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샤쓰 길벗어린이 작가앨범 3
방정환 지음, 김세현 그림 / 길벗어린이 / 199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1학년 을반의 한창남은 쾌활하고 우스개소리를 잘 해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 당시 유명한 비행사 안창남과 이름이 같다고 하여 친구들은 비행사 라고 불렀고, 시원스럽고 유쾌한 성질을 가진 창남이의 인기는 날로 높아져갔습니다. 모자가 해지고 양복 바지도 누더기가 된 걸 보면 집안이 구차한 것도 같지만 한번도 근심하거나 그늘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항상 친구들의 기분을 잘 살려주고 친절한데다 연설과 토론도 잘하니 누구나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인기에 비해 창남이의 진짜 모습을 아는 이는 별로 없었는데, 집이 이십리 밖에 있는터라 가 본 친구도 없고 본인이 신상에 대해 이야기하질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창남이가 처음으로 지각을 하게 됐는데, 나타난 꼴이 엉망이라 모두 다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오른편 구두 앞이 뜯어져서 발가락이 다 보인데다가, 엉망인 구두를 헝겊으로 싸매고 또 새끼로 감아 매고 또 그 위에 손수건으로 싸맸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지각했다고 태평하게 말하는 창남이의 모습은 당당했습니다. 어린 나이이기 때문에 창피할 법도 한데 그런 구석이 전혀 없었으니 참으로 어른스러운 마음을 가진 학생입니다.

 

하지만 무섭기로 소문난 체조 선생님은 창남이의 괴상한 구두를 보더니 뻔뻔스럽게 이런 구두를 신고 활동을 할수 있겠느냐고 다그쳤습니다. 이러면 주눅이 들 법도 한데, 창남이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며 시키지도 않은 뜀도 뛰고 달음박질도 하니 선생님도 웃을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난관은 또 있었습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은 모두 웃옷을 벗으라고 했기 때문인데, 모두 투덜대면서도 호랑이 선생님께 혼나지 않으려 벗었지만 유독 창남이만은 그대로 있었던 겁니다.

 

옷을 벗으라는 선생님의 명령에 창남이는 "만년샤쓰도 좋습니까?" 라고 물어봅니다. 만년샤쓰는 뭘까요? 바로 맨몸을 말하는 창남이만의 재미있는 표현법 이었습니다. 알고보니 창남이는 샤쓰도 적삼도 안 입은 벌거숭이 맨 몸이었는데 그 정도로 집안 사정이 안 좋았던 겁니다. 추운건 차치하고라도 부끄러워서라도 맨몸으론 등교하지 않을 텐데, 창남이의 의기가 일등이라며 선생님은 추켜세웠습니다. 그후로 창남이의 별명은 비행사에서 만년샤쓰가 됐습니다. 구두가 망가져도, 샤쓰가 없어도 창피해하지 않은 창남이의 모습이 참 멋집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의 창남이 행색은 더 초라했고, 교문에 모여있던 친구들은 또 다시 웃음보를 터트렸습니다. 양복 웃저고리에 한복 겹바지를 입고 양말도 안 신은 맨발에 짚신을 끌고 왔기 때문입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양복바지가 있었는데 이게 어찌된 일일까요? 알고보니 그저께 동네에 큰 불이나 집이 반이나 불탔기 때문인데, 어머니가 당장에 입고 있을 옷 한 벌씩만 나두고 나머지는 어려운 동네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자고 했답니다. 그렇게 나누어 줬는데 옆집 할아버지가 너무 추워하시길래 양복바지도 내어드리고 결국 자신은 한복 겹바지를 입을수밖에 없었다 합니다. 그럼 양말은 어쨌는가 하니 어머니가 추워서 벌벌 떠시길래 "두벌 남았으니 하나는 어머니 입으십시오" 하며 나쁜 일인 줄 알면서도 거짓말을 했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앞을 못 보시기 때문에 창남이의 거짓말을 눈치 못챘던 것입니다. 그게 바로 만년샤쓰 창남이가 괴상한 행색으로 등교하게 된 까닭입니다.

 

 

없는 형편에도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위해 나눌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창남이. 앞 못 보는 어머니에게 자신의 샤쓰와 양말을 주면서도, 어머니께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 못내 마음에 걸렸던 창남이. 이십리 길을 걸으며 학교를 다니면서도 힘든 내색 하지 않고 오히려 친구들을 위할줄 알았던 창남이의 심성이 너무 곱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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