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그림 속 자연 - 정선의 진경산수화로 배우는 옛 그림 학교 3
최석조 지음 / 아트북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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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은 진경산수화로 우리나라의 빼어난 자연을 화폭에 아름답게 담았다. 정선이 만든 진경산수화 이전에 화가들은 대부분 중국의 준법을 그대로 따라서 그렸다. 중국 화가들은 당연히 중국의 자연에 맞는 방법으로 그렸기에, 우리나라의 자연을 그리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이같은 아쉬움을 해결한 화가가 바로 정선이었는데, 그는 우리 강산에 맞는 준법으로 표현하면서 진경산수화를 탄생시켰다. 진경은 '참된 경치'를 이르는 말이지만, 실제 경치를 있는 그대로 그렸다는 뜻이기도 하고 우리 땅을 그렸다는 뜻 도 된다. 정선의 진경산수화를 통해 옛 조선의 자연을 우리는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정선하면 <금강전도>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이 그림 외에도 금강산을 그린 작품들이 정말 많았다. 같은 장소라도 정선이 받았던 느낌과 인상에 따라 부드럽게, 때론 거칠게 그려낸 금강산을 보다보면 왜 금강산이 아름다운 산인지를 깨닫게 된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실제로 금강산을 보고 그 자리에서 그린게 아니라는 것이다. <금강전도>는 정선이 쉰 아홉 살 되던 해인 1734년 자신의 방안에 앉아 그린 그림인데, 이는 금강산을 보고 난후 22년이 지난 후였다. 그동안 금강산을 워낙 많이 그렸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금강산은 멀고 험해 쉽게 갈수 없던 곳인지라 갔다온 선비들은 추억을 되새기기 위해 그림으로 남기려 했다. 그래서 정선에게 금강산을 그려달라는 청이 많았고 그렇게 정선은 금강산 그림의 대가가 될 수 있었고 이십여년이 흐른 후에 <금강전도>를 통해 빼어난 솜씨를 드러낼수 있었다.

 

 

<금강전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지개 다리와 장안사가 보이고 사자바위,금강대,만폭동 등을 찾을수가 있다. 정선이 어떤 기법으로 그림을 그렸고, 어느 곳을 그렸는지를 상세히 알려주기 때문에 그림이 새롭게 보였는데 페이지를 왔다갔다 하면서 찾아봐야 해서 좀 번거롭기도 했다. 그래도 재미있게 배우는데 이 정도 수고스러움이야.

 

 

금강산엔 절이 많았는데 장안사, 유점사, 표훈사,신계사가 흔히 금강산 4대 사찰로 꼽힌다. 이 중에서 <장안사 >그림을 보면 이런 깊은 산골에 절을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을까를 생각하니 그저 놀랍기만 하다. 웅장한 산과 바위, 그 앞을 흐르는 개울을 보니 참선이 저절로 될 것만 같다.

 

 

이번에도 그림을 샅샅이 탐방하는데 누각에 선비 두명과 시동(심부름을 하는 아이)이 보인다. 한 선비가 손을 들어 무언가를 가리키는 모습을 볼수 있는데 이건 중국 미술 교본인 <해내기관> 에서 경치를 바라보는 장면은 이렇게 그리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선의 작품을 비롯한 우리나라 화가들의 그림을 보면 이런 구도를 많이 볼 수가 있다. 이런 정보를 알고 보니 더 재미가 있다. 다만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갓쓰고 두루마기 입은 우리 조선사람으로 그린게 중국교본과 차이점이라고 하겠다. 절 가운데엔 고깔 쓰고 짐을 둘러멘 스님들도 보인다.

 

 

<만폭동>을 보면 나무들이 너무 쉽게 그려졌다는 생각이 든다. 기둥 하나 그리고 붓을 옆으로 뉘어서 툭툭 찍은 것 같은데도 멋진 나무가 그려지는 걸 보니 역시 정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도 세명의 사람이 보이는데 역시나 맨 오른쪽에 있는 사람이 손을 들어 어딘가를 가르키는 모습이다.

 

정선이 그린 많은 금강산 그림 이외에도 동,식물 그림과 인왕산 근처에서 살던 정선이 그린 서울 주변의 풍경도 새로웠다. 지금은 높은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송파진>과  <압구정> 그림을 보면 허허벌판 이라 달라진 세월을 느낄 수 있었다. <필운상화>에선 한양의 정문인 숭례문이 어렴풋이 보이는데, 인재로 사라져버린 곳이기에 가슴이 아프다. 그 외에도 <낙산사 일출>을 통해 강원도의 해돋이를, <목멱조돈>을 통해 서울의 해돋이를 구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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