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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을 기다리며 ㅣ 필립 K. 딕 걸작선 9
필립 K. 딕 지음, 김상훈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2년 7월
평점 :
서기 2055년년 지구는 태양계로 진출했고 강한 행성인 릴리스타인들과 평화조약을 맺게 된다. 하지만 이 선택이 지구를 위험에 빠뜨리게 되는데, 릴리스타인들과 오랫동안 앙숙이었던 리그인들간의 전쟁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릴리스타인들의 수상인 프레넥시는 리그인들이 상대도 되지 않기 때문에 전쟁은 단기간에 끝날 것 이라고 호언장담 했지만, 상황은 지는 쪽으로 가게 되고 그로 인해 지구의 부담은 가중되게 된다. 두 행성간의 긴 싸움에 끼게 된 지구로서는 인력과 군수물품을 빼앗기기만 할 뿐 아무런 장점도 없는 전쟁이었다. 사람들은 UN사무총장이자 지구의 실질적 독재자인 지노 몰리나리의 선택이 실패했다며 괴로워했지만 결국 그 사람을 대표로 뽑은 건 지구인들 이었으니 그저 서서히 멸망하는 과정을 지켜 볼 뿐이다.
이런 전쟁 상황을 그렸지만 이 책은 우주전쟁에 관한 내용이 아니었다. 주인공인 에릭 스위트센트의 불행한 결혼생활에 초점을 맞추는데 이건 작가의 현실과 일맥상통 한다. 그 당시 필립 K. 딕 은 부인과의 불화로 힘들어하고 있었고 약물문제도 갖고 있었다. 에릭의 아내인 캐시의 마약 중독 증세의 생생한 표현도 아마 본인의 이야기 였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에릭이 처한 상황과 아내에 대한 생각등이 필립 K. 딕 의 속마음 같이 느껴진다. 캐시와의 첫 만남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악화되어버린 이 관계는 서로 헤어지는 것 만이 해결점 처럼 보이지만, 질긴 인연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캐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여러 감정, 즉 미움과 분노 그리고 연민은 그토록 원했던 해방을 방해하기도 한다.
에릭이 캐시를 벗어나기 위해 한 행동은 지노 몰리나리의 주치의를 자청하면서 부터였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몸의 고통 때문에
죽음을 동경하는 지노에게서 에릭은 동질감을 느끼는 데 그건 죽음만이 캐리에게서의 해방됨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캐시의 곁을 잠시 떠나기로 하는데 이때 그녀가 JJ-180 라는 마약을 먹으며 훗날 에릭으로 하여금 지구의 운명을 바꿀 단서를 제공하게 된다. 캐시와의 싸움은 몇십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을 것 같다고 예감한 에릭의 느낌이 점점 들어맞는다. 캐시가 에릭을 JJ-180에 중독 시키고, 그 때문에 시간여행을 한 에릭이 힘든 상황 속에서도 캐시와의 관계를 떨쳐내지 못하는 등 둘의 이야기는 지구의 운명 보다 더 궁금하고 주목하게 만든다.
JJ-180 약을 통해 죽음을 정략적으로 이용한 지노의 모습과 다양한 가능서을 제시한 미래 여행을 통해 도움을 주는 에릭, 그리고 세 행성의 전쟁 결과는 놀라움을 줬지만 에릭 자신의 이야기가 더 흥미로웠다. '증오와 애정은 지구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밀접하게 연결되어있습니다.'라는 의견을 낸 리그인 여성의 말이 에릭과 캐시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것 같았다. JJ-180 약이 캐시에겐 과거로, 에릭에겐 미래로의 시간 여행을 체험하게 했는데 그 경험마저도 둘에게 공통점이 없다는 점도 포함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