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로누푸 섬의 여우 담푸스 그림책 5
다카하시 히로유키 글.그림, 김난주 옮김 / 담푸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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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상처는 비단 인간의 몫 만은 아니라는 걸 여우 가족에게 닥친 고난을 통해서 되새겨 준다. 일본 작가가 쓴 전쟁관련 책을 읽을 때마다 생각이 복잡해지는데, 전범국가로서 자신들을 피해자로 그리는 작품들을 몇번 봤기 때문이다. 과연 그들이 평화를 노래할수 있는 자격이 되나 싶은데, 전쟁을 일으켰다고 그러지 말라는 것도 아니라는걸 잘 안다. 그저 바라는 건 상처를 쓰다듬고 평화를 이야기 하기전에 부끄러운 과거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한다는 거다. 작가가 실제 겪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하니,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 건지를 잘 알겠다는 생각이 든다.

 

 

보드라운 감촉이 느껴질만큼 보송보송한 여우 가족은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엄마 아빠 여우와 오빠 여우, 동생 여우까지 네식구는 자연과 벗하며 오늘도 오손도손 즐겁게 지내고 있다. 그러다 우연히 인간을 만나게 됐는데, 동생 여우는 사람에게 낯가림도 하지 않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또한 여우가족을 예뻐해 주었다. 동생 여우의 목에 빨간 리본도 묶어주고 낚시를 하러 갈 때도 함께 할만큼 사이가 돈독해졌는데 이렇게 여우 가족과 인간은 평화롭게 어울리며 살아갔다.

 

 

하지만 인간들이 벌인 전쟁의 그림자는 이 평화로운 섬까지 덮치게 됐고, 결국 안전을 위해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섬을 잠시 떠나기로 한다. 이제 이 섬에 남은 건 여우가족 뿐 이었는데, 군인들의 무자비한 총탄은 여우가족의 일상을 뒤흔들어 놓았다. 오빠 여우가 총에 맞아 쓰러지고 동생 여우는 인간이 심어놓은 덫에 걸려 꼼짝 할 수도 없게 됐다. 설상가상 엄마여우도 다치고 아빠 여우 또한 가족을 살리기 위해 자기 몸을 희생하게 된다.

 

 

순식간에 여우가족을 화해시킨건 모두 인간의 어리석음 때문이었고, 전쟁의 비극은 이 가족을 사지로 몰아넣었다. 총을 쏘지 않았더라면, 덫을 놓지 않았더라면 여우 가족은 언제나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을 것이다. 전쟁의 광풍이 거세지지만 않았다면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섬에 남아 여우가족을 지켜줬을 텐데, 그러지 못한게 너무 가슴이 아팠다.

 

여우가족은 잘못한게 없었다. 하지만 전쟁은 무고한 목숨을 수도 없이 빼앗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괴물이기 때문에 죄없는 여우가족마저도 삼켜버렸다. 대체 무엇을 위해서 소중한 목숨이 희생되어야 하고 공포에 떨어야 하고 살던 터전을 떠나야만 하는가. 죄 없는 인간과 동물들이 총탄에 의해서 쓰러지는 모습을 보면서 전쟁의 비극을 떠올리게 된다. 상처만 내고 죽음만 있을 뿐인 전쟁을 치로누푸 섬의 여우 가족을 통해 가슴아프게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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