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섬진강 대숲에서 - 김재일의 생명산필
김재일 지음, 통칙 그림 / 종이거울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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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혼자서은 여럿이서든 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일상생활이 삶의 산문이라면 여행은 삶의 시와도 같다. 여행은 낯선 세상을 낯익은 얼굴로 살아가게 하고, 낯선 얼굴들도 낯익은 눈으로 만나게 해준다. 그런 의미에서 참된 여행은 새로운 것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가서 새로운 시야(생각)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런 여행의 주제는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주제가 정해지면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이 달라진다. 말하차면 차창 밖을 번개처럼 스쳐가는 것도 저마다 의미를 갖게 된다.
참된 여행은 새로운 시야를 갖는 것 중
-5쪽

상원사 가는 길은 솔바람과 개울문 소리가 있어 걷기에 좋은 길입니다.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는 걸어서 두 시간 거리입니다.
시간은 보이지 않는 내 그림자입니다. 내가 차를 마시면 시간도 따라서 차를 마시고, 내가 화를 내고 우면 시간도 ‘화 내고 싸운 시간’이 됩니다.
시간은 또 다른 나입니다. 내가 나쁜 생각을 하면 시간도 나를 닮아 나쁜 시간이 되고, 내가 좋은 일을 하면 좋은 시간이 됩니다.
시간은 늘 내 삶의 보폭과 함께 합니다. 내가 빨리 걸으면 시간도 빨리 가고, 내가 헐떡거리면 시간도 헐떡거리며 따라옵니다. 내가 천천히 걸으면 시간도 천천히 갑니다.
오늘도 놀면 쉬며 빈둥거리며 갈 요량입니다.

천천히 걷기 중
-201쪽

산을 내려온 지 30년 세월,
잠깐 얼풋 든 꿈만 같습니다.

세상은 자고새고 돈을 벌라 하였지만,
주머니 없는 옷으로 살았습니다.

세상은 내 차 갖고 편하게 살라 했지만,
겨우 자전거 타는 법 하나 배웠습니다.

세상은 강남에 좋은 집을 가지라 했지만,
지번地番 없는 산토굴이 내 돌아갈 집이었습니다

세상은 돈으로 노후대책을 삼으라 했지만,
적금 하나 든 게 없습니다.

세상은 병 없이 오래 살라 했지만,
장기 기증을 약속했습니다.

세상은 노안老安을 즐기라 했지만,
화장 유언에 서약했습니다.

세상은 싸워 이기라 했찌만,
늘 한 발짝 물러나 있었습니다.

세상은 넘어지지 말라 했지만,
낙법落法만 혼자 익혔습니다.

세상은 남을 딛고 일어서라 했지만,
이제 나를 밞고 산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30년만의 귀거래사 중

세상은 ‘오산誤算’이라 했지만
30년 가계부는 ‘정산正算’입니다.
-202-2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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