나도 듣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온갖 멸시와 냉대 속에서도 꾸준히 끈이론의 산파 역할을 했던 슈바르츠가 파인만이나 다른 동료 물리학자로부터 심한 무시와 놀림을 당했다는 일화 역시 숨겨진 비화를 읽는 재미를 한층 높여주었다.

이젠 책 내용에 대해, 개인적-주관적으로 재미있었던 부분이 아니라 일반적-객관적으로 잠깐 소개해야겠다. 이 책은 기하학의 큰 변화를 가져온 다섯명의 수학자-물리학자들의 업적과 그 의미를 중심적으로 다룬다. 유클리드, 데카르트, 가우스, 아인슈타인, 위튼이 바로 그들이다. 유클리드는 기하학을 서구인들에게 맨처음 가장 영향력 있게 소개했고,
데카르트는 기하학을 대수학과 연결시킴으로써 기하학적 문제를 간단히 대수적으로 풀 수 있도록 좌표-그래프를 소개했으며, 가우스는 非유클리드 기하학을 위한 기초를 닦았고, 아인슈타인은 실제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 공간이 유클리드 공간이 아니라 非유클리드 기하학을 이용하여 잘 설명된다는 점을 밝혔고, 마지막으로 위튼은 양자역학과 일반상대성(중력)이론을 결합해 만물을 단일한 원리로 통합해서 설명할 수 있는 초끈이론을 위한 새로운 기하학을 정립했다.

이 책은 수학자가 아닌 물리학자 출신의 저자가 집필한 흔적이 역력하다. 우선 책 내용 가운데 상당 부분이 수학사보다는 물리학사에서 중요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선별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인슈타인, 위튼은 수학적 업적보다는 물리학적 업적으로 더 유명한 사람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특징은 이 책의 단점이 아니라 차별적 장점이다. 현대물리학이 나오기까지 기하학의 변천이 어떻게 이루어져왔는지 매우 생동감있고 재미있게 잘 쓴 책이다. 역사학을 '非과학'으로 여겼던 저자가 오히려 일반 역사적 사료들을 풍부하게 활용하여 썼다는 점에서 더욱 웃기는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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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이란 무엇인가
도모나가 신이치로 지음, 장석봉 외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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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에 많이 소개된 미국의 천재 물리학자 파인만과 함께 QED(양자전기역학) 확립에 대한 공헌을 인정받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던 일본의 물리학자인 도모나가 신이치로가 인생 말년에 물리학에 대해 쉬운 말로 설명했던 강의 내용들을 편집해서 출판한 책이다. 책 표지에도 소개되어 있듯이, 천재형 물리학자인 파인만의 저서와 대기만성형 물리학자인 신이치로의 이 책을 비교해서 읽어보면 재미있을 것이다.

책 내용은 물리학의 중요한 역사적 변천 과정을 개괄하는 것이다. 16~17세기의 뉴턴 역학, 18~19세기의 열역학, 20세기의 입자론을 균형있게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책의 초반부에서는 갈릴레오, 케플러, 뉴턴에 대해 각각 소개하는데 이 부분은 다른 대중교양과학서와 별반 차이가 없다. 다만, 간단한 수학 방정식을 통해 많은 자연 현상을 일관되게 설명한다는 과학의 중요한 특성을 잘 강조하고 있다는 것은 꽤 인상적이다.

이 책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다른 대중교양과학서에서 놓치고 있는 열역학 내용을 대해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18~19세기의 열역학과 20세기의 입자론을 소개하는 부분은 모두 사실상 열역학과 관련된 중요 내용을 다루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카르노의 이상기관, 클라우지우스의 엔트로피 개념과 계산 공식, 볼츠만과 맥스웰의 기체분자운동론에 대해 충실하게 설명한다. '볼츠만의 원자'라는 책에서도 잠깐 소개된 바 있는 기체분자운동론과 클라우지우스의 열역학 이론에 대해서도 이 책은 자세히 설명하고 있어 좋았다.

카르노의 이상 기관과 클라우지우스의 엔트로피 개념과 그 계산법을 실제로 저자는 간단한 방법으로 소개하며 보여준다. 열기관의 효율, 가역기관 및 비가역기관, 절대온도 등에 대해 간단한 식을 써가며 간단한 방정식으로부터 여러 가지 중요한 열역학 내용들을 어떻게 증명하고 계산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볼츠만이 기체분자운동론 관련 논문을 통해 주장했던 내용이 무엇인지도 잘 설명한다. 결정론적 뉴턴 역학과 확률론적 통계 기법을 결합함으로써 기체 분자의 운동 수준에서부터 거시적인 기체 덩어리 전체의 상태를 설명하고자 했던 맥스웰과 볼츠만이 왜, 어떻게 통계적 기법을 도입하게 되었는지 설득력있게 잘 설명한다. 맥스웰의 속도-분포함수, 볼츠만의 H정리, 볼츠만의 에르고드 가설 등에 대해 한 건물의 회의실 공동 사용이라는 예를 들어 그 확률적 기법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멋지게 명쾌하게 설명한다.

책 후반부에서는 과학과 사회의 관계 등과 같은 다소 문화적이고 철학적인 내용이 전개되는데, 이 부분은 역시 크게 실망스럽다.

이 책은 '대기만성형' 물리학자였던 도모나가 신이치로의 특징을 정말 잘 보여준다. 기발한 착상과 비유에 의한 깜짝 파티식 흥분은 없지만, 적절한 비유와 꼼꼼하며 성실하고 상세한 설명에 따른 차분하고도 안정된 기분과 함께 차근차근 이해해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성취감이 있으니 말이다. 엔트로피에 대해 많이 들어는 봤지만 그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 알쏭달송했던 사람들이라면 바로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세상 사람들에게 잊혀진 위대한 과학자 볼츠만의 H정리와 볼츠만-맥스웰 분포함수에 대한 신이치로의 차분하고 명쾌한 설명을 분명히 맛볼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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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만의 또 다른 물리이야기 - 양장본
리처드 파인만 강의, 박병철 옮김, 로저 펜로즈 서문 / 승산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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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ED를 통해 처음 접하고서 참 많이 좋아하게 된 물리학자 파인만 교수의 칼텍 학부 물리학 강의 가운데 쉬운 내용을 간추려 편집한 책이다. 유명한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 일반상대성이론에 대해 소개해주는 강의이다. 로렌츠변환, 시공간의 의미, 아인슈타인의 마당 방정식, 아인슈타인의 운동방정식 등이 어떤 것인지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자세하게 내용을 소개한다. 지금까지 읽었던 어떤 대중교양과학서보다도 더 명쾌하고 자세하게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원리와 일반상대성원리를 설명해주었다는 점에서 정말 만족스러운 책이다.

대칭성에 대한 처음 2개의 강의는 약간 지루한 감이 없지 않지만,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에 대한 설명은 정말 자세하면서도, 청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많이 노력한 것 같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대해 알고 싶은 나와 같이 물리학에 문외한인 사람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좋은 책이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움직이는 물체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그 물체에 부착된 시계는 정지상태의 시계보다 더 느리게 가고, 또한 움직이는 물체는 운동하는 방향으로 길이가 짧아진다고 한다. 이런 사실 자체는 다른 대중교약과학서에도 이미 많이 소개되었다. 이책의 장점은 그러한 놀라운 결론이 어떻게 몇개의 수학 방정식의 간단한 조작만으로 유도될 수 있는지 증명 과정을 쉽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특히 E=mc^2 으로 유명한 '질량-에너지 등가 원리'를 에너지의 변화율, 그리고 시간에 대한 운동량의 변화율로서의 힘 두 가지 방정식으로부터 유도하는 증명은 정말 멋있었다.

또한 3차원 공간좌표계가 아닌 시간이 포함된 4차원의 시공간좌표계를 사용하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잘 설명해주는 대목도 인상깊다. 서로 다른 속도의 계에 대해 좌표 변환시 대칭성을 보존해주는 식인 로렌츠변환식을 이용하여, 한 사람의 공간 좌표 성분에는 다른 사람의 공간과 시간 성분이 섞여 있음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사건은 이제 특정한 시간과 공간 간격을 차지하고 있는 덩어리로 한꺼번에 다루어야 하게 되었다는 저자의 설명이 지적인 흥분을 일으킨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 대한 설명 역시 탄성을 자아낸다. 구면기하를 소개한 다음, 온도에 따라 일정한 비율로 팽창하는 뜨거운 표면을 예로 들면서 휘어진 공간을 소개한다. 원주율을 이용해 2차원 평면의 곡률을 정의하고, 다시 구의 면적을 이용해 3차원 평면의 곡률을 정의하여 곡률을 소개하는 것 역시 정말 명쾌하면서도 이해하기 쉬웠다. '아인슈타인의 마당 방정식'과 '아인슈타인의 운동방정식'을 다시 한 번 간단히 요약하는 것으로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에 대한 강의가 끝나는데 무언가 뿌듯한 포만감이 밀려 온다.

이 책은 '그리 쉽지만은 않은' 강의록임에 틀림없다. 간단한 대수적 계산과 적분을 이용한 증명이 간간이 이어진다. 하지만, 그러한 간단한 수학적 증명은 독자의 이해를 도울 목적으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수준으로 잘 제한되고 있다. 대중교양과학서를 통해 어렴풋하게 들어 익숙해진 것 같은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과 중력이론에 대해 그동안 미심쩍어 궁금했던 부분들까지 좀더 심도있게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므로 본인과 같은 인문학도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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