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 지상 최고의 맹수를 쫓은 9,000여 일간의 기록 BBC 자연사 다큐멘터리 5
스티븐 밀스 지음, 이상임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BBC 다큐 제작자로 잔뼈 굵은 아재가 호랑이에 대한 최신 연구결과들을 적어낸 책이다(영문판 발행년도는 2003년). 거의 도감 같은 구성이지만 글의 내용도 상당히 알찬 편이었다.

 

 저자가 영국인인데다 인도 쪽이 워낙 호랑이 개체수도 많고 연구가 잘되어 있다보니 대부분의 내용이 벵골호랑이 이야기였다. 하지만 본문에도 나오듯이 호랑이 아종 간 유의미한 유전적 차이는 거의 없으며, 호모 사피엔스로 치면 몽골로이드와 중동사람 정도 차이로 보면 될 것 같다. 단 아무르호랑이는 혹독한 기후 속에 살다보니 먹잇감들의 밀도가 워낙 낮아서 활동영역이 벵골호랑이의 수 배 이상이라고는 하더라.
 책에는 '온갖'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호랑이의 습성들이 나와 있었는데 그 중에 몇 가지 이목을 끄는 것들이 있었다. 일단 사냥기술인데, 호랑이는 기본적으로 기습을 한다. 사냥감이 호랑이를 먼저 발견했다면 그 사냥은 십중팔구 실패다. 심지어 사냥감이 호랑이를 본 티를 내며 고함이라도 지를 경우호랑이는 그대로 사냥을 포기하고 돌아선다고 한다. 호랑이는 사자나 치타처럼 초원에 사는 게 아니다. 호랑이의 서식지에는 추격전을 벌이기엔 너무 많은 장애물들이 있다. 대신 호랑이는 영리하게도 그 장애물을 역이용하도록 적응한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인간을 잡아먹는 호랑이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내 생각에 인간에 대한 호랑이의 두려움은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프로그램된 것이 아니라, 호랑이가 인간을 마주치는 그 순간에 느껴지는 것이다. ...호랑이에게, 지프차에 탄 인간은 단지 지프차이다. 호랑이는 지프차를 먹지 않기 때문에 그 안에 있는 이상 안전하다...
 ...나는 키가 1.8미터다. 호랑이의 키는 0.9미터 정도지만, 몸길이는 2.7미터에 이른다. 따라서 호랑이는 나를 보고는 내 몸길이가 5.5미터 정도나 될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냥 못생긴 짐승이 아니라, 몸집이 엄청나게 큰, 못생긴 짐승으로 말이다. 싸움이라도 하게 되면, 호랑이는 또 다른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커다란 영양을 공격할 때처럼 내 등 위로 올라타려다 내게 등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사냥하는 동물은 먹잇감을 쓰러뜨릴 때 성공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하는데, 당황하게 되면 이런 확신이 서질 않는다.」

 

 인류가 물론 몸길이와 체중만으로도 중대형 포유류에 속하긴 하지만, 직립보행 덕분에 다른 동물 눈에는 훨씬 더 커보인다는 이야기는 전에도 들은 적이 있다. 이런 거대하고 위압적인 - '인간'이라는 괴물을 사냥하는 일부 간 큰 호랑이들에게는 어떤 특별한 사연이 있는 걸까? 저자가 발견한 건 그런 류의 것이 아니었다. 원인은 인간에게 있었다. 쭈그려 앉아있거나 허리를 숙인 자세의 인간. 호랑이에게 사냥 당한 인간들은 하나같이 저런 취약한 자세를 하고 있는 상태에서 공격을 받았다고 하더라. 이는 참 신선한 이야기였다.
 책에는 호랑이의 성생활에 대해서도 잘 나와있었는데 호랑이끼리 서로 눈이 맞으면 며칠 동안 같이 지내며 운우지정을 나눈다고 한다. 그런데 그 횟수가 2~3일 동안 오륙십 번에 이른다고 한다.

 

「이런 까닭에 '호랑이'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가 '비아그라'라는 것이나, 사람들에게 수컷 호랑이의 생식기가 정력제로 팔리기도 하는 것은 하나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호랑이는 개보다도 근친상간이 잦은 동물이라고 하더라. 책 군데군데 개체 간의 친인척 관계라든지 족보라든지 하는 정보들이 나오는데 범 족보가 개족보보다 못해 보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호랑이는 근친상간에 의한 기형 확률은 거의 없다고 한다. 근현대 들어 개체 수가 급격히 줄어든 호랑이에게 이는 종족 보존을 위한 큰 강점이 될 수 있다. 게다가 그런 친척들 사이에서는 큰 싸움이 잘 나지 않고 서로 존중하며 지내는 경향이 있어 번식에도 유리하다고 한다.
 저자는 말미에 호랑이 종 보존을 위한 이야기들을 늘어놓고 있다. 다른 모든 생물이 그렇듯이 호랑이에게도 서식지 파괴가 가장 큰 위협이다. 인간은 덩치가 너무 크고, 서식지를 돌이나 정제된 흙 등으로 꾸미기를 좋아하는 바람에 다른 생물들 살 곳을 지나치게 없애버리는 경향이 있다. 인간 외에 그런 환경에서 살 수 있는 생물종은 극히 드물다. 저자는 이러한 서식지 보존과 밀렵 예방 등을 위해, 서식지 인근 주민들에게 '살아있는 야생호랑이는 돈이 된다'는 생각을 심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직 호랑이들이 살고 있는 곳들은 개도국이거나 빈부격차가 상당히 심한 나라들이며, 설령 잘사는 나라일지라도 호랑이 서식지 정도면 굉장한 깡촌이라 거기 사는 사람은 대개 가난한 사람일 것이다. 이 사람들에게 호랑이 투어 등을 통한 관광수입이 돌아가게 된다면 어떨까? 저자는 참 훌륭한 사람이다. 이 사람은 공염불에 그치지 않고 책의 마지막장에 구체적인 관광 루트를 쭉 소개하고 있다. 인도, 네팔, 부탄, 방글라데시, 미얀마, 말레이시아, 인니,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중국, 러시아까지... 각 나라의 호랑이가 살고 있는 관광지에 대하여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내가 봤을 때 우리나라는 호랑이가 서식하기에 시베리아보다 훨씬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다. 한국이야말로 멧돼지에 고라니에 유제류의 천국 아닌가. 게다가 기후도 덜 사납다. 나중에 혹시라도 통일이 된다면 DMZ 자리에 호랑이 몇 마리 풀어놓고 영구적인 호랑이보호구역으로 지정하면 좋을 것 같다. 그렇게 해서 전술한 호랑이 관광 루트에 한국도 포함되는 날이 오도록 하는 일이야말로 - 200만 년 전부터 한반도에 살아왔던 호랑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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