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비 한 번 쳐다보고 좋은 그림동화 23
박완서 지음, 이종균 그림 / 가교(가교출판)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전래 동화 중 최고의 구두쇠는 아마도 자린고비 일 것이다. 이 구두쇠가 얼마나 지독하냐면 식사 때마다 천장에 굴비를 매달아 놓고 쳐다보기만 하면서 밥을 먹었다 한다. 고소한 굴비 살을 발라 먹는게 아까워서 쳐다 보며 맛을 상상만 했는데, 쳐다 보는것도 아까웠던지 두번 쳐다보면 혼쭐을 냈다. 그래서 이 구두쇠는 '절인굴비'라는 뜻의 자린고비로 불리게 되었다. 박완서 작가는 이 구두쇠 아버지 때문에 밥만 먹어야했던 세 아들의 뒷 이야기를 재미있고 유익한 교훈을 담아 써내려갔다.

 

 

고린재비의 관심사는 오로지 돈을 아끼는 것으로 쓸데없는 돈을 쓰는 건 틀려먹은 짓이라 여겼다. 그런데 그 쓸데없는 짓에 포함되는게 바로 반찬이었다. 그래서 나온 해결책이 바로 소금버캐가 허옇게 내솟은 굴비 한마리를 천장에 매달아 밥 한 숟갈 먹고 굴비 쳐다보는 방식이었다. 고린재비는 자신의 아이디어가 못내 기특했겠지만, 한창 배고플 나이의 세 아들에겐 재앙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렇다고 아버지의 말을 거역할수도 없었다. 처음엔 울고 보챘지만 시간이 지나 익숙해지니 반찬 없이도 밥이 꿀떡 잘 넘어가게 됐고, '밥 한 숟갈 먹고 굴비 쳐다보고' 라는 구호만 들어도 술술 넘어가게됐다. 가엾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한 밥상 풍경이다.

 

이런 눈물나는 노력 덕분에 고린재비는 아들들에게 좋은 논과 밭을 유산으로 물려줄수가 있었다. 살아 생전 맛있는 반찬도 못 먹으며 구두쇠로 산 게 결국 자식들을 위한 것이었고 그 마음은 충분히 알겠지만 방식이 잘못되었다. 넉넉한 재산을 물려주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았고, 남겨진 세 아들의 행보를 보면 더더욱 잘못되었다.

 

 

그렇게 남겨진 세 아들은 부자가 됐음에도 오랜 습관 때문인지 여전히 밥만 먹고 살았다. 그래도 자식들은 자신이 불행하다고 여기지 않았고 농사도 잘 되었다. 그런데 농작물을 사간 사람들이 겉만 번드르르하고 맛이 없다며 다신 사지 않았고, 소문이 퍼지면서 아무도 찾지 않게 되었다. 쌀,잡곡,오이,호박,수박이 풍작이어도 사가는 사람이 없으니 난감하기만 한데, 마을의 어르신이 그 이유에 대해 "고린재비네 뒷간에서 나오는 거름이 싱거워 농사가 싱겁게 됐다"고 했다. 밥만 먹으니 뒷간의 거름이 다른 집보다 싱겁다는 뜻이었다.

 

결국 둘째는 농사에 싫증이 나 집을 떠나 소리꾼이 되기로 한다. 어렸을 때부터 구호를 외쳤던 덕분인지 둘째의 목청은 시원하게 트여있었고 명창이 될 가능성이 엿보였다. 그래서 스승은 둘째를 부잣집 잔치에 보내 노래를 시켰는데 어찌 된 일인지 손님들이 흥이 깨졌다며 뿔뿔히 흩어졌다. 스승은 둘째더러 목청도 좋고 사설이나 가락도 정확하지만 어딘지 텅 빈 소리가 난다며 떠나보냈다. 그림을 그리는 환쟁이가 꿈이었던 셋째는 굴비를 뚫어지게 관찰한 덕분인지 관찰력이 뛰어났고 실물과 똑같이 그릴수가 있었다. 그래서 스승은 셋째더러 초상화를 그리게 했는데, 초상화 모델이 그림 속에 얼이 박혀 있지 않다며 실망을 하게 된다. 결국 셋째도 꿈을 이루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첫째는 농사를 실패했고, 둘째는 명창이 되지 못했고, 셋째도 환쟁이가 되지 못했다. 세 명이나 자신의 일에서 실패를 한 이유에 대해 마을의 큰 어르신은 "자네들이 남보다 모자라는 거야 뻔하지 않은가. 그건 자네들이 남들 다 아는 맛을 모른다는 걸세. 지금도 늦지는 않았을 걸세. 그걸 배우게나. 좀 힘이 들겠지만.." 라는 조언을 한다. 누구나 경험하지만 이 세명만 경험하지 못한 건 바로 음식의 맛 이었다. 매운맛, 짠맛, 신맛 을 이들은 몰랐던 것이다. 맨밥만 먹었던 세 아들이 뒤늦게 맛을 경험하며 고생을 하게 되니, 웃음이 나올만큼 황당한 모양새이다. 고생 끝에 맛을 느끼게 되면 첫째의 농작물도, 둘째의 소리도, 셋째의 그림도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싶다. 음식의 맛을 통해 인생의 맛도 경험하게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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