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지중해식 인사
이강훈 글.그림 / 열린책들 / 2007년 6월
품절


섬에서만 벌써 세 번째 여름을 맞이한 살림은 이미 현지인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내가 섬에서 보내는 겨울은 어떻느냐고 묻자 살림은 과장된 동작을 만들어 보이며 익살스럽게 얼굴을 찌푸렸다.
「흔히들 지중해가 남태평양이나 인도양인 줄 착각하곤 하지. 하지만 산토리니는 모리셔스 제도에 있는 섬이 아냐. 당연하지 않아? 여긴 지중해라고. 지중해의 겨울은 뭐랄까.....나처럼 낙천적인 사람도 염세주의자로 만들어 버릴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포스를 지녔지」
그의 표정으로 봐서는 반 농담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역시 절반은 진담인 것 같다.
「이곳의 여름이 왜 이렇게 찬란하고 눈부신지 아니? 이런 수혜를 누리지 못하면 겨울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야. 그 누구도」
지중해 섬의 겨울-스위스 청년 살림이 들려준 이야기 中 -249-250쪽

「아마 너도 곧 알게 되겠지. 벌써부터 몇 차례 비가 내렸으니까. 하지만 이건 약과야. 이제 조금만 더 지나면 본격적인 우기가 들이닥치거든. 기온은 점점 떨어지고 바람은 점점 세차게 불고 비는 주룩주룩 내리기 시작하고. 세상에서 가장 우울한 겨울이 다시 시작되는 거지.」
.....
그칠 줄 모르는 비, 냉기와 습함을 한껏 머금은 바람. 지난날의 풍요로움을 모두 앗아가 버린 것 같은 결핍 그리고 외로움. 이것이 지중해 섬의 겨울의 모든 것이다. 지중해의 겨울이 더욱 혹독한 것은 그만큼 찬란한 여름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사람에게 고양이에게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겨울을 견디면,」 살림이 말했다. 「우린 다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름을 만날 수 있지. 그것이 바로 지중해의 섬이야.」

지중해 섬의 겨울-스위스 청년 살림이 들려준 이야기 中 -250-2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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