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삐돌리오 언덕에 앉아 그림을 그리다
오영욱 지음 / 샘터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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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즈막이 일어나 바다를 보면 간단한 아침을 먹고
그늘에 앉아 파도소리를 음악 삼아 책을 뒤적거리다가
한적한 해변을 걸어 작은 레스토랑에 들어가 버섯버거를 먹고
오후 햇살을 피해 침대로 돌아와 달콤한 낮잠에 빠지고
늦은 오후 햇살 아해 바람에 머리카락을 맡기며 책을 읽고
이것저것 몽땅 집어넣어 직접 만든 저녁을 먹고
호스텔 내의 바에 가서 남아공산 맥주를 마시며
가볍게 취하고 나니
어느덧 자정이 되어버렸다.

의식을 놓아버린 바로 그 느낌.

남아프리가 공화국 중 -77쪽

코끼리들이 어슬렁거리는 남아프리카의 초원에서
지금까지 나도 모르던 지난 여행들의 이유를 찾아냈다.
여태껏 살아왔던,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나의 ‘현재’들 자체가
어찌 보면 하나의 긴 여행길이었던 것이다.

모든 이들이 각지 다른 자신들의 여행에 나선 가운데
지금 내가 있는 곳은 먼 길을 돌아가는
작은 중간역.

남아프리가 공화국 중 -88쪽

슬럼프에 빠져버렸다.
슬럼프는
언젠가는 극복될 운명을 갖고 있기 때뭉에
존재가지차 있는 것이지만
몸이 아픈 것과 함께 와버리니
기약 없는 무기력에
빠지고 말았다.

네델란드 중 -200쪽

인생은
가끔 무대 위의 주인공인 가수도 되어보고
가끔 무대 뒤의 우직스런 스탭도 되어보고
가끔 무대 앞의 열광하는 관중도 되어보고
가끔 무대 밖의 지나가는 행인도 되어보는
것.

베네치아 중 -278쪽

‘절절’으로 치닫기에는 갑자기 모든 것들이 이전 세계의 현실과 가까워져 버렸다.
인정하고 이해하자.
소설이나 영화가 아닌 것이다.
지루하면서도 자극적인 ‘전개’만이
콩나물처럼 이어져 있는 것이 이 세계의 현실이라
인정하고 이해하자.

내겐 여전히 미움이 존재한다.
그 미움은 밤사이에 꿈으로 인지된다.
사실 그건 매우 비겁하고 어가 없는 일이다.
미워하는 것 말ㄹ고도 세상에는 할 일이 무척 많고,
미운 대상 말고도 꿈에 나타날 것들은 무궁무진할 텐데 말이다.

런던 -298쪽

유럽에서는 여행 중인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각자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할 기억들을 만들어가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다만, 어쩌면 내가 그들을 다소 피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에게 있어 여유는 한가한 해변에서보다 북적거리는 도시에서 더욱 짜릿하게 느낄 수 있다.
여행에 있어 포기할 줄 안다는 것은 꽤 유용한 기술이다. 내 앞에 놓인 서너 개의 선택 앞에서 하나만을 취하면서 다른 것들을 먼 훗날로 미룰 수 있는 여유가 치열하게 살아가는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어쩌면 맞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간사가 그러하듯 버린 만큼 얻을 수 있는 것이고, 가끔은 과감한 포기가 더 큰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믿는다.
나에게 여유는 그런 것이다.

다시, 여행을 떠나며 중-3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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