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과 모험의 고고학 여행
스티븐 버트먼 지음, 김석희 옮김 / 루비박스 / 2008년 5월
절판


내 아이들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그 아이들이 자라서 무엇이 될지 궁금해 한다. 내가 할아버지를 모르듯이 아이들로 할아버지를 모른다. 내 아이들한테 증조부와 증조모는 옛날 학교에 다닐 때 아교로 붙여 만든 공작용 나무의 몇 토막일 뿐이다.
우리가 인류의 과거에 대해 갖고 있는 지식이란 얼마나 빈약한 것일까. 그리고 그 무지 때문에 우리는 또 얼마나 빈곤해져 있는 것일까

프롤로그 중-11쪽

자연에서 시간은 평형을 맞추는 위대한 조정자다. 그렇다면 썩어가는 물질의 흔적을 가지고 한 생명의 실체를 복원하는 것은 얼마나 어렵겠는가. 그리고 오래 전에 살았던 생명들의 형체를 재생하는 것은 또 얼마나 더 어렵겠는가. 누적된 창조의 무게로 견뎌낸 문명 전체가 폐허 속에 누워 있으면, 개개의 생명들이 남긴 흔적은 어디서 찾아낼 수 있을까?
역설적이지만, 과거의 발견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바로 과거 자체다. 과거는 마치 정체를 드러내기 싫은 것처럼 변장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쉽게 읽을 수 있었던 문자가 난해한 암호가 되고, 과거에는 살아있었던 언어들이 잊혀진 말이 된다. 세월이 흐르면, 고대의 석상들조차도 수천 년 동안 햇볕과 풍상에 시달려 생생했던 색깔이 창백하게 훌닦인 나머지 무정하고 냉혹해 보인다.
~
시간은 되찾으려고 애쓸 때는 우리가 쓰는 낱말까지도 장애물이 된다. 어떤 사물을 ‘옛것’이라고 부르는 행위 자체가 그것의 본래 모습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프롤로그 중-12-13쪽

고고학자들은 켜켜로 쌓인 쓰레기의 단계를 ‘층’이라 부르고, 쓰레기를 순서대로 꺼내는 것은 ‘층서적 발굴’이라고 부른다. 쓰레기의 순위를 결정할 때 쓴 방법-보다 밑에 있는 쓰레기는 보다 오래된 것이고, 보다 위에 있는 쓰레기는 보다 새로운 것이다.-을 고고학에서는 ‘상대 연대’라고 부른다.
하지만 두 층의 쓰레기 사이에 실제로 얼마나 많은 시간-몇 분, 몇 시간, 또는 며칠-이 경과했는지를 알고 싶으면, 보다 맣은 정보가 필요할 것이다. 1년이나 100년이나 1000년 단위로 퇴적물의 연대를 결정하는 것을 고고학자들은 ‘절대 연대’라고 부르는데, 이는 역사를 복원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들어가는 말 중-17쪽

런던 자체는 고고학자들에게 특수한 문제를 제기한다. 런던은 2천년 가까이 존속해 온 도시이기 때문에, 길거리 밑에 과거를 감추고 있다. 오늘의 런던을 한 꺼풀 벗겨낼 수 있다면(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지만), 우리는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와 중세와 로마 시대의 런던이 그 밑에 켜켜로 쌓여 있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역설적인 일이지만, 과거의 덮개를 벗기는 것은 미래다. 새 건물을 짓기 위한 토대를 팔 때 옛 지층이 드러나는 것이다. 특히 토대가 깊고 지하 몇 층까지 내려갈 수 있는 고층건물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악의적인 파괴도 과거를 드러낼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런던이 받은 폭격으로 고대 지층까지 내려가는 깊은 폭탄 구덩이가 생겼다.

로마 시대의 브리튼섬-1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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