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 보면 - 길 위의 사진가 김진석의 걷는 여행
김진석 지음 / 큐리어스(Qrious)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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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계겠지만 이래저래 바쁜 일이 많고, 교재를 봐야 할 일이 많이 생기다 보니, 서점을 많이 가지 못하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오거나 해서 새 책 냄새를 한 동안 못 맡았다. 오랫 만에 서점에 가서 느긋하게 책을 돌아볼 기회가 생겨서 여행 코너를 돌다 찾지 못하고, 책장에 꽂혀있는 이 책을 만났다. 사실 ‘걷기’를 작가만큼 좋아하지 않아 제목이 눈에 들오진 않았지만, 뭔가 우연히 뒤적거린 책의 사진이......

 

아~~~~~~~~!

 

사진이 너무 좋았다.

 

 

들어가는 추천글 심산 작가의 이야기처럼 ‘사진은 사진으로 말한다’에 딱! 어울릴만한 좋은 사진이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마음을 감추기 어렵다. 찍는 사람이 우울하면 사진도 우울해진다. 사진은 찍는 이의 감정을 그대로 가져가기 때문이다.

카메라는 마음과 똑같이 움직인다 中

 

글 중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사진은 사진을 찍는 사람을 넘어설 수 없다. 그런 그가 사진을 찍게 되는 피사체를 보는 모습이 따뜻해서 나올 수 있는 사진이라는 생각이 든다.

 

 

멀어져가는 순례자의 뒷모습과 그의 어깨에 있는 큰 배낭을 바라본다. 그의 뒷모습에 나의 뒷모습이 겹쳐 보인다.

 

수많은 사람들이 걷는 이 길에서, 나 역시 그들과 같은 고통을 겪으며 환희를 느끼고 싶다. 때론 걷다가 지쳐 장면을 놓치더라도, 때론 카메라를 들 힘조차 없을지라도, 그들의 살아 있는 표정과 땀 냄새를 느끼고 싶다. 그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싶다.

 

걸으며 내가 무얼 찍고 싶었는지 점점 분명해진다. 내가 찍고 싶은 것은 카미노가 아니다. 카미노를 걷고 있는 사람들이다.

내가 찍고 싶은 건 카미노가 아니었다 中

 

사진을 어설프게 좋아하다가 배워가기 시작하면서 늘 최종의 최상의 피사체는 사람이다!

라고 생각했는데, 길 중에 만난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나올 수 있는 사진이라는 것이 정말 사진을 돋보이게 하는 것 같다.

 

게다가 코엘료의 책 [연금술사]에서 시작해, 여러 산티아고 길을 다녀온 책들을 보면서 ‘언젠가 가봐야할 텐데...’하면서도 걷기를 힘들어해 ‘제주 올레길부터’했는데도 이렇고 있는데, 이 글쓴이를 보며 나의 걷기 계획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도 되었다.

 

찍은 후에는 이러쿵저러쿵 사진을 평가하지 말자. 찍을 때 행복했고 봤을 때 즐거웠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가. 보이는 대로 찍는 것이 좋은 사진이다. 찍는 이가 행복한 것이 가장 좋은 사진이다.

中 29p

 

백 그램이라도 짐을 줄이고자 하는 산티아고 길에서도 무거운 카메라를 이고 지고, 하루 이 천여 장이나 되는 사진을 찍었다고 했는데, 그래서 더 좋은 사진을 만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걸으면서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는 비법’에 관한 이야기가 좋다.

 

‘길 위의 사진가’라는 이름을 얻기 전에 걷기를 좋아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지독히 싫어했다는데, 제주 올레 길을 시작으로 카미노 데 산티아고, 투르 드 몽블랑과 히말라야 등까지 길 위에서 찍은 사진들이다.

 

특히, 카미노에서 만난 이들의 사연들을, 사진들을 읽고 보다 보니 코끝이 찡~~하다.

 

사실 한 권 전체가 산티아고 길 위에서의 이야기로 엮어진 책들도 몇 권이나 봤지만, 한 부분만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의 산티아고에 관한 이야기로도 충분할 만큼 인상적이다.

 

 

걷기 시작한 첫날은 모두 기운이 넘친다. 이틀째에도 몸은 힘들지만, 어제의 의지를 담아 걸으니 견딜 만하다. 하지만 사흘째에 고비가 찾아온다. 몸은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지치고, 마음은 걸을 수 없는 이유를 합리화하기 시작한다. 이 길을 계속 걷느냐 마느냐,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하느냐 마느냐는 어쩌면 72시간 내에 결정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순례자 협회에 따르면 모든 구간을 건너뛰지 않고 걸어서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사람은 출발한 사람 중 15퍼센트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누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사람이 없다는 거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불문율과 같다. 걷는 것도, 멈추는 것도 하나의 선택일 뿐이다.

72시간 안에 결정된다 中 p

 

내가 왜 여기에서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걸까? 다른 순례자들도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왜 걷는지, 왜 이곳에 왔는지, 왜 돈을 써가며 사서 고생을 하는지. 돈과 시간이 있다면 이곳에서도 충분히 배부르게 먹고 편히 잠도 많이 잘 수 있는데 말이다.

 

길을 걸으며 무슨 생각을 하냐고 묻는 이들이 있다. 보통 이런 생각들을 하며 걸었다. ① 먹고 싶은 음식들. 김치찌개, 소주, 삼겹살, 떡볶이, 된장찌개, 고추장, 냉면 등등. ②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몇 km 남았을까? ③ 대체 내가 왜 걷고 있는 걸까?

모든 순례자가 피할 수 없는 고민 中 p

 

 

이렇게 힘들던 산티아고 여정도 끝이 보여서

 

곧, 대성당에 도착한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목적지에 다다르면 새로운 길이 기다리고 있을 것을 안다. 이보다 더 험난하고 어려우리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내 앞에 놓여 있던 수많은 길 중 하나를 곧 끝낸다. 마침표를 찍고, 숨을 고르고 다시 길을 나서겠지만 말이다.

 

멀리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의 꼭대기가 보인다. 36일간의 여정, 800km가 넘는 거리, 6만 장이 넘는 사진들, 2천 명이 넘는 순례자들, 324시간의 걷기, 1억4천4백만 보의 발걸음. 숫자로 본 나의 카미노다. 심호흡을 길게 한번 하고, 골목과 골목을 지나자 웅장한 자태의 대성당이 나타났다.

 

드디어 길의 끝에 온 것이다 中 169p

 

대성당 앞의 사진들도 그 전의 산티아고 책에서 봤던 장소이지만, 새삼 감동스럽다. 3부 '길과 살아가다'의 여정 히말라야나 몽블랑 등도 좋았지만 2부 '까미노에서 길을 배우다'의 산티아고 이야기는 참 좋았다.

 

 

길 위에서 좋은 인연들 만나서 곧 또 좋은 책으로 만나길 기대해본다.

Buen Camino!

 

 

나는 사람을 찍고 싶고, 그 사람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찍고 싶다. 그렇다고 아주 거창하거나 특별한 것이 아니다. 부엌에서 밥을 짓는 모습일 수도 있고 각자의 일에 몰두하는 모습일 수도 있다. 버스에서 생각에 빠진 모습일 수도 있고 묵묵히 길을 걷는 모습일 수도 있다. 그런 자연스러운 모습이 바로 ‘진실’이고 아름다움이 아닐까.
18p

땀 냄새가 나는 사진, 슬픔이 느껴지는 사진, 기쁨이 느껴지는 사진, 그런 ‘냄새가 다른’ 사진을 찍고 싶다.
25p

찍은 후에는 이러쿵저러쿵 사진을 평가하지 말자. 찍을 때 행복했고 봤을 때 즐거웠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가. 보이는 대로 찍는 것이 좋은 사진이다. 찍는 이가 행복한 것이 가장 좋은 사진이다.

걷기 시작한 첫날은 모두 기운이 넘친다. 이틀째에도 몸은 힘들지만, 어제의 의지를 담아 걸으니 견딜 만하다. 하지만 사흘째에 고비가 찾아온다. 몸은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지치고, 마음은 걸을 수 없는 이유를 합리화하기 시작한다. 이 길을 계속 걷느냐 마느냐,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하느냐 마느냐는 어쩌면 72시간 내에 결정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순례자 협회에 따르면 모든 구간을 건너뛰지 않고 걸어서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사람은 출발한 사람 중 15퍼센트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누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사람이 없다는 거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불문율과 같다. 걷는 것도, 멈추는 것도 하나의 선택일 뿐이다.
-72시간 안에 결정된다 中


내가 왜 여기에서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걸까? 다른 순례자들도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왜 걷는지, 왜 이곳에 왔는지, 왜 돈을 써가며 사서 고생을 하는지. 돈과 시간이 있다면 이곳에서도 충분히 배부르게 먹고 편히 잠도 많이 잘 수 있는데 말이다.

길을 걸으며 무슨 생각을 하냐고 묻는 이들이 있다. 보통 이런 생각들을 하며 걸었다. ① 먹고 싶은 음식들. 김치찌개, 소주, 삼겹살, 떡볶이, 된장찌개, 고추장, 냉면 등등. ②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몇 km 남았을까? ③ 대체 내가 왜 걷고 있는 걸까?
-모든 순례자가 피할 수 없는 고민 中

화살표를 따라 그렇게 한참 앞만 보고 걸으면 내가 걸어온 길이 희미해지다가 결국 잊힌다. 뒤를 돌아본다. 내가 걸은 길이 분명한데, 이상하게도 되돌아본 길은 머릿속 풍경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사는 것도 그렇다. 걷다 보면 내가 걸어온 길이 얼마나 멋졌는지, 고통스러웠는지, 아름다웠는지 잊게 된다.

"나는 생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모른다. 그러나 걷기는 하나의 목적이 있다. 한 발을 다른 발 앞에 놓는다. 그리고 기쁨이 뒤따라올 때까지 다시 시작한다."
-이브 파칼레

-뒤를 돌아보면 다른 길이 보인다 中

일주일 동안 같은 풍경만 이어지는 메세타를 걸으니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사진도 다 똑같고, 사람들을 찍는 것도 싫었다. 사진적으로 침체기가 온 거다. 그래서 의미 없는 풍경과 건물들을 찍기도 했다. 걷는 것도 찍는 것도 무척 힘든 시기였다. 나 혼자 ‘왕따나무’라고 이름 붙인 저 나무가 그때의 내 마음을 보여준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마음을 감추기 어렵다. 찍는 사람이 우울하면 사진도 우울해진다. 사진은 찍는 이의 감정을 그대로 가져가기 때문이다.
-카메라는 마음과 똑같이 움직인다 中

멀어져가는 순례자의 뒷모습과 그의 어깨에 있는 큰 배낭을 바라본다. 그의 뒷모습에 나의 뒷모습이 겹쳐 보인다.

수많은 사람들이 걷는 이 길에서, 나 역시 그들과 같은 고통을 겪으며 환희를 느끼고 싶다. 때론 걷다가 지쳐 장면을 놓치더라도, 때론 카메라를 들 힘조차 없을지라도, 그들의 살아 있는 표정과 땀 냄새를 느끼고 싶다. 그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싶다.

걸으며 내가 무얼 찍고 싶었는지 점점 분명해진다. 내가 찍고 싶은 것은 카미노가 아니다. 카미노를 걷고 있는 사람들이다.
-내가 찍고 싶은 건 카미노가 아니었다 中

그는 친절하다.
그녀는 웃음이 많다.
그 부부는 다정하다.
그 할아버지는 윙크를 잘한다.
그 할머니는 말이 없다.
그 아저씨는 재미있다.
그 청년은 빠르게 걷는다.
그녀는 심하게 코를 곤다.
그는 혼잣말을 잘한다.
그녀는 음악을 듣는다.
그들은 노래를 부른다.
그 할머니는 늦잠을 잔다.
그 연인은 키스를 한다.
그 사람은 와인을 마신다.
그 남자는 배낭이 크다.
그 여자는 배낭이 없다.
그 젊은이는 나무 밑에서 책을 읽는다.
그는 사진을 찍는다.

우리는 모두 걷는다.
- 카미노 위의 사람들 中

곧, 대성당에 도착한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목적지에 다다르면 새로운 길이 기다리고 있을 것을 안다. 이보다 더 험난하고 어려우리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내 앞에 놓여 있던 수많은 길 중 하나를 곧 끝낸다. 마침표를 찍고, 숨을 고르고 다시 길을 나서겠지만 말이다.

멀리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의 꼭대기가 보인다. 36일간의 여정, 800km가 넘는 거리, 6만 장이 넘는 사진들, 2천 명이 넘는 순례자들, 324시간의 걷기, 1억4천4백만 보의 발걸음. 숫자로 본 나의 카미노다. 심호흡을 길게 한번 하고, 골목과 골목을 지나자 웅장한 자태의 대성당이 나타났다.

-드디어 길의 끝에 온 것이다 中 16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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